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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30

디자이너 그룹 신신을 만나다

전시와 디자인 프로젝트를 병행하는 디자이너 그룹 '신신'의 신해옥&신동혁.

윈도우 프로젝트, 2020, 국립현대미술관





신해옥과 신동혁은 2008년부터 함께 작업해왔다. 따로 작명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신신’으로 불리고 있다.

‘신신’의 이름은 낯설지 몰라도, 그들의 작품을 한 번도 못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올해만 해도 1월에 스탠다드에이에서 열린 <참참참(Cham Cham Cham)>전에 이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3월까지 ‘미술책방 다시 보기’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오는 9월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를 주제로 열리는 부산비엔날레 포스터를 디자인했다. 2017년부터 미술 공간 ‘취미가’의 전시 포스터 디자인도 전담하고 있다.

그중 특히 흥미로운 것은 ‘미술책방 다시 보기’에서 그들이 보여준 ‘윈도우 프로젝트’다. ‘인쇄물 디자인을 공간에 구현하면 어떻게 될까?’ 이 의문에서 출발해 책이 전시된 서점을 하나의 인쇄물로 보고 편집 기호로 그것을 둘러싼 다음 이 새로운 풍경을 촬영해 다시 아트 북으로 만들었다. ‘교정, 재단선, 맞춰 찍기 표시’와 같이 책으로 제작할 때는 사라지는 편집 기호들이 공간에 전시되어 형형색색의 그림자를 만든다. 독자는 미처 알지 못하는 기호를 시각적 경험으로 상기시키고 싶었다는 아이디어가 재미있다. 더군다나 이 전시는 전시 공간을 촬영한 아트 북을 다시 판매하는 형식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메인 상품보다 존재감이 훨씬 강렬한 부록인 것이다.

이렇듯 신신의 작품은 고정관념을 깨는 재미가 있다. 그들은 일을 업무로 제한하지 않고, 늘 재미있게 작업하려 노력한다. 한계에 맞닥뜨리면 우울해하기보다 또 다른 선택지를 물색한다. 선입견을 뛰어넘어 디자인업계의 룰을 비틀어보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사실상 작업은 늘 힘들지만, 어쨌든 재미있는 요소를 찾으려 한다. 재미를 찾기 어려우면 특별한 서체나 종이를 사용함으로써 한 가지라도 꼭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 한다. 이런 작은 도전을 통해 느끼는 성취감을 즐긴다.

연초에 스탠다드에이에서 열린 <참참참>전은 지난 7~8년 동안 이들이 디자인한 포스터의 유효한 부분만 잘라 새 포스터를 선보이고자 한 전시였다. 신신이 만든 포스터의 콜라주이자, 새로운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겠다. 포스터를 작게 잘라놓고, 그것을 어떻게 배치할지 게임처럼 번갈아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방식이다. 서로의 의견에 동조하거나 반대할 수도 있기에 디자인 협업 방식이 그대로 드러난 전시였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참참참>전, 2020, 스탠다드에이





아트 플랫폼 ‘취미가’의 전시 포스터 시리즈, 2017~2020

이 전시의 또 다른 버전을 대림미술관에서 열린 패션 브랜드 구찌의 전시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포스터보다 작은 크기의 초대장, 리플릿 등을 활용한 작품을 전시했다. “몇 년 전만 해도 홍보 포스터의 발행 부수가 많았고, 인쇄물로서 파워가 강력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온라인 홍보용 이미지만 만들고, 미술관 아카이브 기록용으로 포스터를 소량 제작하는 추세입니다. <참참참>전은 이미지가 중요한 21세기에 오래된 포스터를 다시 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다 기획한 전시였습니다.”

신신은 작가로서 직접 전시회에 참여하거나, 디자이너로서 전시회 포스터 같은 그래픽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작가로 초대되었을 때도 협업자는 늘 존재하고, 우리가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자신 있는 일이 바로 협업입니다. 다만 전시 작가라면 이해관계에서 좀 더 자유롭고 아이디어를 끝까지 주장할 수 있겠지요. 의뢰받은 일은 우리보다 그들의 의견이 더 중요하기에 온도를 낮추게 됩니다.”

협업 과정에서도 신신의 특징이 작품에서 잘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이제는 함께하는 작가의 작업이 돋보이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작가의 아트 북을 만들 때도 작가와 적극적으로 협업해 디자인을 완성한다. 예를 들어 권오상 작가의 도록 작업에서는 하드커버 양장본의 래핑 방식이 작가의 사진 조각과 닮았다는 점을 활용했다. 아이소핑크(스티로폼 타입 단열재. 작가가 조각의 볼륨을 만들 때 쓴다)로 만든 권오상 작가의 사진 조각 컨셉을 책에도 적용한 것. 신신이 더미 북을 만들고, 권오상 작가는 그것을 다시 사진 조각으로 만들어 도록 각각의 면에 프린트했다. 권오상 작가의 작품처럼 가벼운 책을 만들기 위해 보드 대신 골판지를 넣었고, 텍스트는 아이소핑크 소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핑크색 면에 출력했다. 이처럼 신신이 중점을 두는 부분은 엄청난 그래픽 효과가 아니라 그들만의 언어로 주제에 맞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신신이 작가로서 참여한 첫 번째 개인전 <애서가 총서>, 2016, COS 프로젝트 스페이스





전시 포스터, 2019, 문화역서울 284

그간 종이 중심의 디자인을 추구해온 작가로서 디지털 시대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책을 읽지 않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 오히려 동기부여가 됩니다. 어떤 홍보 이미지를 만들 때 예전에는 어떻게 지면을 구성할지 고민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꼭 종이 포스터여야 하는지, 포토제닉한 오브제를 만드는 것이 더 좋을지 검토합니다.”

이미지는 매체와 기술에 민감하다. 예전엔 인쇄 매체를 자본가가 독점하고 홍보 채널로 사용했다면, 21세기에는 스마트폰만으로 홍보가 가능하기에 매체의 확산이 민주화를 불렀다고 분석한다. 이제는 수만 장의 전시 포스터를 찍어낼 필요 없이, 포스터 단 한 장으로도 엄청난 파급 효과를 볼 수 있다. 신신은 이런 현상을 역이용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종이의 힘이 줄었다기보다는 역할이 바뀐 거라고 봅니다. 과거에는 종이가 가장 현대적이고 확산이 빠른 매체였지요. 종이가 검증된 매체라는 장점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습니다. 웹툰이 인기를 끌면 종이책으로 내는 것이 그 단서지요. 종이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고, 이제는 단순한 인쇄가 아니라 아카이빙을 고민할 때 종이를 사용하는 시대입니다.”

v 종이는 지난 몇 세기 동안 최고의 지위를 누렸지만, 디지털 매체가 나오면서 제대로 적수를 만난 셈이다. 으레 종이 디자인을 만들어온 관습이 좀 더 검증된 상태에서 성숙기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미술가에게도 종이 매체는 더욱 중요해졌기에 작업을 의뢰하는 자세가 진지해졌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지금 종이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그중 어떤 매체가 우월하다기보다는 서로를 보완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술이 패션이 되고, 패션이 미술이 되는 시대다. 패션 브랜드는 미술에 관심을 갖고, 미술가는 상업적 문법을 작업의 근간으로 삼는다. 예전에는 장르를 나누었지만, 이제는 서로를 참고한다. 레트로 트렌드의 영향으로 하이테크 브랜드와 럭셔리 브랜드에서 스트리트 컬처의 분위기를 차용하고 있다. 신신 역시 과거에 연연하기보다 유연한 작업을 중요시한다. “저희는 그래픽 디자이너지만 웹 디자인, 공간 디자인도 하고 있어요.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죠. 예전에는 아트 디렉터와 제품 디자이너 등 모두의 역할이 구분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분야에 상관없이 작업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니까요.” 이것이 디자인은 개념 자체가 중요한 것이며, 매체에 상관없이 재미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신신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신신
그래픽 디자이너 그룹 신신은 2008년부터 따로 또 같이 활동해왔다. 권오상 작가의 특색 있는 작품집 발간, 월간 <디자인> 500호 기념 편집 디자인 리뉴얼이 화제를 모았다. 신해옥의 개인전이 오는 11월 취미가에서 열리는데, 여러 작가를 초청하는 협업 전시라고 하니 기대가 크다. 신동혁은 최근 2020 부산비엔날레와 아시아 영화 잡지 <낭> 디자인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에디터 이소영(프리랜서)
사진 JK(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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