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orning 11:30 - 노블레스닷컴

Latest News

    FEATURE
  • 2018-04-30

Sunday Morning 11:30

세상에서 한발 비껴선 김민준의 느릿한 일상에 대해.

코튼 소재 니트 스웨터 Roberto Collina by Artage.

성수동 거리를 걷다 보면 그를 만난다. 헝클어진 머리에 구김 잡힌 셔츠를 입고, 샌들을 구겨 신은 그를. 네 살 된 진돗개 마루를 산책시키거나 카페테라스에 앉아 있는 김민준을. 그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가 스타의 오라가 없다거나 평범해 보여서가 아니다. 남을 의식하지 않는 여유로운 몸짓과 느릿한 걸음, 태연한 눈빛의 자연인 김민준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그는 잠정적 휴업 상태다. 숨 가쁘게 지나온 20~30대의 일상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잉여로운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긴장을 풀고 멀리 보며 계절이 변하는 걸 느끼는 시간. 그는 삶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추렸다. 자신만의 공간과 삶의 동반자,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 같은 것이 남았다. 일을 멈추고 성수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생을 함께할 반려견 마루를 입양하고 느릿한 생활에 돌입했다. 그렇게 꼬박 4년을 자신에게 집중했다. 그렇게 40대가 됐고 이젠 자신과 세상을 조금 더 편안하게 대할 수 있게 됐다. 촬영장에선 그에게 ‘일요일 오전 11시 30분 같은 느슨함’을 요구했다. 편안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담고 싶었다. 그는 태연히 “이미 몇 년째 그 상태로 지내고 있어요”라며 웃고 능숙하게 앵글 속에서 컷을 만들어나갔다. 김민준은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대중과 만나는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었다. 그 신선한 경험은 그에게 세상에 나올 단초를 제공했다. 매년 마루와 떠나는 전국 여행을 끝내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세상에 나올지도 모른다. 지금 그는 이상과 현실, 일과 여가 사이의 적절한 타협점을 찾고 있다.











프린트 셔츠 Salvatore Ferragamo, 하이웨이스트 와이드 팬츠 Emporio Armani.

일요일 오전 11시 30분엔 주로 뭘 하나? 한창 자고 있을 시간 같은데.(웃음) 마루와 산책을 하고 있거나 커피를 내리고 있겠지. 요샌 비슷하게 흘러간다.

TV 속 김민준은 유유자적 사는 것 같다. 반복되는 일상이다. 안부를 묻는 친구들에겐 농담처럼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염세적으로 들리겠지만 반 정도는 진심이다. 이제 인생의 절반을 지나왔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죽느냐가 근래의 고민거리다.

이제 갓 마흔을 넘겼다. 당장 코앞에 닥친 일은 아니지만 시간이 워낙 빨리 흐른다. 스티븐 호킹이 말한 ‘시간의 화살’ 같은 개념이랄까. 뇌가 시간의 속도를 착각하는 것 같다. 20~30대의 하루와 근래 하루의 길이가 다르다. 앞으론 더욱 가속이 붙을 텐데, 정돈이 필요하다.

김민준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 치열한 시기는 아니다. 얼마 전까진 공중에 붕 떠 있었다. 요샌 그나마 바닥에 내려와 두 발로 땅을 딛고 있다. 한마디로 잉여의 시간이랄까. 에너지를 비축하거나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냥 흘러가게 놔두고 있다.

작품이 뜸한 건 본인의 선택 아닌가? 내가 선택한 것도 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여기로 흘러온 것 같다. 전에 쉰다는 건 일이 없는 중간의 틈을 말하는 거였다. 지금은 이전 생활과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제는 타인의 영역을 쳐다보는 느낌이다. 4년 정도 이렇게 지냈다.

연예계를 말하는 건가? 엔터테인먼트나 패션업계 모두. 전엔 나도 그 비즈니스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제나 패션 위크 같은 이벤트도 이젠 나와 완전히 다른 세계의 이야기 같다. 신기하기도 하고, 전에 어떻게 일했나 싶다.

그 ‘타인의 영역’에 속해 있을 땐 어땠나? 자신도 한 부분이라고 느꼈을 때. 재미있었다. 치열했고. 그러다 어느 순간 벽에 부딪혔다. 내가 좋아하는 일, 추구하는 가치가 시장의 논리와 맞지 않더라. 내겐 작품의 철학이나 미장센이 중요했다. 치열하게 끝까지 밀어붙이는 열정 같은 것도. 그런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난 요새도 하루에 영화 서너 편씩 본다. 그토록 좋아하는 내 일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런 괴리감이 쌓였다.

그래서 지친 건가? 잉여의 시간이 탄생한 계기도 피로와 괴리감 때문인가? 영향이 있겠지. 이상과 생업이 같은 맥락에 있으니까. 그런 데서 염증을 느꼈다. 참여하는 작품 속에서 치열하게 해보고 싶었다. 배역과 물아일체가 되는 경험이 내게 희열을 준다. 좋은 작품과 아닌 것의 차이는 거기서 온다. 관통하는 이야기의 힘은 캐릭터에서 생성된다. 그 작업이 생략된 경험이 쌓이면서 좀 지쳤다.

최근 본 영화 중 기억에 남는 캐릭터는 무엇인가? 좋아하는 영화는 반복해서 본다. 어제는 코언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네 번째 봤다. 캐릭터의 디테일이 살아 있다. 가령 우디 해럴슨은 전쟁에 참전한 전직 레인저일 것이다. 실전 경험이 풍부한 엘리트 킬러, 그 자신감이 곳곳에서 보인다. 하비에르 바르뎀은 미국인이 아닐 거라 생각한다. 우디 해럴슨이 겪어보지 못한 지옥 속에서 엄청난 것을 보고 온 살인귀다. 네팔 구르카 용병 같은. 그래서 당혹스러웠을 거다.

작품에 들어갈 때 이런 이야기를 자주 나누나? 자주 하는 편이다. 그래서 싸우는 경우도 많다.(웃음) 열정적으로 생각하고 함께 토론하는 감독도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요샌 개봉이 목표가 아닌 영화도 여럿 제작한다. 영화관에 걸리지 못해도 IPTV라는 차선책이 있으니까. 열악한 환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경우 종종 적당히 만들려 하는 자세가 문제다. 그럴 땐 자존심이 상한다. 끝까지 치열하게 해봐야 하는데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작업의 일부가 되는 게 싫다.











옐로 풀오버 니트 Hugo Boss Men, 와이드 팬츠 Giorgio Armani.

작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것 같다. 그러면 좋은데, 그게 어렵다. 한국 영화 시스템은 이름 있는 배우도 제작 단계부터 참여하는 경우는 드물다. 심도 있는 캐릭터가 탄생하기 위해선 배우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시스템도 문제지만 배우들의 생각도 바뀔 필요가 있다. 할리우드에선 배우로서의 위상이나 배역 비중에 관계없이 좋은 작품이면 참여한다. <언터처블>을 보면 앤디 가르시아라는 엄청난 배우가 단역으로 출연하지 않나. 일본도 마찬가지고.

좋은 작품이라면 작은 배역이라도 괜찮다는 의미인가? 난 실제로 그런 작업을 많이 했다. 이현승 감독의 <푸른 소금>이나 곽경택 감독의 <사랑>이 그랬다. <사랑>은 책이 돌기도 전에 먼저 입수해 읽곤 생면부지의 감독을 찾아갔다. 작은 배역이라도 꼭 참여하고 싶다고 해서 치권 역을 맡았다.

필모그래피가 꽤 쌓였다. 김민준은 아직 소모됐다는 느낌이 없는 배우다. 경력에 가속도가 붙으면 그런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레퍼런스는 되도록 피한다. 외모 때문인지 전형적 배역이 자주 들어온다. 좋은 집안에서 교육 잘 받은 의사나 대기업 실장, 변호사 같은 역할. 그런 빤한 캐릭터를 연기할 자신이 없다. 예측 가능한 연기를 하는 게 더 어렵다. 난 작품에서 일반적 언어조차 사용하려 하지 않는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어도 전혀 다른 인물이 나온다. 그런 상식이 배제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어렵다.

TV 속 김민준의 삶은 화려하다. 잘 꾸민 집과 DJ, 캠핑 같은 취미, 확고한 라이프스타일 같은 것.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내 삶을 보여주는 건 괜찮았다. 지금은 쉬어가는 중이니까 다 내려놓은 모습이 재미있게 보였나 보다. 그런데 단적인 부분만 부각될까 염려스러웠다. 성수동으로 오기 전 두 차례 아파트 생활을 했다. 개성 없는 같은 구조 속 삶이 생각보다 끔찍했다. 층간 소음 같은 문제도 답답했고. 그래서 지금의 집으로 옮겼다. 집을 정돈하며 남들처럼 비용 같은 현실적 고민을 했다. 그래서 직접 손본 부분이 많다. 캠핑 카라반도 중고로 구입해 2주 동안 직접 수리했다. 겨우 쓸만한 상태가 됐다. DJ는 정말 좋아하는 취미일 뿐이고. 예능 프로그램이 조금 더 긴 호흡이었다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남자라는 걸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음악은 계속 하고 있나? 정말 좋아하는 거라 여전히 많이 듣는다. 다만 더 이상 DJ로 무대에 서지는 않는다. DJ를 시작한 건 순수하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같이 듣고 싶어서다. 그런데 판이 커지고 찾는 곳이 많아지니 일처럼 됐다. 클라이언트의 요구대로 음악을 틀다 보니 내 음악과 유행하는 것 사이의 변별력이 사라졌다. 그래서 이태원에 클럽을 차린 거고. 돈도 많이 까먹었다.(웃음)

배우로 살며 반려견을 키우는 게 쉽진 않을 것 같다. 서울은 내 고향이 아니라 동반자가 필요했다. 처음엔 마루를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전부였다. 덕분에 조금 덜 게을러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역전됐다. 마루가 있어 내가 최소한 인간처럼 살 수 있다. 혼자 있을 땐 수면과 식사 시간이 불규칙적이었다. 이젠 마루에게 밥을 줘야 하니 자연스레 아침에 눈을 뜨고 덕분에 밥도 먹는다. 산책시키려고 억지로라도 집을 나서니 그 덕에 벚꽃도 보고 서울숲에 흐르는 개울도 본다.

아날로그적 삶, 느린 일상을 지향하는 것 같다. 새로운 것에 병적으로 집착했다. 스마트 기기나 자동차, 오토바이까지 항상 최고 사양 모델만 좋아했다. 그렇게 10년을 보내고 지금 상태가 됐다. 기술은 금세 변한다. 인간의 감성적 부분을 채워주는 게 진짜 기술이라는 생각을 한다.

자연인 김민준의 고민은 무엇인가? 매년 이맘때면 마루와 전국을 여행한다. 캠핑을 하면서 계절이 바뀌는 걸 보고 생각을 정돈한다. 여행을 마치면 다음 행보에 대해 생각해봐야지. 지금 급한 건 내적 평화, 그걸 유지하는 방법. 물론 현실적 문제와의 적절한 타협도 중요하다. 이 잉여의 시간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른다. 아주 자연스럽게 좋은 작품에서 김민준에게 꼭 어울리는 역할을 연기하고 싶다.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사진 김성용   헤어 곽민경(요닝)   메이크업 송나래(요닝)   스타일링 이효진

관련 기사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