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이 꽃피는 그레이스 정원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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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16

낭만이 꽃피는 그레이스 정원

향로봉 아래 펼쳐진 16만 평의 수국 정원. 이 아름다움 뒤에는 조행연 대표가 있다.

그레이스정원에서 조행연 대표.

코로나19 사태로 해외여행을 떠나지 못한 많은 이가 잘 알려지지 않은 조용한 국내 명소를 찾아 헤맨 지난여름. 경남 고성 자란만을 내려다보는 백암산 근처에 문을 연 그레이스정원은 많은 블로그와 SNS를 장식한 핫 플레이스 중 한 곳이었다. 16만 평(52만 9000m2) 규모로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서울숲 절반에 해당하는 크기의 그레이스정원은 온전히 한 사람의 열정과 노력이 일궈낸 눈부신 성과였고, 거룩한 결과물이었다.
오픈하기까지 15년간 정원을 조성하는 데 모든 것을 바친 조행연 대표는 곧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 젊은 시절 시아버지의 온천 사업을 도우며 큰 수익을 내 일찌감치 사업 면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그녀는 이후 40년간 온천장을 운영하며 축적한 부를 사회와 종교단체에 돌려주겠다는 의지로 아프리카와 가나, 터키의 선교지에 파견된 선교사들을 지원하고 아프리카 등지에 학교를 설립하는 데 힘써왔다. 지난 10년간 자비로 한 번에 1만 포기까지 김장을 해가며 불우이웃을 도운 것도, 힘들게 공부하는 학생들을 후원한 것도, 출발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본분이지만 주변의 도움 없이는 이 모든 것을 이루지 못했을 거란 겸손한 태도와 생각 때문이었다. 그레이스정원을 오픈한 것도 마찬가지. 비영리법인을 만들어 아프리카 선교 사업을 지원하던 조행연 대표가 센교센터를 건립할 요량으로 땅을 찾아다니다 발견한 곳이 바로 그레이스정원 부지였다.
토지 구입 비용을 제하고도 지금까지 수십억 원에 달하는 비용이 정원 조성에 투입됐지만, 자녀들은 늘 조행연 대표의 열렬한 응원군이다. 다만 지금껏 사업체를 운영하느라 고생한 어머니의 건강을 염려할 뿐. 누가 봐도 여생을 즐길 나이에 매일같이 일터까지 직접 운전하고 손톱 사이사이 풀물이 배어가며 고생하는 모습은 아무리 어머니의 행보에 격려를 보내는 자녀라도 맘이 편하지는 않을 터. 더구나 두 번이나 쯔쯔가무시병에 걸리고 언덕에서 굴러떨어져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이어지다 보니 나중엔 자녀들도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행연 대표는 미국의 ‘포레스트 커뮤니티(Forest Community, 지역사회와 정부기관이 협력해 천연자원 관리 계획을 수립하고 공동 숲을 조성하기 위해 협력하는 것)’ 운동을 보며 현대인을 치유하는 해결책 중 하나가 숲이라는 것, 그리고 숲이야말로 생명과 희망,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는 곳이라 믿었기에 그레이스정원을 오픈할 수 있었다. 자신이 받은 것 이상으로 주변과 지역사회에 나누며 살아온 조행연 대표에게 열정, 사명, 봉사, 치유, 환원 같은 단어는 여든이란 나이와 전혀 상관없어 보인다.





위쪽 수령이 30년 된 메타세쿼이아 숲길. 그 아래 맥문동과 수국이 피어 있고 작은 연못의 물소리가 들려 많은 방문객이 잠시 앉아 쉬어가는 곳이다.
아래쪽 붉은 벽돌로 지은 숲속 교회. 유럽 교회처럼 천고가 높아 울림이 풍부하다. 방문객 누구라도 예배에 참석 할 수 있다.

2005년, 50군데 이상 부지를 둘러보다 이곳이 마음에 들어 바로 계약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정원 조성을 계획하셨나요? 처음에는 선교센터를 건립할 목적으로 땅을 구입하려 했는데, 구체적인 계획은 없던 터라 우선 땅만 살 예정이었습니다. 수십 군데 땅을 봤는데, 땅이 좋으면 길이 없고 길이 좋으면 산이 형편없었어요. 그런데 이 땅은 처음부터 저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산세가 좋고 큰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을뿐더러 오랫동안 묵은 산이라 나무가 울창했고, 산 모양 자체가 보기 좋았습니다. 원래 주인은 이곳을 추모 공원으로 조성하려 했는데, 하지 말라는 스님의 말을 듣고 방치한 상황이라 당시 낙엽수로 가득 차 있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대표님의 마음을 사로잡았나요? 진입하기 전 자동차로 올라오는 길도 드라이브하기 좋은 경치였고, 산 양쪽의 골짜기도 낮은 높이에 비해 깊었어요. 오래된 나무와 고유 수종도 많았죠. 늦은 오후에 이 땅을 봤는데, 바로 다음 날 계약했습니다.

수국을 처음 심은 것이 2006년입니다. 다른 수종도 많은데, 수국을 심은 계기가 있으신가요? 2006년 창원의 가르멜수도원 수녀들에게 얻은 수국 300주를 메타세쿼이아 아래 심으면서 수국 길을 조성했어요. 당시 가르멜수도원에서 정원을 정비하며 다른 수종의 나무로 교체 중이었는데, 수국을 버리는 걸 보고 나무 옮기는 사람에게 사서 심었죠.

그때 수녀들에게 수국을 얻지 않았다면 지금 이곳은 다른 용도의 장소가 되었을까요? 수국 정원이 아니더라도 다른 수종의 꽃을 심고 가꿨을 거예요. 부친이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셔서 어린 시절 연못 주변으로 과실수와 꽃이 만발한 정원에서 자랐습니다. 그 영향을 받아 늘 자연의 아름다움을 갈망했죠.

무려 15년에 걸쳐 대규모 정원을 가꾸셨습니다. 사업장이던 온천 옆 수련회 시설에서 자라던 나무를 옮겨 심고 수종 공부까지 해가며 정원을 만드셨다고요. 오픈 전까지 꽤 긴 시간인데, 어떤 준비 과정이 있었나요?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인생을 정리해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동안 하느님께 받은 은혜를 이제 사회에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도 컸죠. 돈을 아끼기 위해 직접 나무를 심고 돌을 쌓았습니다. 일꾼들의 식사도 직접 해주면서 주 4~5일 하루 왕복 3시간씩 운전해가며 일했죠. 사실 저는 정원이나 나무에 대해서도 잘 몰랐어요. 시골집에 작은 정원을 만든 경험을 토대로 30년 전 그곳에 심은 메타세쿼이아를 옮겨 심고 길을 내고 너드랑(얕은 경사가 있고 큰 돌이 많아 소나 말을 몰기 어려운 지형)의 돌을 가져다 돌담을 쌓았습니다.

정원에 예쁜 예배당이 있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본래 선교센터로 염두에 둔 부지였기에 정원 안에 교회를 지어야겠다 싶었어요. 오랜 지인 건축가에게 부탁해 숲속 교회를 지었습니다. 건설 회사나 토목 회사에 맡기는 대신 모두 저희가 함께 직접 길도 내고 배관도 설계하고 건물도 지었죠.





왼쪽 운치 있는 긴 돌계단. 계단과 돌담 양옆으로 에메랄드 골드가 줄을 서 있다.
오른쪽 에메랄드 그린숲. 비밀의 정원 같은 분위기를 자랑한다. 그레이스정원에 함께 사는 풍산개 두 마리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다.

생전 처음 하는 일일 텐데, 시행착오는 없었나요? 전문 조경사를 불러 무궁화동산을 만들었는데, 씨가 많이 떨어져 번식 속도가 너무 빨랐어요. 그래서 다시 다 뽑아내고 다른 수목으로 교체했죠. 쯔쯔가무시병에도 두 번이나 걸려 고생했고, 나무에서 떨어지거나 벼랑에서 몇 번 구르기도 했습니다. 노력과 수고 없이 얻어지는 것이 있겠어요.

훤칠한 메타세쿼이아 길과 각양각색의 수국 꽃 터널, 이국적인 돌담 산책로, 붉은 벽돌로 지은 작은 교회와 공연장 등 정원을 넘어 복합 문화 공간에 가까워 보입니다. 이 모든 요소가 대표님의 솜씨겠죠? 거창한 마스터플랜을 짜고 시작한 건 아니지만, 하나하나 만들다 보니 그때마다 주시는 지혜로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교회는 층고를 높여 울림을 좋게 해 마이크 없이도 소리가 커서 연주회나 작은 세미나를 열 수 있게 했어요. 날씨가 좋을 땐 야외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야외 공연장도 꾸몄고요. 지난 7월엔 ‘여행스케치’를 초대해 야외에서 공연을 열었어요.

그레이스정원에는 수십만 주의 다양한 수국이 꽃을 피웁니다. 각각의 매력이 있을 것 같은데, 대표님은 그중 어떤 수국을 좋아하시나요? 6~8월까지 수국이 만개합니다. 6월 중순부터 길가로 토종 수국인 산수국과 컬러풀한 수국이 피고, 8월 중순부터는 흰색과 연둣빛 목수국이 핍니다. 8월 말이면 다른 곳은 수국이 지지만 그레이스정원엔 여전히 목수국이 한창이죠. 저는 꽃이라면 다 좋아합니다만, 특히 군락으로 무리 지어 피는 꽃을 좋아합니다.

방문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수국은 무엇인가요? 정원을 찾는 분들은 제일 많이 볼 수 있는, 색이 화려한 유럽 수국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수국 외에도 어떤 식물이 있나요? 그레이스정원에서만 특별히 만날 수 있는 식물도 있나요? 정원에 사철나무인 에메랄드 그린과 에메랄드 골드가 일직선으로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고 있어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궁정에 이 나무 수십 그루가 있었는데, 보기 좋았던 기억이 나요. 이 외에도 자작나무와 해국이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레이스정원은 축구장 74배에 달하는 16만 평의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몇 분의 직원이 관리하고 있나요? 상주하는 직원은 제 막내딸과 저를 포함해 여섯 명이고, 그 외에는 필요에 따라 용역을 씁니다. 입장료 받는 분, 조경 관리자, 시설 관리자 등이 있지만 사실 구분 없이 일하고 있어요. 저 역시 새벽같이 일어나 방문객이 이용하는 화장실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줍고, 땡볕에서 잡초를 뽑으며 하루를 보냅니다.

가족들은 대표님을 어떻게 돕고 있나요? 지금까지는 제가 직접 전문가의 조언과 지도를 받아 일해왔지만, 나이가 있다 보니 이제는 누구 한 사람이 책임지고 이 공간을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막내딸을 대표이사로 세웠어요. 공인회계사인 아들도 공적인 업무를 해결하면서 저를 돕고요. 자금이 모자랄 때는 대출을 받기도 하고, 아이들이 십시일반으로 지원해준 덕분에 무리 없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왼쪽 메인 산책로 양옆과 돌담 위에는 산수국 수십만 주가 앞다투어 핀다.
오른쪽 다른 수국이 다 지고 나면 8월에서 9월 중순까지 목수국이 핀다.

그레이스정원 경영을 위해 손녀를 영국 에든버러 대학으로 조경 유학을 보내셨다고요. 손녀가 할머니의 뜻을 흔쾌히 받아들였나요? 막내딸의 딸인 외손녀는 미술을 전공했는데, 앞으로 믿음의 승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다행히 제 바람대로 잘 순종하고 따라줘서 쉽게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죠.
미래에 손녀에게 전하고 싶은 창업자 정신은 무엇인가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육신적인 것을 생각하지 말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병든 자를 위해 선교해야 한다. 그렇게 살다 보면 그레이스정원이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경남 고성의 민간 정원 중 하나인 ‘만화방초’도 대표님의 사촌 동생인 정종조 대표가 운영하고 계십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집안 내력인 듯 보입니다. 운영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기도 하나요? 우연의 일치인지, 저도 고성에 와서 일하다 그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서로 수종이나 운영에 대해 상의도 하고 조언도 자주 하는 편입니다.

수국이 한창인 여름에 오픈해 많은 방문객이 이곳을 찾았을 것 같습니다. 주로 어디에서 오나요? 수국은 7월이 절정이라 주말엔 1000명 이상, 주중엔 200~300명가량 방문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뤘어요. 인근 남해와 거제도뿐 아니라 멀리 서울과 수도권 그리고 진주, 창원, 부산에서도 많이 오시더군요. 특히 국내 사진작가들이 전국에서 많이 모여들었죠.

인상적인 방문객이 있었나요? 많은 분이 방문했지만, 유독 기억나는 분이 있어요. 몸이 불편한데도 서로 부축하며 찾아오신 장애인 부부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신미식 사진작가 전시회, 여행스케치 공연 등 즐길 거리가 풍성한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하셨습니다. 하반기에도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나요? 코로나19 사태로 여전히 불안하지만, 상황을 지켜보면서 가을에는 야외 공연장에서 작은 클래식 음악회를 개최할 예정이에요. 그날은 정원도 무료로 개방하고 지역주민과 방문객이 즐길 수 있도록 지역 생산품 판매와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할 플리마켓도 개최하려고 합니다.

대표님 개인적으로 앞으로 계획이 있으신가요? 여든을 바라보지만, 생이 다할 때까지 맡은 일을 하고 싶어요. 그레이스정원이 사시사철 꽃을 볼 수 있는 곳, 갤러리나 공연 예술을 관람할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해 지친 현대인을 치유하는 공간이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것입니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신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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