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의 묘미 '굿즈'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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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24

전시의 묘미 '굿즈'

전시의 또 다른 묘미는 '아트 굿즈'다.

2012년 일본 오사카 국립 국제 미술관의 전에서 판매한 쿠사마 야요이 굿즈.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작품이 대거 등장하는 일명 ‘블록버스터’ 전시. 여기서 소개하는 또 하나의 작은 작품 ‘아트 굿즈’에 대한 대중의 니즈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런 전시를 기획하는 기획사는 물론 일반 미술관, 박물관에서도 활발하게 아트 상품 사업을 펼치고 있다.

어릴 적 놀이공원에 간 기억을 떠올려보자. 각종 놀이기구를 신나게 즐긴 것 외에도 그날만 가질 수 있었던 특별한 장난감에 가슴 설렌 기억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제 어느 정도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어른이 된 지금, 미술 전시장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기대감을 느낀다. 눈으로 보고 어렴풋한 잔상을 머릿속에 담아 가던 이전의 전시 관람 형태에서 특별히 재미있게 본 전시,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작품을 어떻게 하면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즐길 수 있을지 고민한 전시 관람 형태가 주목받고 있다. 그 일환으로 전시 기획사는 물론, 국공립 미술관과 갤러리에서도 그들을 대표하거나 전시와 작품 이미지를 담은 아트 상품을 기획하는 데 주력하기 시작했다. 전시가 열리는 특정 시기, 그 장소에서만 살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물건은 이를 소유한 이에게 묘한 쾌감을 선사한다. 따라서 자잘하게 신경 써야 하는 일이 많은 사업임에도 이러한 아트 상품은 블록버스터 전시를 기획할 때 전체 예산의 20~3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아졌다.





‘2018 베니스 비엔날레’ 굿즈로 만들어졌던 작은 에스프레소 잔.





(왼쪽부터) <키스 해링>전, <무민 원화전>, 전 도록.

전시 관람 동선 맨 끝에 주로 위치하는 아트 숍에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까? 작품 이미지를 프린트한 엽서부터 작은 피겨나 오브제까지 상품의 종류도 무척 다양하다. 사실 미술품은 저작권 문제가 무척 복잡하고 예민한 분야라 상업적으로 작품의 이미지를 사용하기 위해선 반드시 협의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지난 몇 년간 열린 굵직한 전시 중 <무민 원화전>,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19>, <에릭 요한슨 사진展> 등의 기획을 맡은 전시 기획사 씨씨오씨의 권은진 매니저. “최근 개최한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19>에 총 76명의 작가가 참여했어요. 이들의 작품으로 상품을 만들기 위해 한 명 한 명 콘택트하고 이미지를 상품화해도 될지 허락을 구하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그런 측면에서 무척 힘든 전시였다고 할 수 있죠”란 그녀의 말에서 서로 얽혀 있는 여러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야 전시장에서 이렇듯 다채로운 상품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심지어 전시의 성공 여부가 전시 굿즈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난해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디즈니 애니메이션 특별전>에서 준비한 공식 굿즈는 어느 때보다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실사영화로 제작되면서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 등에 삽입된 OST가 큰 인기를 얻었다. 그 추세가 전시로 이어져 유니버설뮤직이 발매한 ‘디즈니 레거시 컬렉션 시리즈’, ‘재즈 러브 디즈니 시리즈’ 등 한정판 음반이 전시회를 통해 가장 큰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작은 인형, 핸드 드로잉, 컨셉 아트, 3D 모형 등 500여 점에 달하는 다양한 제품이 한국 전시 기간인 약 4개월 동안 꾸준히 사랑받았다. 전시를 기획한 지엔씨미디어의 정용석 부사장은 “요즘 사람들은 이러한 전시 상품을 구매하며 ‘기억을 산다’고 여기는 것 같아요. 작품 소장의 개념이 상품으로 확장된 거죠”라며 아트 상품에 대한 관람객의 높은 관심과 트렌드에 부합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덧붙였다.
전시에서만 만날 수 있는 한정판 굿즈이기에 다른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다는 ‘특별함’이 사람들의 감성을 건드리지만, 아트 상품은 단순히 ‘매출’과 ‘수익 창출’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점을 짚어야겠다. 올 봄부터 여름까지 대림미술관에서 개최해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끈 패션 브랜드 구찌의 전시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는 그 내용만큼이나 굿즈로 세간에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핑크·그린·블루 컬러 포스터, 에코 백, 텀블러, 노트, 엽서, 문진 등의 작은 오브제를 전시를 통해 소개했는데,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책정했음에도 많은 이가 화답했다. 전시를 시작하며 구찌는 연계 상품 판매금의 50%를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기부하겠다고 미리 밝혔다. 따라서 우리 모두 굿즈를 통해 ‘퍼네이션(funation)’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다는 사회 공헌 측면까지 보여줬다. 단순히 브랜드가 기획하고 디자인한 제품, 그 이상의 의미를 여기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구찌의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전의 굿즈로 만들어졌던 텀블러.
사진 제공 구찌코리아





<줄리안 오피> (수원시립아이파크 미술관)전과 <에르빈 브룸: One Minute Forever> (현대카드 스토리지)전 굿즈.

그런가 하면 작품의 의미와 가치, 작가의 예술철학을 투영한 하나의 작은 작품으로서 굿즈를 개발해 판매하는 곳도 있다. 지난해 가을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관과 과천관에서 열린 제니 홀저의 커미션 프로젝트 전시 <당신을 위하여: 제니 홀저> 당시 티셔츠, 에코 백, 자, 마스킹테이프, 엽서 세트, 전시 포스터 등을 소개했다. ‘경구들(truisms)’과 ‘선동적 에세이(inflammatory essays)’란 작품 속 문구를 활용했는데, 여기에는 작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고 한다. 티셔츠와 에코 백은 모두 친환경 인증을 받은 원단으로 제작했다. 티셔츠 앞·뒷면에는 과천관 석조 다리에 영구적으로 설치한 11개의 ‘경구들’ 가운데 각각 3개의 영문과 국문 문구를 인쇄했다. 또 에코 백에는 ‘Boredom makes you do crazy things’와 ‘The unattainable is invariably attractive’란 영문 문구를 활용했다. 텍스트를 작업의 매체로 끌어오는 제니 홀저는 이러한 상품을 통해 관람객 또는 상품을 사는 사람 모두 자신의 사유를 쉽게 그들의 품으로 끌어안을 수 있게 했다. 결국 작품이 꼭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작품의 형태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것이다.
대림미술관, 디뮤지엄, 구슬모아당구장이란 전시 공간을 운영하는 대림문화재단 역시 국립현대미술관과 비슷한 맥락으로 전시 굿즈를 선보인다. 재단은 아트 컬렉터가 그림을 사듯 누구나 쉽게 작품을 경험하고 소장할 수 있는 협업 플랫폼인 ‘굿즈모아’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국내 신진 작가의 작품을 굿즈의 형태로 제안한다. “굿즈모아 프로젝트는 전시와 굿즈의 경계와 작가주의의 장벽을 허무는 긍정적 대안을 제시했다는 평을 듣고 있어요. 또 이를 통해 굿즈를 하나의 문화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셈이죠.” 결국 대림문화재단은 굿즈 관련 수익 전액을 전시를 위해 재투자하는 등 재단법인으로서 우리나라 문화 예술계가 긍정적으로 순환할 수 있도록 일조하고 있다.
그저 눈으로 보고 즐기던 미술 전시의 트렌드는 지나갔다. 관람객이 전시의 일부가 되기도 하고, 자유롭게 사진을 찍는 등 다양한 형태의 관람 방식이 전시에 차용되는 만큼, 전시를 기억하는 방법 역시 다채로워졌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품을 구입해 소장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으나, 고전 명화나 문화적 가치가 높은 유산급 작품을 내 손에 넣기는 쉽지 않다. 그 대안으로 제시하는 다양한 아트 상품이 앞으로도 꾸준히 작품을 향한 우리의 소비 심리를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김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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