여름 한낮에 대한 단상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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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24

여름 한낮에 대한 단상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 그래서 다시 한번 목도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하는 여름 한낮.

 

한여름 밤의 20세기 영화
선배 A는 비디오테이프를 모은다. 주로 소니의 베타 맥스(Betamax)나 빅터의 VHS 같은 가정용 카세트 타입인데, 근래엔 1990년대 영화 테이프를 디지털 파일로 변환하는 기괴한(?) 작업으로 시간을 때운다. 20세기 찬양론자인 그는 “좋은 영화는 이미 1990년대 이전에 모두 나왔다”라며 극장에 가지 않는 이상한 영화 마니아기도 하다. 다소 의견 차이가 있지만, 하여튼 그의 집에 있는 AV룸(비디오 덱, 진공관 앰프 같은 골동품을 쌓아놓은 방)에서 20세기 영화를 보는 건 분명 즐거운 일이다. 특히 습도가 높고 끈적이는 여름날 저녁, 시리도록 차가운 캔맥주를 마시며 보는 1980~1990년대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어떤 것에도 비할 바가 아니다. 당시 로맨틱 코미디 영화엔 시답잖게 웃다가 코끝이 찡해지고, 다시 훈훈하게 웃으며 마무리하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그 르네상스 시대에 개봉한 세 편의 영화가 이번 여름의 플레이 리스트에 들어 있다. 먼저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정석으로 불리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롭 라이너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가 부담스럽지 않게 가미됐고, 빌리 크리스털과 멕 라이언의 풋풋한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리고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제작사 워킹 타이틀과 작가 리처드 커티스 그리고 휴 그랜트라는 영국식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이 이 작품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사랑의 블랙홀>. 정말이지 빌 머레이의 연기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볼 때마다 이토록 완벽한 사랑 영화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에디터 조재국





돌고 도는 시간, 아니 시계
시계의 매력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손목에 얹고 싶은 시계를 떠올리는 습관이 생겼다. 오데마 피게의 로열 오크, 바쉐론 콘스탄틴의 말테, 위블로 빅뱅,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등 진부(?)하지만 시계 역사에 한 획을 그으며 ‘전설’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것들. 이 명작들은 ‘다시 마주하고 싶은 것’이라는 이번 칼럼의 주제와 그 결이 조금 다른데, 런칭 이후 역사가 끊이지 않은 이유에서다. 주제의 답을 얻기 위해 며칠을 고민했다. 시계 전문가에게 조언도 구해보고, 사전만큼 두꺼운 손목시계에 관한 역사 서적도 뒤적거렸다. 끝내 직사각 케이스 디자인의 롤렉스 첼리니 외에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칼럼의 주제이기도 한 레트로 열풍 때문이었다. 시계 분야에도 그 바람을 타고 한동안 보이지 않던 컬렉션이 속속 모습을 드러낸 것. 2020년 젊은 감각으로 무장하고 재등장한 까르띠에의 파샤 드 까르띠에, 지난해 많은 시계 애호가가 탐낸 블랑팡의 에어 커맨더, 알람 시계의 원조 격인 예거 르쿨트르의 폴라리스 메모복스가 그 주인공으로, 결국 이번 주제의 답이 됐다. (처음 모습을 드러낸 시기는 각각 다르지만) 오리지널의 기품과 정체성을 갖추고 시대상을 반영한 데다 현재의 혁신적 기술력까지 품은 명작의 부활! 이 시계들은 복고 열풍 덕에 재등장했지만, 오히려 늘 우리 곁에 있어야 할 전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곤 한다.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맘에 드는 시계가 있다면 하루속히 손에 넣으라고. 언제고 다시 등장할 테고, 소유의 즐거움을 하루라도 더 빨리 누릴 수 있으니.

에디터 이현상









'복세편살'
요즘은 게임이라는 말보다 e-sport가 익숙할 정도로 게임 고유의 오락적인 기능을 넘어선 지 이미 오래다. 프로팀이 있고, 세계 대항전을 한다. 그런 경기는 마치 올림픽을 방불케 한다. 기술이 발전해 게임 속 그래픽 또한 현실 공간처럼 자연스럽다. 경박한 기계 사운드도 없다. 실제 소리처럼 현실감이 넘친다. 모바일 게임 덕분에 공간의 제약도 사라졌다.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이렇게 게임하기 좋은 세상인데, 그다지 게임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 가상 세계에서만큼은 현실보다 단순하고 쉬웠으면 했다. 그러다 얼마 전 친구 집에서 신기한 것을 봤다. 거실 한쪽에 오락실 게임기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던 것. 레트로 트렌드에 힘입어서인지 요즘 가정용 오락실 게임기를 쉽게 살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렌털 서비스도 가능하다고. 친구들과 차례로 순서를 기다리며 게임을 했다. 문방구 앞에 쪼르르 앉아 순서를 기다리며 게임하던 추억이 몽글몽글 떠올랐다. 기억 속 때가 잔뜩 낀 조이스틱과 버튼은 아니지만 촉감만큼은 그 느낌 그대로다. 소닉, 보글보글, 올림픽 등 추억의 게임을 돌아가면서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집에 돌아와 아쉬운 마음에 레트로 게임기를 검색했다. 그러다 문득 추억 속 게임인 지뢰찾기가 하고 싶었다. 컴퓨터만 켜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게임이 지뢰찾기였는데, 이젠 그렇지 않다. 인터넷을 뒤졌다. 추억을 곱씹고 싶은 사람이 많은지, 루트가 다양했다. 구글에서도 지뢰찾기를 제공한다. 하지만 회색 네모의 오리지널 버전과는 차이가 있다. 심지어 3D 지뢰찾기도 있다. 이마저도 발전하는 세상이라니. 결국 오리지널 버전의 지뢰찾기를 발견하곤 게임을 했다. 기록을 경신하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지뢰를 찾았다. ‘역시 게임은 단순한 게 최고다’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다.

에디터 이민정





모던 록은 다시 ‘모던’해질 수 있을까?
리오넬 메시가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승하면 오아시스를 재결합시키겠다”라고 말한 지 10년이 지났다. 한 번이라도 오아시스의 음악을 들으며 마음으로 운 팬이라면 그 말을 듣고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론 염원했겠지. 혹시? 설마? 나도 그랬다.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만약 성사됐다면 한 나라의 국가 대신 ‘Don’t Look Back in Anger(오아시스의 대표곡 중 하나다)’를 전 세계인이 떼창하는 기적 같은 날이 왔을까? 어쩌다 후대에 인정받는 건 오롯이 예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거늘, 당대가 외면했던 대중문화 뮤지션이 수십 년이 지나 다시 떠오르는 걸 보면 신기하다가도 묘한 기분이 든다. 과거의 문화를 건져 올려 동시대 문화로 즐기는 각종 ‘밈’을 유쾌하게 즐겨 보는 나지만 밴드의 재결합에는 좀처럼 찬성하기 어렵다. 오로지 그때 그 순간이기에 발산할 수 있는 빛과 에너지란 게 있다. 역사상 많은 뮤지션의 재결합이 안타깝게도 그 사실을 증명했다. 그럼에도 눈앞에서 다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순간이 있다. 1990년대 끝자락에서 2000년대 문턱, 가장 뜨거웠던 한국 모던 록의 시절이다. 롤러코스터, 마이 앤트 메리, 델리스파이스, 언니네 이발관, 코코어, 허클베리핀, 불독 맨션, 트랜스픽션 등 밴드가 주축을 이룬 모던 록 신은 그야말로 먹을 것 진진한 과수원 같았다. 모던 록이라는 장르 안에서 각자 자신만이 낼 수 있는 빛깔과 맛을 지니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감수성 풍부한 나의 한 시절을 담당한 롤러코스터는 해체를 발표한 날부터 지금까지 재결합을 원하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다. 애초에 밴드란 타로 카드를 뒤집는 심정으로 만난 사람들이다. ‘얻어걸린’ 멤버 구성은 동시성의 원리처럼 어떤 한 찰나에 설명할 수 없는 빛과 에너지를 발산한다. 결국 멤버 스스로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한 재결합은 밴드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을 다시 목도하고 싶은 건 순전히 나의 이기심일 뿐이다.

에디터 전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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