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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02

타인을 위하여

세이브더칠드런 오준 이사장은 여전히 타인을 위해 외친다.

지난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43차 회의에서 UN인권이사회가 북한인권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곧이어 “우리 정부가 2년 연속 공동제안국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도 다른 어떤 국가보다 북한 인권 문제의 실상을 가장 잘 아는 한국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에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비정부기구(NGO)와 회원국 관계자들은 노골적으로 우리 정부에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고, 인권단체와 학계 전문가들은 “대한민국 정부가 대북 인권결의안 표결에 기권한 것은 헌법을 포기한 것이고, 국민을 포기한 것”,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내팽개친 행위”라고 지적했다. UN인권이사회가 아프리카 몇 개국을 설득해 “한국 정부가 찬성하면 뜻을 같이하겠다”는 약속을 받은 상황이라 정부의 표결 불참은 더욱 실망스러웠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제24대 주 UN대한민국대표부 대사를 지내며 북한과 아동, 장애인 인권 신장에 힘을 보태온 오준 세이브더칠드던 코리아 이사장 또한 이 결정에 “한반도 상황을 고려해 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서 빠지겠다는 정부 입장은 우리 스스로 인권 문제에 정치적 고려를 하겠다고 인정하는 셈”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 인권 문제에는 비정치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할 수 있다면 시민 단체가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준 이사장은 서울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하고 1978년 외무고시 패스 후 외무부와 외교통상부, 주 UN대한민국대표부 등을 거치며 싱가포르 주재 대사, UN대한민국대표부 대사, UN경제사회이사회 의장을 맡아 국제 무대에서 올바른 세계화를 향한 의제에 힘을 실었던 인물. 특히 2014년 UN안보리 회의장에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8분간 연설해 박수를 받았는데, 이는 UN대사로서가 아닌 동포로서의 간절한 발언이자 한 인간으로서 북한에서 벌어지는 인권 유린에 대한 깊은 탄식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회자되는 그때의 연설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이 시대의 감동적 연설’로 보여주는 대표적 영상이 되었다. 이제는 외교부에서 은퇴 후 경희대학교 평화복지대학원 교수와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이사장으로 일하며 “국가가 놓치고 있는 역할에 시민 단체가 나서야 올바른 세계화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 그를 만났다.


2016년 말, UN대한민국 대표부 대사를 마지막으로 외교부에서 퇴직하신 후 현재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십니다. 근황이 어떠신가요? 세이브더칠드런 국제이사도 겸하고 있어 1년에 네댓 번은 해외 출장을 가곤 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지금은 국내 활동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장애인 복지에도 관심이 많아 청각장애인 복지 단체 ‘사랑의 달팽이’ 부회장도 맡고 있죠.

오랜 시간 국제 무대에서 아동과 장애인,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셨지만 NGO 단체에서 일하는 건 처음이십니다.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글로벌 NGO들과 늘 협조적인 관계였어요. NGO 단체에 직접 들어온 건 처음이지만 외교부에서 퇴직하면 시민 단체에서 일하겠다고 마음먹은 터라 자연스러운 행보입니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외무고시에 패스해 평생 외교관으로 사셨는데, 시민 단체에 합류하고 싶은 이유가 있었나요? 세계는 지금 하나의 지구촌이라 할 만큼 밀접한 상호의존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시대고, 국경을 넘어 활동하는 기업이나 민간 분야도 점점 확대되고 있죠. 그렇다면 국경이라는 의미와 국가 중심의 질서 등이 좀 약해지고 민간 중심의 세계 교류가 활발해져야 하는데, 불행히도 그게 약해지지 않아요.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국가 중심주의가 더 강해졌죠. 글로벌화를 위해서는 인간을 중심으로 한 교류가 더 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38년간 국가를 위해 일했으니 이제는 세계화 시대에 맞는 일을 하고 싶었고, 올바른 방향으로 세계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NGO 같은 시민 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에 합류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1919년 영국의 에글렌타인 젭(Eglantyne Jebb)이라는 여성이 만든 단체로,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 구호 NGO입니다.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한 교사 출신인 그녀가 구호 단체를 창립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당시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같은 좋은 대학은 여학생을 받지 않았어요. 그러다 옥스퍼드가 처음으로 여학생을 받기로 하고 여자 대학을 세웠는데, 첫 졸업생 중 한 명이 에글렌타인 젭입니다. 그분은 대학 졸업 후 교사로 일했는데, 그 와중에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죠. 영국과 독일은 적국이었는데, 당시 독일이 봉쇄당해 아이들이 굶어 죽는 경우가 많았어요. 젭은 트래펄가 광장에 나가 사람들에게 ”영국이 독일의 아이들을 어떻게 했는지 보라”며 독일과 오스트리아 아이들을 위한 구호 활동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독일은 영국의 적국이었기에 그녀의 행동은 국가에 대한 배신행위라 판단,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내렸어요. 그런데 재판을 맡은 판사가 젭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벌금을 대신 내주었죠. 그것이 세이브더칠드런 1호 기부금입니다.

전 세계엔 여러 아동 구호 단체가 있는데, 세이브더칠드런만의 차별점이 있을까요? 세이브더칠드런을 창설하고 5년 후인 1924년 국제연맹에서 에글렌타인 젭이 만든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됐습니다. 그것이 발전해 1989년 UN아동권리협약이 되었고요.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 인권 중심으로 시작된 기관이기에 아동 학대나 인권침해 사례가 있을 때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3년 전 유명 유튜버 중 한 명을 고발한 적이 있어요. 조회 수를 올리려 아버지가 강도로 변장하고 아이와 맞닥뜨려 아이를 울게 하거나, 장난감 자동차를 탄 아이를 길에서 운전하게 하는 영상을 만든 유튜버였는데, 분명 문제가 되는 영상이라 고발했고 유죄판결도 받았습니다.

시대에 따라 주력하는 활동도 달라질 것 같아요. 세계아동권리, UN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의 권리를 네 가지로 나눕니다. 생존할 권리, 보호받을 권리, 교육받을 권리, 참여할 권리죠. 개도국일수록 생존할 권리와 보호받을 권리가 중요한데, 우리나라만 해도 생존에 대한 걱정에선 어느 정도 벗어났지만 아이들이 잘 보호받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여전히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사장님이 대중에게 알려진 건 2014년 12월 22일, UN안보리 회의장에서의 연설 때문입니다. 북한 인권 의제가 공식 안건으로 상정되면서 당시 UN 주재 한국대사였던 이사장님이 약 8분간 연설하셨는데요. 수백만 명의 이산가족을 언급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에게 북한은 그저 아무나(anybodies)가 아니다”라는 말씀으로 큰 주목을 받으셨죠. UN에서 인권을 다루는 곳은 UN총회와 인권이사회입니다. UN안보리는 본래 국가 평화와 안보를 다루는 곳이기에 인권 문제를 잘 다루지 않습니다. 따라서 안보리에 인권 관련 의제가 올라왔다는 건 정말 심각한 상황이라는 뜻이죠. 북한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고 형제자매인데 그 이슈가 안보리까지 온 걸 보니 가슴이 아팠고, 그 점을 다른 나라 외교관들에게 전하고 싶었어요. 처음 5분은 준비한 스크립트를 읽었고, 나머지 3분은 스크립트 없이 연설했죠. 그 3분 영상이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것 같아요.

그 연설을 듣고 서맨사 파워 UN 주재 미국대사는 “지금껏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들은 발언 중 가장 강력했다”고 감탄했습니다. 연설이 보도된 후 하루 만에 150명이 페북 친구를 요청했고, 2주 사이 페친이 800명이나 늘었다고 들었습니다.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그 연설은 지금 들어도 감동적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으셨나요? 북한에서 일어나는 인권유린, 인권침해는 제삼자인 당신들이 보듯 추상적인 일, 통계상의 수치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그런 일을 당하는 사람이 대한민국 국민의 형제자매이자 친척일 수 있잖아요. 우리 어머니도, 장인어른도 북에 친척을 남겨두고 온 분들이라 저만 해도 북한의 인권 문제가 남 일 같지 않습니다.

북한의 인권도 그렇지만 요즘처럼 아동 학대가 이슈가 된 적이 또 있나 싶습니다. 학대와 체벌에 관한 문제가 갑자기 증가한 걸까요? 우리나라 경우 이러한 문제들이 과거엔 많이 묻혀 있다가 시민 의식과 사회 의식이 높아지면서 드러난 것으로 봅니다. 부모에 의한 아동 학대 신고는 누가 할까요? 부모 중 학대를 하지 않은 쪽 부모나 아동 본인 또는 학교 선생님이 합니다. 과거에는 그런 것들이 수면 아래 묻히곤 했어요. 부모 중 한쪽도 배우자를 신고하기 어려웠고, 선생님도 아이한테 물어보지 않았죠. 2014년 아동 학대 신고가 약 1만5000건이었는데, 2019년 3만 건이 넘었어요. 몇 년 사이 두 배가 늘어난 거죠. 학대 건수가 아니라 신고 건수가 늘었다고 보는 것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위_2014년 UN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의 오준 전 UN대한민국대표부 대사. 안보리 회의 최초로 북한 인권을 정식 의제로 채택할 당시, 8분간 북한 인권에 대해 연설해 전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아래_2015년, UN 경제사회이사회 의장에 한국인 최초로 선출되어 우리나라의 위상을 드높였다.

얼마 전 이사장님은 다른 인터뷰에서 “굿네이버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 아동 인권 단체들과 ‘민법 제915조(징계권)’를 삭제하는 캠페인을 펼칠 계획”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갖는 ‘징계권’이라는 것의 범위가 애매한데 이사장님은 징계권의 최소치와 최대치를 어느 정도로 보시나요? 외국에선 훈육을 ‘discipline’이라고 합니다. 규율, 절제라는 뜻이죠. 영국같이 전통이 강한 곳에는 ‘spare the rod spoil the child(매를 아끼면 애를 망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엄격하게 훈육합니다. 몇몇 국가에선 무릎에 아이를 올려놓고 체온을 느끼게 하며 엉덩이를 때리는 행위(spanking)는 체벌이 아니라 사랑의 매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다 1980~1990년대 이후 스웨덴을 시작으로 북유럽 국가에서 체벌 금지를 법으로 만들었고, 지금은 프랑스 등 유럽 국가, 심지어 일본까지 60여 개국에서 체벌 금지를 법제화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또한 ‘사랑의 매는 없습니다’라는 캠페인을 통해 체벌 금지를 법제화하는 데 동의하고 있죠.

체벌을 대신하는 방법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아이에게 지속적인 말로 주의를 주는 방식, 즉 긍정적 훈육 방식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부모의 훈육에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어른의 기분에 따라 기준이 바뀌면 아이들은 부모의 훈육을 따르지 않습니다.

외교관 시절 전 세계 빈부 격차 문제나 총기와 테러 사건, 기후변화, 전쟁 등 모든 문제를 가까이에서 목도하셨는데, 유독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나요? 인권(human right)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권리를 가졌다는 의미인데, 알고 보면 매우 혁명적인 개념입니다. 인간이 살아온 역사 중 많은 시간이 평등하지 않았거든요. 왕에게서 태어나면 왕자와 공주가 되고, 노예에게 태어나면 노예로 살아야 했으니까요. 이렇듯 오랜 기간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정해진 사회에서 살아왔는데, 1948년에 나온 세계인권선언에서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권리와 존엄성에 있어서 평등하다”고 했으니 혁명적일 수밖에요. 인권선언에 따르면 여자든 남자든, 아이든 어른이든, 장애가 있든 장애가 없든 인간은 모두 평등합니다.

그중에서도 아동과 장애인 인권을 위해 특별히 더 노력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아이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나라에서 아동에겐 성인과 같은 권리를 주지 않아요. ‘성인과 같은 능력’을 갖지 못했다는 말은 맞지만 ‘성인과 같은 권리’를 갖지 못했다는 말은 사실 맞지 않습니다. 아동 스스로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우니 어른이 그것을 보장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죠. 아동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장애인 인권에 대한 생각도 같으신가요? 한국의 장애인 인구는 250만 명입니다. 인구의 5%밖에 되지 않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특수한 분야의 인권을 하시네요”라고. 그런데 저는 생각이 달라요. 모든 사람이 삶의 어떤 단계에서 장애를 갖게 된다고 봅니다. 누구는 삶의 마지막 일주일을 침대에 누워있다 죽고, 누구는 수년간 병상에서 앓다 죽습니다. 스스로 돌아다닐 수 없는 상황, 이것이 결국 장애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평생 대학교수로 강단에 서시다 70세에 파킨슨병에 걸려 휠체어에서 3년을 보내고 돌아가셨어요. 그 모습을 보며 장애인에게 관심을 갖게 됐죠.

‘장애’의 정의가 인상적입니다. 어머니를 보며 평생을 활동적으로 사신 분도 삶의 마지막엔 결국 장애인이 된다는 걸, 나도 언젠가는 휠체어 신세를 질 수 있다는 걸, 휠체어를 탄 사람이 아무 불편 없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면 특별한 장애인을 위한 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거라는 걸 깨달았어요. 아동 인권이 모든 인간의 권리에 관한 것이듯, 장애인 인권도 모든 인간의 권리에 관한 거라고 생각하게 됐죠.

UN대한민국대표부 대사로 계실 때 UN 장애인권리협약 당사국회의 의장직을 맡기도 하셨습니다. 국내 장애인 인권에 대한 의식은 어디까지 와 있다고 보세요? 2~3년 전 뉴스에서 한 국회의원이 장애인 문제에 대해 “도대체 가족은 뭘 하고 장애인을 사회에 맡기냐”고 말한 걸 봤어요. 몇 년 전까지 장애인 1등급 판정을 받으면 24시간 활동 보조인을 붙여줬는데, 그걸 보고 “장애인을 돌봐야 하는 가족은 놀러 다니고 왜 국가가 지원해야 하느냐”는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이처럼 우리나라는 인권 문제를 사회 중심적으로 접근하지 않아요. 오랫동안 가족 중심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장애인 문제 같은 경우 가족에게 모두 책임지라는 마인드로는 사회가 올바르게 돌아갈 수 없어요. 우리나라도 장애인 인권에 대해서는 그동안 해온 복지 중심보다는 권리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예를 들어, 1000만 원의 장애인 복지 예산이 있다고 해요. 건물 입구에 휠체어 진입로를 만들 것이냐, 휠체어 탄 사람 100명에게 10만 원씩 나눠줄 것이냐를 결정할 때 그동안 우리는 후자를 택했어요. 그런데 막상 10만 원을 가지고 혼자 저녁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는데, 식당 입구에 휠체어 진입로가 없는 거예요. 과연 장애인에게 어떤 것이 더 필요할까요? 복지 중심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이제는 그걸 넘어 권리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부터 은퇴 후 시민 단체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고 하셨는데, 혹시 세이브더칠드런 이후 다음 계획이 있으신가요? 우린 일반적으로 60세 전후로 은퇴합니다. 그런데 저는 인생까지 은퇴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은퇴라는 것은 죽을 때까지 조용히, 그리고 편하게 살겠다는 거잖아요. 예전에 미국의 한 작가가 인생을 3부로 나누어 정리한 책을 봤어요. 처음 30년은 교육받고, 두 번째 30년은 첫 커리어를 쌓고, 마지막 30년은 두 번째 커리어를 쌓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인생을 풀어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첫 커리어로 30년을 사는 동안 두 번째 커리어는 무엇을 할지 생각하고 준비해야죠. 제 두 번째 커리어는 사회를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세계화 시대에 국가 중심의 패턴을 벗어나 시민사회, 시민 단체, 민간 교류 등을 중심으로, 이 시대의 세계화가 모든 인류에 도움 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일에 기여하고 싶어요.”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김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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