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댄 리가 꿈꾸는 예술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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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21

아티스트 댄 리가 꿈꾸는 예술

3년 전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경험을 전시로 구현하기 위해 인도네시아계 브라질 아티스트 댄 리는 한국 전통문화 3년상을 모티브로 삶과 죽음이 순환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거대한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댄 리: 상실의 서른 여섯 달〉 아트선재센터 더 그라운드 전시 설치 전경.

울금으로 노랗게 염색한 직물을 마치 커튼처럼 전시장에 드리우고, 흙더미와 함께 옹기와 짚, 삼베와 밧줄이 얼기설기 엮여 놓인 공간에 시큼하고도 구수한 정체 모를 냄새가 감돈다. 익숙한 한국적 요소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지만, 생경하면서도 어딘가 원시적이며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공간. 지난 2월 16일부터 5월 12일까지 아트선재센터 더그라운드와 한옥에서 열린, 인도네시아계 브라질인으로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작가 댄 리(Dan Lie)의 한국 첫 개인전 〈상실의 서른 여섯 달〉 전경이다. 댄 리는 흙과 꽃, 버섯 종자와 곰팡이 등 자연의 재료를 이용해 대형 설치 작품을 제작하며 전시 환경과 기후, 설치 요소의 생물학적 구성에 따라 작품이 반응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생명은 부패와 발효, 즉 삶과 죽음의 사이클 안에 놓인다. 댄 리는 이런 자신의 작업을 “살아 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의 조합”이라고 설명한다. 〈상실의 서른 여섯 달〉전에서 댄 리는 개인적 경험과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제작한 신작을 선보였다. 2024년은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3주기가 되는 해. 댄 리는 한국의 전통 장례 문화인 삼년상을 재해석, 삼베와 면포, 짚풀, 옹기 등의 재료로 성장과 발효, 부패와 소멸의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애도 방법을 보여준다. 댄 리는 이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사들에게 아이가 태어날 때 부정을 막기 위해 삼칠일 동안 걸어놓는 금줄에 대해 배우고, 전남 장성 백양사 천진암을 방문해 정관 스님과 함께 짧은 시간 생활하며 막걸리 제조와 발효를 체험했다. 결정적으로 한국의 삼년상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죽음에서 비롯한 오랜 슬픔을 극복하는 애도의 방법을 전시에 반영하기로 한다. 전시 공간에 처음 작품을 설치한 2월과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국화와 풀은 시들거나 누렇게 마르고, 옹기 안에 넣어둔 쌀과 누룩은 발효되고 부패되어 시큼한 냄새를 더해갔다. 실제로 지난 4월 27일은 댄 리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3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말 그대로 ‘상실의 서른 여섯 달‘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애도의 과정이자 작가의 말처럼 “이 순간에만 존재하는, 다시 만들어질 수 없는 유일한 작품”. 여러모로 뜻깊은 전시를 만들어간 과정과 그 결과를 작가가 그린 드로잉과 사진, 직접 덧붙인 코멘트를 통해 전한다.





“국립민속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본 금줄을 바탕으로 그린 드로잉.”





“금줄을 모티브로 설치할 방법을 찾던 중 방문한 강원도 철원군 내대1리 석담동 마을 짚풀공예소. 공예소를 운영하는 어르신들에게 새끼줄 꼬는 법을 배우고, 달걀 꾸러미도 함께 만들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전시에 설치한 새끼줄도 만들어주셨다.”





“전남 장성 백양사 천진암을 방문해 정관 스님과 함께 짧은 시간 동안 생활했다. 천진암에 있을 당시 본 암자와 불탑, 옹기, 바위, 나비 등을 그린 그림과 메모다.”





“전시를 위해 한국에 리서치 트립을 다녀온 후 베를린 작업실에서 실험하고 있는 모습. 한국에서 구매한 면포를 울금으로 염색한 후 매달아보고, 삼베 주머니로 계단 구조물을 구현하기 위해 베를린에서 비슷한 천과 재료를 구해 시험 제작했다.”







“삼베 구조물에 진흙을 바르고, 짚풀공예소 어르신들이 만들어준 밧줄로 국화 구조물을 설치하는 등 아트선재센터 더그라운드와 한옥 공간에 작품을 설치하는 과정. 아이가 태어날 때 부정을 막기 위해 걸어놓는 금줄을 애도의 공간에 배치해 삶과 죽음의 조합을 표현했다.”





“2024년 2월, 작품 설치가 완료되었을 때 애도의 여정이 마무리되었다고 느꼈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경험을 작업에 매개하기 위해 한국 전통문화와의 교류가 필요했다. 아트선재센터의 도움, 정관 스님과의 인연으로 익힌 이 배움의 과정이 이번 작업에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내 삶의 방식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정관 스님은 나의 애도 기간 중 희망을 줬으며 서양의 애도 방법과 다른 관점을 제공했다.”





“전시를 열고 두 달이 지난 후 모습. 국화는 시들었고, 햇빛을 받는 부분의 면포 염색이 하얗게 바랬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이번 작품은 어떤 면에서 살아 있는 존재처럼 인식된다. 한국에서 전시를 본 관람객에게도 다양한 경험을 선사하는 마르지 않는 샘이 되었기를 바란다. 그리고 지난 4월 27일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3주기가 되는 기일이었다. 정확히 상실의 서른 여섯 달.”

 

에디터 정규영(ky.chung@noblesse.com)
사진 제공 댄 리, 아트선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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