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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25

취향의 흐름

아티스트 박규리를 만났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오롯이 자기만의 색깔을 낼 수 있는 지점에 이른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개인 계정(@kellyparkstudio)를 통해 그녀만의 드로잉과 서체를 담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특유의 드로잉 기법을 선보이며 패셔너블한 여성에게는 켈리박 스튜디오의 백과 평창 운동화, 다양한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 작업으로 잘 알려진 아티스트 박규리. 인터뷰 전 소셜 계정을 통해 들여다본 그녀의 인상은 본인의 드로잉만큼 모던하면서 정갈한 이미지였다. 일상의 장면에 달린 소소한 텍스트에도 거칠거나 장난스러운 문구는 없다. “행복한 기운이 상대방에게도 물들길 바라는 마음에 ‘행복해요’라고 대답한다”라거나 “초라하지 않은, 건강하고 인자하고 단단한 그리고 아름다운 할머니가 내 꿈이라면 꿈이다” 같은 단정하고 착한 소회를 풀어놓았으니. 하지만 에디터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결코 무르지만은 않은 강단을 느꼈다. 그녀의 작품에서도 배어나는 팝적인 느낌이랄까. 실제로 만난 그녀는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대사만으로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듯 인터뷰를 통해 모두 드러내진 않아도 생글거리는 눈빛과 쿨한 애티튜드 곳곳에서 그녀만의 이야기가 엿보였다. ‘박규리’라는 컬러로 삶을 살아가는 그녀의 뷰티 라이프스타일을 들어보았다.











데무와의 협업을 준비하며 자신의 에스키스를 그려 넣은 드레스 셔츠를 입고 카메라 앞에 앉았다. 골드 브레이슬릿 Monica Vinader.

누군가에겐 캘리그래퍼, 누군가에겐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어요. 하나로 규정하기 힘들 만큼 다양한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로서 본인에 대해 소개한다면요? 정확히 말하면 전업 작가예요. 도예를 전공했고, 디자인 관련 일도 했죠. 그런 경험 덕분에 현재 개인 작업을 하면서도 상업적 아이템과 여러 컬래버레이션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뷰티 브랜드 중에는 토니모리와 협업한 적이 있고, 곧 강남대로에 오픈하는 미샤 플래그십 스토어와 관련한 작업도 하신다고 들었어요. 개인 작업과 협업 중 어느 쪽이 더 재미있나요? 둘 다 재미있어요. 일장일단이 있긴 하죠. 브랜드와 정말 잘 맞으면 마치 제 작업을 하는 것처럼 신나는데, 뭔가 조율할 게 많은 경우에는 프로젝트 내내 걱정이 되죠. 개인 작업은 완전히 제 자유고, 누군가에게 판매하려는 목적도 없으니 그야말로 순수 창작 활동이에요. 그래서 커머셜 작업을 하다 개인 작업을 하면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해요. 그렇게 개인 작업을 하며 커머셜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요.

본인에 대해 스스로 정의해본다면요? 남들은 제가 참하고 단아한 이미지라고 말하곤 해요. 하지만 제 안에는 끓는 듯한 에너지가 많다고 생각해요. 변화무쌍하고 종잡을 수 없는 사람. 그런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이런 작업을 하며 살 수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남들 눈에 보이는 이미지에 맞추려 했다면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거나(그녀는 촬영 전 원하는 헤어 텍스처를 위해 헤어를 잘라도 된다고 말했다) 예전에 했다던 펑키 웨이브 같은 헤어를 시도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주로 어떤 메이크업을 시도하나요? 이목구비가 입체적인 편은 아니라 색조 화장이 썩어울리진 않아요. 그래서 보통은 누디한 톤을 즐기고, 기분을 좀 내고 싶은 날에는 언더까지 블랙 아이라인을 채워 넣어요. 그래픽적인 아이라인을 시도하기도 하고요.

평소엔 립밤 외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는 타입인 것 같아요. 립밤과 레드 오렌지 톤의 샤넬 루쥬 알뤼르 하나면 돼요. 평소에는 손가락으로 톡톡 혈색만 얹고, 미팅이 있는 날에는 거기에 좀 더 색을 올리고, 뭔가 색다른 스타일을 시도하고 싶은 날에는 입술을 꽉 채워 바르죠.

심플함을 추구하는 이들은 대부분 이미 많은 것을 경험해본 경우가 많아요. 맞아요. 20대에는 여러 브랜드의 VIP였을 정도로 제품을 많이 구입했어요. 사실 당시 의류 사업을 했거든요. 나이에 비해 많은 돈을 벌어들이기도 했고, ‘보여지는’ 일을 하다 보니 좋다는 제품을 걸쳐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던것 같아요. 그런 것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었다면 의류 사업도, ‘보여지는’ 라이프스타일도 계속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는데, 전 그런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제 의상 셀렉션도 점점 보편적 아이템으로 변질되어갔고요.

그런 시행착오가 있었기에 지금 더 소신 있는 작업을 하게 된 것 아닐까요? 당시에는 옳다고 생각해 선택한 방법이지만 결국 흔들린 거잖아요. 더 많은 이들에게 어필하지 못한다 해도 소신 있게 제 색깔을 지켰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요. 지금도 제 작업 방향에 대해 주변에서 많은 말이 들려요. 그런데 그런 경험 때문인지 지금은 흔들리지 않아요.

많은 화장품을 경험해봤으니 늘 사용하는 스킨케어 제품에도 결국 취향이 남았겠어요. 20대에는 남들이 좋다는 크림을 무조건 사서 발랐어요. 그런데 그때는 피부에 뾰루지만 생길 뿐 왜 좋은지 모르겠더라고요. 남들이 좋다는 것보다 나에게 잘 맞는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죠.

그래서 선택한 스킨케어 제품은 뭔가요? 이솝의 스킨케어 제품을 좋아해요. 솔직히 드라마틱한 개선 효과는 없어요. 그런데 어떤 문제도 생기지 않아요. 마치 탄산음료처럼 순간적인 청량감보다는 생수같은 편안한, 그런 사용감이 만족스러워요.

향수도 강한 향은 그리 선호하지 않겠어요. 잔향이 좋은 샤넬 알뤼르도 좋아하고, 조 말론 런던 피오니 앤 블러쉬 스웨이드 향도 좋아해요. 아주 여성적이기보다는 중성적인 느낌에 여성스러운 느낌을 살짝 더했거든요.

새로운 뷰티 제품을 선택할 때 기준 같은 것이 있나요? 제일상 자체는 점점 단순해지는데 생각은 더 복잡해지고 있어요. 요즘은 뷰티 제품을 쇼핑할 때도 생각이 많아요. 확실히 이전보다 성분을 따지게 됐고, ‘이 제품이 나와 오래 함께할 수 있을까’, ‘내 공간에 두어도 지루하거나 거슬리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제품에 담긴 크리에이터의 철학도 많이 들여다보게 되고요.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불규칙한 일상을 통해 결심한 것이 채식이에요. 원래 고기를 좋아하는데, 처음에는 비건을 실천했어요. 하루만 시도해도 되니 ‘비건 놀이’라 생각하고 해보자 했는데, 그래도 3개월이나 유지했어요.주식은 거의 고구마와 감자, 찐 양배추에 으깬 두부와 섞은 현미밥이었어요. 몸이 정말 가벼워지더라고요.

지금도 유지하고 있나요? 문제는 사람을 만날 수가 없더라고요.(웃음) 그 후 지금까지 1년 정도 베지테리언으로 지내고 있어요. 고기를 먹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조미료가 든 음식도 덜 섭취하게 되고, 단순한 조리법으로 만든 음식을 즐길 수 있게 됐어요. 비건은 3개월밖에 하지 않아 잘 모르지만 당시 피부가 윤기 없이 푸석해지는 것이 고민이었어요. 지금은 다행히 그런 문제는 없어요.

삶의 복잡함과 단순함 사이를 적절히 오가는 것 같아요. 제 삶의 키워드가 밸런스예요. 나이가 들어도 내 생각, 내 경험에 갇히지 말고 중심을 잘 잡고 싶어요. 아티스트로서도 그저 옳은 가치를 추구하며 제가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나이 들고 싶고요. 가방 디자인을 하게 된 것도 판매보단 개인이 원하는 이미지를 그려 넣은, 세상에 하나뿐인 가방을 만들고 싶어서였죠. 그럼 그 가방을 드는 사람도 아무리 낡고 해져도 버리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또 다른 꿈이 있다면요? 소박하지만 궁핍하지 않고, 세련미를 추구하지만 차갑지 않고, 주변에 좋은 에너지를 나눠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거요. 나중에 백발 할머니가 되어도 TV 드라마 얘기만 하지 말고, 그림과 글로 내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에디터 이혜진(hjlee@noblesse.com)
사진 박지홍   헤어 & 메이크업 제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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