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을 찾아서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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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20

앤디 워홀을 찾아서

청담동에 위치한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이 <앤디 워홀 : 앤디를 찾아서> 전을 열었다. 자화상을 통해 앤디 워홀과 그의 숨겨진 모습을 찾는 여정을 시작해보자.

Self-portrait, Acrylic Paint and Silkscreen Ink on Canvas, 182.9×182.9cm, 1967
Courtesy of Fondation Louis Vuitton ⓒ 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Visual Arts, Inc.
Licensed by ADAGP, Paris 2021 ⓒ Primae / Louis Bourjac

실크스크린 인쇄 기법으로 작품을 대량생산하며 미국 문화의 속성을 비판한 앤디 워홀은 192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병치레가 잦아 1년 가까이 학교를 결석하기도 하고, 합병증으로 얼굴에 붉은 반점이 생겨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그림 실력만큼은 전교에서 최고 수준이었다. 드로잉에 재능이 많은 그는 1948년 피츠버그 카네기 공과대학교에서 픽토리얼 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의 여느 미대생이 그렇듯 뉴욕으로 건너가 일자리를 찾았다.
광고 일러스트레이터로 시작해 패션 잡지, 주얼리 브랜드 등과 함께 일하며 ‘성공한 상업 예술가’란 타이틀을 얻은 그는 미디어 시대의 우상숭배 현상에 대해 고민하고 탐구하며 화가로, 그리고 영화 제작자와 프로듀서로 작업 영역을 넓혀갔다. 특히 그는 “미래에는 모든 사람이 15분간 세계적 명성을 누릴 것”이라고 예언하며 반복, 연속, 복제의 개념에 주목했는데, 이러한 고민은 실크스크린 인쇄 기법을 자신의 작업에 도입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1960년대부터 매릴린 먼로, 리즈 테일러, 재키 케네디를 비롯한 유명인사를 주제로 동일한 이미지를 반복하는 작업을 펼치며 사진과 회화, 조각과 미디어 등 장르를 넘나든 그는 대중이 예술 작품과 소통하고 관계 맺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대표적 작가라 할 수 있다.

1960년대에 앤디 워홀은 일상의 사물이나 인물을 소재로 실크스크린 인쇄 기법을 통해 팝아트 경향의 작품을 선보였다. 캠벨 수프 캔이나 매릴린 먼로 등 광고 이미지로 소비되는 것을 작품 속에 형상화해 미국의 소비사회를 풍자했지만, 그의 작품에서 그런 이미지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그의 자화상이다. 1967년에 제작한 이 작품은 맬컴 커크라는 사진가가 1966년 촬영한 앤디 워홀의 모습을 작품화한 것이다. 얼굴의 반 이상이 어둠에 묻힌 데다 드러난 눈과 눈썹마저 음영이 짙어 관람객은 작품의 주인공이 앤디 워홀인지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지만, 정작 그 자신은 커크의 사진을 매우 좋아한 듯 보인다. 당시 개인전 포스터나 초대장, 저서의 표지 이미지에도 이 작품의 바탕이 된 사진을 자주 사용했다고 하니 말이다. 손가락을 펴서 턱을 괸, 어둠에 반쯤 묻힌 그의 모습이 마치 “나는 이런 예술가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Self-portrait, Acrylic Paint and Silkscreen Ink on Canvas, 203×203cm, 1978
Courtesy of Fondation Louis Vuitton ⓒ 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Visual Arts, Inc.
Licensed by ADAGP, Paris 2021 ⓒ Fondation Louis Vuitton / Martin Argyroglo

앤디 워홀은 1968년 밸러리 솔라나스에게 총격을 당해 중상을 입고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평생을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작품 활동도 침체기를 맞아 10년 가까이 자화상 작업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이 작품은 총격 사건 이후 10년이 지난 1978년에 선보인 자화상이다. 한 곳을 제대로 응시하지 못하고 불안정한 시선으로 두리번거리는 듯 보이는 점, 세 가지 앵글로 얼굴을 중첩해 표현한 점 등은 사고 이후 불안정한 내면을 시각화한 듯하다. 오른쪽 윗부분의 어두운 이미지부터 실버, 골드 그리고 흑백의 반전까지 복합적인 모습으로 표현한 것도 감상 포인트. 이 작품은 각각 가로세로 1m가량 되는 캔버스 4개가 모인 구성으로 완성했는데, 1978년에 제작한 자화상 가운데에선 비교적 큰 축에 속한다.





Self-portrait, Acrylic Paint and Silkscreen Ink on Canvas, 274.3×274.3cm, 1986
Courtesy of Fondation Louis Vuitton ⓒ 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Visual Arts, Inc.
Licensed by ADAGP, Paris 2021 ⓒ Primae / Louis Bourjac





Self-portrait, Acrylic Paint and Silkscreen Ink on Canvas, 274.3×274.3cm, 1986
Courtesy of Fondation Louis Vuitton ⓒ 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Visual Arts, Inc.
Licensed by ADAGP, Paris 2021 ⓒ Kwa Yong Lee / Louis Vuitton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이 이번 전시에서 소개한 작품 중 관람객이 가장 친숙하게 느낄 이 작품은 한 영국 갤러리스트의 의뢰로, 앤디 워홀이 평소 즐겨 착용하던 은색 가발을 쓰고 폴라로이드로 촬영한 후 그것을 다양한 색과 크기의 작품으로 제작한 것이다. 앤디 워홀은 1987년 담낭에 생긴 돌을 제거하는 간단한 수술을 받고 회복하던 중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 공교롭게도 1986년 제작한 이 작품이 마지막 자화상이 되었다. 여느 자화상과 달리 이 작품은 목을 포함한 몸통이 없는 것이 특징. 또 얼굴을 정면으로 비교적 크게 묘사했음에도 강하지만 공허해 보이는 눈빛 때문에 왠지 시선을 마주하기가 부담스럽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경계하고 방황하던 작가의 의식을 잘 보여주는 이 작품은 검은색을 배경으로 보라색 얼굴을 허공에 떠 있는 듯 표현해 보는 이로 하여금 더 큰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1986년 여름 선보인 이 작품은 미술계에서 호평을 이끌어냈을 뿐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어 지금까지 앤디 워홀 자화상의 대표적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다.





Self-portraits, Twelve Polacolors, 10.8×8.5cm(each), 1977~1986, Exhibition View at Espace Louis Vuitton Seoul(2021)
Courtesy of Fondation Louis Vuitton ⓒ 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Visual Arts, Inc.
Licensed by ADAGP, Paris 2021 ⓒ Kwa Yong Lee / Louis Vuitton





(왼쪽부터)
Self-portrait in a Fright Wig, Polacolor, 10.8×8.5cm, 1986
Self-portrait, Polacolor 10.8×8.5cm, 1977~1986
Self-portrait in Drag, Polacolor, 10.8×8.5cm, 1980~1982

Courtesy of Fondation Louis Vuitton. ⓒ 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Visual Arts, Inc.
Licensed by ADAGP, Paris 2021. ⓒ Primae / Louis Bourjac

이 폴라로이드 사진들은 앤디 워홀이 1977년부터 1986년까지 자신을 촬영한 것으로, ‘폴라컬러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12개의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자주 착용했다는 은색 가발을 쓴 모습부터 뒷모습, 슈트를 차려입은 모습 등 다양한 앤디 워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중 주의 깊게 들여다봐야 할 건 슈트를 입은 모습인데, 당시 앤디 워홀이 속한 모델 에이전시가 요청해서 촬영한 것이라고 한다. 순수 미술 작가인 앤디 워홀이 모델 에이전시에 속했을 정도로 당시 그의 영향력과 파급력이 막강했다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 당시 몇몇 회사는 앤디 워홀의 작품보다 그의 후광 자체에 집중해 그것을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했을 정도라고 하니 그가 미국 문화 예술계뿐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얼마나 파워풀한 인물이었는지 가히 짐작이 된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제공 루이 비통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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