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판된 '가면' 시리즈의 조각 피겨는 누가 만들었을까?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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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01

완판된 '가면' 시리즈의 조각 피겨는 누가 만들었을까?

중국 현대미술가 쩡판즈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가면' 시리즈를 만든다.

스튜디오에서 쩡판즈.

쩡판즈(Zeng Fanzhi). 당신은 이 이름에 이어 어떤 문장,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보통 아트 애호가라면 가장 먼저 그를 대표하는 ‘가면’ 시리즈를 연상할 것이고, 그다음엔 자연스럽게 2013년 10월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1억8044만 홍콩달러(약 250억 원)에 낙찰된 ‘최후의 만찬’(2001)을 떠올릴 것이다. 당시 아시아 현대미술 사상 최고 경매가를 기록한 그 회화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속 예수와 열두 제자를 수박을 먹고 있는 열두 명의 소년 공산당원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작품 속 소년들은 모두 공산당원의 상징인 빨간 수건을 목에 두르고 있는데, 성경 속에서 예수를 배반한 유다에 해당하는 소년만 노란 넥타이를 매고 있다. 이 ‘가면’ 시리즈의 하나로 열두 명의 소년이 가면 뒤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지만,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오히려 수만 가지 표정을 떠올리게 하는 아이러니를 내포한다. 이 ‘가면’ 시리즈가 쩡판즈의 대표작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으나 그의 회화 실력은 ‘초상’, ‘무제’ 시리즈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실제로 ‘최후의 만찬’뿐 아니라 그의 수많은 그림이 폴리와 소더비, 크리스티, 가디언스 등에서 놀라운 가격대를 형성하며 높은 낙찰가 행진을 이어가기도 했다.
쩡판즈. 그 이름에 이어 나는 다른 이미지를 떠올린다. 2010년대 초반, 아트 컬렉터들이 모인 아트 투어 그룹에 합류해 베이징 현대미술계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정말 운이 좋게도, 투어 그룹 대표와 중국 미술계 유력 인사의 인맥으로 당시 쩡판즈의 작업실을 방문할 수 있었다. 쩡판즈는 스물 남짓의 대규모 여성 아트 애호가 그룹의 방문에 약간 놀란 듯했다. 물론 그간의 작품으로 미루어볼 때, 그가 밝고 활발한 사람일 거라고 상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몇 배나 더 진지한 표정이었고 말수도, 웃음도 적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몇 년 뒤 아트 바젤 홍콩에서 우연히 만난 쩡판즈의 모습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마침 전시장에서 방송사와 인터뷰 중이었는데,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참가한 웅변 대회 단상에서 어쩔 줄 모르는 아이처럼 표정이 굳어 있었고, 주변을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낯선 방송사의 카메라도, 그 상황을 구경하려고 주변을 둘러싼 군중도 그에겐 모두 불편한 존재였을 것이다. 적어도 당시의 쩡판즈에겐 그래 보였다.
사람들은 ‘가면’ 시리즈가 허영과 고독, 존재의 이질감이 응축된 작품이라고 평하지만 쩡판즈가 그린 모든 작품엔 사실 그 세 가지 키워드가 녹아 있다. 특히 고독과 이질감은 내면으로의 침잠을 즐기는 쩡판즈의 또 다른 이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작품과 그는 매우 닮았다.
그래서 지난해 10월 쩡판즈가 아티레트로(ArTy ReTro) 대표 충저우(Chong Zhou)와 함께 아트 피겨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꽤 놀라웠다. 중국 현대미술 3세대 작가로 아방가르드 미술을 대표하는 그가, 작품 속에서 사회를 관조하고 인물의 내면을 응시하는 그가 아트 피겨라니! 아톰, 베어브릭, 그리고 카우스와 스티븐 해링턴의 아트 토이처럼 캐릭터가 강한 팝아트적 아트 피겨를 주로 접해온 컬렉터들에겐 더욱 낯설었을 것이다. “이 새로운 프로젝트는 충저우의 제안으로 시작했어요. 사실 그 전까지 저는 최근 예술계에 불고 있는 협업 열풍이나 트렌드에 대해 그렇게 잘 이해하고 있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이디어를 듣자마자 매우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죠. 디자인도 매우 구체적이어서 호기심을 자극할 만했고요. 덕분에 피겨 실물도 매우 훌륭하게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38cm 크기의 피겨, 그리고 피겨를 이용한 홍보 영상 제작으로 구성한 이 프로젝트에서 쩡판즈는 피겨 인물에 대해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의견을 냈다. 심지어 홍보 영상에 잠깐 등장하기도. “제가 우한 출신이라 영상에서 우한 사투리로 몇 마디 말을 했어요. 그런데 우한 사람들도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는 것 같더라고요.” 회화로만 감상하던 ‘가면’ 시리즈의 피겨는 쩡판즈의 상상보다 훨씬 정교하고 구체적이며 세밀하게 표현했다. 그래서일까? 9개의 AP(Artist Proof, 보존하기 위해 작가가 소유한 작품)를 제외한 290의 에디션은 금세 완판됐다.







Self-portrait 09-8-1, Oil on Canvas, 200×200cm, 2009.
충저우가 설립한 아티레트로에서 쩡판즈와 협업해 선보인 아트 피겨 ‘The Mask’.


우한에서의 시절
그의 아버지는 인쇄공이었다. 가정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그는 영민하게도 일찌감치 자신이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자신감이 생긴 그는 본격적으로 미술에 관심을 갖고 시간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청소년기에 저의 가장 큰 소망은 ‘그림 그리는 걸 업으로 삼을 수 있으면 좋겠다’였어요. 스무 살이 되기 훨씬 전부터 그런 열망을 품었죠. 외부의 환경적 요인이라기보다는 내면에서 우러나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1985년 신사조 미술 운동이 일어나던 즈음 현대미술을 접하고 충격을 받은 그는 미술대학에 바로 진학하지 않고 아마추어 청년 화가들과 어울리며 입시 준비를 했는데,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엔 예술계 고등학교가 따로 없었어요. 그 정도로 사회적으로 예술 교육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았지만, 그림 공부는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었어요. 삼삼오오 모여 만든 일종의 ‘살롱’ 같은 모임도 많아 거기서 함께 연구하거나 토론을 했죠. 저에게 그림이 무엇인지 일깨워준 선생이 바로 그 멤버 중 한 명인데, 저보다 나이도 몇 살 많고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친구였습니다. 특히 예술사에 대해 자신만의 견해가 뚜렷해 제가 옆에서 많이 배웠죠.”
그런 경험이 도움이 되었을까? 쩡판즈는 후베이성의 후베이 미술대학 유화과에 입학했다. 후베이성은 코로나19로 이슈가 된 우한이 위치한 중국 중심부의 성으로 우한은 후베이성의 성도(省都)다. 청소년기를 비롯해 20대의 대부분을 우한에서 보낸 경험은 미술대학의 학업에, 그리고 그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우한은 아주 열정적인 도시예요. 제 주변에선 늘 다양한 일이 일어났죠. 특히 유년기에 경험한 삶과 죽음에 대한 여러 사건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그만큼 어린 제 심장을 뛰게 한 일은 없었던 것 같거든요.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 관심사도 시각적으로 강렬한 사물이나 사건에 쏠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시장의 냉동 고기, 반으로 잘려 속을 드러낸 수박, 심지어 인근 병원의 풍경까지, 그 모든 경험과 기억이 제 초기 작품의 주제로 연결되었죠.”
대학 졸업 작품으로 그린 표현주의적 화풍의 ‘병원(Hospital)’에서 쩡판즈는 병원의 광경을 묘사하기보다 화면 속 인물의 심리에 집중했다. 그의 모든 작품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커다란 눈동자와 손, 의도적으로 허문 인체의 비례, 과장된 윤곽선이 이미 초기작인 ‘병원’ 시리즈에서 시작된 것. 그 후 고깃덩어리를 연상시키는 인간 군상을 그린 ‘고기(Meat)’, ‘초상(Portrait)’, ‘무제(Untitled)’, ‘풍경(Landscape)’ 시리즈는 모두 우리의 내면세계와 심리를 표현한 것이다. 그 모든 것이 그가 말한 것처럼 10~20대의 경험이 낳은 결과물인 것. “생각해보면 저는 어릴 때부터 사람의 감정에 비교적 민감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의 시선과 행동에서 어렵지 않게 그들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거든요. 그리는 작품 시리즈는 꾸준히 달라졌지만 그 맥락은 모두 이어져 있어요.”







Fly, Oil on Canvas, 200×180cm, 2000.
Hospital Triptych No.2, Oil on Canvas, 180×460cm, 1992.
Lucian Freud, Oil on Canvas, 180×180cm, 2011.


갑작스러운 일은 그리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장샤오강, 웨민쥔 등과 함께 중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쩡판즈는 문화혁명을 겪으며 자란 세대다. 흔히 그 세대의 중국 작가는 작품 속에서 급변하는 중국의 사회문제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 표현 방식만 다를 뿐, 사회 고발적 성격의 작품이 많아 나 역시 중국 작가들은 마치 사회부 기자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을 정도. 그러나 쩡판즈는 그런 시각에 크게 동의하지 않는다. “문화혁명이 일어났을 때 저는 어린 소년이었고, 특별히 깊은 인상을 받지 않아요. 제 작품은 모두 개인적 느낌을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제가 당시 느낀 감정이 주변 환경과 관련 있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아요. 하지만 모든 예술가가 자신만의 특별한 표현 방법과 주제를 가지고 작업하는데, 그들을 ‘국가’라는 거대한 카테고리로 나누는 건 다소 과도하게 거친 구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한에서 보낸 청년기가 ‘병원’ 시리즈로 이어진 것을 보면, 그 자신도 밝혔듯 작가를 둘러싼 환경은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그를 세계적 작가로 등극시킨 ‘가면’ 시리즈가 1993년 베이징 이주에서 비롯한 것만 봐도 그것은 명백하다. 1991년 후베이 미술대학을 졸업한 그는 전업 작가를 선언하며 문화 예술의 중심지 베이징으로 터전을 옮겼는데, 그곳에서 경험한 낯설고 외로운 시간에 대한 감정을 ‘가면’ 시리즈에 고스란히 투영한 것. “베이징에 처음 왔을 때 저는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 아니라 도심에서 생활했어요. 그래서인지 베이징이라는 거대 도시에서 오랫동안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는 베이징 사람들을 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감을 뼈저리게 체감했고, 그로 인해 외로움이 더욱 깊어졌다고 고백했다. 그러한 감정의 산물이 바로 ‘가면’ 시리즈다.
작품에서 그는 말끔한 정장 차림의 남자 얼굴에 가면을 씌운 후 날카로운 붓 터치와 과장된 신체 표현 등을 통해 베이징에서 경험한 인간의 이중성을 나타냈다.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상처받은 자신의 마음을 마스크 뒤에 숨겼지만 관람객은 신기하게 그 감정을 읽어냈다. ‘가면’ 시리즈는 광저우 트리엔날레를 통해 글로벌 미술계에 선보였고, 미국과 유럽 각국에서 열풍을 일으키며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많은 러브콜을 받았다.
1994년 시작해 꾸준히 발전해온 ‘가면’ 시리즈는 2000년에 접어들면서 가면을 벗고 진짜 얼굴로 관람객과 대면한다. ‘초상’ 시리즈가 바로 그것인데, 갖가지 욕망과 허위의식으로 가득 찬 작가 자신을 직접 대면하는 시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고기’와 ‘병원’, ‘가면’ 시리즈가 인간의 욕망과 자본주의를 비판했다면, ‘초상’ 시리즈는 작가의 관심이 주변부로 확장된 느낌이다. ‘가면’에서 ‘초상’으로 이동할 때 혹시 그의 삶에 어떤 터닝 포인트가 있었던 것일까?
“모든 사람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환경은 늘 변화하기 마련이죠. 이런 변화가 쌓여 알게 모르게 제 창작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작가에게 ‘갑작스러운 무슨 일’은 잘 일어나지 않아요. 저 역시 그렇고요. 이 작품에서 저 작품으로 이동은 그저 자연스러운 변화일 뿐이에요.” 그래서 그는 늘 있는 그대로의 자신, 그리고 내면의 변화를 들여다보려고 노력한다. 어떤 시리즈가 큰 호응을 얻었다고 그것을 계속 그리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모든 예술은 그만의 발전 논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걸 말로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때로 어떤 실마리가 나타나고, 그 실마리를 좇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 새로운 발전을 이루는 거죠.”
‘초상’ 시리즈에서 쩡판즈는 자기 자신과 정치 영웅, 스타들의 얼굴에 불규칙한 곡선을 그려 실체를 해체하며 내면의 진실을 끄집어냈다. 앤디 워홀, 고흐, 루치안 프로이트, 아르마니 같은 유명 예술인도 그의 화면으로 불러냈다. “저는 많은 예술가에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앤디 워홀이나 루치안 프로이트도 당연히 그중 한 명이죠. 하지만 제가 그들을 그린 진짜 이유는 그들의 얼굴이나 시선에서 제 마음을 사로잡는 어떤 특징을 발견했기 때문이에요. 앤디 워홀의 초상을 다수 그린 것도 그 때문입니다.”





2013년 파리 시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쩡판즈 회고전 전경. Untitled, Oil on Canvas, 400×720cm(in 3 Parts), 2013.

선이 선을 파괴하다
‘가면’ 시리즈가 대표작이긴 하나 쩡판즈 회화의 힘을 느끼고 싶다면, ‘무제’와 ‘풍경’ 시리즈를 감상해야 한다. ‘병원’, ‘고기’, ‘가면’, ‘초상’ 시리즈로 이어지는 그간의 작품에서 관람객이 인물의 표정이나 포즈, 주인공이 놓인 상황을 살폈다면, 자유분방한 모양의 선으로 본래 이미지를 뭉갠 ‘풍경’과 ‘무제’ 시리즈는 창조적 선이 만들어내는 힘이 전하는 에너지에 집중하게 된다. 한 국내 평론가는 “중국 수묵화의 자유분방한 필획을 연상시키는 풀과 나무에 대한 묘사가 압권인 ‘무제’ 시리즈는 중국의 광활한 자연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고 내면의 요구에 순응한 결과”라고 평했는데, 이 표현보다 더 정확한 문장을 지금껏 보지 못했다.
선을 통해 이미지를 파괴한 작품을 보며 관람객은 각자 나름대로 파괴된 본래의 이미지를 상상하게 되는데, 그 또한 작품이 관람객에게 던지는 신비한 퀴즈이자 생각할 거리다. 그렇다면 그가 이렇듯 형태를 선으로 파괴한 의도는 뭘까? “작품에서 저는 선으로 형상을 잡고 다시 선으로 그것을 파괴하죠. 그 시리즈의 발전 과정을 보면, 선을 중심으로 제 탐색이 전개되는 걸 알 수 있어요. 하지만 그림을 보는 관람객은 각자 다른 느낌을 받게 되죠. 그것이 제겐 매우 흥미로운 일이에요.” 이미지를 파괴하는 과정에서 그는 오른손에 두 개의 붓을 들고 동시에 움직인다. “제가 손을 다친 적이 있어요. 그때 한 손에 두 개의 붓을 쥘 수밖에 없었는데, 일시적 실험이었지만 그러다 우연히 찾아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그림은 때로 게임을 하는 과정과 같아서 의미를 먼저 정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가 작업을 시작한 당시와 지금, 중국은 많이 변했고 사회적 이슈나 고민도 많이 달라졌다. 쩡판즈뿐 아니라 그 주변의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다. 중국이 개혁·개방한 지 30년이 넘은 이때, 급변하는 사회에서 작가들이 힘써야 할 것은 무엇일까? “현대미술이 지금의 단계로 발전하면서 국가 간 경계도 차츰 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는 기본적으로 창작에 임할 때 더 큰 자유를 누리고 있고, 동시에 쉽게 많은 정보를 얻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는 장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창작’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창작 언어와 시각적 논리를 얻기 위해 더욱 집중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9년 아트 바젤 홍콩 당시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세잔, 모란디 그리고 창위>전을 큐레이션하며 창위의 작품을 폴 세잔, 조르조 모란디 작품과 나란히 전시해 중국의 문화우월주의를 뽐내기도 한 쩡판즈. 코로나19 여파로 전 세계적으로 많은 전시가 취소되고 관람객이 작가의 신작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지만, 이 시간을 그는 새로운 기회로 삼는 듯하다. “저는 습관적으로 몇 가지 다른 부류의 작품을 동시에 창작하는 편인데 지금도 그렇습니다. 코로나19로 여행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거의 매일 작업실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어요. 덕분에 작업량이 최고치에 이르고 있죠. 앞으로 1~2년 안에 종이 위에 표현한 참신한 작품 시리즈의 전시 준비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미 10년 전쯤부터 창작해온 작품들입니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제공 쩡판즈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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