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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15

미래의 박물관은 이런 모습

디지털 이미지 소스로 새로운 전시를 만드는 프랑스 문화 콘텐츠 기업 컬처스페이스의 브뤼노 모리에.

의 전시 전경, 빛의 수조(Bassins de Lumières), 보르도(Bordeaux), 프랑스, 2020
ⓒ Culturespaces / Anaka Photographie





컬처스페이스 창립자이자 CEO 브뤼노 모니에.
ⓒ Culturespaces / Sofiacome

2007년 11월부터 서울시립미술관은 관람자로 북새통을 이뤘다. 네덜란드 인상주의 화가 반 고흐(Van Gogh)의 국내 최초 회고전 <불멸의 화가, 반 고흐>를 보기 위한 관람자가 11월부터 석 달이 조금 넘는 기간에 81만6427명, 서울시립미술관 개관 이래 단일 전시로 최대 관람자 수 기록을 달성했다. 해외에서 운송한 유화·드로잉·판화 원작 67점에 대한 1조4000억 원에 달하는, 보험평가액만으로도 큰 이슈가 된 전시였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에 열린 이 전시의 성인 관람료는 1만2000원. 적지 않은 금액을 지불한 관람자들은 그동안 책과 TV를 통해서만 봐온 원화를 실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마음껏 누렸다.
대개 인상주의, 야수파, 초현실주의 등 특정 화파의 대가들 전시는 기획사의 블록버스터 전시일 가능성이 높다. 높은 보험료와 해외 운송료, 대관료를 지불한 이들 전시는 관람자의 입장료를 주 수입원으로 하는 상업적 전시로 분류되었다. 미술사에서 대가로 불리는 화가의 유명한 원작을 한시적으로 해외에서 국내로 들여온 전시는 미술 작품의 희소성과 유일무이성을 극대화하고, 작품의 오라가 갖는 상업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화가와 화가의 제작물, 그리고 그 둘을 둘러싼 배경 지식은 음악과 영상을 입힌 드라마틱한 스토리로 탈바꿈해 관람자 앞에 나타났다. 전시는 디지털 미디어 전시,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 디지털 아트 전시 등의 이름을 달고 등장했는데, 이 새로운 변화는 관람자에게 특별히 부담스럽게 다가오지 않았다. 이미 대중은 무대미술, 사이니지(signage), 전광판, 광고 패널 등 영상 기반의 대형 디지털 이미지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왔고, 블록버스터 전시의 주인공은 오랫동안 소비해 충분히 익숙한 미술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이 분야를 대표하는 프랑스 문화 콘텐츠 기업 컬처스페이스(Culturespaces)는 이러한 트렌드에 맞춰 2018년 11월 제주도에 한국 IT 기업 티모넷(T-Monet)과 함께 빛의 벙커(Bunker des Lumières)를 열었다. 개관 1년 만에 관람자 56만 명을 돌파한 빛의 벙커는 명화 이미지를 소스로 한 미디어 아트에 벙커라는 특별한 장소성을 더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 빛의 벙커 개관에 맞춰 내한한 컬처스페이스 CEO이자 창립자 브뤼노 모니에(Bruno Monnier)는 “컬처스페이스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폐산업시설을 관리하는 데에도 관심이 많다”며 벙커라는 시설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빛의 벙커는 제주도 성산에 위치한 약 900평의 공간으로, KT가 1990년 국가 기간 통신망을 운용하기 위해 설치한 시설이었다.





전시 전경, 빛의 아틀리에 (Atelier des Lumières), 파리, 프랑스, 2019
ⓒ Culturespaces / E. Spiller





전시 전경, 빛의 아틀리에 (Atelier des Lumières), 파리, 프랑스, 2019
ⓒ Culturespaces / E. Spiller

오래된 시설과 건물에 대한 관심은 컬처스페이스의 CEO 브뤼노 모니에가 회사를 창업한 과정에서도 이미 드러났다. 창업 당시부터 컬처스페이스는 프랑스의 박물관을 비롯한 문화적·역사적 기념물을 운영 및 관리해왔다. 개인 또는 단체나 주 정부 소유의 문화시설 중 기념관과 박물관을 운영 및 관리하고 홍보하는 일을 컨설팅하거나, 위임받아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브뤼노 모니에는 “우리의 유산을 보존하고 역사와 예술에 대한 열정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라고 창업 목적을 밝혔다. 그는 1990년 아비뇽시와 아비뇽 교황청의 관리를 위한 위임 계약을 처음으로 성사시켰다. 이후 레보드프로방스 성, 파리의 자크마르-앙드레 박물관과 마욜 미술관, 엑상프로방스에 있는 호텔 드 코몽, 발랑세 성 등을 관리했고 몇몇은 현재진행형이다. “컬처스페이스는 프랑스에서 루브르 박물관, 국립문화유적센터, 베르사유 궁과 에펠탑 다음으로 관람자가 많이 찾는 문화 예술 명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문화 예술 시설을 운영 및 관리하면서 컬처스페이스는 상설 또는 특별 전시 프로그램을 개발해 함께 진행하고 있다. “전체 직원 중 3분의 2에 달하는 이들을 포함한 10개의 전시팀이 매년 6개의 특별 전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전시 큐레이터, 작품 대여자, 디자이너, 아티스트 등과 긴밀한 업무 협조를 하고 있죠.”
시설 운영과 전시 기획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브뤼노 모니에는 직접 디지털아트센터(Culturespaces Digital Ⓡ)를 건립하고 그에 맞는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사업 구상에 착수했다. “전통적 예술에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차원을 더하고, 전통적 박물관을 방문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이들에게도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2012년에 개관한 빛의 채석장(Carrières de Lumières)이 그 시작이었다. 레보드프로방스에 위치한 빛의 채석장은 AMIEX Ⓡ(Art and Music Immersive Experience) 시스템을 이용, 시각적 경험을 우위에 둔 기존의 전시 경험에서 관람자에게 뮤지컬 사운드트랙에 대한 감각적 몰입을 강조하는 경험으로 변화시켰다. 고정된 명화의 이미지와 비디오를 함께 사용해 채석장으로 쓰이던 공간을 명화의 이미지로 감싼 전시는 오픈하자마자 큰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브뤼노 모니에는 많은 박물관이 전시를 위해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는 것은 필연이라고 했다. “전 세계의 대여 요청으로 예술 작품의 가치 상승, 보험료와 운송료 증가 등을 고려할 때 전시의 제작비는 구조적으로 더욱 상승할 것입니다. 이 구조는 관람자에게 급격한 입장료 인상으로 압박을 느끼게 하거나, 기획사에 야심만만한 대형 전시 프로젝트를 포기하게 할 것입니다.”





전시 전경, 빛의 벙커(Bunker des Lumières), 제주, 2018
ⓒ Culturespaces





의 전시 전경, 빛의 아틀리에, 파리, 프랑스, 2020년
ⓒ Culturespaces / E. Spiller

컬처스페이스의 디지털아트센터는 현재까지 총 네 곳에 자리 잡았다. 앞서 언급한 빛의 채석장(레보드프로방스), 빛의 아틀리에(Atelier des Lumières, 파리), 빛의 벙커(제주도), 빛의 수조(Bassins de Lumières, 보르도)를 차례로 개관했다. 2012년에 빛의 채석장을 설립한 이래 2018년부터 작년까지 매해 공격적으로 디지털아트센터 건립을 추진했고, 올해 말 두바이에 다섯 번째 센터 개관을 앞두고 있다.
디지털아트센터는 채석장, 주조 공장, 벙커, 수조와 같이 특별한 기능과 역사를 지닌 공간이면서, 연간 방문자 50만에서 100만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곳을 선정해 본래의 기능을 살리면서 전시장으로 보수한다. 장소의 3차원적 특성을 살릴 수 있도록 전체 공간을 명화의 이미지나 영상으로 프로젝션 매핑하고 사운드 구성을 통해 몰입형 미디어 경험을 제공한다.
2018년 개관한 빛의 수조는 컬처스페이스의 대표적 프로젝트다. 프랑스 보르도에 위치한 이곳은 원래 독일군이 건설한 잠수함 기지로, 제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에 들어선 5개의 주요 건축물 중 하나였다. 11개의 폐포를 배치한 이곳은 길이 235m, 폭 160m, 평균 높이 19m, 전체 표면적이 4만1000m2에 이르는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약 6500명의 노동자와 15대의 대형 잠수함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기지는 1944년 독일군이 퇴각한 이후 예술가의 촬영 장소로 쓰이거나 특별한 용도 없이 방치되다, 2년에 걸친 복원 작업을 통해 마침내 올해 빛의 수조로 거듭나게 되었다. “보르도의 건축 회사 브로셰 라쥐 퓌에요(Brochet Lajus Pueyo)가 설계와 공사를 맡았고, 보르도 현지의 전문 기술 파트너와 협력해 우리가 디지털아트센터를 설립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총예산은 1000만 유로에 달했습니다.”
현재 메인 전시는 <구스타프 클림트, 황금과 컬러(Gustav Klimt, Gold and Colour)>로 지안프랑코 이아누치, 레나토 가토, 마시밀리아노 시카르디가 연출하고 음악은 루카 롱고바르디와 협업했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부르크 극장의 샹들리에 장면으로 시작해 건물 외관의 꽃과 식물 모티브를 이용한 패턴, 금박 장식, 금빛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생명의 나무, 클림트의 초상화와 여성 누드의 이미지가 음악에 맞춰 환상적으로 펼쳐진다.
빈의 상징주의를 이끌고, 당시 미술계의 보수성을 깨고 순수 미술을 장식 미술의 영역까지 확장한 클림트의 작품 세계와 이를 반영한 당시 빈의 예술적 활기를 사방으로 쏟아지는 움직이는 영상과 수조에 가득한 잔잔한 물에 비친 환영 그리고 음악의 카타르시스로 표현했다. “저는 방문자가 몰입할 수 있고 감각적인 예술 경험을 즐기길 원한다고 확신합니다. 사람들은 과거처럼 문화에 대해 배우지 않습니다. 몰입형 경험에서 직접 느낀 감정을 통해 예술을 배웁니다. 예술과 디지털 기술의 결합은 미래 세대에게 예술을 보급하는 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반 고흐 이야기로 돌아오자. 현재 제주도 빛의 벙커에서는 32분가량의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을 전시 중이다. 약 90개의 레이저 비디오 프로젝터와 60개의 스피커가 만들어내는 반짝거림 속에 서 있는 나와 13년을 거슬러 인파를 뚫고 미술관 전시장에 놓인 작가의 자화상 앞에 선 나는 어떻게 다르고 또 어떻게 같을까? 130년 전에 존재한 반 고흐라는 예술가와 그가 남긴 작품은 어떤 모습으로 변신해 또다시 우리에게 다가올까? “디지털아트센터는 전통적 박물관보다 많은, 그리고 젊은 관람자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법은 박물관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존 예술이 대중에게 다가가던 방식을 보완하기 위한 것입니다.”

브뤼노 모니에
1955년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태어났다. 파리정치대학과 파리2대학을 졸업하고 HEC의 MBA 과정을 이수했다. 1981년 프랑스의 다국적 홍보대행사이자 미디어 그룹 하바스(Havas)에서 커리어를 시작, 1986년 프랑스 문화부로 옮겨 미술관과 역사적 기념물의 현대화 작업(Patrimoine 2000)에 이어 베르사유 궁의 쇄신 작업을 맡았다. 이후 1988년 컬처스페이스를 창립했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류정화(전시 기획자)
사진 제공 컬처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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