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심장을 두드리다 - 노블레스닷컴

Latest News

    LIFESTYLE
  • 2023-07-28

뉴욕의 심장을 두드리다

뉴욕을 상징하는 록펠러 센터에서 한국 작가들의 <기원, 출현, 회귀> 전시가 개최되었다.

록펠러 센터 외부 전경. Courtesy of the Artist and Johyun Gallery / Photo by Jeffery Jenkins

이번 전시의 발단을 이야기하려면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30대 초반이던 진 마이어슨은 목공소 일과 작가 어시스턴트 작업을 병행하며 뉴욕에서 작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재료비가 부족했던 젊은 작가는 일터에서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합판에 그림을 그렸고, 그의 첫 갤러리 전시에서 (기적처럼) 한 컬렉터가 5m 크기의 대형 페인팅을 구입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작년 여름, 작가는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발신인은 그의 첫 전시 작품을 구입한 컬렉터로 이사를 하던 중 작품이 손상된 것을 발견해 복구가 가능한지 묻는 내용이었다. 작가는 흔쾌히 수락했고, 같은 해 가을 아모리 쇼 참석차 뉴욕에 가는 일정 중 작품을 복구해주었다. 감사한 마음에 마련된 식사 자리에서 컬렉터는 자신이 운영하는 록펠러 센터에서 ‘코리아 위크’ 페스티벌을 개최할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진 마이어슨은 자신이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 입양되었고, 현재 한국인 아내와 결혼해 서울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자연스럽게 양국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우연인 듯 필연적으로 한국과 미국을 연결하는 야심 찬 전시 기획이 탄생했다.
미국의 역사 기념물인 록펠러 센터에서 열릴 전시는 허가 과정에서부터 많은 서류 작업이 요구되었다. 특히 채널가든에 설치될 이배 작가의 대형 조각에 대한 설계도를 비롯해 작품 반입 절차에 대한 세부 항목 모두 안전 진단과 함께 시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심지어 설치에 사용하는 볼트와 너트 제조사까지 검사 항목에 포함되었다. 이를 위해 전시를 준비하는 작가와 큐레이터, 아트 핸들러, 엔지니어, 테크니션 그리고 감리업체 관계자 모두 머리를 맞대고 반년 동안 수차례 설계안을 제출한 끝에 허가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전시를 위해 작품들이 뉴욕에 도착했을 때, 뉴욕시로부터 설치 불허 통보를 받았다. 다른 행정처에서 시민의 안전이 우려된다는 의견을 제기한 것이다. 결국 전시를 한 달 앞둔 시점에 4개의 조각을 쌓아 올리려던 계획을 3개로 변경해 전체 높이를 줄이고, 좌대 폭을 넓혀 무게를 보강하는 수정 설계에 들어갔다.
밤 10시부터 맨해튼 5번가 내 두 차선을 막고 경찰의 통제를 받으며 크레인을 이용해 거대한 숯덩이를 하나씩 들어 올려 기둥에 조심스럽게 끼우기 시작했다. 각 3톤이 넘는 숯덩이를 탑을 쌓듯 겹쳐 올리려면 미세한 각도 차이도 허용되지 않기에, 이 작업은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렇게 모두의 염원 속에 밤을 지샌 작업이 완료될 즈음 새벽빛이 밝아왔다. 뉴욕의 심장부에 설치한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는 이배 작가를 비롯해 모든 스텝이 그간의 고생을 보상받을 만큼 록펠러 센터의 거대한 숯 조각은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뉴욕의 컬렉터가 2004년에 소장한 진 마이어슨의 회화 작품 ‘Endgame’. Courtesy of the Artist
록펠러 센터 채널가든에 설치된 이배 작품 ‘Issu du feu’. Courtesy of the Artist and Johyun Gallery / Photo by Jeffery Jenkins


채널가든에 설치된 이배 작가의 조각이 중량과의 싸움이라면, 건물 내 전시되는 작품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영화 <나 홀로 집에>에 등장한 뉴욕의 명소 록펠러 센터 아이스링크와 바로 연결되는 1000m2 규모의 텅 빈 공간은 벽체 설치와 조명 공사를 통해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이러한 변화의 전 과정은 전시의 비주얼라이징을 맡은 스튜디오 MDA 건축가 마르쿠스 도한치(Markus Dochantschi)가 진두지휘했고, 그는 특별히 박서보 작가의 작품을 위해 하늘색 벽을 제안했다. 박서보 작가로선 평생 진행해온 많은 전시 중 한 번도 떠올리지 않은 색이지만, 독일의 건축가가 제안한 색상은 마치 그의 작품과 평생을 함께해온 것처럼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업은 한국 근현대미술을 이어온 삼대의 이야기다. 이들의 작품에 나타난 내러티브는 한국 근대의 태동에서 시작되어 현대미술 전후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간 한국의 성장과 가속화된 발전, 그 기간의 상실과 함께한다. 1931년에 태어난 박서보 작가는 한국 모더니즘의 ‘기원’을 만들었고, 1956년에 태어난 이배 작가는 타국에서 유학하며 한국 작가로서 정체성을 ‘출현’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1972년에 태어나 다섯 살에 한국을 떠난 디아스포라 세대인 진 마이어슨은 조국으로 ‘귀환’해 자신만의 관점으로 한국성을 그려냈다. 본 전시에는 박서보의 초기작부터 최신작에 이르기까지 총 4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해 그의 인생 여정과 함께 단색화의 추상적 언어 기반을 소개하고, 이배의 작품에서는 스톤헨지 같은 거석 유물에 나타난 인간의 원초적 염원과 함께 정화를 상징하는 숯이 순환적 관계가 갖는 의미를 다룬다. 그리고 평생 좌표를 찾아 방랑한 진 마이어슨은 라이다(lidar) 스캔을 통해 읽어낸 자신과 가족의 모습을 무한대 거울을 통해 반복된 이미지로 변형해 시공간의 경계를 없애고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연결한다.
진 마이어슨은 <기원, 출현, 귀환>이라는 이번 전시 타이틀을 지으면서 자신이 뉴욕을 떠날 때를 떠올렸다고 한다. 홀로 뉴욕을 떠났던 그는 이제 (아버지와 형이라 칭해도 좋을) 두 거장과 함께 돌아왔으니 금의환향이라고 스스로 격려해도 좋을 것이다. 전시 오프닝 마지막에 이배 작가는 진 마이어슨을 꼭 안아주었다. 이는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며 노력한 전시 스태프들이 꼽은 가장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다.







위쪽 <기원, 출현, 귀환>전의 박서보 작품. Courtesy of the Artist and studio MDA / Photo by Victoria Macchi
아래쪽 <기원, 출현, 귀환>전의 진 마이어슨 작품. Courtesy of the Artist and Johyun Gallery / Photo by Jeffery Jenkins

 

에디터 박수전(노블레스 컬렉션)
사진 조현화랑

관련 기사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