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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1-11

불협화음의 흥미로운 하모니

진지한 고찰과 유희를 동시에 담아낸 탁영준의 작품 세계.

‘목요일엔 네 정결한 발을 사랑하리’(2023) 스틸 이미지.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11월 24일부터 2024년 1월 28일까지 탁영준의 개인전 [목요일엔 네 정결한 발을 사랑하리(Love Your Clean Feet on Thursday)]가 열린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는 이스탄불 비엔날레, 베를린 비엔날레, 리옹 비엔날레, 시카고 건축 비엔날레 등 세계적 비엔날레에 이름을 올리는 등 국제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지만, 국내에서는 처음 개최하는 개인전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며 보수적인 기독교인의 퀴어 혐오를 접하고 도그마(dogma)에 관심을 갖게 된 탁영준은 이후 기독교 문화에 뿌리를 둔 유럽에서 문화유산이 깃든 종교적 공간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믿음의 공간, 종교적 관습과 규범에서 문화의 혼종성을 발견하고 조각, 설치, 사진,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로 이를 추적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의 개성을 담은 작품들이 한국의 관람객을 만난다. 베를린에서 촬영한 필름 ‘사랑스런 일요일 되길 바라(Wish You a Lovely Sunday)’(2021)는 대척점에 있는 두 공간을 융합한 작품이다. 영상은 베를린에 있는 교회와 퀴어 클럽을 배경으로 퀴어 댄서들이 상반되는 두 공간에 맞춰 새로운 안무를 탐구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작가는 교회와 클럽이 각각 공간에 맞는 특정한 의식, 행동 규범, 태도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찾아냈고, 종교적 관습과 클럽 문화의 공존을 제안하며 장소, 건축, 동작, 신념 등이 공동체와 퀴어성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한다. 야외 공간에서 선보이는 필름 ‘목요일엔 네 정결한 발을 사랑하리’(2023)는 이번 아뜰리에 에르메스 개인전에서 최초로 공개하는 신작이니 눈여겨볼 것. 부활절 기간에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역을 배경으로 서로 다른 장면의 대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세족목요일(성목요일)에 십자가에 목 박힌 예수상을 짊어진 스페인 외인부대 군인들의 행렬을 포착한 장면, 동성애 남성 무용수들이 인적 없는 베를린 숲길에서 전통적 여성성을 찬양하는 발레 [마농(Manon)] 2막 1장의 특정 안무를 번안한 장면을 한 작품에 담아 전형적인 성의 경계를 흐트러뜨린다. 전시는 두 필름을 직각으로 배치해 압도적인 공간 분위기를 연출하고, 거기에 소형 조각 2점이 존재감을 뽐내며 전시장을 마치 성소 같은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데 한몫한다. 전시장 입구에서는 조각 ‘탐(Wishful)’(2023)을 마주할 수 있다. 교회 입구에 있는 성수반을 활용한 작품으로, 실제로 이탈리아 성구 제작소에서 수작업으로 만든 기물을 사용해 제작했다. ‘내 커다란 기대(My Big Expectation)’(2022)는 독일인의 주된 요리 재료인 흰색 아스파라거스를 활용한 작품이다. 흰 아스파라거스는 독일 문화권에선 단순한 채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좋은 품질을 유지, 관리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4월부터 6월 24일 성 요한의 날까지만 수확하기 때문에 독일인은 이 시기를 대대적으로 기리기도 한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흰 아스파라거스를 목제 기둥으로 재현해 성 요한의 두상을 새겼다. 성인을 기리면서 동시에 세속적 욕망을 숨기지 않은 작품이다. 이렇듯 탁영준은 현실에선 갈등 관계인 집단이나 서로 다른 이념 사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율해왔다. 그는 베를린과 뒤셀도르프의 율리아 슈토셰크 재단(Julia Stoschek Foundation)에서 개인전을 마쳤고, 내년 1월 4일까지는 뉴욕 하이라인(High Line)에서 열리는 전시 [Dancing about Architecture]에 참여한다. 이제 아뜰리에 에르메스로 찾아가 그의 작품을 만날 차례다.

 

에디터 백아영(프리랜서)
사진 에르메스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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