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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17 ARTIST&PEOPLE

현실을 직시하는 눈

  • 2017-05-05

탄탄한 리서치에 기반을 둔 한국의 근·현대사를 소신 있게 작품에 담아내는 박찬경 작가. 지난해에 해외 개인전을 개최한 이후 올 5월 국제갤러리의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미술가로서 차곡차곡 쌓아온 행보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 작업실에서 필름을 선별하고 있는 박찬경 작가의 모습
2 시민의 숲(Citizen’s Forest), Video(B&W), Directional Sound, 27 Minutes, 2016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박찬경을 수식하는 단어는 다양하다. 평론가, 큐레이터, 사진작가, 영화감독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해온 그는 사진, 텍스트, 사운드를 활용해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에 비평적 시각으로 접근하며 작가로서도 색깔이 뚜렷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에 그는 스위스 ‘아트 바젤 필름 프로그램’과 ‘타이베이 비엔날레’에 출품하고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의 공식 트레일러를 제작하는 등 국내외를 오가며 활약했다. 올해도 그의 행보는 계속된다. 그동안 쓴 평론을 모아 출판을 앞두고 있고, 독일 베를린의 문화 예술 기관 ‘세계 문화의 집’ 그룹전 을 준비하고 있다. 또 5월에는 국제갤러리에서 새로운 필름 작업을 중심으로 개인전을 개최한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온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직시하며 현실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그가 최근 몰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3, 4 만신(Manshin: Ten Thousand Spirits) 스틸 컷, 2014






요즘 전시 준비로 많이 바쁘시죠? 2015년 런던 이니바(InIVA)에서 개최한 영국 첫 개인전, 지난해 뉴욕 티나 킴 갤러리의 개인전에 이어 올해는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가 아주 중요해요. 한국에선 오랜만에 여는 개인전이고, 타이베이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시민의 숲’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개하고 여러 신작을 전시할 계획이라 많은 준비를 하고 있죠. 재미있을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저는 작품이 많이 돌아다녀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도, 외국에서도 많이 돌아다녀야죠. 영화는 여러 페스티벌에서 상영했지만 미술 작품은 그럴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더 기대돼요.

지난가을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의 트레일러를 제작하고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를 정식 개봉한 것도 이슈가 됐어요.
비엔날레나 단체전에서는 항상 큐레이터가 전면에 드러나죠.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작가라고 생각해요.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의 트레일러는 안양과 그 행사의 성격을 보여주면서 어떻게 하면 작가를 전면에 내세울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또 안양이 시작된 곳인 안양천을 짧은 시간 안에 제대로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사람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드론으로 촬영해봤죠. 리드미컬하고 강한 사운드에 작가의 이름이 눈에 확 들어오도록 배치하고, 작가와 안양천을 강렬하게 결합해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굉장히 반응이 좋았어요.

당신의 작품에서 현대사는 뗄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소재인 것 같습니다. 작년에 스위스 ‘아트 바젤 필름 프로그의램 ’단편영화 부문에는 남북 정상회담을 다룬 <비행>을 출품하셨죠.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 정상회담을 했는데, 몇 년이 지나니 그 중요한 사건은 잊히고 심지어 비난까지 하는 상황이 됐죠. 실망스러웠어요. 그래서 정상회담 당시 영상을 찾아봤어요. 매체를 통해 볼 수 없는 것은 방송국에 연락해 관련 장면을 다 모았습니다. 처음엔 비행기 안에서 촬영한 것만 사용하려 했는데 점차 확장됐어요.

그 작품은 도입부에 삽입한 음악 ‘더블 콘체르토(견우와 직녀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윤이상 작곡가의 그 곡은 들으면 들을수록 영상으로 담아낸 세계와 잘 맞아떨어졌어요. 견우와 직녀는 우주적 상상력을 담은 이야기죠. 1년에 한 번 가까스로 만난다는 것이 단 한 번뿐인 정상회담과 연결돼요. <비행>은 영상은 정상회담에 관한 것이지만 음악에 관한 작품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합니다. 한 편의 뮤직비디오라고 생각하면 돼요.




5 2000년대엔 종종 볼 수 있었지만 최근 자취를 감춘 슬라이드 영사기가 그의 작업실에서는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6 그의 작업실 책상에서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세 가지가 있다. 카메라 렌즈, 필름, 담배가 그것
7 ‘신도안(Sindoan)’의 스틸 컷, 2008
8 5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출품작.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Anyang, Paradise City), HD Film, 102 Minutes, 2010






작년만큼 올해도 다양한 활동이 기대됩니다.
록펠러 재단에서 운영하는 벨라지오 레지던시 프로그램 작가로 선정됐어요. 1개월 레지던시인데, 소셜 사이언스와 의학, 사회봉사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모이죠. 시골 휴양지 같은 곳에서 다양한 교류를 나눕니다. 조용히 글을 쓰고 구상하기 좋은 곳이라 초기 단계의 작품을 작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시나리오를 쓰려고 생각 중이에요.

장편영화를 만들 계획은 없나요?
물론 해보고 싶어요. 하지만 요즘 너무 바빠서 장편 작업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죠. 빨리 일을 줄이고 장편을 준비하고 싶은데, 공포 영화를 만들어보려고 해요. 올해 준비해서 내년에 선보일 생각입니다.

베를린의 그룹전에서는 어떤 작품을 만날 수 있나요?
베를린 세계 문화의 집에서 <2 or 3 Tigers>라는 단체전에 참여해요. 철학적 이미지는 무엇인가에 관한 업작을 구상 중인데, 일본을 바라본 작품을 공개할 거예요. 일본 닛코 지역에 있는 게곤 폭포의 이미지를 담았죠. 1941년 교토에 철학자와 학자들이 모여서 좌담회를 열었어요. 그땐 진주만 폭격으로 남태평양에서는 이미 전쟁이 한창이었고, 일본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힘을 과시하던 시점이죠. 그와 관련해 태평양전쟁, 아시아의 근대성에 관한 책을 많이 읽고 있어요. 게곤 폭포는 당시 일본의 정신을 나타내는 상징이에요.

그런 영감은 어디에서 얻나요?
그때그때 달라요. 작업을 하는 나 자신이 작가로서 중요한 주체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나의 양식이나 내 스타일을 만드는 것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각 작품을 이루는 요소가 일관되지 않아요. 영감이라기보다는 신문이나 정보,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소스를 얻죠. 같은 상황을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궁금해요.

항상 오랜 리서치 끝에 작업하시는 것 같아요.
모르는 것에 대해 작업한다는 것이 스스로 납득이 가지 않아요. 다 찾아봐야 마음이 놓이죠. 아름답고 좋은 예술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확한 예술을 하고 싶어요. 궁극적으로는 자유로운 예술이 되어야 하지만 요즘은 자유롭다는 말이 부정확하게 오염됐죠. 정확히 알아야 비난도 할 수 있어요. 리서치만으로는 부족해 언론 자료도 참고하고, 잘 아는 사람과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해요. 작업 초반에 어느 정도 구상을 하고 나면 작품에 따라 적당한 방식을 찾습니다.




9 2016년 뉴욕 티나 킴 갤러리에서 개최한 개인전의 설치 전경
10 비행(Flying), Video and Sound, 13 Minutes, 2005






그동안 한국의 현대사, 정치, 종교, 사회, 남북 관계, 냉전, 무속신앙 등을 파고든 작품이 많았어요. 한국적 주제에 집중하는 이유가 궁금하네요.
작가의 몸이 어디 있느냐가 굉장히 중요해요. 그리고 미술은 문학이나 음악처럼 보편성을 획득하기 어렵다고 봐요. 하지만 서양인이 한국에 대해 알게 되면 그만큼 우리 작품도 잘 이해할 수 있어요. 보편성이라는 건 특수한 경험과 구체적 체험에 의해 생기죠. 교류와 교감이 있어야 해요. 아시아라고 하면 제3세계 오리엔탈리즘이나 동양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서양에서 말하는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시대에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늘 고민하시는 것 같아요. 예술가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사회적 규범,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가치, 또는 관습적 생각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우리가 믿는 세계는 좁아요. 국가가 만들어낸 가치나 자본주의가 점점 우리를 지배하죠. 그럴 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중요해요. 예술가는 보다 많은 세계, 생각, 감각, 가치를 보여주면서 체험의 장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새롭게 시도하고 싶은 영역이 있나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그림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는데, 계속 마음 한구석에 밀어놓고 지냈어요. 그리고 싶다고 해서 당장 그릴 수 있는 게 아니고, 될지 안 될지도 모르지만 해보고 싶네요.




11 나란히 줄지어 걸린 해골은 박찬경 작가가 직접 설치한 소품
12 작업실 책장에 꽂힌 다양한 언어와 장르의 책 사이에서 한국, 굿, 귀신, 샤머니즘 등 그의 기존 프로젝트를 환기하는 단어가 눈에 띈다.

박찬경
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한 박찬경은 현대미술 담론을 위한 모임 ‘포럼에이’를 결성하고, 대안 공간 풀 설립 멤버로 참여했다. 서울대학교 서양화과와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원(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 사진학과를 졸업했으며 2011 베를린 국제영화제, 2011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2009 국제실험영화제, 2008 오버하우젠 국제단편영화제 등 다수의 국제영화제에 출품해 수상했다. 2004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을 수상하고, 2014 미디어시티서울의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에디터 안미영(myahn@noblesse.com)
백아영(프리랜서)  사진 김제원(인물, 작업실)  사진 제공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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