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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12

언제나 앙팡 테리블!

마우리치오 카텔란과 마틴 마르지엘라가 기존 질서에 타협하지 않고 유머와 아이러니로 만들어낸 세계.

마우리치오 카텔란, ‘Comedian’, 2019. © Maurizio Cattelan
마우리치오 카텔란, ‘Untitled’, 2001. © Maurizio Cattelan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전시 전경. © Maurizio Cattelan 사진 김경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전시 전경. © Maurizio Cattelan 사진 김경태


당신의 어제를 사랑하는가?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저서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를 통해 삶을 사랑하는 방식에 대해 논한다. “태어나겠다는 마음가짐은 용기와 믿음을 요구한다. 안전을 버릴 용기, 타인과 다를 용기, 고립을 참고 견딜 용기다. 조국과 가족을 떠나 미지의 땅으로 걸어가는 용기다. 자신의 사고뿐 아니라 감정과 관련해서도 진리 말고는 그 무엇에도 신경 쓰지 않을 용기다.” 그 용기를 모두 지닌다면 어떻게 될까? 삶을 사랑하기는커녕 매일 고독할 것 같다. 정확하다. 고독해야 삶이 사랑스럽다. 그간의 공고한 질서, 전형적 가치와 타협하지 않고 원하는 길로 들어서는 첫발자국을 쟁취할 수 있을 테니까. 지금 소개할 두 전시는 이러한 ‘용기’에 대한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첫 번째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전시 [WE]다. 먼저 그를 소개하면, 카텔란은 전문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미술계에 데뷔했다. 그는 70억 원어치 황금 103kg으로 변기를 제작해 공공 화장실에 설치했으며, 슈퍼마켓에서 산 바나나 한 개를 아트 페어 전시장에 덕 테이프로 붙여놓고 1억5000만 원에 팔았다. 한 국내 인터뷰에서 “예술을 하지 않았다면 범죄자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말한 카텔란은 이번 전시에서 특유의 블랙 유머로 예술, 사회, 정치의 맥락을 뒤흔드는 작품 38점을 선보였다.
사전 예매는 몇 달째 매진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전시는 리움미술관 입구 구석에 쭈그리고 누운 노숙자 작품에서 시작된다. 1층에 들어서면 비둘기들이 창문, 바닥 곳곳에서 개미 떼 같은 관람객을 쳐다본다. 커다란 말이 공중에 매달려 있으며, 히틀러가 무릎을 꿇고 있다. 한 중년 노인은 작은 냉장고에 들어앉아 관람객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카텔란의 얼굴과 비슷한 사람 오브제가 전시장 바닥을 뚫고 올라온 작품과 벽에 대롱대롱 매달린 작품 ‘무제’다. 왜소한 체구의 모형은 마치 침입자처럼 전시장을 염탐하는 듯하다. 카텔란을 닮은 얼굴은 표정을 읽을 수 없을 만큼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시장을 동경하는 것 같기도, 작품을 훔칠 꿍꿍이를 품은 것 같기도 하다. 2022년 봄 그는 갤러리 가고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스스로 침입자 콤플렉스가 있다고 털어놓았는데, 이 대목이 작품 ‘무제’에서 도드라지게 읽힌다. “미술계에 몸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아직도 쫓겨날까 봐 두렵다. 조만간 미술계 인사들은 내가 초대받지 못한 자라는 걸 알게 될 것이고, 예술계 밖으로 내던질 것이다.”





마틴 마르지엘라, ‘Making Of’, 2022. © LOTTE Museum of Art
마틴 마르지엘라, ‘Vanitas’, 2022. © LOTTE Museum of Art
마틴 마르지엘라, ‘Red Nails Model(좌), Red Nails(우)’, 2022. © LOTTE Museum of Art
마틴 마르지엘라, ‘Deodorant’, 2022. © LOTTE Museum of Art


작품 전반에 유머와 아이러니를 뾰족하게 심고, 무정부주의적이며 불손하고 도발적인 작품을 만드는 그에게 결점은 오히려 예술의 터전이 됐다. 그는 예술가로서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데 큰 좌절감을 느낀다고 고백했지만, 단점에 결박당하는 대신 오히려 한 장의 그림이 수억 원을 호가하는 터무니없는 미술계 행보를 작업 소재로 삼았다. 황금 변기 ‘아메리카’가 [뉴욕 포스트] 1면을 화려하게 장식했을 때도 그는 변기가 대중이 사용하는 곳에서만 비로소 빛을 발한다고 고집했다. 그는 세계의 문제적 질서와 체계로부터 들끓는 분노를 유머와 아이러니를 섞어 작품으로 승화했다. 그의 작품은 슬프고 희망적이며, 경미하고 심오한 가치가 뒤섞이면서 관람객을 씁쓸하게 웃게 만든다. 그는 관람객 옆에 서서 세상에 태어났을 때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뼈 아픈 진리를 고래고래 외치는 것만 같다.
두 번째는 전설적 패션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가 순수예술 창작자로서 변화된 행보를 보이는 전시다. 그는 1988년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를 설립하며 파리의 어느 버려진 운동장에 얼굴을 천으로 감싼 모델을 세워 런웨이를 열었다. 그는 쇼가 끝나고 인사하는 전례를 거부하고, 인터뷰나 촬영도 거절하며 디자이너로서 신화에 당당히 저항했다. 당시 관객들은 관습적 사고에 도전하는 마르지엘라의 전위적 행보를 보며 충격을 금치 못했다. 2008년, 그는 패션 디자이너로서 은퇴를 선언하지만 광란의 창작 활동을 그만둔다기보다 갱신의 의미에 가까웠다. 그는 패션 디자이너로 활약할 때도 세계와 물질, 신체, 젠더 등 예술적 소재를 계속 탐닉했기 때문이다.
마르지엘라의 기인적 면모는 이번 전시에서도 이어진다. 마르지엘라는 롯데뮤지엄 공간에 전시를 연출하면서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 썼다. 그가 블라인드와 가벽으로 만든 전시장은 복잡한 미로가 되어 마르지엘라의 뇌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마르지엘라는 모든 시간 동안 작품이 노출되지 않도록 스태프에게 흰 천으로 덮었다가 열었다가 하는 과정을 반복하게 했다. 전시장 입구에서 보이는 거대한 작품 ‘데오드란트’는 인간의 체취를 은폐하는 일상적 도구로 사용된다. 마르지엘라는 이를 통해 현대사회가 소외시키는 것,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에 새로운 존엄성을 부여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작품을 둘러보면 유독 머리카락과 털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그중 ‘바니타스’는 얼굴이 모발로 뒤덮인 두상을 차례로 놓아둔 작품이다.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 머리카락의 색과 결이 변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인간 생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큐레이터 레베카 라마르슈 바델에 따르면, 마르지엘라는 마지막 한 명을 가장 사랑한다고 말한 바 있다. 염색으로 자연스러운 노화를 감추기보다 나이의 흔적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카텔란과 마르지엘라는 세상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으로 유머를 꼽았고, 어린아이가 천진난만하게 놀 듯 예술적 활로를 찾아 나섰다. 우리는 타인과 다르고 싶은 욕망을 지녔다. 그 말은 곧 누구도 따라 하지 않고 나만의 길을 걷는 게 아닐까. 스스로에게 결점이 있다면 억지로 은폐하지 말고 당당히 드러낼 수 있는 용기,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을 용기, 오류투성이 질서에 휘둘리지 않을 용기를 이 두 아티스트에게 배워보길 바란다. 조르주 바타유의 말처럼, 우스꽝스러워지지 않고는 깜짝 놀랄 일을 이룰 수 없다. 전복해야만 한다. 그것이 전부다.

 

에디터 박이현(hyonism@noblesse.com)
백가경(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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