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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24

Lady Avant-garde

두 여인에게 배운다. 행복한 일상을 만드는 급진적 라이프스타일 레시피.

마시모 모로치가 디자인한 수페르온다 위에 앉아 같은 아키줌의 멤버 길베르토 코레티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로베르타 멜로니.

혁신과 긍정의 에너지
로베르타 멜로니(Roberta Meloni)
꽃의 도시라 불리는 이탈리아 피렌체는 특별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 인간의 본성을 억누르며 엄격한 종교의 틀에 예술을 가둔 중세에 인간 중심의 찬란한 르네상스를 태동시킨 이곳. 하지만 좀 더 가까운 1960년대와 1980년대 사이에도 같은 힘이 작동했다. 20세기 초 효율성을 앞세워 등장한 독일 기능주의에 사람들이 지쳐갈 무렵, 기계화와 산업화에 인간성이 잠식되는 것을 거부하며 감성을 전면에 내세운 전위적 디자인이 이 땅에서 오색창연한 꽃을 피웠다. 인류가 본연의 색을 잊고 관념에 빠질 때마다 피렌체는 사고의 축을 인간으로 돌려세웠다. 이 휴머니즘 에너지 충만한 시기에 유년과 청춘을 보내며 피렌체의 특별한 DNA를 흡수한 두 여인. 나이를 잊은 에너지와 열정으로 일상을 행복으로 채우는 이들의 지혜로운 삶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1 꽃처럼 아름다운 조명, 폴트로노바 파시플로라(Passiflora, 1968년)의 2017년 화보.
2 아방가르드 디자인의 또다른 걸작, 에토레 소트사스의 조명 거울 울트라프라골라.

디자인사에서 르네상스에 비견되는 198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최근 들어 패션과 디자인 분야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운동을 선도한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와 그가 창립한 멤피스(Memphis)의 패턴과 디자인이 부활하고 있다. 덧붙여 데이비드 보위의 주요 컬렉션에 포함된 멤피스 그룹의 가구가 조명을 받고, 칼 라거펠트 등 유명인사가 이를 대거 구입하면서 이른바 디자인 휴머니즘 시대를 밝힌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관심이 대두되는 상황. 하지만 이 디자인 운동의 씨앗을 뿌린 곳이 피렌체라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1960~1980년대에 소트사스는 피렌체의 젊은 건축가와 함께 인본주의적이며 급진적인 디자인 실험을 시작했고, 이후 밀라노로 옮겨 포스트모더니즘을 완성했다. 그 실험과 변화의 중심에 한 브랜드가 있다. 폴트로노바(Poltronova). 소트사스는 폴트로노바의 총괄 디렉터를 맡아 불가능해 보이는 구조와 형태를 구현하는 실험을 벌였다. 가구에 대한 통념을 전복시킨 그의 급진적 디자인은 사람들을 충격과 환희에 빠뜨렸다. 작고 전통적인도시에서 탄생한 디자인의 꽃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당시 대중을 열광시킨 비틀스와 롤링스톤스의 음악처럼 자유롭고 대중적인 디자인 시대를 새롭게 여는 서막이었다.






1970년 데파스 두비노 로마치가 디자인한 조 체어(오른쪽)와 이를 재해석한 조 블룸 리미티드 에디션(2017년).

로베르타 멜로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원과 함께 태동해 약 60년간 역사를 이어온 폴트로노바의 수장이다. 피렌체에서 성장한 그녀는 피렌체 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던 시절 폴트로노바의 창립자 세르조 캄밀리(Sergio Cammilli)를 지도 교수로 만났고, 운명처럼 이 브랜드와 스토리에 빠져들었다. 50대의 그녀에겐 좀 더 앞선 세대의 흔적이었다. “아방가르드 디자인은 단순히 형태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큰 가치가 있어요. 다른 어떤 세대보다 급진적이고 진취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죠. 그런 면에서 이후의 디자인보다 앞서 있다고 생각해요. 저에게도 그 에너지를 전염시켰죠.” 세르조 캄밀리를 따르며 시대를 변화시킨 디자인의 주역과 친분을 쌓은 그녀는 이들이 만든 새로운 시대의 에너지에 동조되었다. 브랜드의 시작과 더불어 전설적 아트디렉터 역할을 한 에토레 소트사스, 피렌체를 중심으로 한 아방가르드 디자인 & 건축가 그룹 아키줌(Archizoom)과 데파스 두비노 로마치(De Pas, D’Ubino Lomazzi), 수페르스투디오(Superstudio)와 교류하며 디자인 거장으로 성장하는 그들의 삶을 목격한 특별한 경험이 그녀의 인생을 변화시켰다. 회사의 차기 대표를 맡아 사업을 이끌어가는 것뿐 아니라 그 역사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데 일생을 바치게 된 것. 2005년에 브랜드 연구 센터, 첸트로 스투디 폴트로노바(Centro Studi Poltronova)를 설립한 연유도 여기에 있다. “아방가르드 디자인은 대다수가 너무 급진적이어서 컨셉으로만 남고 실현되지 않았어요. 폴트로노바의 창업자 세르조 캄밀리는 예술대학을 나온 예술적 사고가 충만한 사람이었기에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데 최선을 다했죠. 덕분에 이런 제품을 볼 수 있는 드문 브랜드예요.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실험과 제안이 미완으로, 파일첩의 자료로 남아 있죠. 이 귀중한 자산을 후세에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생겼어요. 제 건축 작업보다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했죠.”






아방가르드 디자인이 시대에 맞춰 적절하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2017-2018 시즌 수페르온다 소파 화보.

첸트로 스투디 폴트로노바를 통해 로베르타 멜로니는 주기적으로 책을 펴내고 있다. 시대가 지나도 인간이 잊지 말아야 할 휴머니즘과 실험정신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2007년에 진행한 <수페르아르키테투라(Superarchitettura)> 전시는 제 인생 최고의 수확이에요. 1966년 아키줌의 전시를 동명으로 재현해냈죠.” 아방가르드 디자인을 선도한 이들의 삶과 생각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큰 교훈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 그러나 전시장에 갇힌 교육적 모델로 기능하길 원하는 것은 아니다. “아방가르드 디자인은 현재성을 기반으로 한 휴머니즘, 자유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는 디자인으로 미술관에만 전시하는 것은 애초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생각해요. 시대에 맞게 소재와 감성을 변화시켜 새로운 세대와 소통해야 하죠. 특히 가구는 하나의 생명체로 일상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오브제이기에 그 역할이 더욱 중요해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그녀는 반세기 전의 제품을 새로운 에디션으로 선보이며, 당시 화보 또한 현대적 감각을 가미해 새롭게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라크 출신 건축가 후세인 하바(Hussain Harba)와의 협업으로 브랜드의 대표작 ‘조(Joe)’에 화사한 꽃 패턴을 더한 ‘조 블룸(Joe Bloom)’을 발표했고, 올해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서는 출시 50주년을 맞이한 ‘수페르온다(Superonda)’를 새롭게 재탄생시켜 소개할 예정이다.
늘 호기심 가득한 형형한 눈빛으로 상냥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녀에게 낙천적인 삶을 이어가는 비결을 물었다. “저는 행복한 일을 하기 때문에 바빠도 행복해요. 좋아하는, 또 아름다운 물건에 둘러싸여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 때문에 즐거워요. 운이 좋은 거죠. 아방가르드 디자인 시대에 비해 사람들이 덜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복잡하게 변하는 사회 시스템에 적응하려 애쓰는 만큼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또 무엇에 둘러싸여 있을 때 즐거운지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자신의 행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아는 것이에요.”











크리스티나 모로치.

스스로 빛나는 정체성
크리스티나 모로치(Cristina Morozzi)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패션학교 마란고니의 디자인 교육 학장이자 CM이라는 이니셜만으로 모두가 알아보는 디자인 전문 기자, 큐레이터, 평론가. 이탈리아 디자인계의 명사인 크리스티나 모로치는 피렌체 아방가르드 디자인 시대에 그 중심에서 그것을 목도하고, 동참한 히로인이다. 아키줌 멤버 마시모 모로치(Massimo Morozzi)와 고등학생 시절 만난 크리스티나는 현재는 고인이 된 남편이자 당시 남자친구에게 이끌려 에토레 소트사스, 안드레아 브란치, 알레산드로 멘디니 등과 어울리게 되었다. 이들의 실험과 일종의 ‘놀이’가 새로운 문화 흐름이 되어 세계로 번져나가는 것을 초기부터 자연스럽게 지켜본 그녀는 이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피렌체 대학교에서 철학과 심리학을 공부한 뒤 자신만의 관점으로 디자인을 관찰하며 기자로서 디자인계에 발을 들인 그녀. 패션 디자인 잡지 <모도(Modo)>의 기자와 편집장을 거쳐 20여 년간 디자인 전문지 <인테르니(Interni)>의 대표 저술가로 활약하며 탁월한 필력과 분석력을 발휘했다. 현재는 디자인, 건축, 예술, 패션을 망라한 문화적 식견을 갖춘 전문 기자이자 컨설턴트로서 독보적 입지에 올라 있다. 6개월 전 출간한 <디자인은 심각한 것이 아니다(Il design non e‵ una cosa seria)>라는 책을 통해 피렌체에서 태어나 디자인 격변기를 거치며 성장한 자전적 스토리를 소개했다. 일상에서 벌이는 도전과 실험이 혁신적 변화를 이끌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한 것.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아방가르드 디자인은 세계 디자인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목표로 시작한 건 아니에요. 스스로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탐구에서 비롯됐죠.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었어요. 주변의 친구들과 농담을 나누며 함께 웃고, 밥을 나눠 먹고, 여행을 하면서 같이 고민해온 결과죠. 초창기 아방가르드 디자인의 대표작 ‘수페르온다’와 ‘미에스(Mies)’는 피렌체에서 시작한 제 신혼 생활의 첫 가구였어요. 아이들이 이 의자를 타고 놀며 자랐고, 집 근처 언덕에서 전설적 화보도 탄생했죠. 최근 아방가르드 디자인이 주목받는 것은 인간적인 것에 대한 향수라고 생각해요.”






3 <모도>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하던 때의 크리스티나 모로치(1977년,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4 아방가르드 디자인 운동 당시 모로치 커플(1969년). 크리스티나는 고등학생, 마시모는 건축과 대학생이었다.
5 자서전 <디자인은 심각한 것이 아니다>.
6 런칭 50주년을 맞아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제작한 폴트로노바의 수페르온다. 크리스티나 모로치가 남편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핑크색에 도트 무늬 패턴을 디자인했다.

시대를 바꾼 급진적 변화가 인간의 내면과 일상에서 비롯됐기에 사람들에게 더 큰 울림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는 것이 그녀의 말이다. 일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녀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지중해 색채로 집을 꾸미고 컬러풀한 의상을 우아하게 매치하는 세련된 패셔니스타인 그녀에겐 남다른 지론이 있을 것 같았다.“사람들이 옷을 입고 집을 꾸미는 것은 매우 중요한 행위고, 이러한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 또한 상당히 중요한 일이에요. 자신을 둘러싼 일상을 통해 본연의 정체성을 가꿔나가는 것은 자아를 탐구하고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기술이죠. 브랜드나 트렌드가 아니라 자신의 취향을 발견해야 해요. 저는 컬러풀한 것에서 즐겁고 행복한 에너지를 얻죠. 무채색의 주거 공간은 영혼에 해롭다고 생각해요. 회색 공간에서 자란 사람과 밝고 경쾌한 색상의 공간에서 자란 사람은 분명 성격이 다를 거예요.” 세계적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의 제일 앞자리에 초대받는 패션계 명사로, 2017년 F/W 시즌에는 60대의 나이로 이탈리아 브랜드 안토니오 마라스(Antonio Marras)의 패션쇼 모델로도 등장한 그녀지만 뜻밖에도 명품만 고집하지 않는다.






7 안토니오 마라스 2017년 F/W 런웨이에 선 크리스티나 모로치.
8 크리스티나 모로치의 남편 마시모 모로치가 디자인한 미에스 소파. 집 앞의 언덕에서 1960년대 아방가르드 디자인의 대표적 이미지로 남은 이 화보를 촬영했다.
9 트로피컬 컬러로 꾸민 크리스티나의 리빙 룸.

“사람들은 제가 H&M이나 자라(Zara)에서도 옷을 산다는 것을 잘 몰라요. 물론 명품 브랜드의 한정판도 즐겨입죠. 브랜드보다는 내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가 중요하죠. 새로운 시도도 필요해요. 삶이 멈춰 있지 않으니 시대에 따라 일상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또 즐거운 일이어야 하죠.” 마란고니 외에 도무스 아카데미 등 이탈리아의 여러 디자인 학교 교단에서 다양한 국적의 학생을 가르쳤고, 지금도 후진 양성에 기여하고 있는 그녀에게 지금의 젊은 세대와 아방가르드 시대를 이끈 피렌체 젊은세대의 차이점에 대해 물었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저는 가끔 요즘 젊은 세대는 디지털과 SNS의 영향으로 이전보다 인간관계가 좀 더 표면화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날로그 시대를 거친 제 경우 SNS로 관계를 맺은 친구와 실제로 친한 지인이 구분되는데 현재 20대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인간관계는 직접 깊은 소통을 나눌 때 그 가치가 빛나는데 사회 변화로 인해 이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드는 게 아닐까 싶어요. 지식도 마찬가지예요. 위키피디아로 찾은 것이 진리가 아니고, 디지털화되지 않은 기록 중에 더욱 값진 것이 많죠. 과거에는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외엔 정보를 찾기 힘들었지만 그 덕에 매 순간 더 생생하고 깊이 있는 경험을 했어요. 친구들과 함께 놀고,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으면서 현실적 경험을 공유했어요. 지금도 여전히 모험을 즐기며 항상 자신 있게 세상에 나서죠. 자신감은 나를 분명히 하는 것에서 시작해요. ‘좋다’, ‘싫다’, ‘예쁘다’, ’아니다’를 분명하게 말하는 것도 자신감에서 비롯하죠. 새로운 시대에 맞춰 변화해야 하겠지만 스스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도 행복을 위해 매우 중요해요. 결국 우리는 모두 인간이니까요.”

 

에디터 이재연(jyeon@noblesse.com)
여미영(D3 대표)   사진 신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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