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장 핫한 전시와 신간 추천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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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22

지금 가장 핫한 전시와 신간 추천

화제의 전시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에세이 <함부로 사랑하고 수시로 떠나다> 리뷰.

위쪽 구본웅, ‘인형이 있는 정물ʼ, 1937. 소장 삼성미술관 리움
아래쪽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제2전시실 ‘지상(紙上)의 미술관ʼ 전경.

그때 그 시절, 낭만과 우정이 있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일제강점기는 보통 암흑기로 인식된다. 그래서 그 시절 이야기를 들추는 게 달갑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시 문화 예술은 주목해야 마땅하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변혁의 시기로, 물밀듯 들어온 서양 문물이 당대 자유로운 영혼을 자극해 걸작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지독한 가난과 사회적 모순으로 가득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어느 때보다 풍요로웠던 이 시대를 조명한 전시가 열린다. 2월 4일부터 5월 3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기획전 <미술이 문학이 만났을 때>가 그것. 당시 문인과 화가의 ‘연대감’에 주목하고, 이들이 함께 만들어낸 자산을 선보이는 데 주안점을 뒀다.
미술과 문학의 만남이라니. 두 장르의 간극은 제법 크게 느껴지지만, 과거 둘은 지금보다 훨씬 가까운 사이였다. 당대 문인과 화가들이 역설적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똘똘 뭉친 덕분. 20세기 초 프랑스의 에콜 드 파리가 그러했듯, 이들은 다방과 술집에 모여 새로운 인식을 공유하고 지식의 전위(前衛)를 부르짖었다. 이러한 배경을 보여주기 위해 전시 1부 ‘전위와 융합’에선 1930년대 경성의 종로에 시인 이상이 운영하던 다방 ‘제비’를 중심으로 한 예술가 네트워크 그리고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적 시도를 조명했다. 예컨대 시인 이상과 절친했던 화가 구본웅은 아카데미즘이 팽배하던 시절 야수파적 시도를 감행했는데, 그 대표작이자 출품작인 ‘인형이 있는 정물’은 이상의 다방에 걸려 있던 것이다. 또 문예 잡지 <삼사문학> 창립 멤버 조풍연의 결혼식을 위해 길진섭·김규택·김환기 등 쟁쟁한 화가들이 각자의 스타일로 그린 축하 화첩은 이들의 밀접한 사이를 증명하는 자료라 할 수 있다.
그림, 영상 등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는 요소가 많은 1부를 지나 2부 ‘지상(紙上)의 미술관’ 전시장에 들어서면 당황스러울 수 있다. 미술관보다는 도서관에 가까운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이다. 이는 1930~1940년대를 중심으로 한 인쇄 미술의 성과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민간 신문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문인과 삽화가들이 협업한 결과물, 신문 연재소설 인쇄본 수백 장이 융단처럼 깔려 있다. 이승만·김규택 등 시대를 풍미한 삽화가의 세련미 넘치는 작업은 오늘날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과 견줘도 손색없다. 한편, 근대기 가장 아름다운 책을 엄선해 전시한 섹션도 마련했다. 책 수집가의 로망인 백석의 시집 <사슴>이 전시되어 있으며, 검은 바탕에 은하수를 상징하는 은색 띠를 넣은 김기림의 시집 <기상도> 표지 디자인은 지금 봐도 현대적이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3부 ‘이인행각(二人行脚)’. 1930~1950년대 문인과 화가의 개별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예컨대 일본 유학 시절 낭만주의적 예술관을 공유했던 화가 김용준과 소설가 이태준의 우정은 1928년 김용준이 그린 ‘이태준 초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 이번 전시에서는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월북 예술가의 작품도 확인할 수 있는데, 시인 김광균이 소장한 화가 최재덕의 ‘한강의 포플라 나무’가 대표적이다. 한편, 화가 이중섭이 생활고로 시인 구상의 집에 머물던 시기, 구상이 아들에게 자전거를 사서 태워주는 모습을 그린 ‘시인 구상의 가족’에선 일본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마지막 4부에서는 화가로 유명하지만 문학적 재능도 뛰어났던 장욱진·천경자·김환기 등 예술가 6인의 글과 그림을 보여주며 전시를 마무리한다. 역사 지식을 갖췄다면 전시를 한층 풍부하게 즐길 수 있겠지만, 따로 공부할 필요는 없다. 전시 주제라 할 수 있는 그 시대의 ‘낭만’ 그리고 예술가의 ‘우정’은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니 말이다. 에디터 황제웅





위쪽 변종모 작가가 하와이에서 마주친 소년의 뒷모습.
아래쪽 변종모 작가의 여행 에세이 <함부로 사랑하고 수시로 떠나다>.

함부로 사랑할 수도, 수시로 떠날 수도 없는 이 시절에
낯선 곳에서 온 엽서를 받아본 지 오래되었다. 먼 곳은 더 먼 곳이 되었다. 변종모 작가의 ‘함부로 사랑하고 수시로 떠나다’라는 책 제목을 보며, 함부로 사랑할 수도 없고 수시로 떠날 수는 더더욱 없는 그곳을 생각한다. 나도 함부로 사랑하고 수시로 떠나던 시절이 있었다. 전생처럼 아득한 기억.
엽서는 연약하지만 힘이 세다. 파르르 떨면서도 제 갈 길을 굳세게 간다. 그래서일까. 낯선 카페에서 그곳의 사진이나 그림이 인쇄된 엽서를 뒤집어 한 줄 한 줄 써 내려갈 때, 나는 수신자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하게 연결된 느낌을 받곤 했다. 몸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문장은 곧장 마음으로 직진한다. 그래서 모든 엽서는 속삭임이 된다. 아주 가까이 귀 기울여야 들리는. 들리는 이야기의 내용보다 서로가 서로에게 몸을 숙이며 다가앉는 행동 자체가 의미 있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동안 손도 못 대던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여행기가 가장 먼저 퇴출 대상이 되었다. 여행기를 읽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여행 갈 곳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 여행이 요원해지면서 여행기의 정보 가치는 뚝 떨어졌다. 당장 필요하지 않을뿐더러, 팬데믹 시기가 지나가면 그곳 또한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퇴출이 마냥 쉽지는 않았다. 여행기를 읽는 또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여행을 다시 겪고 싶은 마음. 그곳의 바람, 그곳의 냄새가 페이지마다 섞여 있다. 이 책을 쉬이 내려놓을 수 없는 건 그 때문이리라.
간 적 없는 곳이 왜 그리워지는 것일까. 내가 유럽의 도시를 중심으로 여행한 반면, 저자는 주로 오지를 떠돌았다. 이 책은 저자가 있는 곳의 정보를 많이 주지는 않지만, 글과 이마를 맞댄 사진은 내가 가보지 못한 풍경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와 나는 같은 땅에 있다. 그와 내가 공유하는 것은 ‘처음’이라는 느낌이다. 그는 말한다. “낯선 길을 처음 걸을 때마다 너에게로 처음 가던 길이 생각난다. 처음은 그렇게 빈번하고 자주 반복된다.”
사실 매일매일이 처음이고 매일 만나는 수많은 풍경이 처음이지만, 우리는 매번 신선함을 느끼지는 못한다. 여행이야말로 ‘처음’의 느낌을 농축한 과정이다. 여행 내내 우리는 물속을 헤엄치듯 ‘처음’의 느낌에 잠겨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다면 가벼운 사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 모든 처음은 우리 내면에 깊이 잠겨 있던 기억을 끌어낸다. 저자는 여행지에서 기억해낸다. 떠난 사랑을, 잊고 있던 사람을, 하지 못한 혹은 함부로 내뱉은 말을. 모든 날카롭고 신선한 처음은 닳고 닳아 윤이 나는 오래된 문장과 만난다. 낯선 여행지 베란다에서 시집을 꺼내 읽던 저자는 말한다. “시인의 책상과 여행자의 배낭엔 모서리가 없다. 모두가 닳고 닳도록 걸어야 겨우 한 줄이다. 고작 한 걸음이다.”
에필로그까지 쓴 저자는 PS를 달아 한 사람에게 보내는 엽서를 쓴다. “너는 나의 뼈였나. 이후로 나는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온통 바닥이다. 너는 나의 뼈였다.” 그 이전의 모든 글이 나를 향한 글임을 깨달았다. 엽서란 그런 것이다. 주소를 쓰고 이름을 꾹꾹 눌러쓸 때 이미 향방이 결정된다. 대부분의 우리는 우연히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한 불특정 다수겠으나, 부제가 ‘낯선 길에서 당신에게 부치는 72통의 엽서’인 이 책은 이미 나를 향해 오고 있었다. 다 읽고 나니 알겠다. 우리는 종종 ‘나만 주소 없는 사람처럼’ 살고 있지만, 우리가 만나는 모든 곳이 내 주소다. 북 칼럼니스트 박사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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