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의 파리 정원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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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1-04

샤넬의 파리 정원

자연에 ‘씨를 뿌려 수확한 아름다움’을 꿈꿔온 샤넬이 파리 식물원을 찾았다.

식물학을 연구하는 쉼터, 파리 식물원
노트르담 성당을 뒤로하고 센강 변을 따라 오스테를리츠역(Gare d’Austerlitz)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파리 한복판에서 맡기 어려운 자연의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그때 눈길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진화, 광물학, 고생물학 그리고 곤충학 4개 관으로 이루어진 자연사 박물관과 아담한 동물원이 함께 자리한 파리 식물원(Jardin des Plantes)이 눈에 들어온다. 다양한 식물을 가꾸는 약 28만m² 규모의 방대한 정원과 산책로가 있고, 동물원에 들어가지 않아도 가끔 대나무로 지은 우리 안에서 돌아다니는 귀여운 레서판다를 볼 수 있는 곳. 1626년, 루이 13세가 치유 목적으로 약초를 심기 위해 조성한 왕실 소속 정원이던 파리 식물원은 각자의 눈높이로 다양한 자연의 얼굴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쉼터이자 전 세계 식물학의 요람으로 통한다. 17세기, 식물을 고유의 이름으로 기록·분류하고 각 종의 표본을 재배하는 역할을 한 이 ‘왕의 정원(Jardin du Roi)’에서 프랑스 ‘국립 식물 표본집’이 처음 완성되었다. 우리에게는 [사회계약론] 저자로 알려진 장 자크 루소의 수집 컬렉션 등을 포함한 800만 종의 식물이 지금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왼쪽 샤넬 스킨케어 용기에서 까멜리아가 피어난 이번 전시의 포스터로 장식한 입구.
오른쪽 본격적으로 오픈 스카이 연구소를 소개하기 전 샤넬 뷰티의 철학과 컨셉을 보여준 인트로 공간.

샤넬과 자연의 소통
1921년, 강렬한 ‘여성의 향기’를 원하던 가브리엘 샤넬의 염원을 담아 탄생한 N˚5와 그로부터 6년 뒤 출시한 최초의 스킨케어 제품은 샤넬 뷰티의 시작이 되었다. 샤넬 뷰티의 이름이 패션 분야만큼 찬란한 존재감을 발한 이면에는 최고급 품질의 원료만을 고집해온 메종의 노력이 있었다. 자연과 환경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요즘, 뷰티 브랜드와 원료 생산자 사이에 체결되는 파트너십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사실. 하지만 마드모아젤의 후예는 생전의 그녀가 그랬듯 항상 선구자 위치에 있었다. 자연의 소중함을 지금만큼 절실히 깨닫지 못하던 1987년에 이미 N˚5의 시그너처 원료 메이 로즈와 재스민을 재배하는 남프랑스의 생산자와 계약을 체결해 이 두 가지 식물을 멸종 위기에서 보호하는 동시에 메종의 아이코닉 향수의 퀄리티를 변함없이 이어갔으니 말이다. 덕분에 30여 년이 지난 지금 20만m²가 넘는 샤넬의 농장에서는 메이 로즈와 재스민뿐 아니라 아이리스, 로즈 제라늄, 투베로즈 같은 향기로운 식물이 그림처럼 자라고 있다.

샤넬, 파리 식물원 그리고 [컬티베이팅 뷰티]
자연과 자연을 일구는 섬세한 손길을 존중하면서 얻은 원료의 지속 가능한 공급 루트. 향수뿐 아니라 스킨케어 제품에도 이 같은 철학을 담아내고자 한 샤넬의 진정성 있는 행보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파리지앵에게 주어졌다. 지난 9월 23일부터 일주일간 파리 식물원 내부의 지질학관(Galerie de Mineralogie)에서 펼쳐진 <컬티베이팅 뷰티(Cultivating Beauty)>전을 통해서다. 이곳에서 발견한 샤넬 뷰티의 주제는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식물에서 추출한 원료를 공급하는 샤넬만의 시스템 ‘오픈 스카이(Open Sky) 연구소’다. 17세기부터 식물에 담긴 생명의 비밀을 연구한 이 유서 깊은 장소에서 감상한 샤넬 뷰티 전시는 흙을 담은 샤넬 스킨케어 용기에서 자라난 까멜리아 꽃송이가 눈길을 끄는 전시 포스터만큼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토지에 뿌리를 내린 식물은 동물과 달리 외부 공격을 피해 서식지를 벗어나지 못한다. 대신 태양과 물, 토양의 특성과 그 속에 사는 미생물 등 다양한 요소를 스스로 합성하는 것으로 강인한 생명력을 이어간다. 이 독특한 생물학적 특징은 식물이 지닌 치유 능력의 배경이자 식물학을 발전시킨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대자연에서 끊임없이 영감을 찾은 샤넬은 이처럼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민감하게 상호작용하는 식물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도심 속 연구소를 떠나 생명체가 살아 숨 쉬는 현장을 직접 찾아간다.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전 세계를 탐험하며 찾아낸 탁월한 효능을 지닌 식물 4종을 전통 방식으로 재배하고, 다양한 연구를 거쳐 추적 가능한 자체 원료 공급망을 만든 방대한 식물 리서치 센터, 오픈 스카이 연구소는 그렇게 탄생했다. 오픈 스카이 연구소는 자연의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 각각 다른 기후대의 지역 네 곳에 위치한다. 신뢰와 투명성을 바탕으로 한 로컬 생산자와의 공정 거래, 책임 있는 농업을 통한 가치 창조, 식물에서 얻은 영감을 과학으로 승화시킨 샤넬 헤리티지 보호가 이곳의 원칙이다. 5개의 전시 공간을 통해 오픈 스카이 연구소로의 여행을 제안한 샤넬은 자연과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선순환’이라는 현대사회의 화두 앞에서 진정성 있는 답변을 들려주었다.





왼쪽 마다가스카르에 펼쳐진 샤넬의 바닐라 밭을 연출한 전시 공간.
중간,오른쪽 척박한 환경 속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안틸리스(중간)와 솔리다고(오른쪽).



수블리마지 렉스트레 드 크림 바닐라 플래니폴리아성분을 정교하게 배합한 고농축 영양 크림.

 Room 1 
마다가스카르 - 바닐라 플래니폴리아

샤넬 수블리마지 컬렉션 마니아에겐 익숙한 원료 바닐라 플래니폴리아(vanilla planifolia). 샤넬의 과학자들은 처음에는 ‘작은 꼬투리’라는 뜻을 지닌 난초과 식물인 바닐라를 향수 원료로 들여다보았다. 그 과정에서 마다가스카르섬에서 자라는 바닐라 플래니폴리아를 발견했고, 이 품종에 놀라운 안티에이징 성분이 들어 있음을 알게 됐다. 2002년, 최초의 오픈 스카이 연구소가 마다가스카르 북동쪽에 자리한 암반자(Ambanja) 지방에 문을 연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3년 후 잘 익은 그린 바닐라 꼬투리에서 피부 재생을 촉진하는 ‘플래니폴리아 PFA’ 성분을 추출하는 데 성공한 샤넬은 그늘을 필요로 하는 바닐라의 특성에 맞춰 각 1200m² 규모의 인공 캐노피 천막 3개와 그늘이 드리운 농장을 설립하고, 적절한 양의 물과 질소를 공급하는 등 이상적인 서식 환경을 조성했다. 2014년에는 바닐라 식물학의 최고 권위자 아로 본지 라마로산드라타나(Aro Vonjy Ramarosandratana) 박사와 협업해 이미 탄탄하게 구축한 샤넬의 전문성을 더욱 공고히 하며 인텐스 워터, 오일, 꽃잎 추출물뿐 아니라 스크럽 제품을 통해 씨앗까지 스크럽 제품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마다가스카르 농장에서 건강하게 자라는 바닐라를 찾아 떠난 짧은 여행은 이 원료의 수블리마지 컬렉션 효능을 더욱 다각적으로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파리 식물원이 오래도록 보유해온 진귀한 식물 표본집을 함께 감상할 수 있던 점과 바닐라 농장의 캐노피를 고스란히 재현한 시노그래피 역시 이번 전시에 흥미를 더했다.





위쪽 바닐라 플래니폴리아가 자라는 천혜의 마다가스카르섬.
아래쪽 안틸리스와 솔리다고가 자라는 알프스 풍경.

수블리마지 레쌍스 퐁다멘딸 솔리다고 추출물을 함유한 에센스.

 Room 2 
프랑스 알프스 남부 - 안틸리스 & 솔리다고

마다가스카르의 열대 기운이 감도는 공간을 지나자 알프스 남부에 자리한 오픈 스카이 연구소가 펼쳐졌다. 샤넬은 2010년 척박한 고산지대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이어가는 야생식물을 연구해온 장 폴 게라디(Jean Paul Gherardi)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8년의 시간을 들여 500종이 넘는 야생식물을 연구한 끝에 60여 개의 표본 추출물을 완성했으며, 엄선한 식물 두 종이 바로 수블리마지 라인에서 피부 저항력을 증진시키는 효능을 발휘하는 안틸리스(anthyllis)와 솔리다고(solidago)다. 샤넬은 2014년부터 현지 여성 농업가와 손잡고 이 고산 식물이 해발 1000m에서 자랄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조성했으며, 꽃 부분에 담긴 활성 성분 효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안한 재배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샤넬 스킨케어 활성 성분을 조금 더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던 샤넬 연구소 전시 공간

 Room 3 
프랑스 남서부 - 까멜리아

다음 전시 공간으로 들어서자 프랑스 남서부의 까멜리아 정원이 아름답게 펼쳐졌다. 생전에 가브리엘 샤넬이 사랑한 꽃으로 메종과 인연이 깊은 까멜리아(camellia). 그런 만큼 샤넬이 이 꽃을 재배하는 농장을 운영한다는 사실 자체는 그리 놀랍지 않다. 하지만 여기에서 탄생한 연구 성과는 감탄을 자아낸다. 2005년부터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까멜리아 전문 묘목가 장 토비(Jean Thoby)와 함께 ‘마드모아젤의 꽃’을 연구해온 샤넬은 4년 후 알바 플레나(Alba Plena) 종에서 강력한 보습 효능을 지닌 추출물을 얻는 데 성공한다. 이드라 뷰티 라인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촉촉함은 프랑스 남서부의 작은 마을 고자크(Gaujacq)에 자리한 5200m² 규모의 밭에서 자라는 2700그루의 까멜리아나무가 선사한 셈이다.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샤넬의 까멜리아 숲은 식물과 서식지의 에코 시스템을 동시에 보호하는 농업 방식에 식물학 연구소를 결합한 이상적 형태의 친환경 농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드라 뷰티 마이크로 리퀴드 에센스 까멜리아 마이크로 버블이 피부에 탱탱한 수분감과 생기를 더한다.

 Room 4 
코스타리카 - 커피

‘풍요로운 해안’이라는 뜻을 지닌 코스타리카와 샤넬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지난 2013년. 메종의 연구소가 이곳 서해안에 자리한 니코야 반도 해발 고도 700m에서 자라는 커피에서 강력한 항산화 성분을 발견하면서부터다. 현지의 사회적 기업 알리안사 캄페시나 플로라 누에바(Alianza Campesina Flora Nueva) 그리고 지역사회의 커피농장협동조합과 협업해 탄생한 샤넬 오픈 스카이 연구소의 3만m² 규모 대지에서는 1만5000여 그루의 커피나무가 자란다. 익은 열매를 수확해 자연광에 건조하는 코스타리카의 전통 방식을 존중하는 한편, 2015년부터는 그린 커피가 함유한 보호 활성 액티브를 원유 형식으로 추출하기 위해 로스팅 과정을 거치지 않고 현장에서 냉각 후 압축하는 과학적 기법을 도입했다. 샤넬의 열정은 탁월한 제품을 만들기 위한 목적 이상으로 자연을 향한다. 작년부터 토양 침식이나 기후변화 같은 커피 서식지가 직면한 새로운 변수에 적응하는 농작법을 연구하는 농장을 운영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자연에 대한 샤넬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위쪽 전시를 통해 프랑스 남서부 오픈 스카이 연구소 까멜리아 정원을 아름답게 연출했다.
아래쪽 코스타리카의 그린 커피 농장으로의 짧은 여행을 할 수 있던 네 번째 전시 룸.



블루 쎄럼 풍부한 항산화 기능의 코스타리카 그린 커피 성분을 결합한 프리 세럼.

 Room 5 
샤넬 연구소

세계 전역에 자리한 네 곳의 오픈 스카이 연구소를 방문한 <컬티베이팅 뷰티>전의 여정은 이토록 정성스레 일궈낸 식물이 어떤 방식으로 샤넬 뷰티 제품에 담기는지 알아보는 마지막 전시 공간, 샤넬 연구소로 이어졌다. 전문성과 열정으로 무장한 연구원의 노력을 기리는 듯 한쪽에 하얀 가운이 걸려 있던 이곳에서는 샤넬만의 활성 성분이 각 제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보존하기 어려운 식물을 기록하는 용도였던 19세기의 아날로그 인화 기법 사이아노타입(Cyanotype) 아틀리에가 전해준 색다른 즐거움 역시 이번 전시를 더욱 특별한 기억으로 각인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곳에서 다시 만난 샤넬의 뷰티 제품은 더 이상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너도나도 환경 마케팅에 뛰어들면서 그 부작용으로 ‘그린 워싱(green washing)’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메종을 상징하는 꽃을 이토록 아름답게 오마주하는 샤넬의 행보는 환경에 대한 관심을 마케팅 문구로 남용하는 현실이 씁쓸한 가운데 우아한 위로를 전하기에 충분했다. 식물과 서식지의 생태학적 환경을 존중하는 것은 물론, 지역사회 구성원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내며 완성한 샤넬의 작품이자 자연에 대한 헌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에디터 이혜진(hjlee@noblesse.com)
진행 배우리(파리 통신원)
사진 제공 샤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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