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칠 대가 정해조 작가와 그의 제자 정은진 작가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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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29

옻칠 대가 정해조 작가와 그의 제자 정은진 작가

발베니 메이커스의 첫 번째 이야기. 옻칠 대가 정해조 작가와 그의 제자 정은진 작가를 만났다.

위쪽 발베니 30년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정은진, 정해조 작가와 마크 테토.
아래쪽 표면에 굴곡을 넣어 옻의 광택이 살아 있는 정해조 작가의 작품과 발베니 30년.

마크 테토 작가님은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옻칠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옻칠은 한국의 전통 공예 중에서도 저 같은 외국인에겐 생소한 분야죠.
정해조 옻나무에 상처를 내 나오는 수액을 용도에 맞게 정제해 칠하는 것이 옻칠입니다. 우리 조상은 오래전부터 가구나 그릇 등에 옻칠을 사용해왔어요. 신석기시대부터 옻을 사용했다고 전해지니 굉장히 오래된 천연 도료인 셈이죠.
마크 테토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던 시절, 처음 옻칠을 접하고 지금까지 생의 고락을 함께해오신 거죠?
정해조 맞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수채화, 풍경화를 그리며 다양한 색을 다뤘어요. 그런데 대학교에서 목공예를 전공하면서 색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죠. 나무와 색의 관계를 찾아보겠다며 칠을 시작한 게 1969년이에요. 당시 칠공예학과가 개설되지 않아 장인을 쫓아다니며 옻칠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마크 테토 색을 표현하기 위한 여러 방법 중 옻칠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정해조 막상 옻칠을 접하고 보니 신비스럽고 오묘한 비밀이 숨어 있더라고요. 무엇보다 진득한 질감과 특유의 광택이 흐르는 모습에 매료되었죠.
마크 테토 전에 제가 본 옻칠 제품은 찻잔과 도자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작가님의 협저태 칠기는 어떤 것인가요?
정해조 옻칠은 나무, 금속, 종이, 도자기, 대나무, 가죽, 삼베 등 소지(칠을 올리기 전 뼈대를 이루는 기물이나 형태)에 따라 종류가 달라집니다. 제가 사용하는 협저태라는 기법은 전통 직물 삼베를 옻칠액과 함께 굳혀가며 겹겹이 이어 붙이는 작업이에요. 까다롭고 공정 기간도 길죠.
마크 테토 유독 어려운 방식인 협저태 칠기만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으실 텐데요.
정해조 옻에 숨어 있는 광택인 옻빛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 광택을 각도에 따라 다채롭게 보여주려고 작품에 웨이브를 넣어 유려한 형태로 만드는데, 이렇게 굴곡 있는 조형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협저태 기법이 제격입니다. 작품 사이즈가 커도 가벼워서 운반이 편리하다는 장점도 있고요.
마크 테토 그래서인지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 플라스틱의 색감에서 느껴지지 않는 무게감, 유리의 청아하고 맑은 질감과는 다른 따뜻함이 와닿아요. 옻칠이라는 재료 외에도 많은 기법과 의미가 숨어 있을 것 같습니다.
정해조 저는 삶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의 이치와 원리부터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와 본분, 기초, 본질 등이 작품의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원시 조형이라 할 수 있는 타제석기와 마제석기의 제작 원리로 형태를 제작합니다. 석고나 스티로폼을 톱이나 칼로 마구 잘라내고 연마해 형태를 제작한 뒤 그 위에 삼베를 여러 겹 중복해 붙여 태를 만드는 거죠. 색채도 중요한 요인입니다. 한국인의 근본 빛깔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한국의 전통 색상인 오방색으로 옻칠을 하면서 옻의 근본 빛깔을 강렬하게 보여주기 위해 작품 표면에 굴곡을 넣었어요. 빛이 난반사하면서 광택이 마치 살아 있는 듯 춤을 춥니다.
마크 테토 제가 아는 어느 도예가는 기계가 있는 데도 꼭 손으로 물레를 돌리시더라고요. 작가님도 이 모든 과정을 기계가 아닌 손으로만 하시잖아요.
정해조 기계를 사용하면 제 마음과 감정이 작품에 녹아들지 않기 때문이에요. 옻칠은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하고, 과정에 충실하지 않으면 하자가 생기기 때문에 온 마음과 정성을 들여야 해요. 달래가며 작업해야 하는 옻칠의 특성상 기계로 손쉽게 처리하지 않고 손으로 할 수밖에 없어 참고 견디는 힘도 필요하죠. 예를 들어, 24시간 경화해야 하기에 한 번에 10분 칠하고 하루를 기다려야 해요. 경화할 때 온도, 습도가 중요해 칠장을 따로 마련했는데, 조건이 잘 맞지 않으면 원하는 대로 발색되지 않거나 제대로 마르지 않죠.





왼쪽 옻칠을 하고 있는 정해조 작가. 모든 과정을 기계가 아닌 손으로 작업한다.
오른쪽 옻칠의 명맥을 이어온 정해조 작가와 아버지의 과업을 이어 받아 옻칠 공예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은진 작가.

마크 테토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발베니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발베니도 증류소에서 50년 넘게 장인들이 아직도 전통 방식으로 일하고 계시고 수제자들이 물려받아 새로움을 더하고 있거든요. 따님인 정은진 작가님도 같은 길을 걷고 계신데요, 정은진 작가님의 옻칠 유리 작품을 보니 색감이 굉장히 아름답더군요.
정은진 전 새로운 재료에 옻칠을 더하는 작업을 많이 했어요. 나무, 금속 등에 옻칠을 입히다 유리를 옻칠로 마감해보자 생각한 거죠. 단순하게 접근했는데, 색상을 입히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수없이 많은 테스트를 거치다 옻칠을 착색 개념으로 적용해 완성한 거예요. 이것은 저만의 노하우라 아버지에게도 알려드리지 않았어요.
마크 테토 정해조 작가님은 따님이 작품을 만드는 것을 지켜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정해조 작품을 보는 각도나 철학이 깜짝 놀랄 정도로 예리하고 냉철해서 오히려 제가 많이 배우는 편입니다. 옛것에 사로잡히기보다는 현대적으로 적용하고 그 속에서 과학과 예술을 접목하더라고요.
마크 테토 정은진 작가님은 옻칠 대가인 아버지가 전수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정은진 아버지는 제게 늘 기본에 충실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지금 하는 작업도 다른 옻칠 작가가 흉내는 낼 수 있겠지만 이렇게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감을 내진 못할 거예요. 이 작업이 가능한 것도 아버지에게 옻칠의 기본을 잘 이해하고 배운 덕분이죠.
마크 테토 52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옻칠을 하셨고 이제 따님까지 전통을 이어가는데, 후대에게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일까요?
정해조 독학으로 공부할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옻칠에 대한 기록 문화가 발달하지 않아 문헌이나 책 대신 구전으로 이어져 명맥을 유지한 셈이죠. 그래서 전 옻칠 과정이나 기법을 자료화하는 데 애를 썼어요. 현재 작가나 후배들도 자신의 작업 과정을 자세히 기록해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하나, 후손이 풍족하게 사용할 수 있으려면 옻나무를 직접 재배해 자급자족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해요. 우리나라는 옻나무가 자라기 좋은 여건임에도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하는 실정이에요. 옻 산업 특구로 지정된 옥천뿐 아니라 강원도 원주와 전북 남원 등에서 옻나무를 재배하지만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옻나무 재배에 후배들도 적극 동참한다면 원활한 원료 수급으로 옻칠 공예 인구가 많아지지 않을까요?
마크 테토 옻칠의 명맥을 이어온 것뿐 아니라 옻칠의 전통이 사라지지 않게 작가님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계셨네요. 130여년 전의 전통 수작업 방식을 고수하며 위스키를 생산하는 발베니가 왜 두 분을 찾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발베니 메이커스 캠페인’의 공식 질문입니다. 두 분이 생각하는 장인정신이란 무엇일까요?
정해조 결국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다 보면 기량도 늘고 자신의 작품 세계를 돌아볼 수 있는 데다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방향도 설정할 수 있으니까요.
정은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시간에 모든 것이 녹아든 것이 장인정신 아닐까요? 옻칠을 배우고 익히고 연습하고 그걸 적용해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무시하지 못하죠. 차근차근 기초부터 밟아온 세월이 있기에 옛것에 새로움을 더하는 응용도 가능할 테니까요.

경고:지나친 음주는 뇌졸증,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합니다.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생 위험을 높입니다.

 

에디터 문지영(jymoon@noblesse.com)
사진 박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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