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성남훈의 깊이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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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19

사진작가 성남훈의 깊이

영상 시대에 이미지가 살아남는 방법.

성남훈 작가 뒤로 보이는 작품은 2017년 일우사진상을 수상한 ‘인도네시아 주석 광산’(2015) 중 하나.

“Namhun Sung, Red Island.” 라이카는 지난 8월 ‘제40회 라이카 오스카 바르낙 어워드 2020(Leica Oskar Barnack Award)’ 파이널리스트를 발표했다. 라이카 오스카 바르낙 어워드는 그동안 사진을 찍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지만, 올해부터는 세계 30개국 70명 전문 위원 추천제로 바뀌었다. 각국 사진 분야 기획자, 박물관장 등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자국 대표 작가를 1차 후보로 선정했다. 조건은 2019년부터 2020년까지 발표하지 않은 신작을 제출할 수 있는 사진가. 오랜 시간 검증된 실력은 물론 꾸준히 작업해온 사진가만이 작품을 전 세계에 소개할 수 있다. 한국은 성남훈 작가를 선정했다. 제주 4 . 3 사건을 주제로 한 ‘Red Island’ 시리즈로 전 세계 파이널리스트 12명에 선정됐고, 오는 10월 대상을 발표한다. 해외 수상이 드문 한국 사진계로서는 반가운 소식이다. 성남훈은 저널리즘과 사진에 관심이 높은 사람이라면 익히 아는 이름. 그는 스물아홉 살인 1989년 프랑스 파리로 떠나 이카르 포토 에콜 드 파리(Icart Photo Ecole de Paris)에서 다큐멘터리를 전공했다. 졸업할 무렵 ‘루마니아 집시’ 작품으로 1992년 프랑스 르 살롱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그 후 프랑스 유명 에이전시 ‘라포’에 소속되어 유럽에 머물며 보스니아 내전 등을 취재해 이름을 알렸다. 저널리즘 사진이지만 현대 회화처럼 맑은 채도와 깊은 음영이 특징인 그의 사진은 언뜻 보기에도 묵직한 아름다움이 느껴져 보도사진인지 순수 예술 사진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국립현대미술관, 타슈켄트 국립사진센터 및 다수 갤러리에 소장된 티베트 비구니 학승의 포트레이트 시리즈 ‘연화지정(蓮花之井)’과 소외받는 분쟁 지역 사람들의 삶을 그린 ‘유민의 땅’ 등은 2006 한미사진상, 2017 일우사진상 등을 수상했다. 저널리스트 관점과 아티스트 감성을 오가는 성남훈의 사진. 작가로서 직업인으로서 여전히 현역인 그가 오늘날 자신을 있게 한 경험과 철학을 솔직한 어투로 전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해외로 나가기 어려운 요즘, 전보다 활동 영역은 좁아진 듯하지만 그는 새로운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서울 통인동 사무실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개인 포트레이트도 찍는다. 인터뷰를 마친 뒤 그는 지난 몇 년간 자신을 찍은 사진이 없다며 촬영을 위해 동행한 사진가에게 작품 사진 하나와 맞바꾸자고 했다. 그 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성남훈은 세상을 담느라 렌즈 앞에서 멈추지 못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것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어요. 제 고향은 시골이라 별로 경쟁도 없는 데다 고만고만한 사건이나 일어나는 평온함이 있었지만, 외부의 새로운 자극도 없었죠. 동네에 TV가 몇 대 없던 시절이니, 누가 서울 다녀온 얘길 해도 사실이 사실로만 전달되는 게 아니잖아요. 경험하지 못한 동네 밖 이야기가 마음속에 신화처럼 자리한 것 같아요. 그게 밖으로 자꾸 나가게 했을까요. 별 뜻 없이 경영학과에 진학한 대학에선 그림에 대한 열망을 연극반에서 해갈했어요. 그곳에서 사진 작업을 하는 친구들을 따라다녔죠. 단체 예술보다는 내 것을 하고 싶었어요. 집에서는 내가 뭘 하고 다니는지 몰랐고요. 대학 졸업 후 프랑스로 사진 유학을 가겠다고 말씀드리니, 부모님이 연극보다는 낫겠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유학비도 많이 안 든다고 거짓말했죠. 아마 그래서 허락하셨을 거예요. 이카르 포토 에콜 드 파리는 실무 위주라 현직 사진가 선생이 많았어요. 당시 선생들은 학생이 과제를 과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학생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것을 찾아 찍어오는 걸 좋게 봐준 것 같아요. 1990년대, 국내는 남북 분단 문제가 첨예하고 외국은 이데올로기 동서 장벽이 무너질 무렵이었어요. 우리 눈에는 집시가 이국적 호기심의 대상이지만, 실제로 유럽 현지인에게 그들은 부정적 존재예요. 뉴스에서 자주 접하니 관심도 크지 않았고요. 정말 힘들었지만, 저는 집시들에게 계속 말을 걸어보려고 했어요. 알고 보니, 당시 프랑스에 온 루마니아 집시들은 꿈을 갖고 있었어요. 열악한 난민 지구에 가둬놓아도 스스로 미래를 계획하고 돈을 벌면 고향으로 돌아갈 사람들이었죠. 집시의 피가 흐르지만, 우리가 생각한 집시는 아니었어요.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유학한 덕일 수 있지만, 그 사람들의 복합적 이면을 본 것이 선생들에겐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때 찍은 과제가 ‘루마니아 집시’라는 작품이에요. 덕분에 졸업하자마자 라포의 일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라이카 오스카 바르낙 어워드 2020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부유하는 슬픔의 시’ 중 한 컷.
제주 주민이 위로받는 신당이나 4 . 3 사건이 일어난 지역을 찍었다. © 성남훈

창작자가 아니라 해설자라는 인식
연극에서 연출자는 해설자로 치거든요. 사진가로 일하면서 저는 그 기준이 명확했던 것 같아요. 나 스스로 창작자라 봤다면 일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해설자라 생각하니 지금껏 할 수 있었죠. 언제 그만 찍고 계속 찍어야 할지, 어떻게 하면 효율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줄지 알았던 것 같아요. 찍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지, 정책적 배경을 공부하면서요. 카메라란 것이 이렇게 보면 굉장히 두려운 존재예요. 사진의 매력은 불특정 다수가 교육 수준과 상관없이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죠. 동시에 무척 불안한 매체입니다. ‘내가 이렇게 작업해도 이해받을 수 있을까?’ 작업자에겐 정말 중요한 문제거든요. 평생 현지에서 작업한다 해도 그곳 사람들에게 이해받을 수 없다면 서로 힘든 일인 거죠. 사진에도 제각각 역할이 있다고 봐요. 다층적 사회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은 어떤 것이다’라고 전제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다큐멘터리 시점으로 내가 이야기할 뿐이죠. 어떤 면에선 은유를, 어떤 면에선 스트레이트로 설득력 있게 다가가는 사진이 모두 필요하지 않을까요. 요즘 젊은 사진가들이 독립을 빨리하는 편이라 들었는데,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특히 ‘아트워크’로 더 빠르게 가버리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사회적 짐을 지기 싫은 게 아닐까요? 그럴 때 좀 더 다큐멘터리적 관점을 높여 다양한 시도로 보여주는 게 좋죠. 더불어 선배로서 미안한 것은, 우리 사회가 과연 전문성에 대해 인정한 적이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아요. 나이 든 사람이 대우받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오랜 경험을 지닌 전문가에게 주는 것이 명예 정도인 걸 주로 보고 있으니 젊은 작가들이 조급해질 수 있다고 봐요. 굳이 시간을 들여 연습할 필요가 있는지 직접 보지 못했으니까. 자리 잡은 전문가가 많아지고 보여줄 수 있어야겠어요. 오래 일해온 작가가 있다면 적어도 그가 스스로 생존해온 방법에 대해서는 인정하면 좋겠죠.

나도 누군가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저도 인간이기에 늘 젊은 감각을 유지할 수는 없어요. 한국에서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죠. 부족하지만 지금 저도 간혹 선생 역할을 하는데, 유학 시절 참 많이 배웠더군요. 보통 그쪽 사람들은 까다롭다고 생각하는데, 제 스승들은 달랐어요. 누구 작가 밑에 아랫사람, 이런 게 없었거든요. 학생도 동료로 봐주니까요. 객관적 데이터로 사진을 체크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조언도 많이 해줍니다. 사진가로서 일을 지속 가능하게 해주죠. 우리 문화에서는 보통 선생 눈치 봐야 하고, 또 맞춰야 하잖아요. 저도 수업을 하면서 그런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요. 유학 시절, 세계적 패션 포토그래퍼 파울로 로베르시(Paolo Roversi)가 저를 불러 스튜디오를 친절하게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첫 질문이 “너에게 지금 필요한 게 무엇이냐?”였죠. 지금 같으면 바로 출근하고 싶다고 했을 텐데(웃음) 그때만 해도 패션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래서 솔직히 말했죠. “세바스치아우 사우가두(Sebastiao Salgado)와 요세프 코우델카(Josef Koudelka) 그리고 거장들과 함께해온 사진 기획자 로베르 델피르(Robert Delpire)를 만나고 싶습니다.” 그랬더니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어 미팅 약속을 잡아주는 거예요. 그러고는 제 작품을 자기 사진이랑 맞교환하는 것과 사주는 것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더군요. 그때는 가난해서 제 작품을 사달라고 했어요. 이후로도 저를 몇 번 더 불렀습니다. 로베르시의 스튜디오에는 서재 겸 응접실이 있는데, 벽에 가득 꽂힌 책 중 70% 이상이 사회적 관계 이해를 위한 다큐멘터리 자료였어요. 패션 작가인데도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무척 노력했죠. 트렌드를 읽으려면 시대를 알아야 하고, 예측해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로베르시는 그렇게 노력했기에 작가로서 생명력이 길었던 거죠. 로베르시를 보면서 언젠가는 나도 그릇이 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위쪽 동티베트 야칭에서 찍은 ‘연화지정’(2008) 시리즈 중 한 컷. 2009년 네덜란드 월드 프레스 포토 포트레이트를 수상했다. © 성남훈
아래쪽 ‘우간다 에이즈’(2008). 우간다 쿠미는 많은 어린이가 에이즈로 고통받는 지역이지만 사진 속 인물의 모습은 평화롭기만 하다. 2017 일우사진상을 수상했다. © 성남훈

결국 사진 속 이미지도, 기억도 사라지는 것을 인정할 것
이번에 라이카 어워드에 오른 ‘Red Island’ 작업은 ‘부유하는 슬픔의 시’ 라고 부릅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제주의 4 . 3사건 등 역사적 사건과 그 일이 일어난 현장을 찾아 찍은 거예요. 알려지길 원한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작업은 특히 더 조심스러운데, 누군가 제 작업인 것을 알고 후보로 추천했다고 하더군요. 전 폴라로이드 작품만 냈고, 파이널 후보에 들어가는 것은 기대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파이널리스트에 들었다는 말을 듣고 더 놀랐죠. 저보다 훨씬 심도 있게 제주를 바라보는 작가들이 있는데. 어쨌든 벌어진 일이니 이 기회를 빌려 제주 사람의 삶이 어떻게 존중받아야 할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그간 제 작업이 세계를 향해 있었다면, 지금은 더 늦기 전에 한국에서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해외 난민 현장을 찾아다니며 찍은 ‘유민의 땅’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요. 이전까지는 현장에 가서 팩트를 찍었다면 한국은 현장을 넘어 신화적인 것, 제주부터 DMZ까지 찍어보자고 계획했죠. 고향에서 가까운 지리산부터 시작했어요. 지리산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많은 것이 묻힌 곳이죠. 하나의 땅 위에 중첩된 사건이 많은 곳입니다. 그런데 지리산은 너무 아름답잖아요. 그게 문제였어요. 아무리 세계적 작가가 와도 그냥 풍경사진을 찍게 될 거예요.(웃음) 그래서 제주로 눈을 돌렸어요. 포토 저널리즘을 낮추고 찍는 방식을 바꿨습니다. 디지털 대신 필름으로 현상이 가능한 대형 폴라로이드로 찍었죠. 사진이 차차 올라오는 2~3분 동안의 기억까지 사진에 다 남을 수 없어요. 현장에 있는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바위나 흙이니까, 그곳에 사진을 두고 밀어 눌러 어그러지게 만들었습니다. 불안할 수밖에 없던 이야기를 중의적으로 표현하려고요. 관광지로도 유명한 정방폭포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주고 싶었죠. 촬영 중 만난 현지 어르신과 어떻게 이야기를 나눌지 고민하다 영정 사진을 찍어드렸어요. 사진을 액자에 넣어 보내드리기도 했습니다. 다큐멘터리 혹은 비슷한 요소가 있는 사진을 찍을 때 정말 검증받아야 하는 것은 오랫동안 현지에서 작업한 사람, 사진가나 종교적·역사적으로 연구한 분을 직접 찾아 생각을 나누며 공부해야 해요. 그래도 어떤 사람의 눈에는 여전히 얕아 보일 거예요.

아트와 다큐멘터리를 잇는 것은 진지한 관심
이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사진가의 도덕적 기준이에요. 어쨌든 제가 주로 보는 것은 자연이든 사람이든 고통을 수반하는 사람들이거든요. 타인의 고통을 마주하는 일이죠. 일주일 정도 현장에 다녀오면 한 1년은 사진을 보면서 기억하지 않으려 애씁니다. 그래야 다시 갈 수 있으니까요. 난민이나 전쟁 고아… 스스로 그 고통을 받아들인 사람일지라도 쉽지 않게 사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들에게 폐가 되지 않는 것이 기본이죠. 사진은 생각을 시각적으로 옮기는 일이라 내 의지와 무관하게 외부에서 평가를 받게 됩니다. 상을 받는 일도 있어요. 그들의 고통을 세상에 이해시키려고 한 일일지라도 나 개인의 영광으로 돌아오는 일이 잦죠. 현실을 부정할 순 없지만, 그래도 명예를 위해 일해선 안 되는 거예요. 사실을 수용하고 어떻게 그들을 위해 발전할 것인가 고민하고 애써야죠. 언제나 그랬지만, 사람들에게 다른 사진을 보여줌으로써 어떤 문제를 생각하게 하고 그 생각을 모으고 역사에 적절한 호기심을 끌어내도록 하고 싶어요. 제 위편에 있는 포트레이트도 마찬가지죠. 저 예쁜 하늘색 물은 방카섬의 주석 광산 속이에요. 휴대폰에 들어가는 주석을 너무 많이 파내서 섬이 무너지고 있어요. 원래 개발하던 공기업이 떠난 뒤 조금 남아 있던 주석을 인근 주민들이 파내고 있어요. 멀리서 보면 우주처럼 파랗고 아름다운데, 물속에는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들어 있다고 해요. 저들이 퇴근하기 전 한 컷씩 찍었어요. 흔히 생각하는 방식으로, 땀 흘리며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찍었다면 사람들이 들여다봐줄까요? 보고 싶어서 다가와야 그 옆에 쓰여 있는 사실을 읽는 거예요. 다큐멘터리와 사진의 역할은 기록뿐 아니라 동시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하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시대에 맞게 변형하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 거죠. 삶을 전체적 면에서도 생각해보고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 왜 이런 태도를 갖게 됐는지 관심을 가져야죠. 오랫동안 내전 중인 땅에서 에이즈 환자로 태어난 아이를 선입견만으로 불행하다고 단정짓는 것은 아닌지. 무지와 불행은 개인이 방어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이슈를 찾아와 찍어도 더 강한 이슈가 연달아 나타나면 묻히는 것이 저널리즘의 속성입니다. 그럼 우리는 또 찾아가야죠. 전시 회의론도 많지만, 전시를 통해 잘 전달하면 방문한 사람들이 SNS에 올려줍니다. 그렇게 관심을 갖게 하고 돌려줘야죠. 일반인 대상의 ‘꿈꽃팩토리’라는 소규모 사진 강의를 10년째 열고 있는데, 수강생은 주로 나이가 지긋한 분들과 은퇴자들입니다. 저는 공익적 사진 집단이라 불러요. 제게 사진을 배우려면 사회 공익 활동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거든요. 아무리 공익을 위한 일도 개인의 사진적 힘을 보태지 않으면 할 수 없어요. 사진의 기본은 ‘사람’을 찾아보는 거거든요. 사진적 힘도, 개인적 힘도 끌어낼 수 있어요. 그 방향으로 저와 작품, 모든 것을 끌고가고 있습니다.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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