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하지 않은 한식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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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1

뻔하지 않은 한식

40년 가까이 전통 한식을 선보이면서도 ‘처음 먹는 것 같은’ 한식을 내는 조희숙 셰프.

2020년 2월 ‘아시아50 베스트 레스토랑 어워드’에서 ‘2020 아시아 최고 여성 셰프’로 조희숙 요리연구가가 선정되면서 한동안 미식업계가 떠들썩했다. 아시아 지역 오피니언 리더와 미식가, 기자를 비롯해 레스토랑 운영자로 이루어진 전문가 그룹 318명이 매년 아시아 지역 최고 레스토랑 50위를 선정하는 본상과 4개 부문 특별상을 선정하는데, 원서동에 자리한 한식 레스토랑 ‘한식공간’ 오너 셰프인 그녀가 특별상 중 하나를 받은 것. ‘아시아’, ‘최고’, ‘여성 셰프’라는 세 단어를 모두 만족시킨 조희숙 셰프는 세종호텔 한식당을 시작으로 노보텔 앰배서더와 그랜드 인터컨티넨탈을 거친 뒤 경남 남해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다 서울 신라호텔 한식당으로 복귀한 현장 스타일의 요리연구가다. 비영리 문화단체 아름지기 연구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한식 문화 연구소이자 레스토랑인 ‘온지음’의 기틀을 다졌고, 한식연구소 ‘한식공방’을 운영하다 2019년 9월 폐업 위기에 처한 한식공간을 인수해 운영 중이다. 당시 인수하고 얼마 되지 않아 미슐랭 가이드에서 1스타를 받으며 업계를 놀라게 했는데, 연이어 특별상까지 수상하니 조희숙 이름 석 자는 그야말로 ‘넘사벽’이 됐다. 하지만 그녀는 말한다. “제가 아시아에서 제일 우수한 여성 셰프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상은 정말 감사하지만 한편으론 버겁게 느껴집니다. 부담이 크죠. 더구나 최근 들어 제 요리 인생이 조금씩 마감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생각에 현장에서 조금 떨어져 연구에 집중하려 했는데, 그런 시점에 상을 받으니 쉬엄쉬엄 갈 수가 없게 되었네요. 그런 걸 보면 인생이 꼭 계획대로만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지난 11월 19일 디지털 라이브로 진행한 2021 미슐랭 가이드 서울 발표에서 조희숙 셰프는 또 한번 이슈가 됐다. 멘토 셰프와 영 셰프를 선정하는 상에서 멘토 셰프로 뽑힌 것. 미슐랭 측은 “한국 고유의 장인정신을 갖춘 인물로 젊은 세대에게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할 만한 셰프를 선정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셰프의 셰프’로 통하는 조희숙 셰프가 한식공방 같은 요리연구소를 만들고 차세대 셰프에게 한식의 본질을 전하며 도제식 시스템으로 후배를 육성한 선한 영향력이 바탕이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오픈 당시 컨설턴트로 참여한 원서동 한식공간의 영업 종료 소식을 듣고 2019년 레스토랑을 인수해 난생처음으로 ‘오너 셰프’가 된 그녀와 한식 그리고 현장 이야기를 나눴다. 조희숙 셰프가 말하는 한식은 그야말로 새롭고, 놀랍고, 재미난 것이었다.





왼쪽 원서동 한식공간에서는 새로운 전통 한식을 만날 수 있다. 오른쪽 조희숙 셰프의 특제 소스에 재운 한우를 정성껏 구운 한우등심구이.

한식공간 창 너머로 보이는 창덕궁 돈화문 광경이 아름답습니다. 한식 레스토랑으로 이만한 위치가 또 있을까 싶네요. 2019년 9월 이곳을 인수해 운영 중이십니다. 사업은 처음이신데, 소회가 궁금합니다. 2년째인데, 제가 사실 경영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 많이 힘들었어요. 직접 장보고 직원들과 함께 발로 뛰고 고민하면서 체험하고 있죠. 제 주머니에 들어온 것은 거의 없어도 마이너스이던 레스토랑을 인수해 손익분기점을 맞췄다는 것이 곧 플러스라고 생각해요. 그걸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몰라요.

한식공간 오픈 당시 컨설턴트로 참여하셨기에 영업 종료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묘했을 것 같아요. 어떠셨나요? 충격을 많이 받았죠. 무엇보다 외국 손님, 특히 레스토랑 오너와 셰프, 블로거 등이 많이 찾으셨는데 그때마다 다들 깜짝 놀랐거든요. 지금까지 봐온 한식은 갈비, 불고기, 김치, 전이 전부였는데, 한식에 이런 것도 있었느냐며 감동하곤 했어요. 외국 요식업계 전문가들이 우리나라 음식 시장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는 시점이라 이 공간이 없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우선 심폐 소생을 해놓고, 뜻 있는 분이 나타나 이 공간을 계속 이어가면 좋겠다는 마음에 인수했습니다. 아직 그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요

보통 오너 셰프도 처음 몇 년간은 본인 월급을 챙기기 어려운데, 선생님은 1년 만에 손익분기점을 맞췄으니 성공적 출발 아닐까요? 코로나19 사태가 겹쳐 여러 번 난관에 부딪쳤지만, 그럼에도 큰 위기 없이 지금까지 운영해온 것에 점수를 주고 싶네요.

‘2020 아시아 최고 여성 셰프’를 수상하신 후 한 인터뷰에서 “시간보다는 방향이 중요한 것 같다. 일을 하며 좋은 사람들의 호응과 공감을 얻는 활동을 했다는 게 평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호응과 공감을 얻는 활동’에 한식공간을 인수하신 행보도 포함된 것 같습니다. 그렇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좇기 마련인데, 어떤 사람은 개인적 이익보다 공익, 공유 같은 데 방점을 두고 그것에 보람을 느끼죠. 저는 제가 열심히 해서 얻은 결과물을 나누는 걸 좋아하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에요. 제 이름 자체가 유명해지기보다 제가 한 일이 더 중요하죠. 일이 곧 나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하니 계속 더 나은 걸 찾고, 연구하고,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수도여자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전남 지역 중학교에서 2년간 가정 선생님으로 교편을 잡으시다 1983년 세종호텔 한식당 ‘은하수’ 책임자로 일하는 선배의 제의로 요식업에 발을 들이셨습니다. 가족의 반대는 없었나요? 어머니가 많이 반대하셨어요. 당시 선생님이 좋은 직업이기도 했지만, 특히 가정 선생님은 여자로서 더할 나위 없는 직업이었거든요. 게다가 지금의 임용고시를 거쳐 들어간 공립학교라 반대가 더욱 심했죠.





위쪽 한식공간에서 바라본 창덕궁의 겨울 풍경.
아래 왼쪽 온라인으로 진행한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1> 발간 행사에서 미슐랭 멘토상 수상을 축하하고 있는 조희숙 셰프.
아래 오른쪽 계절에 맞는 약과, 부꾸미, 주악 등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한국 전통 한과.

당시 선배의 일을 방학 때 잠시 도와주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아르바이트, 또는 단기 계약직으로 시작한 일인데요, 교사를 그만둘 정도로 매력적이었나요? 저녁만 되면 온 몸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힘들고 아팠어요. 그런데도 “절대 못 해”라는 말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요? 그런 생각도 있었죠. “이 일이 이렇게 힘들다면 학교에서 학생들과 지내는 것이 훨씬 더 낫겠다”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때 제가 돌아가겠다고 마음먹었다면 개학과 함께 학교로 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가지 않았죠.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거든요. 원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좋아해요. 특히 요리나 음식 쪽에선 더욱 그렇고요.

이직한 직후에는 전직을 후회한 순간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문득문득 그랬죠. 지금보다 환경이 훨씬 열악했으니까. 근무 시간이라는 것이 따로 없을 정도로 아침 일찍 나와 밤 늦게 들어가곤 했어요. 그런데 제가 교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할 때 스스로 다짐한 것이 있어요.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도록 만들자’. 그랬기에 후회하지 않도록 나름대로 늘 최선을 다했죠.

세종호텔에서 10년간 근무한 뒤에는 노보텔 앰배서더에서 3년,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4년, 그리고 남해대학교로 가셨습니다. 2003년에는 신라호텔 한식당으로 옮기셨죠. 강단에 계시다 현장으로 돌아오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당시 이건희 회장님이 “고인 물은 썩게 되어 있다”며 외부 인력을 적극적으로 흡수하라고 하셨어요. 삼성그룹의 여러 파트에 걸쳐 새로운 인력을 영입했고, 신라호텔도 마찬가지였어요. 제게 제안이 들어왔고, 이부진 사장님의 “신라호텔을 월드 베스트 호텔로 만들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보니 저도 욕심이 생기더군요. 그 행렬에 끼고 싶었어요. 그동안 현장에서 펼치지 못한 것, 아쉬웠던 부분을 마지막으로 한번 쏟아보자는 생각에 합류했습니다.

세종호텔과 노보텔 앰배서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신라호텔까지, 국내 브랜드 호텔과 해외 호텔에서 한식 셰프로 일한 경험은 다를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떤가요? 세종호텔은 국내 토종 브랜드고, 노보텔 앰배서더와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은 국제적인 체인 호텔이다 보니 분위기나 시스템이 완전히 달랐어요. 세종호텔에서는 ‘우리가 하는 한식이 최고다’ 하면서 일했어요. ‘세종호텔 한식’ 하면 모든 사람이 최고라고 입을 모았으니까. 그렇게 자만에 빠져 10년을 보내고 체인 호텔로 옮겼는데, 그곳은 완전 다른 세상이었어요. 한식의 현 위치를 보게 됐고, 우리 것에 대해 더 곰곰이 생각하게 됐어요. 한식에 대한 사명감을 더 강하게 느꼈죠.





부드러운 잣죽에 궁중 음식을 재해석한 전복 어채를 얹어 다양한 식감을 선사하는 해물잣죽.

그런 과정을 거쳐 선생님의 한식이 모던해졌다고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제가 모던 한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없고요. 생각한 요리를 열심히 하다 보니 모던으로 분류되더라고요. 전 전통을 지킨다고 생각하는데 왜 나를 모던 한식을 만드는 셰프라고 하는지 처음엔 못마땅했어요. 요즘 젊은 셰프들이 하는 양식적인 외국 베이스에 한식을 얹는 것을 모던함이라고 한다면, 내 요리는 모던 한식이 아니거든요. 제가 아름지기 등에서 오랫동안 해온 것 중 하나가 전통을 지키되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요즘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감각과 성향으로 맞춰 내는 것이었어요. 그것을 모던함이라고 이야기한다면, 거기엔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한식공간의 런치 코스를 보면서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모던한 플레이팅을 가미한 ‘전통 한식’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근새우냉채와 햇밤죽, 배추선, 신선전골, 닭갈비적, 진짓상, 후식까지 코스를 보며 발상의 전환에 놀랐죠. 특히 전골에 들어가는 채소와 버섯, 고기, 생선 등을 전 형태로 만들어 우리가 알던 전골의 고정관념을 뒤집은 신선전골 요리는 과연 일품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내셨나요? 제가 그런 걸 좋아해요. 그런데 제 요리를 보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만큼 스스로 요리에 대해 고민을 해봤다는 거예요.

셀러리를 많이 먹으면서도 런치 코스에 나온 것처럼 초고추장에 먹을 생각은 못했거든요. 정말 맛있더라고요. 잘 어울리죠. 외국 셰프들이 제 음식을 맛보면서 “지니어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들에겐 다른 나라 요리지만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진 포인트를 안 거예요. 셰프들은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선생님의 한식은 뻔하지 않아서 좋아요. 유명하다고 알려진 전통 한식당에 가보면 뻔한 느낌을 지울 수 없거든요. 내가 새로운 것을 개발하게 된 건 뻔한 걸 하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그것을 어떻게든 탈피하고 싶었기에 나만이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었죠.

호텔 조리사 생활을 마감하고 한식 다이닝을 본격적으로 연구하시면서 2017년 한식공방을 열었습니다. 본인 색깔에 대한 고민을 하다 내린 결정이라고 하셨죠. 요리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랩 개념의 공간인데, 한식공방을 통해 연구에 대한 갈증이 좀 해소되셨나요? 조직에서 일하면서 배우는 것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공방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세밀하게 도제식 시스템을 운영해보고 싶어서였어요. 공예도 그렇듯 음식에서도 도제라는 것은 손끝의 스킬만이 아닌 생각과 정신, 철학을 함께 전하는 거잖아요. 이 모든 것이 같이 버무려지려면 서로 한 몸처럼 움직이면서 기술과 정신을 같이 전수하는 걸 꿈꿨는데, 시대적 착오였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요즘 시대에 엄청난 계산 착오였죠. 그런 자세 또는 정신을 요구하거나 원하는 그런 시대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왼쪽 반상. 조선시대 수라상을 재해석한 붉은 원상에 밥과 국, 제철 재료와 발효로 맛을 낸 다양한 반찬을 곁들인 메뉴.
오른쪽 지난 11월 19일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1> 발간 행사에서 한식공간이 미슐랭 1스타를 획득했다.

요리 수업, 컨설팅 제안, 다이닝 등 한식공방은 레스토랑이자 연구소, 학교인데 그중에서도 앞서 말씀하신 대로 가장 힘쓴 부분이 도제식 수업이었나요? 한식공간을 인수하면서 한식공방을 운영한 기간은 2년이 채 안 돼요. 그래서 도제식으로 가르친 사람도 5~6명 정도 됩니다. 도제식 가르침과 배움이라는 것은 긴 시간 같이 움직이면서 눈빛으로, 느낌으로, 언어로,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해 교감하고 그런 과정에서 습득이 되는 것이죠. 게다가 제가 다그치거나 단호한 성격이 아니다 보니 배우는 입장에서는 더 긴 시간이 필요했는데, 제가 한식공방을 운영한 기간이 너무 짧았어요.

다그치지 않는 성격이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스타일의 ‘선생님’이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스스로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강요하지 않는 편이에요.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가면 작은 효과나 성과는 있겠지만, 서로 너무 힘들죠. 그리고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야말로 즐겁게 요리를 할 수 있으니까요.

한식공방과 한식공간에서 선생님과 함께한 후배와 스태프는 이곳에서의 경험을 어떻게 말하던가요? 다른 데서 보지 못한 새로운 한식을 만날 수 있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사실 메뉴 구성을 보면 그 셰프가 보여요. 그림도 그렇잖아요. 그 사람의 흔적이 드러나죠. 제 요리도 기존 한식 바탕에 색다른 해석을 입히니 그런 점을 재미있어 해요. 그 부분을 배우고 싶어 하는 욕심이 있죠.

한식공방을 운영하면서 제자 양성 외에도 어떤 부분에 몰두하셨나요? 계절 재료로 사계절에 맞춰 갈무리(저장)를 많이 했어요. 레스토랑처럼 매일 돌아가는 게 아니다 보니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저장 음식을 많이 만들 수 있었죠. 레스토랑을 운영한 뒤로는 매일 돌아가는 스케줄 때문에 그런 걸 못해요. 한식공방에서는 다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에 원 테이블 다이닝을 운영하며 해보고 싶은 요리를 다 해봤어요. 쿠킹 클래스도 운영하고요.

한식공간에선 매일 런치와 디너가 반복되는 바쁜 일상을 보내고 계신데, 가끔 한식공방에서의 시간이 그리우실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렇죠. 마지막에 목표한 것이기도 했고, 원 없이 해보고 싶었는데 충분히 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워요. 우리가 어떤 회사에 근무할 때는 그 회사가 가장 매출을 많이 올릴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야 하잖아요. 저도 이곳에서는 손님들이 만족할 만한 걸 만들어야 하죠. 한식공방에서는 제가 만족하고, 제가 좋은 것을 펼쳐 보일 수 있었는데 말이에요.





왼쪽 닭 안심과 녹두를 갈아 만든 삼계편에 수삼을 올리고 동충하초탕을 곁들인 동충하초 삼계편.
오른쪽 밤죽, 율란, 생율의 세 가지 식감을 즐길 수 있는 햇밤죽.

‘경영’은 숫자와 무관하지 않다 보니 숫자에 예민해져야 하는 부분도 힘드실 것 같아요. 인력을 양성한다는 측면, 우리 음식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다는 측면에선 한식공간을 인수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레스토랑이 규모와 상관없이 세무회계 등 신경 쓸 게 너무 많아요. 또 레스토랑 운영이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제가 구현하고 싶은 음식을 통해 손님에게 만족을 주는 건데, 그걸 저 혼자 할 수는 없죠. 10명이 넘는 식구들에게 똑같이 제 생각을 공유하고 공감을 얻어 또 하나의 나처럼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엄청난 능력이에요. 결국은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갖게 하고 그들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컨트롤하는 것이 경영인데, 굉장히 어려워요.

직원들과 함께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것,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너 셰프가 등장하기 전 “돈 있으면 식당이나 할까?” 하던 시절의 사장님과 지금의 오너 셰프는 완전히 달라요. 오너 셰프에겐 ‘내가 서비스하는 음식이 곧 나’거든요. 그것을 혼자 할 수 없으니 같이 해야 하는데, 내가 내는 음식처럼 직원들이 똑같이 움직이면서 할 수 있도록 생각을 함께 다듬어야 하고 그들이 그것을 할 수 있도록 북돋아줘야 해요.

지금까지 그래왔듯, 2021년에도 꾸준히 선생님의 길을 가실 거죠? 마음의 나이가 진짜라지만 현실적으로 몸이 따라줘야 하는데, 제가 걸어온 길이 워낙 힘들어 체력이 많이 소모된 걸 느껴요. 다음 스텝을 생각하긴 하는데 구체적으로 잡히지가 않네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놓고 고민하고 있어요. 2021년은 경영 전반을 좀 더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해로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이제 곧 새해가 시작되고 명절이 다가옵니다. 겨울에 요리하기 좋은 메뉴, 또는 명절에 가족과 함께 나눌 만한 추천 메뉴를 추천해주세요. 흔히 시절식이라고 하죠. 시식(춘하추동 계절에 따라 나는 식품으로 만든 음식)과 절식(다달이 있는 명절에 차려 먹는 음식). 저는 시절식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봐요. 옛 전통이 많이 사라졌지만, 명절 때만이라도 꼭 명절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급적 옛날 방식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 수 있더라도 전통 요리법대로 해 먹을 수 있는 건 명절 때밖에 없으니까 그 전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으로, 셰프에게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꼽으신다면 무엇일까요? 아, 고민되네요. 나중에 정리해서 답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제 답을 혹시 요식업계 전문가들이 볼 수도 있잖아요. 그렇다면 더더욱 해줄 만한 이야기로 정리해야 하니까, 제게 시간을 좀 주세요.





한식공간의 여름 디저트인 복숭아. 배를 채썰어 곁들였다.

P.S. 조희숙 셰프를 만난 지 정확히 2주가 지난 금요일 오후, 그녀의 마지막 답변이 도착했다. 한 글자 한 글자 얼마나 정성스레 문장을 완성했는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동안 셰프로서 갈고닦은 철학과 사명, 가늠할 수 없는 책임을 몇 줄로 줄여야 했으니 분명 애를 먹었을 것이다. 점심 후 브레이크타임에 셰프는 밀린 점심 식사를 해야 한다. 경영에 필요한 잡무를 처리해야 하고, 동시에 저녁 영업 준비도 해야 한다. 그리고 그사이 단 몇 분이라도 온전히 쉬어야 한다. 인터뷰 마지막 질문으로 인해 브레이크타임에 컴퓨터를 켰을 그녀를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다. 그럼에도 이 시대 모든 독자에게 귀한 조언을 전할 수 있어 솔직히 많이 기쁘다. “셰프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확고한 삶의 방향성을 갖고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꾸준히, 오래도록 한길을 갈 수 있으니까요. 특히 한평생 살아가면서 자신을 구현하는 방법이 먹거리를 다루는 셰프라는 직업으로 발현될 때 그 어떤 직업보다 철저한 몇 가지를 갖춰야 합니다. 첫째, 정직하고 양심적으로 다른 사람이 먹는 음식을 귀하고 소중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셰프로서 즐거움과 보람은 상대방 만족의 크기와 비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음식을 다루는 일에 대한 흥미와 애정이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수많은 벽과 맞닥뜨리는 셰프의 길을 오래도록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
사진 제공 한식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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