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말하는 이 시대의 '젠더'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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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15

예술로 말하는 이 시대의 '젠더'

'올해의 작가상 2020'에 선정된 정윤석 작가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왜일까?

정윤석, 내일, 다큐멘터리 영화 및 영상 설치, 가변 크기, 2020.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리는 <올해의 작가상 2020>전이 최근 비난의 중심에 섰다. 다름 아닌 4인의 선정 작가 중 정윤석의 작품 ‘내일’ 때문. 작가는 기자간담회에서 러브돌을 통해 사라진 인류애와 인간의 모순 등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고 밝혔는데, 작품 앞에 선 대중은 오히려 폭력성을 느낀 것. 작품을 접한 사람들은 러브돌의 작품화에 대해 명백히 ‘여성 혐오적’ 시선을 담아냈다며 올해의 작가상 후보를 박탈하거나 작품을 철회하라는 내용의 해시태그 운동과 의견을 SNS에 게재했고, 전시는 피할 수 없는 공론의 장이 되었다.
정윤석의 작품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2시간 30분가량의 싱글 채널 작품과 여기 소개된 내용 한 부분을 집약하고 푸티지를 추가해 만든 약 25분 길이의 2채널 작품이다. 싱글 채널 작품 전반부는 중국의 한 러브돌 공장의 노동 현장을 보여준다. 특히 여성 노동자에게 초점을 맞춰 그들이 성 상품을 만드는 행위에 관해 이야기했다면, 후반부에서는 일본 나카지마 센지와 일본 다마시 시장 선거에 나선 AI 정당의 이야기를 교차 편집해 그리면서 이번 작업 주제는 ‘인간의 모순’임을 드러낸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전시의 일환으로 함께 제작한 인터뷰 영상에서 그는 “인간의 모순을 왜 이해시켜야 하나. 모순은 모순일 뿐인데. 이 작품이 하나의 메시지로 전달되거나 너무 친절하게 전달되지 않아도 좋고, 누군가에겐 불편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와 다른 것을 느끼면 좋겠다”고 덧붙이며 작품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올해의 작가상 2020>전 일환으로 공개된 정윤석 작가의 인터뷰 영상. 국립현대미술관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을 대체하는 매체로 새롭게 제시한 러브돌이라는 주제를 다룸으로써 작가는 ‘인간성’이 무엇인지, 인간의 범주는 무엇인지에 대한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 하지만 논지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이를 시각화한 방식 때문. 싱글 채널 작품의 시작은 러브돌을 만드는 공장이다. 작가는 ‘여성 노동자의 손에 의해 탄생하는 여성 러브돌’ 작업 장면을 보여준다. 이 여성 노동자들이 얼마나 감정을 배제한 채 단순히 ‘노동’으로서 이 일에 참여하는지 보여주는, 무심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장면과 함께 그들의 인터뷰를 들려준다. 특히 여성 노동자들이 중간중간 아무렇지 않게 다루는 러브돌은 여성의 신체 부위를 그대로 드러내고, 심지어 꽤 거칠게 다뤄지는 장면으로 연출되면서 불편함을 배가한다. 작가는 이 공장에서 러브돌의 실제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에 한 번 놀라고, 이를 인간의 힘으로 이겨내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러한 순수한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대신 상당히 폭력적이고, 괴상하며, 섹슈얼리티를 유린하는 듯한 영상 이미지로 그려내면서 전혀 공감을 얻지 못한 것이다. 작가가 주장하듯, 자본주의가 낳은 젠더와 인간성이 결여된 ‘기괴한 풍경’으로서 인간 모순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면 ‘여성’으로 대표되는 러브돌을 성애적으로 담아낸 방식은 분명 ‘여성 혐오적’이라는 오해 아닌 오해를 살 만큼 명명백백한 실수라고 할 수 있다.
미술평론가 임근준은 자신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공개한 리뷰 ‘우여곡절의 현대미술 전람회, <올해의 작가상>’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영화에서 단 한 번도 정윤석은 여성의 목소리와 시점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 사회에 부적응한 남자들의 시선과 목소리를 통해, 대체물로 제시되는 여성 모양의 러브돌과 마네킹을, 최선을 다해 성적 타자로서 추적했다. 지극정성으로 추적하니까, 길고 긴 취재 과정과 편집이, 모두 러브돌과 마네킹을 성애적으로 재현해내기 위한 알리바이 만들기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작가가 진심으로 주장하는 바를 작품에 녹이고자 했다면 이를 수평적으로 놓고 평등하게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했다. 가령 여성이 만드는 여성 러브돌, 남자가 사용하는 여성 러브돌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면, 반대로 남자가 만드는 남성 러브돌, 여성이 사용하는 남성 러브돌, 여성이 제작하는 남성 러브돌에 관한 이야기도 골고루 담아야 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수평적 시선이 빠진 반쪽짜리 영상에서 대다수 대중이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는 사실을 작가는 간과한 듯하다.





프란시스코 고야, 나체의 마야, 캔버스에 유채, 1797~1800,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 소장.

그렇다면 작품을 놓고 예술인지, 외설인지 논하는 일이 왜 중요할까. 섹슈얼리티가 부각된 작품, 예컨대 고야의 ‘나체의 마야’, 귀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서 데보라 드 로베르티스가 보여준 ‘세상의 기원’ 연계 퍼포먼스 작업을 비롯해 제프 쿤스의 ‘메이드 인 헤븐’ 시리즈 등 그동안 윤리적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은 작품이 미술사 곳곳에 있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작가의 행위는 과연 면죄부를 얻을 수 있을까.
미술평론가 반이정은 “취향과 신념이 다른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좋은 예술은 없다”며 예술에 윤리적 잣대 들이 대는 즉시 표현의 자유는 억압될 수 있다는 점과 자신의 입맛대로 다른 이들도 해석하기를 원하는 이러한 현상을 “해석의 폭력”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그가 말한 대로 분명 사람들은 다른 배경에서 살아가기에 한 작품을 놓고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해석이 맞는지 틀린지를 따지고 판단하는 ‘시점’에 우리는 나와 타자 그리고 사회적으로 연결된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앞서 언급한 작품이 세상에 나왔을 때와 현재를 비교하면, 지금 사람들은 성 인지 감수성에 더 예민하다. 그만큼 사회는 젠더 간 갈등과 차이를 좁히는 노력을 지속해왔고, 그에 따른 시민 의식도 높아졌다. 기존 예술에 심각한 윤리적 오류가 있지만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허용됐다 해도, 지금 그렇지 않다면 재고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작품을 감상하는 감상자의 의식과 인지 능력은 깨어 있는데, 예술이 이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면 과연 어떤 예술로 남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분명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메시지를 던지지만 늘 그가 의도한 대로 그 메시지를 읽을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어느 큐레이터가 “자신이 담고자 하는 이야기와 표현 방식이 맞지 않는 작업처럼 보일 때 ‘아, 저 작가가 그 매체를 충분히 소화하지 못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거꾸로 말하면 연구가 부족했다는 뜻이죠. 다른 사람이 채택한 방식을 무의식적으로 답습하거나, 아예 잘못 판단한 경우도 있겠죠. 결국에는 다른 이의 작업도 많이 봐야 하고 보는 방식에 대해서도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듯이, 민감한 주제일수록 더욱 심혈을 기울여 전하고자 하는 논지 혹은 담론 생성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촉발한 때아닌 논란은 작품과 젠더 이슈, 성 인지 감수성을 비롯해 ‘예술’이 이를 풀어내는 방식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사진 홍철기, 이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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