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이자 스승, 자식이자 제자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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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08

부모이자 스승, 자식이자 제자

같은 꿈을 꾸며 마음까지 닮아가는 세 가족의 이야기.


김규연_ 스티치 장식 포인트 셔츠 MARNI, 오버사이즈 재킷 ALTE, 비대칭 플리츠 스커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경숙_ 보 장식 셔츠 valentino, 실크 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피아니스트  이경숙 & 김규연
한국 1세대 피아니스트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음악원장 등을 역임한 이경숙과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 교수로 재직 중인 김규연. 연주자, 교육자로서 활발히 활동하는 두 사람은 40년에 가까운 나이 차이만큼 피아노를 처음 접한 계기도 확연히 다르다. 이경숙은 한국전쟁으로 피란을 떠난 부산에서 선교사가 남긴 피아노를 접하며 일종의 ‘생존 방편’으로 피아노를 익혔다. 한편 김규연은 집 한편에 놓인 ‘소리 나는 가구’에 대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놀이처럼 피아노를 시작했다. 극과 극인 배움의 환경이었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와 음악을 향한 열정만큼은 놀랍도록 일치한다며, 두 사람은 입을 모았다. “한국 1세대 피아니스트로서 딸도 피아니스트로 키웠다는 말도 있지만, 힘든 점을 잘 알기에 오히려 딸에게는 그 고됨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집에서 장난감을 갖고 놀 듯 피아노를 치게 한 이유도 그 때문이죠.”(이경숙)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배운 걸 하나의 축복으로 여겨요. 가끔 주변 친구들이 부모님의 권유와 압박 속에서 피아노를 연습하는 걸 보곤 했는데, 엄마는 억지로 강요하신 적이 없죠. 대신 학교 일과 육아로 바쁜 와중에도 꾸준히 연습하는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는 게 대체 불가한 교육이었다고 생각해요. 당시에는 누구나 그렇게 치열하게 사는 줄 알았어요.”(김규연) 피아노 연습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일상을 공유하며 특별함을 느낄 새도 없이 피아니스트로서 삶을 흡수한 것처럼, 이들의 관계는 수직적이기보다 상호 보완에 가깝다.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에서는 가르침과 깨우침이 동의어로 등장해요. 결국 누군가를 가르침으로써 스스로 배우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저희는 나란히 동행하는 사이예요. 모든 일상을 함께 나누는 솔메이트이기도 하고요. 같은 피아니스트더라도 연주 직전의 속마음까지 알 수는 없지만, 엄마와 저는 눈빛만 봐도 알아챌 수 있을 만큼 특별해요.”(김규연) “삶에 언제나 배움이 따른다고 하는데, 실제로 딸 규연이를 보며 많이 배워요. 음악이 제 삶의 전부이듯 우리의 동행도 마찬가지죠.”(이경숙) 부모와 자식의 관계 중에서도 유독 애틋하게 연결된 듯한 ‘엄마와 딸’ 사이인 두 사람은 피아노와 음악을 매개로 더욱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지석철_ 패턴 트렌치 재킷 PAUL SMITH, 피케 셔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지근욱_ 브라운 실크 셔츠 EENK 

 미술 작가  지석철 & 지근욱
국내 극사실주의 회화 1세대를 대표하는 ‘의자 작가’ 지석철, 색연필로 새로운 추상회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미래로 손꼽히는 지근욱. 두 사람이 부자(父子) 관계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간의 인터뷰 자리에서 아들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어요. 혹여 부담이 될 수도, 작가로서 온당한 자존심에 해를 끼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지석철) “아버지가 작가라는 사실이 제겐 당연하다 보니 어릴 땐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조심스럽고요. 제가 저 자신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아버지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요.”(지근욱)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일을 한다는 건 서로를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작가로 성장하기까지 많은 공부가 필요한 만큼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그럴 때도 묵묵히 지지해주셨기에 온전히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의 배려가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지근욱) “작업에 관해 많은 얘기를 나누진 않아요. 다만 어떤 사물을 보고, 느끼고, 간직하고 평가하는 시선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죠. 미학적 퀄리티를 감지하는 눈빛 교환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데, 그 자체로 발전을 돕는 촉진제가 됩니다.”(지석철) 구상의 정점과 추상의 끝. 언뜻 두 작가는 정반대에 서 있지만, 볼수록 닮은 구석이 많다. “아들의 초기 직선 작업에서 중앙으로 시선을 끌어당기는 화면의 운동 방법, 캔버스를 올오버하도록 처리하는 표현 방식은 색연필과 테레핀 등을 활용해 쿠션의 등받이 일부를 클로즈업한 제 초기 소파 쿠션 작업과 맥을 같이한다고 생각합니다.”(지석철) “작업을 대하는 태도도 비슷하다고 느껴요. 처음과 끝이 계획된 밑그림 아래 치밀하게 작업하는 점, 작업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는 점, 또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점 등요.”(지근욱) 지난해 10월 페이토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 지석철은 초기 소파 쿠션 작업으로 돌아가 유화로 200호 이상 대형 작품을 그리고 있고, 입체 작업과 영상 작업을 통합한 연출을 계획 중이다. 지난해 9월 학고재에서 개인전을 마친 지근욱은 오는 11월 성곡미술관 개인전과 갤러리 WWNN 개인전 준비에 매진하고 있다. 부지런함, 열정적인 자세까지 닮은 둘이다.







 배우  백수련 & 김수현
만 75세 이상 원로 연극인 중 한국 연극사에 크게 기여한 연극인을 선정해 그들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늘푸른연극제. 연기 부문에 선정된 백수련은 지난 1월 <비목>의 주인공 ‘할머니 윤구’로 분했다. 1958년 연극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로 데뷔한 뒤 꼽기 힘들 정도로 많은 작품에 출연한 그녀에게 <비목>이 특별한 의미로 남은 건, 남편이자 배우 고(故) 김인태가 출연했던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아들이자 배우인 김수현과 함께한 첫 공연이기 때문. “각자 공연 일정이 있어 같은 무대에 서기 쉽지 않아요. 과거에는 부모님의 후광을 입는 것 같아 그런 자리를 피하기도 했고요. 이제 시간이 흘렀고, 남다른 뜻이 담긴 만큼 작은 역할로나마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전쟁터에서 전사한 아들 ‘창윤’ 역으로 극 중 어머니와 직접 만나는 장면은 없었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연기로 교감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김수현)




백수련_ 컬러 블록 드레스 FERRAGAMO.
김수현_ 스트라이프 셔츠, 블랙 & 화이트 농담의 팬츠, 슈즈 모두 MAISON MARGIELA

연극 <방문자>로 2008년 동아연극상의 신인연기상, 대한민국연극대상의 남자 신인연기상, 히서연극상의 기대되는 연극인상을 받으며 연기력을 인정받은 김수현은 영화와 TV 드라마로 얼굴을 알렸다. 하지만 <아이히만, 암흑이 시작하는 곳에서>, <토카타>, <코스모스> 등 대표작으로 알 수 있듯 연극에 뿌리를 두고 활동한다. 이는 백수련도 마찬가지. 두 사람은 연극의 매력에 대해 입을 모아 말했다. “무대 위 연기는 리얼 타임이잖아요. 관객과 호흡하며 느끼는 특유의 생명력이 다음 작품을 준비하게 합니다.” 어머니가 생각한 아들은, 아들이 보는 어머니는 어떤 배우일까. “좋은 배우예요. 제스처나 목소리에서 명배우였던 남편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 연차가 상당한데도 연습실에 가장 먼저 와 있는 성실함까지.”(백수련) “연기의 좋고 나쁨을 평가할 단계는 진즉에 넘어섰다고 생각해요. 지금 연세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무대 위에서 활약하신다는 사실이 후배로서 귀감이 됩니다.”(김수현) 백수련은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하는 연극 <활화산>(5월 24일~6월 17일)에, 김수현은 바로 다음 공연인 <햄릿>(7월 5일~29일)에 출연한다. 매번 다른 배역으로 각자 인생을 살면서도, 다시금 묘하게 이어지는 모자(母子) 사이가 자못 흥미롭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손지수(jisuson@noblesse.com)
사진 윤보람
헤어 & 메이크업 강다슬
패션 스타일링 김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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