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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19

지금, 여기의 카프리치오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 3위인 카타르. 그 속에서 도하 문화 예술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카타르 국립 박물관은 세계적 건축가 장 누벨이 이끄는 스튜디오가 디자인했다. Courtesy of Qatar Museums, Photo by Iwan Baan





카타르 국립 박물관은 세계적 건축가 장 누벨이 이끄는 스튜디오가 디자인했다. Courtesy of Qatar Museums, Photo by Danica O. Kus

2022년 FIFA 월드컵을 개최하며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도하는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 3위인 카타르의 정치, 경제, 문화 중심지다. 그중에서도 최근 도하 문화 예술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프리츠커상’ 수상에 빛나는 건축 거장들을 초대해 아름다운 박물관과 미술관을 건립하고, 연간 1조 원을 넘나드는 예산을 소장품 구매에 할당해 그 안을 채우는 중이다. 현시점에 ‘21세기 메디치(Medici) 가문’이라 부를 법한 알사니(Al-Thani) 왕족을 중심으로 한 이러한 행보는 가히 주목할 만하다. 2006년 카타르 국왕의 딸이자 현 국왕의 여동생인 알마야사 공주(Sheikha Al-Mayassa bint Hamad bin Khalifa Al-Thani)를 카타르 박물관(Qatar Museums, QM) 관장으로 임명하며 맡긴 뮤지엄 왕국 프로젝트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QM이 동시대 문화 운동과 함께 ‘소프트 파워’ 전략을 펼치는 도하는 이제 도시 자체가 지붕 없는 미술관이다.
도하에서 미술을 만나는 경험은 뮤지엄과 공공 미술, 이슬람과 국제 미술의 공존을 통해 이루어진다. 일찍이 QM은 알마야사 공주가 관장을 맡으며 20여 개에 달하는 박물관과 미술관 설립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카타르 국립박물관(National Museum of Qatar, NMoQ)은 도하의 대형 미술관 가운데 꽃 같은 존재다. 프랑스 출신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이 거대한 사막 장미를 형상화한 박물관은 카타르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선보이며, 11개 전시관에서 카타르의 가장 오래된 유물인 4억 년 된 물고기 화석부터 천연가스를 운반하던 초기 파이프까지 카타르 역사를 투영한다. 과거를 전시하지만 현대적으로 큐레이팅해 지금의 카타르를 관람객에게 더 명확히 인식시킨다.
NMoQ가 카타르 시간의 흐름을 산책하는 장소라면 M7은 지금, 즉 동시대에 집중한 복합 문화 공간이다. ‘걸을 수 있는 도시’로 설계해 박물관, 모스크, 쇼핑 아케이드 등이 어우러진 므셰립(Msheireb) 지구 한가운데에 자리 잡았다. M7은 4월 말까지 발렌티노의 역대 최대 규모 전시 <포에버 발렌티노(Forever Valentino)>를 펼쳐 보인다. 뉴욕 뉴 뮤지엄의 아티스틱 디렉터 마시밀리아노 조니(Massimiliano Gioni)가 공동 큐레이터로 참여해 세계 예술계의 관심을 모은 전시다. 조니는 도하를 아티스트의 꿈을 실현해주는 도시, ‘카프리치오(Capriccio)’ 그 자체라고 말하기도 했다. 카프리치오는 현실과 허구를 혼합, 마음속 환상적인 풍경으로 재창조하는 18세기 예술을 뜻한다.
QM은 박물관 건립과 전시 기획만큼 공공 미술 설치에도 열의를 보여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카타르에 공공 조형물 100여 점을 선보였다. 특히 FIFA 월드컵을 개최한 2022년 한 해에 알주바라(Al Zubarah) 사막지대부터 카타르 국립극장 정원 한가운데까지 60여 점을 설치했다. ‘카타르 크리에이츠(Qatar Creates)’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대형 공공 미술 설치 프로젝트는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이자 겐츠켄(Isa Genzken), 제프 쿤스(Jeff Koons), 올라푸르 엘리아손(Olafur Eliasson),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 에르네스투 네투(Ernesto Neto) 같은 세계 최정상 작가들이 참여해 주목받았다.





지역 예술 발전을 도모하는 공간 중 하나인 파이어 스테이션. Courtesy of Qatar Museums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작품. Courtesy of Qatar Museums

카타르 크리에이츠의 여러 작품 가운데 덴마크 출신 작가 엘리아손의 작품이 유독 눈에 띈다. 작가가 7년에 걸쳐 사막에 설치한 ‘Shadows Travelling on the Sea of the Day’(2022)는 유목민 텐트에서 영감을 받아 지름 10m에 이르는 거울판을 반원형 강철 링 위에 세운 감각의 쉼터다. 관람자는 그 아래 머물며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과 풍경을 감상하고 타자와 환경을 인식할 수 있다. 광활한 사막에서 작품을 마주하는 특별한 경험을 한 뒤에는 도심 곳곳에 자리한 공공 미술을 즐겨도 좋다. 도하 종합예술의 상징인 국립극장 한쪽에는 겐츠켄의 하얀 ‘Two Orchids’(2021)가 피어 있다. 연약한 난꽃을 통해 삶과 죽음, 자연과 건축 등을 숙고하게 하며 문화와 대중의 관계를 형성하는 작품이다.
세계적 작가와 함께 중동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도하만의 장점이다. 알마야사 공주는 “우리는 카타르에서 떠오르는 신진 예술가들의 비범한 재능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말하며 중동 출신 작가를 적극적으로 소개한다. 도하로 향하는 관문인 하마드 국제공항에 전시한 작품 가운데 알리 하산(Ali Hassan), 아흐마드 알바흐라니(Ahmed Al-Bahrani), 디아 알아자위(Dia Al-Azzawi) 등의 작품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카타르의 전통 기법과 추상화를 결합한 하산의 작품에서는 중동 미술의 이국적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 또 카타르 작가를 위한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운영하는 파이어 스테이션(Fire Station)의 개라지 갤러리(Garage Gallery)에서는 중동의 신진 작가를 대거 만날 수 있다. 레지던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전시가 ‘AIR’라는 이름으로 열린다.
도하의 여정은 단순히 전시와 작품 감상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QM을 중심으로 발간하는 미술 출판물과 예술 도서관은 아름다운 결과물로 드러난 표면인 동시에 사막 위에 지은 도하 미술을 지탱하는 근간을 이룬다. 이슬람 예술박물관(The Museum of Islamic Art, MIA)과 마타프 아랍 현대미술관(Mathaf: Arab Museum of Modern Art)의 도서관은 방대한 미술사 전문 서적과 간행물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기관과 국가적 차원의 헌신이 예술 도시로서 도하의 매력을 한층 두텁게 쌓아 올린다. 과거 알주바라 해안에서 진주조개잡이로 부를 쌓았듯이 천천히 도시를 거닐다 보면 진주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을 바탕으로 허구를 현실로 만들고, 탄탄한 내실로 현실을 환상의 풍경으로 재창조해내는 빛나는 진주 말이다.





2021년 11월 20일 전이 열린 M7의 외관. Courtesy of Qatar Museums, Photo by Cindy Ord and Getty Images for Qatar Museums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김한들(미술 이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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