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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12

에스파스 루이비통 서울 전, 게르하르트 리히터

4900가지의 색채로 완성한 작품, 루이비통으로 들어온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 전.

<회화에 대한 시선>전(2019)에서 선보인 ‘4900가지 색채(4900 Farben)’ (2007),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컬렉션.
Courtesy of the Artist and Fondation Louis Vuitton. Photo by Fondation Louis Vuitton / Marc Domage ⓒ Gerhard Richter





작품 앞에 선 게르하르트 리히터. ⓒ Gerhard Richter

1932년생인 리히터는 고령의 작가임에도 여전히 건재하다. 그의 이름은 이미 미술사에 지워지지 않을 족적으로 남았고, 아직도 들고 있는 붓과 물감에서는 이전보다 더욱 선명하게 그의 연륜이 묻어난다. 예술가로서 리히터는 커리어 내내 사진과 회화를 오가며 서로 다른 매체의 연결 고리를 탐구하고, 장르의 한계를 탈피하고자 노력해왔다.

10대 시절부터 무대와 빌보드 그림을 그리며 상업적 기술로서 회화를 먼저 체득한 그는 1951년 독일 드레스덴에 위치한 쿤스트아카데미에서 본격적으로 예술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독일이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어 있던 당시, 그는 사회주의적이면서 사실주의적인 회화에 집중해 작업했다. 여기서 사진과 회화의 관계성을 짚어내는 리히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실제 사진을 바탕으로 더하거나 빼면서 현실 같은 가상의 화면을 만들어낸 것. 이는 사진 속 대상을 흐릿하게 묘사하는 방식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러한 그의 스타일은 한 번 크게 외부의 영향을 받게 된다. 1959년 독일 카셀에서 열린 ‘도쿠멘타 2’에서 잭슨 폴록, 루초 폰타나, 로버트 라우션버그 같은 미국 팝아트와 추상표현주의 작가의 작품을 본 후 예술의 저변이 넓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리히터가 이러한 사조의 움직임에 완전히 편승해 따른 것은 아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용하면서도 예술적·철학적 이데올로기에는 비판적 태도를 유지하고 끊임없이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탐구해나갔다. 이후 1972년에는 제36회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 국가관 작가로 선정됐고, 같은 해 카셀 ‘도쿠멘타 5’에도 작품을 출품해 주목받았다. 이후 1977년, 1982년, 1987년, 1992년, 1997년 열린 도쿠멘타에 연달아 초대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사진에서 출발한 초상화, 풍경화, 정물화를 비롯해 제스처 회화, 모노크롬 회화는 물론 ‘색채 견본집’ 연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결국 리히터의 회화 양식을 단일한 장르로 규정할 수 없다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동시다발성’과 ‘분절성’이 특징으로, ‘스타일 없음’으로 리히터는 자신의 스타일을 정의한 셈이다.





4900가지 색채(4900 Farben), 2007,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컬렉션. ⓒ Gerhard Richter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색채 견본집’ 연작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1966년부터 리히터는 산업용 페인트 색상표를 대규모로 확장해 재현한 색판 그림을 통해 색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그는 이 초기 실험에 대해 1973년 이르멜린 리비어(Irmeline Lebeer)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처음 만든 색판 작품은 비체계적이라고 할 수 있죠. 완전히 상업적인 색채 샘플을 활용한 거예요. 그래서 팝아트와 맞닿아 있죠. 임의로 색을 선택했고, 그것을 화면에 옮겼어요. 당시 나름의 체계를 만들어 180톤의 여러 색상을 혼합하고, 네 가지로 변형했어요. 사실 ‘180’이라는 숫자는 너무 자의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밀한 비율에 기반한 시스템을 개발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그는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네 가지 순수한 색을 시작점으로 삼아 밝기에 따라 16, 64, 256, 1024개의 색조로 나눴다. “이보다 많은 색조는 필요 없어요. 어차피 눈으로 완벽하게 구분하긴 어렵기 때문이죠.” 이렇게 리히터는 약 55년 동안 지속해서 색채에 관한 연구를 이어왔다.

이러한 작업이 발전해 ‘4900가지 색채’ 연작으로 이어졌다. 정사각형 컬러 패널 196개를 여러 사이즈로 나눠 작은 격자판으로 조합한 작품부터 하나의 대형 패널로 완성한 작품까지 총 11개 버전으로 구성한 연작이다. 그중 단 하나의 시리즈 작품으로 구성한 아홉 번째 버전이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전시를 통해 국내에 첫선을 보인다. 여기에 더해 다큐멘터리 영상 작품 한 편도 감상할 수 있다. 리히터는 2007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훼손된 쾰른 대성당의 남쪽 스테인드글라스를 디자인했다. 그렇게 완성한 스테인드글라스는 ‘돔펜스터(Domfenster)’란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마치 만화경을 보는 듯한 이 작품에는 기존 창문에 쓰인 72가지 색의 스펙트럼을 넓혀 제작한 1만1500장의 수공예 유리 조각을 사용했다. 그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한국에 상륙하는 것. 이를 통해 회화의 한계를 뛰어넘은 작가의 역량을 있는 그대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색채를 통해 또 하나의 ‘추상적 숭고함’이라는 정의를 내린다고 할 수 있다. 어두컴컴한 전시장에서 마주하는 다채로운 색채의 화면은 분명 세밀하고 치밀하게 계산한 결과물일 것이다. 그곳에서 리히터의 작품을 통해 당신이 무엇을 가져가든 그 또한 분명 작가가 의도한 결과일 것이다.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제공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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