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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10

순례하는 마음으로

악셀 페르보르트 갤러리의 수장 보리스 페르보르트의 갤러리 투어는 성지순례다

보리스 페르보르트. Photo by Sebastian Schutyser





악셀 페르보르트 갤러리 안트베르펜이 위치한 카날 풍경.

홍콩섬 남부의 웡척항. 한때 공장으로 가득했던 이곳은 1990년대 이후 아름다운 자연환경 그리고 예술적 분위기가 흐르는 활기 넘치는 커뮤니티로 탈바꿈 중이다. 경공업의 상징이던 공장과 창고는 호텔, 카페, 펍, 아웃도어용품점으로 변신했고 인근의 오션 파크, 애버딘 컨트리 파크와 함께 수많은 여행객이 찾는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그중에서도 트렌디한 오볼로 사우스사이드 호텔 바로 옆, 웡척항로드 62번지 코다 디자이너 빌딩 21층엔 악셀 페르보르트 갤러리 홍콩(Axel Vervoordt Gallery Hong Kong)이 자리 잡았다. 이곳에선 지난해에 이탈리아 출신 여성 작가 이다 바르바리고(Ida Barbarigo)의 개인전 [카페(Cafes)]가 열렸다. 바르바리고는 70년 넘는 커리어를 쌓은 작가지만, 끊임없이 바뀐 신비한 스타일 때문인지 그의 작품을 알아보는 아시아 컬렉터는 많지 않다. 비주류 작가에 대한 관심은 악셀 페르보르트 갤러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지난 2019년 악셀 페르보르트 갤러리 홍콩은 금싸라기 땅으로 유명한 센트럴에서 웡척항으로 옮아갔다. 이 또한 센트럴 에이치퀸스에 입주한 여타 글로벌 갤러리와 구분되는 특징. 갤러리 디렉터 보리스 페르보르트(Boris Vervoordt)에게 홍콩 스페이스에 관해 이야기하자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보리스는 번잡하고 상업적 분위기가 짙은 센트럴의 갤러리 환경이 늘 불만이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보그]나 [AD] 등 매거진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고성에서 살아온 그에게 갤러리 투어는 단순히 명품 매장에 들어가 물건을 구입하는 차원이 아니라 성지순례처럼 정신적·정서적 울림을 찾는 행위이기도 하다.
보리스 페르보르트의 아버지는 세계적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갤러리스트, 미술품과 골동품 딜러인 악셀 페르보르트(Axel Vervoordt)다. 1970년대에 벨기에 안트베르펜에 악셀 페르보르트 컴퍼니를 세운 이래 뛰어난 미적 감각과 날카로운 직감으로 배우 로버트 드니로, 패션 디자이너 캘빈 클라인 등 유명인사를 충성 고객으로 만든 인물. 하나의 공간에서 다양한 시공간의 문화를 논의하고 교류하는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전시 장르를 개척했는데, 그의 전시 자체를 거대한 작품으로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보리스는 작가들과 아버지의 파트너십이 아무리 좋다 해도, 작가들의 작품이 순수한 미술보다는 실내디자인의 일부로 인식되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2011년 과거 아버지가 비즈니스를 시작한 안트베르펜 구시가지 플레이켄스강에 악셀 페르보르트 갤러리 안트베르펜을 오픈, 보다 독립적인 플랫폼에서 작가 개개인의 작품 세계를 감상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보리스는 아버지 이름을 갤러리 간판에 내걸었을 뿐 아니라, 작품을 선정할 때도 아버지가 구축한 페르보르트 스타일을 따른다. 지난 10년간 1920~1940년 출생 작가 중 오랜 기간 미술사적으로 또는 미술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한 이들, 그리고 세계대전 이후 유럽, 일본, 한국에 등장한 그룹 제로, 구타이 그룹, 단색화 등 주요 유파를 집중적으로 발굴한 것이 대표적 예다. 보리스는 아방가르드 미술에 경계가 없다고 굳게 믿는다. 누구보다 개방적인 태도로 다양한 스타일과 문화를 받아들이며 진정한 갤러리스트의 길을 걸어온 그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김수자, 멕시코의 보스코 소디(Bosco Sodi), 화교인 선천(Shen Chen) 등 차세대 작가를 발견했고, 갤러리도 한층 확장할 수 있었다.
악셀 페르보르트 갤러리 안트베르펜은 설립 6년 차인 2017년 안트베르펜 교외의 카날로 이전했다. 이곳은 페르보르트 일가가 아트 라이프 커뮤니티를 구축한 곳이기도 하다. 웡척항의 갤러리를 준비할 때 그랬던 것처럼, 보리스는 매우 경건한 마음으로 포스트모던 사회의 산업 공간을 사람들이 순례할 수 있는 아트 스페이스로 만들어가고 있다.





악셀 페르보르트 갤러리 안트베르펜의 시라가 가즈오 개인전 (2017).





이다 바르바리고의 자화상.





악셀 페르보르트 갤러리 안트베르펜의 김수자 개인전 (2018).

어릴 적부터 고성에서 사셨다고 들었습니다. 미술품과 골동품에 둘러싸인 삶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합니다. 스흐라벤베절성(Kasteel van’s-Gravenwezel)으로 이사하기 전엔 안트베르펜 시내의 16세기 고택에 살았습니다. 사실 어릴 때는 우리 집이 특별하다고 느끼지 못했어요. 그저 부모님이 미술 사업을 하시니 매일같이 세계 각지에서 손님이 찾아왔고, 일곱 살 때부터 제가 직접 진열한 작품을 소개하며 손님을 응대하곤 했죠. 그러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며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는데, 그제야 우리 집 분위기가 다르다는 걸 알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 연령대의 작가들을 만난 건 지금 생각해도 정말 소중한 경험이고, 갤러리를 연 결정적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분들의 작품을 세계 각지의 관람객과 컬렉터에게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대학에선 무엇을 전공하셨나요? 다른 일을 해보고 싶은 적은 없었는지요. 경제학과를 다녔는데 학위를 받진 못했어요. 나중에 미술사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한때는 미술 작가를 꿈꾸기도 했죠. 회화와 조소에 도전했는데, 몇 년 만에 절대로 성공한 작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동시에 스스로 작가가 되기보다는 작가를 위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특별히 관심을 두는 작품 스타일이나 특정 시기의 미술사가 있나요? 인간과 사회의 관계에 관심이 많아요. 특히 경제사, 미술사, 정치사를 모두 아우르는 교집합으로 뭐가 있을까 항상 생각하는데, 논리적으로 말이 되냐, 안 되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악셀 페르보르트 컴퍼니는 50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 성공적 가족 기업의 표본이고, 악셀 페르보르트 갤러리도 10년이 넘었죠. 페르보르트 브랜드는 앞으로도 가족 기업으로 운영될까요? 약간의 변화는 있을 것 같아요. 온 가족이 열정을 쏟아부어 지금의 회사를 만들었고 최선을 다해 자기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절대 쉽게 볼 일은 아닙니다. 항상 순조로웠던 것도 아니고, 상당한 대가도 치러야 했으니까요. 처음에는 다들 자기주장만 내세우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언제든 자기주장을 굽히고, 다른 이의 의견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가족 기업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죠. 그래서 만약 우리 가족의 다음 세대가 사업을 이어받겠다고 하면 가장 먼저 그 친구의 의견, 열정, 취향을 존중할 거예요. 페르보르트 브랜드가 영원히 가족의 품에서 발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죽지 않는 인간은 없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한편으론 그래서 영원한 아름다움과 생명을 더 소중히 여기고 감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만약 누군가가 저에게 불로장생을 예언한다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살진 못할 겁니다.
최근 벨기에의 현대미술 시장은 어떤가요? 아주 좋아요. 일단 현대미술 컬렉터가 많아요. 특히 지금 사는 플랑드르에는 르네상스,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작품을 수집해온 역사가 있습니다. 동시대 미술 작품에 포위되는 느낌, 거기서 동기와 영감을 얻는 걸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죠. 덕분에 1인당 작품 구매 수준도 세계 최고라고 합니다.
2014년 악셀 페르보르트 갤러리 홍콩을 오픈했는데, 어떤 계기로 홍콩 진출을 결정하셨나요? 함께하는 작가들을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전 세계에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여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거든요. 때마침 홍콩 시장에 수요가 나타났고 목표에도 부합했습니다. 사실 처음 선택한 센트럴의 갤러리 공간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하지만 웡척항의 새 갤러리 공간은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악셀 페르보르트 갤러리 홍콩은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전략적 목표 실현을 위한 단순한 플래그십 마케팅인가요? 복잡한 문제라 정확한 답변은 어렵네요. 왜냐하면 홍콩 스페이스에 소속된 일부 작가는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전시와 작품 판매를 하고 있거든요. 아시다시피 글로벌 미술 시장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홍콩 스페이스가 중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어요. 상업적으로는 성공했고 지속해 발전할 것으로 봅니다.
아시아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되나요? 25% 정도가 아시아 고객입니다. 중국, 한국, 일본에서 오신 고객, 홍콩에 거주 중인 다양한 국적의 고객도 있죠.
카날(Kanaal) 프로젝트는 복합 공간 개발 프로젝트입니다. 최근 중국을 포함해 세계 각국에서 비슷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데, 어떻게 일찍이 이런 프로젝트를 생각해내셨나요? 가족의 DNA 덕분이죠! 아버지가 수년 전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 구입한 곳에 지금 살고 있는데, 주변을 둘러보면 16세기, 심지어 그 전에 생긴 골목과 건물이 많고 눈만 돌리면 작업실과 공방이 있어요. 정말 수준 높은, 예술로 충만한 생활환경을 만드는 건 저희의 오랜 목표였습니다. 카날 운하에 위치한 공장 창고를 매입하면서 그곳에 복합 예술 공간을 만들겠다는 꿈을 이룰 수 있게 됐습니다.
그 프로젝트를 완성하기까지 시간은 얼마나 걸렸나요? 외부의 투자가 있었나요?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15년 걸렸습니다. 카날은 주거 시설은 물론 사무실, 갤러리, 레스토랑 등으로 이루어졌는데, 예약 판매가 꽤 많아서 자본을 확보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제가 살 아파트를 꾸미고 있고, 곧 카날로 이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팬데믹 이전에는 매년 많은 곳을 다니셨잖아요. 지금도 전 세계에서 수많은 아트 페어가 열리는데, 어떤 기준으로 갈 곳을 정하나요? 팬데믹 시국에도 많은 아트 페어가 열리고 있죠. 솔직히 지속 가능한 방식은 아닌 것 같아요. 어떤 아트 페어에 참가할지는 작가들의 상황을 고려해 결정합니다. 어디에 어떤 작가를 소개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면 그 지역의 아트 페어에 참가하는 식이죠.
가장 좋아하는 아트 스페이스는 어디인가요? 미술적 경험 측면에서 보면, 일본 나오시마와 독일의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Museum Insel Hombroich)을 가장 좋아합니다. 독일의 사례에서 영감을 받아 일본 베네세홀딩스가 나오시마 현대미술관과 호텔을 지은 것이기도 하고요. 사실 어디에 가든, 그게 호찌민이든 상하이든, 누구의 방해나 재촉 없이 현지 미술관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고 싶어요. 어떨 땐 분명 보고 싶은 작품이 있어서 가는 건데, 걷다 보면 다른 수많은 작품을 우연히 마주할 수 있거든요.





악셀 페르보르트 갤러리 안트베르펜이 위치한 카날 내부. Photo by Jan Liégeois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첸린린(陳琳琳)
기획 주린(祝琳)
사진 제공 악셀 페르보르트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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