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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16

반짝임의 미학

금박장 박수영과 옻칠공예가 유남권이 예올 × 샤넬 프로젝트 전시를 통해 보여준 새로운 깊이의 반짝임.

왼쪽부터 유남권, 박수영 작가.

문화 예술을 후원하는 데 적극적인 럭셔리 브랜드는 여럿 있지만,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샤넬이다. 예술에서 영감을 받아 빛나는 마스터피스를 탄생시켜온 이들은 예술의 저변 확대가 브랜드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한 세기 동안 꾸준히 문화 발전에 헌신해온 것은 물론 예술가들이 재능을 꽃피울 수 있도록 장려하며, 그 노력은 국내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부산국제영화제(BIFF) 아시아영화아카데미와 손잡고 미래 영화인 양성에 나서고, 지난 9월 서울에 당도한 세계적 아트 페어 프리즈(Frieze)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한국의 신진·기성 현대미술 작가를 조명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지난 11월, 샤넬 코리아는 예올과 함께 ‘예올 × 샤넬 프로젝트: 올해의 장인, 올해의 젊은 공예인’을 마련해 2022년 ‘올해의 장인’에 금박장 박수영을, ‘올해의 젊은 공예인’에 옻칠공예가 유남권을 최종 선정했다. 예올은 전통 공예의 가치를 올바르게 성찰해 미래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는 비영리재단. 그리고 ‘예올 프로젝트’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장인들을 선정하는 핵심 후원 사업이다. 예올의 행보는 장인정신에서 비롯한 남다른 기술력을 바탕으로 하는 샤넬의 철학과 긴밀하게 이어지며, 이는 샤넬 코리아가 올해부터 향후 5년간 예올의 후원사로 함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뜻깊은 파트너십의 첫 성과는 11월 16일부터 12월 16일까지 예올 북촌가 및 한옥에서 진행하는 2인전 <반짝거림의 깊이에 관하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누구보다 먼저 전시장을 찾은 <노블레스>가 두 작가와 나눈 특별한 이야기를 전한다.





박수영과 유남권 두 작가가 완성한 합작품.

늦었지만 ‘올해의 장인’과 ‘올해의 젊은 공예인’에 선정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예올 프로젝트는 10년 넘게 이어온 대단한 프로젝트고, 올해부터 샤넬이 후원하기에 소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유남권 예올 프로젝트를 알게 된 건 2017년 무렵이었어요. 당시 올해의 장인인 허대춘·안이환 두석장, 젊은 공예인으로 선정된 권원덕 목공예가의 전시가 최순우 옛집에서 열렸죠. 전통 공예를 조명해 더없이 좋은 전시로 풀어낸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예올 프로젝트의 일원이 되길 바랐습니다. 샤넬은 장인의 유산과 기술을 전승하기 위해 ‘공방 컬렉션’을 별도로 구성해 선보이는 유일한 패션 하우스이기도 하죠. 장인정신을 존중하는 샤넬이 우리의 전통 공예를 주목한다는 사실이 더욱 반갑습니다. 박수영 공방이 예올에서 5분 거리에 있어요. 지난 2014년 예올 프로젝트의 첫 선정자인 김수영 유기장과 이광호 가구 디자이너의 2인전부터 빠짐없이 지켜봤는데, 언젠가 인연이 닿길 고대하며 작업에 임했습니다. 특히 남다른 안목으로 모두가 선망하는 아이템을 만드는 샤넬과 이번 전시를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전통 공예는 작가 자신의 특별한 애정이 없으면 정진하기 어려운 분야이기도 합니다. 두 분이 각각 ‘금박’과 ‘옻칠’의 어떤 매력에 이끌려 공예 기술을 익히게 되었는지, 또 지금까지 작업을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박수영 저는 5대째 내려오는 전통 금박 공방 ‘금박연’의 맏며느리이기도 해요. 가업인 금박을 소중히 대하는 집안 어른들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고, 자연스레 그분들의 소명을 잇겠다는 생각을 품게 됐습니다. 물론 금박 자체의 매력도 대단하지요. 예로부터 금은 변치 않는 아름다움으로 귀함을 상징했습니다. 금을 새겨 넣은 의복은 높은 신분과 명예를 나타냈고요. 동시에 화려한 금박의 이면에는 길상과 기복을 비는 염원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다른 이의 행복을 바라는 일이 얼마나 보람되고 기쁜지요. 유남권 동양화를 전공하면서도 다른 매체를 경험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전통 공예에도 관심이 생기던 중 옻칠을 접했는데, 오묘한 빛깔에 매료되어 옻칠기 제작과 전승 활동의 중심지인 남원으로 향했어요. 기물에 옻칠하면 마르기 전 얼굴이 비칠 정도로 광택이 도는데요. 저 자신이 투영되는 것 같기도 하고…. 몇십 분을 멍하니 바라보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다른 매체도 경험해봤지만, 옻칠만큼 마음에 와닿는 것이 없었어요.
중국에선 금사를 직조하는 방식으로 반짝임을 만들고, 일본은 금분을 바르거나 칠하는 방식을 주로 이용합니다. 그리고 한국은 조각한 인장을 아교풀에 찍고 그 위에 금박을 놓지요. 제작 방식이 다른 만큼 같은 금이라도 나라별로 빛깔의 차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박수영 씨실과 날실의 교차로 이루어진 중국 금사는 자세히 보면 디지털 도트 같은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금분을 아교에 개어 그리는 만큼 회화적 측면이 강하죠. 그에 비해 한국은 아교 위에 금박을 그대로 올리기 때문에 금 본연의 빛깔이 살아 있어요. 보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빛깔로 따질 때 한국의 금박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전통 옻칠은 바탕의 소지에 따라 목태칠기(나무), 금태칠기(금속), 도태칠기(도자), 지태칠기(종이) 등으로 나뉩니다. 유남권 작가님은 이 중 지태칠기 작업에 집중하고 계시죠. 이는 방금 말씀하신 동양화를 전공한 것과 연관이 있겠지요? 유남권 맞아요. 옻칠을 시작하고 나무와 금속 등 다양한 소재를 다뤘는데, 스스로 동양화를 그만두었다는 생각에 한때 종이를 외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한 프로젝트를 계기로 종이에 옻칠을 먹였더니 먹을 칠한 것과 비슷한 효과가 나더군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제가 가진 것을 수용하고 발전시켜야겠다고요. 현재 종이 코팅 작업인 반수, 종이를 덧대는 배접 등 동양화를 전공하며 익힌 기법을 작업에 응용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제목부터 인상적입니다. 반짝거림의 ‘깊이’라니, 많은 사람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주제일 듯합니다. 유남권 전시 디렉터인 임태희 디자이너가 지은 거예요. 여러 후보 중에서도 이 제목이 금박과 옻칠의 특성을 아우른다고 생각했죠. 옻칠은 반짝임 없는 그림자 같은 인상을 주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표면의 광택이 반짝임을 만들어내요. 그러한 반짝임은 묽은 농도의 옻칠을 여러 번 올려 무광을 의도한 제 작업에도 있습니다. 층을 쌓는 과정에서 우연히 형성된, 다양한 깊이의 반짝임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덧붙이면, 우레탄을 이용한 현대의 칠 방식과 전통 옻칠이 공존하는 수납장에선 현재와 전통을 나타내는 두 빛깔의 차이를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위쪽 금박 모빌과 박수영 작가.
아래 왼쪽 면사보에 금박으로 전통 문양을 입혔다.
아래 오른쪽 유리 금박 문진.

박수영 작가님은 이번 전시를 위해 금박을 입힌 모빌을 제작하셨지요. 동세가 느껴지는 모빌은 반짝임을 보여주는 최적의 오브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박수영 금박은 왕실 예복 등을 장식하는 데 사용되었고, 그래서 엄숙하고 권위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박은 비단뿐 아니라 한지, 유리 등에도 입힐 수 있거든요. 부피감이 없으니 형체를 만들 수는 없지만, 어디에나 잘 어울리는 가벼운 속성의 금박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복(福)’이나 ‘수(壽)’ 같은 한자 대신 ‘꿈’, ‘별’ 같은 한층 친숙한 단어를 모빌에 새긴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또 우리가 흔히 ‘눈빛이 반짝인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반짝임이라는 단어는 ‘생기’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리듬감 있게 흔들리는 모빌에 따라 반짝이는 금박에서 긍정의 에너지를 느끼셨으면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두 분의 합작품입니다. 유남권 작가님이 만든 차 도구함에 박수영 작가님이 금박을 올리셨더군요. 박수영 유남권 작가님의 매력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제 색깔을 담아내고자 했어요.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보다는 차 도구함을 열었을 때 금박으로 준 포인트가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차 도구함에서 ‘쉼’이 연상되었는데, 고정관념을 벗어나 이런 표현도 가능하다는 걸 진중하면서도 가벼운 터치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전시에서 두 분이 선보인 작품은 흔히 ‘전통 공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특히 생활 속 쓰임의 측면에서요. 박수영 작가님의 모빌은 감상용 오브제에 가깝고, 동일한 형태 안에서 높낮이를 달리해 디테일 변화를 준 유남권 작가님의 작품도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두 분이 생각하는 전통은 무엇인지요? 박수영 전통은 시대의 반영인 것 같아요. 우리가 전통 공예라 부르는 기술은 과거 어느 시점엔 가장 첨단의 것이었죠. 단지 현재 시점으로 과거를 바라보니 ‘전통’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이고요. 그렇다면 전통 공예의 핵심 가치는 지키되, 오늘날에 맞게 쓰임을 달리해야 하지 않을까요? 바라보는 것만으로 생활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드는 모빌처럼요. 또 전통 공예를 실생활에서 누려본 사람만이 그 가치를 알고 더 넓고 깊게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작은 요소라도 생활에 침투하는 작업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유남권 전통 공예가 도제식 교육으로 이어져 내려오다 보니 ‘양식’까지 전수된 측면이 있습니다. 나전칠기 작품에 반드시 장식·개폐용으로 부착하는 금속인 장석(裝錫)을 달아야 할 것 같은. 그보다는 전통 도료를 우리 세대에 맞게 풀어내고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전통 공예가 후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다만 그 과정이 사람들에게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예올 × 샤넬 프로젝트’ 같은 공인된 계기가 새로운 시도를 쉬이 받아들이게 한다는 점에서 전통 공예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채로운 색감의 신작 앞에 선 유남권 작가.
무광인 듯 옻칠의 광택이 살아 있는 지태칠기 작품.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
사진 제공 샤넬 코리아, 예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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