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을 거듭해 쌓아 올리는 예술 - 헬렌 마틴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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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21

전복을 거듭해 쌓아 올리는 예술 - 헬렌 마틴

헬렌 마틴이 작품에 쌓아 올린 여러 겹을 벗기는 순간, 비로소 작가와 작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Installation view of <Third Moment Profile I The Almost Horse>(14 September~29 October 2022, Sadie Coles HQ, London) Courtesy of Sadie Coles HQ, London Photo by Eva Herzog © Helen Marten
아래 Helen Marten, 2021. Courtesy of Sadie Coles HQ, London Photo by Ana Cuba © Helen Marten

헬렌 마틴
1985년 영국에서 태어난 헬렌 마틴은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와 옥스퍼드 러스킨 예술대학에서 수학했다. 일상의 사물을 끌어들인 설치, 스크린, 회화, 글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작품을 선보였고 2016년에는 영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현대미술상 ‘터너상(Turner Prize)’을 수상하며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했다. 올해 전속 갤러리인 뉴욕 그린 나프탈리(Greene Naftali)에서 전시를 앞두고 있으며 새로운 소설과 비문학 서적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동안 시각 작품 외에 책도 여러 권 출간했죠? 지난가을 런던 세이디 콜스 HQ(Sadie Coles HQ)에서 열린 개인전 에서도 책의 내용을 차용한 회화 등을 선보였고요. 예술은 비언어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님은 글과 시각예술의 긴밀한 관계성을 드러내죠. 작가님의 작업에서 글의 의미는 무엇인지, 왜 글을 쓸 수밖에 없는지, 또 예술과 글의 관계성은 어떻게 정의하는지 궁금합니다.
언어도 돌이나 나뭇가지, 색깔처럼 물성을 띤 재료라고 생각해요. 언어는 행복이나 추함, 공포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언어의 물리적 특징이나 모양이 보는 이에게 영향을 줄 수 있죠. 글은 마치 작은 우주 같아요. 그 안에는 진실과 상상력의 조각이 매달릴 수 있는 (느슨한) 틀이 있거든요. 소비자(독자) 또는 생산자(작가)로서, 각자 언어가 구축한 세계에 머물지,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갈지 선택할 수 있어요. 예술이 순전히 비언어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또 글쓰기와 예술 창작 둘 다 즐거움이나 의심(불신)을 이해하려는 강렬한 욕망에서 비롯하고, 항상 변화하는 속성을 띤 부분이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시 제목이 흥미로워요. ‘Third Moment Profile’과 ‘The Almost Horse’ 두 가지 이야기를 담은 듯한데, 보통 제목 하나로 전시를 아우른다면 이번에는 조금 독립된 어구를 사용했네요. 제목에서 무엇을 드러내고자 했나요?
전시 콘텐츠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혹은 ‘(구조적) 불안감’을 주고 싶어서 ‘두 폭 제단화(diptych)’ 구조를 제목에 차용했어요. ‘거의(almost)’라는 부사를 써서 궁극적으로 실체화하지 못한 것, 거의 된 것(almost there)을 이야기하고자 했죠. 또 ‘순간(moment)’이라는 단어로 찰나의 모호한 시간적 지점, 다시 말해 일시 정지 상태 또는 상호 관련 없이 연결된 순간을 표현했어요. 두 제목은 각각 한 개념의 반쪽으로 따로 또 같이 작동합니다. 한쪽 제목은 언어, 이미지, 형태라는 세 가지 ‘방식’으로 작품에 등장하는 ‘말(horse)’을 묘사하려는 시도예요. 다른 하나는 물리학에서 일정 무게가 직선에 가하는 변위값의 정도를 한정하는 용어에서 따왔어요. 두 제목 모두 은유적이라는 사실에 만족해요. 전시에 담고자 한 내용을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거든요.





Detail of ‘The Earth good and the stars good (wettings)’, Nylon Paint on Fabric, Aluminium, Ash Frame, MDF, Fabric, Cast Pewter, Steel, Cereal Boxes, Wooden Balls, Ribbon, Dry Transfers, Sepili, Fabric, Masonry, Pistachio Shells, Sanded Train Tickets, String, Steel Wire, Cast Jesmonite, Toothbrush, Marble, Button, Stainless Steel Rod, Site: 300×240cm, Frame: 310×250×8.5cm, Plinth: 128.8×60×66.5cm, 2021. Courtesy of Sadie Coles HQ, London Photo by Eva Herzog © Helen Marten
Installation view of (30 September~6 November 2022, Greene Naftali, New York) Courtesy of Greene Naftali, New York Photo by Dan Bradica © Helen Marten


벽지 작품 ‘The Deepening Inch’가 가장 눈에 띄어요. “그곳에 존재했지만, 더는 존재하지 않는” 말을 통해 ‘존재한다(있다)’는 의미가 떠오르네요. 뒤집어진 이미지를 보고 있지만, 결국 그걸 보면서 받아들이는 건 말이 전시장에 제대로 서 있는 모습이잖아요. 보는 것에서 받아들이는 것까지 이어지는 과정도 생각하게 돼요. 이 작품을 기획한 이유가 문득 알고 싶어졌어요.
착시 효과에 기반한 작품이에요. 전시에서 이야기하고자 한 ‘거의 말(almost horse)’이라는 콘텐츠를 가장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죠. 먼저 살아 있는 스턴트 말을 갤러리로 들여와 그 견고한 형태와 디테일을 사진으로 포착했어요. 그다음 이미지를 갤러리처럼 보이도록 디자인한 공간(세이디 콜스 HQ)의 건축물, 조명, 물질의 특성을 모방한 가짜 디지털 공간에 합성해 약간 변형했어요. 작품이 불러온 ‘착시 현상’은 단순히 거꾸로 서 있는 말의 이미지만이 아니죠. 작품 속 가짜 디지털 공간의 바닥과 천장을 실제 갤러리의 바닥과 천장에 연결하고, 멀리서 보면 갤러리 뒷벽이 실제보다 훨씬 길어 보이는 시차 효과(parallax effect)를 내요. 본질적으로는 개념적 ‘착시’라고 할 수 있어요. 눈이 이제 ‘본다는 것’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 가장 큰 위협인 ‘인식’에 지배당했으니까요. 작품 속 말은 실존하기도, 허상이기도 해요. 사실 말의 동물적 특성이나 미학적 아름다움보다는 역사에 나오는 말의 신화적 상징성에 흥미를 느꼈어요. 신화에선 인간의 특성, 즉 권력, 자기 보존, 의식 고양, 철학, 야만, 희생, 신화적 통제 등을 이야기하는 데 말을 쓰잖아요. 그런 점에서 말이라는 기존 이미지의 의미와 함축으로 가득 찬 작업이죠. 이미지를 전시장 벽에 거꾸로 뒤집어 보여주면서 마치 일종의 ‘신기루’처럼, 즉 작품 구석구석에 작가의 의도가 스며든 ‘인위성’을 드러냈죠.
요즘 많은 현대미술 작가가 작품에 이름 붙이는 행위를 지양하는 추세죠. 그런데도 늘 꽤 구체적인 작품명을 등장시켜요. 그 작품명이 오히려 관람객의 상상력을 더욱 증폭하고요.
제목 짓기를 좋아해요. 마치 애완동물 이름을 짓듯 사랑스러운 기분이 들고 만족감도 느낄 수 있어요. 언어에는 쾌락주의적인 면이 있어서 좋아요. 마치 맛있는 음식을 눈치 보지 않고 잔뜩 먹을 수 있는 뷔페처럼요. 하지만 수많은 선택지 중 제목을 정해야 할 때는 사실 부담스러우니까 웃기게도 비관주의적 면모가 작용하죠. 제목은 우리가 안일하게 받아들이는 ‘현실’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수단이에요. 작품 제목이 경구적이든 체계적이든 말장난이든 시적이든 상관없이 좋아해요. 단어 하나에 함축된 여러 의미는 다양하게 상상하는 방법을 제안해요.
전시에서 회화 작품도 선보였죠. 그동안 헬렌 마틴이라는 작가를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는 설치미술 작가라고만 인식했나 봐요. 그래서인지 이번에 회화 시리즈를 보며 신선함을 느꼈어요. 사실 대다수 작가에게 매체는 표현 수단일 뿐이지만, 다른 매체보다 편한 매체가 분명히 있겠죠. 그에 대한 작가의 견해를 듣고 싶어요.
다양한 매체에 대한 서로 다른 접근 방식에도 흥미를 느끼지만, 그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어도 많은 재료가 ‘작업 과정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점 자체를 즐겨요. 결과적으로 예상하지 못한 결과물이 나오거나, 고의로 오용하겠다는 의도가 작품에 스며들죠. 사용하는 재료가 물감이나 진흙, 철 또는 한 줌의 피스타치오 껍데기든 상관없이 쉽게 제어하거나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을 노리죠. 회화를 조각처럼, 조각을 언어처럼, 공간을 문장처럼 감성적으로 인식하길 바라는 작가의 욕망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다각적 접근법이 흥미로운 건 우리가 소통하는 방식을 재고하게 하기 때문이죠. 재료 자체만으로 회화나 조각을 완벽히 설명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각 재료를 사용한 작가의 결정이 작품을 정의하는 척도라고 생각해요. 작품의 내용을 꾸리려면 재료를 다루는 과정에서 신체적·정신적 감각을 다 사용해야 해요. 때로는 무엇이 먼저 올지, 무엇을 동시다발적으로 사용할지 정하는 과정도 작업의 일부예요. 다양한 매체를 써서 작업하면, 작업 과정 자체를 집착의 대상으로 대하지 않고 작가 스스로 아티스트로서 즐거움과 역동성을 동반한 일종의 ‘권한’을 쟁취할 수 있죠.





Detail of 'The Rage in which we Live (Wine Willow)’, Nylon Paint on Fabric, Aluminum, Ash Frame, Steel, MDF, Plywood, Dry Transfers, Silkscreened Aluminum, Plastic Bottle, Glass Bottles, Jesmonite, Embroidered Fabric, Site: 300×240cm, Frame: 310x250x8.5cm, Low Plinth: 40×190.6×45.5cm, Large Box: 35.4×24.4×8.9cm, Small Box: 25.5×19.9×7.4cm, 2021. Courtesy of Sadie Coles HQ, London Photo by Eva Herzog © Helen Marten
아래 ‘The Melancholy of Resistance’, Cast Resin with Marble Dust, Cast Painted Pewter, Eye Hooks, String, Cotton, Tea Bag Labels, Gemstones, Wooden Fruit Box, Dry Transfers, Cellophane Candy Wrappers, Mixed Hardwoods, Cast Plaster, Foil, Glass Beads, Paper, Fabric, Embroidery, Steel, 58×211×131cm, 2022. Courtesy of Sadie Coles HQ, London Photo by Eva Herzog © Helen Marten

보통 관람객이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기대하는 전시는 다르잖아요. 전시하는 공간에 따라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이나 접근법이 조금씩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전시와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가 강렬하거나 복잡미묘하거나 유희적이라면 전시 공간이나 작품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아요. 늘 전시를 구상할 때 제 아이디어를 한계까지 밀어붙이겠다는 각오와 기대를 하고 접근해요. 설령 처음 한 생각과 결과물이 다르더라도 말이죠. 다른 사람들이 제 아이디어에 공감하는지, 누군가에게 가치가 있을지 없을지도 별로 걱정하지 않아요. 제 힘이 닿는 데까지 힘들더라도 작가로서 ‘아이디어’와 씨름해야죠.
클리셰적 질문일 수 있지만, 작품의 영감은 어디서 얻나요? 많은 작가에게 같은 질문을 하는데, 모두 저마다 영감의 원천이 있더라고요. 때로는 비슷하지만, 각자 살아가는 환경이 다른 만큼 미묘한 차이를 비교하면 꽤 즐거워요.
일단 고미술부터 현대미술까지 가리지 않고 들여다봐요. 그 외에 책, 사진, 다이어그램, 가구, 경매, 직물, 이론, 옷, 인프라, 극장, 동물, 기업, 해충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수많은 영감의 원천에서 ‘훔치고’ (배우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반복해요.
현재 가장 몰두하는 주제는 뭔가요? 다음 작업은 어떻게 구체화하고 있죠?
요즘은 거의 집착 수준으로 ‘쥐’에 흥미를 느껴요. 쥐를 싫어하지만 사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모범 시민(model citizen)’이라고 생각해요. 그야말로 모델(model)이라는 말의 치환인 거죠. 무엇보다도 쥐를 인간의 두려움을 이해하는 일종의 ‘통화 단위(unit of currency)’로 사용하는 데 관심이 있어요. 쥐에 대한 인간의 공포는 우리가 일상에서 끊임없이 겪는, 잔잔하면서 현현한 불안 기류와 비슷하다고 봐요. 한 가지 더 언급하면, 특정 이야기에 국한하지 않고 ‘일련의 사건’이라는 개념으로 건축적 공간을 해석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한 층에서 관람객이 자신의 시점으로 쓰인 대본을 보고 연기하면, 다음 층에서 자기 행동을 기록한 비디오를 볼 수 있는 형태의 ‘실황극(live play)’을 구상 중이에요. 그러면 관람객 스스로 상호작용하는 모습, 하나의 집단으로서 특성, 자기애적 성향을 두루 관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정송(프리랜서)
사진 제공 세이디 콜스 H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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