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패션계를 사로잡은 유나양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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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27

뉴욕 패션계를 사로잡은 유나양

북촌의 한옥 작업실에서 유나양 디자이너는 아름답고 단단했다.

얼마 전 패션 디자이너 유나양은 자신의 디자이너 성공기를 담은 책 <피어리스>를 출간했다. 처음부터 하이엔드 브랜드를 목표로 해온 그녀가 뉴욕에서 하나의 브랜드로 뿌리내리고 성장하는 동안 마주한 많은 시련과 편견에 맞선 이야기가 담겼다. 책은 출간하자마자 큰 주목을 받았다. 자신도 ‘무모한 도전’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동양인으로서 뉴욕 패션계에서 성공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터. 지금도 1년에 두 번 뉴욕 패션 위크에 설 정도로 입지를 다진 그녀가 들려주는 ‘당찬 이야기’에 사람들이 귀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유나양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순수 미술의 길을 걷던 그녀가 어떻게 패션으로 진로를 바꾸게 된 것일까. 그녀는 자신이 졸업할 무렵이던 2000년경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계획 없이 온전히 쉬기 위해 이탈리아 밀라노로 갔어요. 좀 즉흥적이었죠. 거기서 어떤 할머니를 만났는데, 자신을 옷 만드는 ‘아티스트’라고 소개하더군요. 그때만 해도 저는 ‘옷은 옷이지, 그게 무슨 예술이야’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분이 발렌티노에서 30~40년간 옷을 만든 분이더라고요. 작업실에 초대해주셔서 그분의 작업 과정을 지켜보는데, 정말 놀라웠어요. 긴 세월 동안 하나에 천착해 ‘예술’이라 자부하는 옷을 만드는 데 매력을 느꼈죠. 그래서 패션의 성지라 불리는 밀라노까지 온 만큼 새로운 걸 해보자는 결심이 섰어요.” 그렇게 옷감을 만지는 아티스트의 길로 들어선 유나양은 이탈리아 패션 학교 마랑고니를 거쳐 런던 세인트 마틴스를 졸업한 뒤 2008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나이 서른에 제 브랜드를 런칭하고 싶었어요. 밀라노, 런던, 서울, 뉴욕 중 어디를 기반으로 할지 고민했죠. 밀라노는 아무래도 거대 기업 위주로 돌아가니 혈혈단신인 제가 뛰어들기엔 어려움이 따를 것 같았어요. 런던은 다 좋은데 생산지가 영국 밖, 그러니까 유럽에 있다는 불편한 점이 있었죠. 그러다 뉴욕을 방문했는데, 맨해튼 한복판에 패션 에이전트·생산자·소비자가 모두 모여 있는 거예요. 제게 필요한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왼쪽 2021년 선보인 ‘Fearless’ 컬렉션.
오른쪽 2020년 S/S 컬렉션, ‘You’re Beautiful’.

그렇게 뉴욕에 뿌리를 내린 유나양은 2010년 대망의 뉴욕 패션 위크에서 데뷔 무대를 가졌다. 폭설이 내리는데도 씩씩하게 치러낸 유나양의 패션쇼는 큰 화제가 되었다. 이후 12년이 지난 지금 그녀의 브랜드는 ‘하이엔드’, ‘니치 하이엔드’로 분류되며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컬렉션을 보여주고 있다. “명품이 아닌 브랜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어쩌면 제가 순수 미술을 한 이력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술가들은 대부분 한 작품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고 ‘나의 작품’이라 부르며 공개하는 수준으로 작업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최고 퀄리티, 최상의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디자이너, 브랜드로 기억되고 싶어요.” 유나양이라는 브랜드는 이제 뉴욕을 기반으로 하는 해외 브랜드로 국내에 소개된다. 유나양은 글로벌 시대인 만큼 처음 발을 딛고 선 곳, 뉴욕의 브랜드로 소개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2010년만 해도 패션계에서 ‘로컬’, 그러니까 지역성을 따졌는데 이제는 소용없는 것 같아요. 인터넷이 발달한 데다 온라인 쇼핑을 통해 어디서 해외 직구도 가능하니까요. 서울에 있다고 해서 꼭 서울 브랜드와 경쟁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종종 ‘패션 공동체’라는 생각을 해요. 강연을 비롯해 어디서 제 이야기를 할 때면 ‘세계 시민’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습니다.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서로 더 가깝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패션도 우리를 연결해주는 하나의 매개체인 셈이죠. 서울에서 인기 있는 옷은 뉴욕이나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이제 공통의 ‘심미안’을 갖게 된 거죠.”
주변 환경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그녀는 특히 사회적 이슈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제가 경험하는 것이 옷에 투영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생활에서 절제가 중요하죠. 한국에 들어오니 요즘 성별 문제가 심각한 것 같아요. 제 브랜드는 말 그대로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옷을 선보이고 있어요. 옷을 통해 여성의 아름다움과 자신감, 자존감을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들죠.” 그렇다고 해서 유나양의 작업이 여성에게 치우친 것은 아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성 정체성과 소수자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젠더플루이드(genderfluid)’, 그러니까 유동적으로 전환되는 성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2019년 뉴욕 패션 위크에서는 남자 쌍둥이에게 여성복을 입혀 선보이기도 했어요. 제 컬렉션은 하이엔드지만 동시에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이슈도 담겨 있거든요.”





2019년 뉴욕 패션 위크에서 선보인 ‘프리덤’ 컬렉션.

그동안 브랜드의 규모보다는 퀄리티에 집중한 유나양은 과거 자신이 선보인 컬렉션을 지금도 계속 구매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었다. 말 그대로 2018년 S/S 컬렉션 제품을 2021년에도 구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전에는 큰 관심을 끌지 못하던 디자인이 지금은 완판될 정도로 인기를 끌기도 한다. 이를 통해 모든 것은 때와 인연이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됐다. 지금은 잘 안 될 수 있어도, 그 일이 전화위복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은 것. 그래서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렇듯 그녀는 자신만의 페이스로 브랜드를 이끌고 있다.
“디자이너는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자신과의 싸움이 치열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죠. 노력 대비 성과가 확실하지 않은 분야이기에, 디자이너가 되려면 이런 점을 미리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해요. 제게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조언을 부탁하는 이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평생 자신과 싸워 이겨낼 투지가 있다면 겁내지 말고 시도해보라고요. 정답이 없으면 이를 만들어나가는 즐거움을 느껴보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할 예정이라는 유나양. 그녀가 옷으로 그리는 세상은 에너지와 사랑스러움 그리고 용기로 가득한 초긍정 세상이 아닐까.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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