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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16

창조적 작업가, 이광호

6년 만에 서울에서 개인전을 연 이광호는 그 어느 때보다 재료에 집중했다.

2013년 서울 파빌리온 프로젝트 당시 서울광장에 설치한 ‘EPS 동굴’.





성수동 사무실 창가에 서 있는 이광호 작가.

전선을 꼬아 만드는 작업으로 유명한 이광호 작가가 새로운 작품을 발표했다. 정확히는 기존의 메탈 연작을 순수 미술인 설치 작업으로 새롭게 해석, 발전시킨 것. 지난 5월 28일부터 7월 31일까지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열린 전시명은 ‘Composition in Blue(푸른 구성)’. 10여 점에 이르는 작품은 전시명과 제목이 같고, 거의 모두 푸르렀다. 그는 기성품인 동판과 동파이프를 일정한 단위로 자르고 용접해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구축했다. 고온의 용접 과정에서 구리는 본래 색을 잃었고, 이를 닦아낸 다음 한 면에 푸른 칠보를 발라 700~800℃의 가마에서 구웠다. 그런데 이건 작품일까, 디자인일까? 누군가는 작품이라 했고, 누군가는 이제 디자인은 안 하는 거냐고 묻기도 했다. 하지만 이 인터뷰는 디자인과 순수 미술의 구분에 대한 케케묵은 대답이 아니다. 재료의 물성에 집중해 만들고 싶은 걸 만들어온 한 아티스트의 조용한 항변이다.

‘디자이너와 작가 구분하지 마세요. 전 그저 창조적 작업을 하는 사람.’ 인터넷에서 ‘이광호’를 검색하니 이 같은 제목의 기사가 보였습니다. 리안갤러리 서울 전시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말이죠. 왜 이런 말을 해야 했나요? ‘디자이너냐, 작가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보다는 제가 지금 집중하는 것,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갑자기 ‘전 이제 디자이너가 아닌 작가입니다’ 또는 ‘작가라기보다는 디자이너에 가깝습니다’ 식의 영역에 대한 이야기로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았으면 하는 의도에서 그렇게 말했어요. 한데 그게 마치 선언과 같은 뉘앙스로 기사화됐죠.

그러게 말이에요. 그런데 그런 질문은 왜 나온 거예요? 사실 저도 좀 궁금해요. 저는 제가 추구하는 작업의 어떤 방향성 같은 게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홈페이지(kwangholee.com)만 봐도 그래요. 저는 이제껏 ‘아, 저건 의자네!’라고 할 만한 것은 한 번도 만들지 않았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저를 ‘가구 디자이너’라고 소개하더라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직접 나서서 그것에 대해 다시 설명할 필요는 느끼지 않았어요.

왜요? ‘전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이광호를 이해하는 데 가구 디자이너라는 수식이 적절하다면 그냥 그걸 쓰게 둬야 한다고 생각했죠.

갑자기 떠올랐어요. 대학 졸업 작품 ‘전선을 짜서 만든, 불이 켜질 수도 있는 것’도 마찬가지 아니었나요? 가구점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조명의 형태는 아니었잖아요. 맞아요. 쓰임새와 형태 둘 다 조명의 그것과는 달랐죠. ‘조명을 만들 때 가장 필요한 재료는 뭘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작업이에요. 그래서 전구, 전선, 전기를 다루는 것에 집중했죠. 이후에도 비슷했어요. 주로 재료에 대한 탐구에 시간을 쏟았어요. 그때마다 각각의 재료에 맞는 형태나 조형, 비례 등을 찾으려 애썼고요.

구글에서 ‘이광호’를 이미지로 검색하면 흥미로운 사진들이 나옵니다. 아세요? 늘 어딘가에 앉아 있는 사진 말이에요. 의자든 작품 위든 왜 그렇게 늘 앉아 있는 거예요? 그걸 이해하려면 제 작업의 메커니즘을 알아야 해요. 저는 이전부터 ‘앉을 수 있는 크기’의 작품을 선호했죠. 재료를 고르고 그걸로 뭔가 만들기 시작했다면 마무리는 늘 그 위에 직접 앉아보는 거였어요. 그래서 제가 처음 시작하는 작업의 사이즈는 늘 같아요. 400×400×400mm죠. 대리석이든 전선이든 다 똑같아요.

그건 어떤 의식 같은 건가요? 완성작을 세상에 내보내기 전에 엉덩이 도장을 꽝 찍는 것 같은? 사실 뭔가 대단한 의미는 아니에요.(웃음) 작업의 마무리를 그런 식의 퍼포먼스로 하는 것뿐이죠. 전선이 재료라면, 그 또한 계속 짜다 보면 결국 앉을 수 있는 형태가 나와요. 그럼 거기에 한 번 앉아보고, 다시 짜고, 다시 앉아보고, 다시 짜는 걸로 마무리를 가늠하는 것뿐입니다.





스와로브스키와 협업해 서울 신라 호텔 야외 정원에 설치한 ‘글리터링 윈드’.





2014년부터 작업한 ‘the moment of eclipse’ 시리즈 중 한 점.

리안갤러리 서울 지하 전시장 한쪽 벽면에 설치한 ‘Composition in Blue(32개의 오브제)’에 대한 질문입니다. 관람객 방향으로 작품 한쪽 면마다 작은 파티션이 하나 또는 둘씩 붙어 있었죠. 더불어 그것의 배치 또한 중앙과 왼쪽, 오른쪽으로 구분되어 있었고요. 어떤 패턴 같은 게 숨어 있는 것 같았는데 무엇이었나요? 패턴은 없어요. 우리가 아는 어떤 사물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받아 그림자를 드리우면 전혀 다른 형태나 감상을 갖게 된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이를테면 이런 거예요. 새벽녘에 푸른빛을 받아 모든 사물이 파란색으로 바뀌며 그림자와 함께 어우러진 공간. 질문하신 파티션 같은 건 창문에 세로로 난 날 같은 거예요. 총 세 종류로 간격이 다르죠. 창문이 열려 있을 수도, 닫혀 있을 수도 있는 것처럼 상상하게 하는 장치였어요.

아스라한 이미지를 그렇게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게 재미있어요. 제 빈약한 부분을 잘 포장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무슨 말이죠? 고민을 좀 했어요. 작품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래서 이우환, 이불, 양혜규 선생님의 인터뷰도 읽어봤죠. 다들 어떤 말씀을 하시나 싶어서요. 하지만 저는 안 되겠더라고요. 제가 흉내 냈다간 딱 망할 거 같았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더 솔직하게 말한 거예요. 이런 작품 소개가 어떻게 읽힐까 궁금하기도 하고요.

지하의 기다란 벤치처럼 보이는 작품은 이전 디자인 작품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전시장에 있는 다른 파이프 작품과 동일한 비례와 형태로 만든 거예요. 이전부터 제 작품을 알던 분들은 자연스럽게 거기에 앉을 거라 생각했고, 모르는 분들은 앉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며 만들었어요.

왜 그랬는데요? 만약 누군가 앉는다면 그건 ‘디자인’이고, 앉지 않는다면 ‘작업’인 걸까 생각해본 거죠. 다시 말해 ‘의도’가 중요한 건지, 관람객의 ‘행동’이 중요한 건지 이번 전시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앉던가요? 예상한 대로 제 작품을 아는 이들은 다 앉아보더라고요.(웃음)

L자로 벽에 붙인 2점의 작품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쉬웠어요 공간감을 자아내는 작품의 특성상 전시장의 층고가 좀 더 높았으면 싶더라고요. 어떤 의도로 작업한 건가요? 실은 천장에 설치하려고 한 거예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곳에 설치하기엔 방해 요소가 많아 현장에서 바꿨죠. 그러니 공간에 생긴 ‘푸른색 틈’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 같아요. 한쪽엔 파란색, 다른 한쪽엔 색이 없어서 내가 어느 쪽에 서 있느냐에 따라 두 공간을 넘나드는 역할을 하게끔 배치했죠.

재료를 고르고 택한 과정도 궁금합니다. 이전 디자인 작품의 그것보다는 무겁고 다루는 데에도 거친 걸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황동을 고른 이유가 있나요? 황동과 칠보는 사실 2009년부터 쓴 재료예요. ‘짜는’ 작업이 유명해지는 바람에 빛을 보지 못했지만. 그 재료로 작업한 건 11년 만이에요. 이전엔 주로 전선을 사용했기에 이번 재료는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죠. 의도적으로 거친 걸 고른 건 아니에요. 황동과 칠보로 보여줄 수 있는 재료적 특성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어떤 효과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된 거죠.









지난 5월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열린 전에서 공개한, 전시명과 동명의 작품들.

그럼 남들도 다 쓰는 흔한 재료로 어떻게 ‘작업’하는 걸 즐기세요? 제가 선호하는 작업 방식은 단순해요. 아기자기하게 포장하는 것보단 우리 음식처럼 무심하게 만들어 쓱 내놓는 걸 선호하죠. 무침 요리처럼. 배춧잎에 양념 쓱쓱 발라 대충 내놨는데 너무 맛있는 그런 것. 다시 말해 빠르게 캐치하고(재료를 고르고) 잘 버무려(재료의 특성을 살려) 보여줄 수 있는지 없는지가 제겐 가장 흥미로운 일이에요.

“장소 특정적 설치 작품을 제작하고,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지만 최종적으론 설치 당시의 상황과 조건에 따른 즉흥성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라고 쓰인 전시 소개글이 흥미롭습니다. 당시 느낀 ‘즉흥성’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실제로 작품을 설치하기 직전까지 공간을 여러 번 오가며 고민했어요. 하지만 하나하나 작품이 벽에 설치되었을 때 만들어내는 그림자나 작품 간 간격, 또 그 전에 느낀 감상 등이 설치 당일에 달라졌기 때문에 애초 의도대로 설치하지 않았죠.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지금 다시 떠올리면 그 역시 ‘의도적 즉흥성’이었단 생각이 들어요.

말씀을 계속 듣고 있으니 ‘자연스러움’이란 단어가 새삼 떠오릅니다. 전시 디렉터도 전시를 소개하며 “이광호 작가의 작품을 정의하는 가장 적정한 단어 중 하나는 자연스러움이다”라고 했죠. 제가 말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움이란 이런 거예요. 관람객이 작품을 바라볼 때 자연스럽게 여기는 걸 그대로 두는 것.

대략 10년쯤 작가님을 봐왔습니다. 10여 년 전에 가려 한 길과 지금 가고 있는 길은 맞닿아 있나요? 10년 후의 모습을 그리며 작업해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왜냐하면 60~70대의 제 모습이 더 궁금하거든요. 그러려면 아직 20~30년 더 작업해야 하죠. 대학을 막 졸업한 당시의 저와 그 후 15년이 지난 지금의 저는 사실 많이 달라요. 삶에 큰 변화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작업에서만큼은 꼭 가야 하는 길이 있고, 그 길만 걷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그래서 요새 생각하는 건 이런 거예요. ‘더 많은 경험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광호
1981년 출생. 홍익대학교 금속조형디자인과를 졸업한 후 재료의 특성을 탐구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표현 방법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또 다른 사물을 만들었다. 캐나다 코미세르 갤러리, 서울 서미갤러리와 원앤제이갤러리, 벨기에 빅터 헌트 갤러리, 독일 카레나 쉬슬러 갤러리, 일본 오사카 디자인 뮤지엄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2017년 브라질 MADE 페어에서 ‘올해의 디자이너’로 선정됐다.

 

에디터 이영균(프리랜서)
사진 김제원(인물)
사진 제공 리안갤러리, 이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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