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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24

미지의 개척자

당돌한 이야기로 신선한 느낌을 주는 영화감독과 독특한 매력으로 무대를 평정한 10대 모델.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길, 새로운 미래.

발칙한 이야기꾼, 영화감독 정가영
가영은 시나리오 자료 조사를 핑계로 술자리에서 한번 본 남자 진혁을 불러낸다. 마스터베이션, 첫 경험 등 수위 높은 질문을 던지던 가영은 “오빠랑 자는 건 불가능하겠죠?”라며 진혁을 유혹한다. 과연 두 사람은 뜨거운 밤을 보냈을까? 이는 정가영 감독의 2017년작 <밤치기>의 줄거리다. 남녀 간의 대화가 주를 이루는 이 작품엔 묘한 성적 긴장감이 흐른다. 여주인공의 당돌한 언행은 보는 이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지만, 이내 그 발칙하고 사랑스러운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어릴 적 정가영은 <출발! 비디오 여행> 같은 TV 프로그램을 만드는 PD가 되고 싶었다. 한때 소설가나 싱어송라이터를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영화 감독의 길을 택했다. “글이나 노래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거나 들려줘도 별다른 피드백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영상을 찍어서 보여주면 제법 반응이 좋았어요.” 2014년 ‘올레국제스마트폰영화제’에서 단편 <혀의 미래>로 비퍼니상을 받고, 2015년 작 <내가 어때 ㅎㅎ>가 ‘대단한 단편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등 만드는 작품마다 족족 성과를 냈다. 이러한 보상은 그녀가 다음 영화를 찍는 원동력이 됐다.
정가영은 멜로 영화를 찍는다.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 인상 깊게 본 영화 등 일상에서 영감을 얻는 그녀에게 사랑과 연애는 가장 익숙하고도 흥미로운 소재다. 하지만 멜로 영화라고 해서 마냥 포근하고 달콤한 느낌은 아니다. <비치온더비치>, <밤치기> 등 그녀의 대표작은 ‘색드립’의 향연과 욕망의 솔직한 발현이 돋보인다. “사실 영화를 일부러 야하게 만들려고 하지는 않아요. 성에 대한 이야기는 등장인물 간의 적절한 긴장을 유도하는 장치죠.” 그녀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또다른 특징은 여성이 남성에게 먼저 ‘수작’을 건다는 거다. “그러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이 그런 얘기를 하면 더 재미있잖아요. 그리고 기존 영화에서 남성을 유혹하는 여성 캐릭터는 대체로 평면적이고 소모적인 역할에 그쳤는데 저는 매력 있으면서 똑똑한, 남성을 성적으로 주도할 줄 아는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러한 역할은 감독 스스로 담당한다. 연출과 연기를 겸하는 것이다. “연기를 하는 게 재밌어요. 또 어찌 보면 영화 속 여주인공은 제 판타지를 투영하는 존재거든요. 이는 제가 제일 잘 표현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죠.”
이렇게 발칙한 그녀의 영화를 모두가 반긴다면 거짓말이다. 영화를 보러 온 중장년층 관객이 중간에 자리를 뜨고, 감독과의 대화 자리에서 그녀에게 따지듯 달려드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신선한 이야기는 어느 정도 불편함을 수반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제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보기 힘들 수도 있죠. 그래서 끝까지 작품을 봐주신 분들께 감사해요. 불편한데도,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주신 거니까요.” 최근 그녀는 <밤치기>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비전 감독상을 받고,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며 감독 데뷔 이래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신선함으로 무장한 그녀의 작품을 찾는 사람이 이처럼 늘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모델, 한현민
국내 1호 흑인 혼혈 모델 한현민. 그는 한국인 어머니의 아름다운 눈과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의 다부진 체격을 물려받았다. 190cm의 큰 키와 곱슬머리, 까만 피부가 그의 트레이드마크. 멀리서도 눈에 띄는 이국적인 외모는 어릴 땐 놀림거리였지만 모델로 활동하는 지금은 가장 큰 무기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그의 나이는 고작 열여덟 살. 데뷔 2년 만에 국내의 주요 패션 무대를 섭렵한 그는 지난겨울 미국 <타임>에서 ‘2017년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로 선정되기도 했다.
야구 선수를 꿈꾸던 그가 모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여느 10대와 다르지 않았다. “중학교 때 함께 운동하던 선배가 모델 에이전시에 들어갔어요. 그래서 자연스레 모델이란 직업에 호기심이 생겼죠. 마침 제가 그 선배랑 체격이 비슷했거든요. 패션에도 관심이 있었고요.” 그렇게 유튜브에서 패션쇼 영상을 보며 워킹 연습을 하고, 피팅 모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찍은 사진 등을 SNS에 올리며 모델을 꿈꾸던 그를 알아본 건 현재의 소속사 대표였다. “제 사진을 보고 회사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어요. 그런데 이태원 한복판에서 만나자마자 대뜸 걸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했죠." 더 놀라운 건, 길거리 캐스팅 후 단 2주 만에 ‘2016 F/W 서울패션위크’ 한상혁 디자이너의 오프닝 무대에 올랐다는 사실. “디자이너와 만나기 전엔 패션쇼 무대는커녕 그의 옷을 걸쳐볼 수만 있어도 영광이라고 생각했어요. 한데 저를 좋게 봐주셨고 실제로 무대에도 설 수 있었죠. 많이 떨렸지만 제 나름 성공적인 무대였다고 생각해요.” 데뷔 무대부터 강렬한 존재감을 뽐낸 그를 찾는 사람은 점점 많아졌다. 패션 행사와 화보 촬영, 인터뷰 등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10월 열린 ‘2018 서울패션위크 S/S’의 20개 무대에 올랐다. 영국 BBC는 그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밀착 취재까지 했고, 지난 12월부터는 tvN의 예능 프로그램 <나의 영어 사춘기>에 고정 출연하며 TV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한현민을 더욱 응원하게 되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커리어만을 따지며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다문화 인식 개선 홍보대사’로 임명된 그는 한국의 다문화 가정 자녀를 대표하는 아이콘 역할을 하고 있다. “어릴 적 차별이나 편견으로 상처받기도 했어요. 그럴때마다 어머니께선 제가 특별한 존재라고 위로해주셨죠. 그 말이 큰 힘이 됐습니다. 이젠 제가 저 같은 혼혈 친구들에게 그 말을 전할 차례라고 생각해요.” 롤모델로 미국의 인권 운동가 마틴 루서 킹을 꼽은 그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엔 아직도 다문화 가정 자녀에 대한 편견이 있는데, 하루빨리 이런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또 제가 성공해 다른 혼혈 친구들에게도 뭐든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어요.” 나이에 맞지 않게 성숙한 생각과 유의미한 목표를 지닌 한현민. 그가 꿈꾸는 미래가 그로 인해 앞당겨지고 있다.

 

에디터 황제웅(hjw1070@noblesse.com)
사진 김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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