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전시, 라이브와 재현을 넘어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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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1-31

건축 전시, 라이브와 재현을 넘어

미술로서 건축에 대한 국제적 경향을 살펴보는 시간.

국내외 미술관에서 건축 전시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와 우리나라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도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미술로서 건축에 대한 국제적 경향을 살펴보자.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서 선보인 김치앤칩스의 현장프로젝트.

르코르뷔지에 아틀리에를 퇴소하고 1956년 서울로 돌아온 건축가 김중업은 바로 다음 해에 자신의 전시를 연다. 그렇게 서울 소공동 공보실에서 열린 [건축가 김중업]전은 한국 현대건축 역사상 최초의 건축가 개인전이었다. 흑백사진으로 남은 당시 기록에서 김중업은 작품 앞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슈트 차림으로 서 있다. 그의 스승 르코르뷔지에를 연상케 하는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청년의 당당한 모습이다. 그가 설계한 건물의 드로잉, 모형 등이 나온 이 전시는 예술가 김중업의 귀환을 알린 사건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땅, 제대로 된 건축 재료와 기술이 없는 모국에서 그는 파리에서 배운 ‘현대건축’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울 것을 알았다. 그는 건축가보다 예술가로 먼저 자리 잡아야 원하는 건축을 할 수 있다고 여겼다. 거친 공사 현장에서 업자 취급을 받는 척박한 현실에서 김중업은 르코르뷔지에처럼 그림과 글, 말을 통해 건축이 예술적 산물임을 피력했다. 그의 삶 전반에 깔린 예술가로서의 활동은 건축을 한국 사회에 증명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김환기를 비롯해 당대 최고 작가들과 교류하고 도움을 주기도 한 김중업의 행보가 이를 보여준다. 김중업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또 다른 건축가 김수근도 마찬가지다. 그도 공간화랑과 공간사랑 운영 등 다양한 문화 예술 활동을 통해 건축가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오래전부터 건축은 예술 분과에 포함되어 있다. 다만 건축은 회화나 조각과 달리 목적이 있는 특수한 분야다. 예술로서 온전한 자율성을 인정받기 어려웠다. 건축을 예술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전시’다. 김중업과 김수근뿐 아니라 김수근의 제자인 건축가 승효상도 전시를 통해 작가로서 명성과 대중적 관심을 획득했다. 승효상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유일한 건축가다. 200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어반 보이드(Urban Void)]는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연출로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이는 국립현대미술관에 건축 전문 학예직이 생기기 전까지 미술관 역사에서도 예외적 사례였다. 그간 한국에서는 제도적 차원보다 명망 있는 개인 건축가들이 자력으로 건축 전시를 꾸려왔다. 2010년 이전에 국내에서 열린 많은 건축 전시가 기관의 공적 지원을 적극적으로 받지 못했다.





위쪽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의 사운드 오브 아키텍처 현장프로젝트
아래쪽 2023년 베니스건축비엔날레 독일관 전시 전경.

하지만 이미 미술관이라는 근대미술 공간의 역사가 긴 서구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대표적으로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사례를 보면 건축 전시의 시대별 경향을 차분히 살필 수 있다. 1929년에 개관한 MoMA는 유럽 대륙과는 달리 이름 그대로 ‘모던’ 정신을 계승한 산물을 보여주는 파격적인 기관이었다. 고전과 결별한 현대 정신으로 무장한 MoMA의 지향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르가 건축과 디자인이었다. MoMA는 당시 가파르게 성장하는 산업디자인과 건축 부문에 주목해 그들의 생산 과정을 관심 있게 바라봤다. MoMA는 오래전에 건축과 디자인 분과를 설립해 대중적이면서도 전문적인 관점을 담은 전시를 만들어왔다. 특히 1950~1970년대에는 건축가 전시뿐 아니라 건축가, 디자이너, 큐레이터와 함께 전시장 디스플레이를 과감하게 실험하기도 했다. MoMA뿐 아니라 구겐하임 미술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프랑스 퐁피두 센터 등도 건축디자인 분과를 별도로 두어 깊이 있는 작업을 해왔다. 이런 기관에서 열린 전시와 연구 성과는 오늘날 건축 전시의 중요한 규범이 되었다.





2023년 베니스건축비엔날레 독일관 전시 전경.

건축사학자 에이드리언 포티(Adrian Forty)는 [아는 방법, 보여주는 방법: 건축 전시의 짧은 역사(Ways of Knowing, Ways of Showing: a Short History of Architectural Exhibitions)]라는 에세이에서 건축 전시를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라이브 전시(Live Architecture Exhibitions)’와 ‘재현적 전시(Representational’ Exhibitions)’가 그것이다. 그에 앞서 포티는 건축 전시가 20세기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19세기 민족주의에 기반한 주요 문화유산의 복원과 재건이 왕성하던 시기의 작업도 건축 전시로 포함한다. 그가 말한 라이브 전시는 20세기 초 국가별로 추진한 엑스포 파빌리온부터 2000년에 시작해 지금도 진행하고 있는 영국 서펜타인 갤러리의 파빌리온 프로젝트, 그리고 MoMA에서 최근까지 열린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Young Architects Program) 같은 일련의 실제 (가)건물을 짓는 행위의 프로젝트를 일컫는다. 이른바 파빌리온, 혹은 폴리 등으로 불리는 전시를 위한 임시 구조물은 관람객에서 공간을 통한 새로운 건축적 경험을 선사한다. 반면 건축가가 만든 도면, 모형, 스케치, 문서 같은 아카이브 자료로 구성한 전시는 재현적 전시로서 건물이 완성되는 긴 여정을 살필 수 있게 해준다.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게스트 시티에 참여한 최용준의 작품. 사진 최용준

이러한 분류는 2023년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특히 올해는 세계적으로 건축 전시가 풍성한 한 해였다. 건축 관련 행사 중 가장 역사가 길고 규모가 큰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가 열렸고,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고 알려진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함께 열린 해기 때문이다. 또한 2024년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조만간 건물 리모델링에 들어갈 퐁피두 센터에서는 세계적 건축가 노먼 포스터의 회고전이 열렸다. 영국 왕립미술원에서는 헤어초크 &드 뫼롱의 전시를 개최했다. MoMA에서도 건축가 개인전은 아니지만, [이머징 에콜로지(Emerging Ecologies: Architecture and the Rise of Environmentalism)](9월 17일~2024년 1월 20일)라는 생태를 주제로 한 건축 전시가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아르코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등 주요 국공립 미술관에서 건축물보다 넓은 의미의 ‘공간’을 사유하는 전시가 열렸다. 올해 4회를 맞이한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9월 1일~10월 29일)는 기존에 전시장으로 쓰던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아니라 열린송현녹지광장을 주요 무대로 삼았다. 앞선 비엔날레와는 다른 형식의 전시를 보여주겠다는 주최 측과 총감독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다. 열린송현녹지광장에서 펼친 작업은 파빌리온이 중심을 이루었다. 총감독을 맡은 조병수 건축가가 설치한 ‘땅소’와 ‘하늘소’, 김사라 건축가가 기획하고 세계 각국의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설치한 파빌리온이 빈 공원을 느슨하게 점유했다. 이 파빌리온들은 특정한 기능이 있다기보다 110년 만에 시민에게 공개한 열린송현녹지광장의 자연환경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건축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어도, 설명문을 읽지 않고도 이 공간을 산책하며 즐기는 것으로 전시 감상을 대신할 수 있었다. 올해 진행한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프로젝트가 라이브 전시를 대표한다면, 퐁피두 센터에서 열린 노먼 포스터 회고전(5월 10일~8월 7일)은 재현적 전시의 모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건축가의 젊은 시절부터 최근까지 거의 모든 자료를 총망라해 전 생애를 일괄할 수 있는 방대한 작품을 전시했다. 스케치, 드로잉, 모형, 영상 등을 통해 건축이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그것을 완성해나가는 세세한 과정을 포함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러한 재현적 전시는 실제로 한 건물이 디자이너와 협업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의 손을 거치고, 수백 번 수정을 거듭하는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 작품임을 알게 해준다. 또한 이때 건축가가 그린 여러 이미지는 건물을 대체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미학적 완성도를 지닌 사물로 자리매김한다. 대단한 몽상가지만 최신 기술을 통해 본인이 상상한 것을 실현시키고야 마는 리얼리스트인 노먼 포스터의 아카이브는 이러한 특성을 또렷하게 담았다.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게스트 시티에 참여한 최용준의 작품. 사진 최용준

하지만 최근에는 재현적 전시와 라이브 전시 두 카테고리에 넣기 어려운 중간 영역의 건축 전시나 완전히 새로운 구성의 전시도 활발히 열린다. 특히 올해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최초의 여성 흑인 총감독으로 선임된 레슬리 로코가 큐레이팅한 [미래의 실험실]전은 오히려 건축을 넘어서 광범위한 대상을 다루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가 기획한 아르세날레 디 베네치아 주제전에서는 마치 노먼 포스터의 전시처럼 우리가 흔히 건축 전시를 보러 갈 때 기대하는 건축가의 생산물이 잘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 미술 전시에서 익숙한 영상 미디어 매체를 적극 활용했다.
이는 레슬리 로코가 건축 전시라고 해도 더 이상 전통적 매체에 의존하지 않고, 건축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사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터뷰, 영상, 퍼포먼스를 넘나드는 창작자의 작업과 예술가와의 협업은 건축 전시를 좁은 의미의 건축(가) 틀에 가둬놓지 않겠다는 야심을 담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국가관에서는 독일관과 일본관이 돋보였다. 독일관은 전시 공간의 지속 가능성을 주제로 앞선 미술 비엔날레에서 폐기된 여러 전시 조성물과 자재를 전시했다. 전시된 물질의 순환 경로를 고려해 건축하는 사람과 그것을 소비하는 관람객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사랑’을 주제로 내세운 일본관은 건축을 구성하는 거시 또는 미시 세계에 집중한 다른 전시에 비해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줬다.
베니스 자르디니 공원에 있는 국가관 중 하나인 일본관은 6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건물이다. 이곳은 김중업과 마찬가지로 르코르뷔지에에게 사사한 일본 건축가 요시자카 다카마사가 설계했다. 일본관 큐레이터 오니시 마키는 이 역사적인 일본관을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보완하는 여러 장치를 기획했다. 이러한 면면은 과거 지나치게 성장과 생산 중심으로 작동하던 건축의 시대를 지나 순환과 돌봄을 포함한 작금의 생태적 이슈를 일깨운다. 이러한 메시지가 좀 더 보편적인 전시 형식으로 드러난 것이 현재 MoMA에서 열리고 있는 [이머징 에콜로지]다. 이 전시는 인류세라는 지질시대에 이른 위기의 지구 환경을 재검토하는 역사적 실천을 되돌아본다. 지금과 같은 변화무쌍한 기후 위기 시대에 도시환경을 이루는 물리적 인프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확장된 건축 전시라고 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모색]. 사진 밀리언로지즈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모색]. 사진 김주영


최근 한국 국공립 미술관에서 열린 건축 전시도 건축가의 개인전이나 건물을 소개하는 전시와는 다른 경향을 보인다. 코로나19 이후 우리가 몸담은 물리적 공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시 공간을 포함해 다양한 장소를 재해석하고 예술적 관점으로 들여다보고자 만든 전시들이 돋보인다.
이러한 흐름을 대표하는 전시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린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4월 27일~9월 10일)이 있다. 이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가장 오래된 정례 전시이자 청년 작가 플랫폼인 ‘젊은 모색’을 새로운 방향으로 실험해본 결과다. 전시 무대가 되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건물 자체를 청년 작가들의 모색 대상으로 삼았다. 건축가, 디자이너, 미디어 아티스트, 사진작가 등으로 구성한 13명(팀)의 작가는 오래된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의 곳곳을 살피고, 이에 관한 공간적 연결을 시도했다. 아르코미술관의 [기억·공간](4월 14일~7월 23일)도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건물 곳곳을 다시 살펴보고 환기하는 관점을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보여주었다. 내년 레노베이션을 앞둔 부산시립미술관의 [극장](9월 26일~12월 17일)도 관람객이 미술관의 여러 공간을 살피도록 유도한다.
이처럼 작품이 서는 장소 자체를 건축적으로 돌아보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건축 전시는 보다 확장된 의미를 얻는다. 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건물에 한정하지 않고 우리 삶의 환경으로 맥락을 확장하며 미술과 디자인 등 인접 시각예술 분야와 융합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건축이 미술을, 미술이 건축을 차용하는 최근 예술가들의 작업은 분명 동시대 전시 제작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미술가는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건축가는 이미지를 고민한다. 미술가와 건축가의 단순한 협업을 넘어, 그들의 개별 작업에 내재된 건축적인 것과 미술적인 것이 때때로 결합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은 건축 전시를 독해하기 어렵다는 세간의 평에도 불구하고, 건축 전시를 흥미롭게 보게 하는 힘이다.



 

정다영(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에디터 이소영(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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