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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26

평점의 덫

오늘날 영화 평점은 작품의 흥행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문제는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크린 독과점과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린 <군함도> 스틸 컷.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드라마틱하고 로맨틱한 사랑이 아닌, 실제 있을 것 같은 평범하고 찌질한 사랑을 보여주는 게 마음에 든다. 인간의 속물적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홍상수식 리얼리즘은 때론 불편하지만, 그 솔직한 매력에 열광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만의 독특한 시각은 전 세계 평단에서 예외 없이 호평을 받는다. 단, 국내 주요 포털사이트의 영화 평점란에서만은 예외인 듯하다.
그 근거는 네티즌 평점에 있다. 참고로 네이버나 다음같은 국내 주요 포털 사이트의 영화란 평점은 ‘네티즌평점’과 ‘전문가 평점’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영화를 꼼꼼하게 분석하는 전문가보다 네티즌의 점수가 후한 편인데, 홍상수 감독의 작품은 정반대다. 그의 작품이 오락성과는 거리가 먼 것도 한몫하지만, 평점과 함께 남긴 한 줄 평을 보면 다른 데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작품에 최하점을 매긴 사람 중 열에 아홉은 그의 개인사를 언급한다. 개중엔 저주에 가까운 인신공격도 있다. 과연 영화를 본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 하지만 이러한 악평은 그에게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한다. 그의 작품은 누가 뭐래도 볼 사람은 보고, 안 볼 사람은 안 보는 예술영화니까.
하지만 돈이 성공의 척도가 되는 상업영화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최근 포털 사이트의 네티즌 평점은 영화의 흥행 성적을 좌우할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CGV 리서치센터가 관객 1006명을 대상으로 신뢰하는 영화 관련 평가 소스를 조사한 결과, 포털 사이트 평점이 29.7%로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영화 커뮤니티(19.1%)나 지인(18.2%)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 문제는 작품성과 재미를 가늠하는 잣대인 평점이 썩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거다. 최근 영화의 관람 여부와 상관없이 고의로 낮은 평점을 주는 ‘평점 테러’가 만연해 있기 때문.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작년부터 유독 집단적으로 지속해 이어지는 양상을 보인다.
평점 테러의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 작품으로 작년 7월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를 꼽을 수 있다. 이 영화는 개봉 첫날 97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최고 오프닝 기록을 세웠지만, 동시에 스크린 독과점 논란으로 위기를 맞았다. 개봉 첫날 전국 2500여 개 스크린 중 2027개에서 1만174회 상영했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항의의 뜻으로 최하점을 부여한 것. <군함도>는 개봉 당일 네이버 영화란에서 약 1만 개의 평점을 받았는데, 그 가운데 최하점 1점이 무려 40%에 달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역사 왜곡 논란에도 휘말렸다. 영화는 일본 하시마(군함도)의 조선인 노동자들이 탈출을 시도하는 이야기를 담았는데, 강제징용과 노동 착취 등 역사적으로 민감한 부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런데 여기에 식민사관을 내재한 ‘친일 영화’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면서 평점 테러가 이어졌다. 결국 1000만 영화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 <군함도>는 659만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박훈정 감독의 도 평점 테러의 희생양이 됐다. 청소년 관람 불가임에도 개봉 첫 주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하는 듯했지만, 영화 초반 여성이 잔혹하게 살해되는 장면이 논란이 되면서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이 장면에 대해 인물의 사이코패스 성향을 부각하기 위해 꼭 필요했다는 의견과 지나친 연출이라는 의견이 충돌했는데, 그 과정에서 ‘여성 혐오’ 프레임이 씌워져 평점 테러가 일어났다. 박훈정 감독은 자신의 낮은 젠더 감수성에서 비롯된 일이라며 비판을 수용했지만, 기울어진 여론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결국 작품은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
물론 두 영화의 흥행 실패를 평점 테러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이들을 명작으로 평가하기엔 미흡한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평점이 잠재 관객의 영화 관람 여부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이 같은 테러 행위가 흥행 부진의 한 요인이 됐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한편 괴작 혹은 망작에 지나치게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평점 낚시’ 현상도 주목할 만하다. 대표적 예로 김두영 감독의 2004년 작 <클레멘타인>이 있다. 불법 이종격투기 선수로 전락한 태권도 챔피언이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해 대결을 벌이는 이야기로, 할리우드 액션스타 스티븐 시걸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엉성한 스토리와 연기, 수준 낮은 연출로 평단과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흥미로운 건 이 영화에 대한 네티즌 평점이 네이버 영화란 기준으로 9.32점(10점 만점)이란 사실. 20세기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대부>의 9.18점보다도 높은 점수다. 특히 10점 만점을 준 네티즌의 한 줄 평을 보면 가관이다.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아직 살아 있을 이유 하나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라든가 “영화계엔 BC와 AC가 있다. Before Clementain, After Clementain” 등. 물론 이는 농담에 가깝다. 누군가 ‘나만 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높은 평점과 비꼬는 듯한 한 줄 평을 남겼는데, 이러한 행위가 컬트적 인기를 끌면서 너도나도 따라 하기 시작한것. 일종의 놀이 문화로 정착한 평점 낚시에 속아 영화를 보고 실망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평점 테러든 평점 낚시든 중요한 건 평점이 영화에 대한 정보 공유와 의견 교환이라는 본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네이버는 지난 2014년 ‘관람객 평점’을 개설했다. 네이버 영화란에서 영화를 예매하고 관람한 사람만 등록할 수 있는 평점. 에디터가 보기엔 네티즌 평점보다는 객관적이다. 예컨대 <군함도>의 네티즌 평점은 5.28점으로, 분포를 보면 1점 48%, 10점 30%, 2~9점은 모두 5% 이하다. 반면 관람객 평점은 7.34점으로, 1점 5%, 10점 26%, 8점 20% 등으로 비교적 고른 분포를 보인다. 하지만 앞선 평점 테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관람객 평점은 대세에 영향을 미치진 못한다. 또한 영화를 봤다고 해도 평점 테러나 평점 낚시를 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홍상수 감독의 신작 <클레어의 카메라> 스틸 컷.




미국의 영화 사이트 로튼 토마토.

해외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의 영화 사이트 로튼 토마토는 평론가의 리뷰를 메인으로 작품을 평가한다. 이들은 해당 리뷰가 호평과 악평 중 어디에 가까운지 판단한 후 호평은 Fresh, 악평은 Rotten으로 분류한다. Fresh 비중이 60% 이상이면 빨간 토마토 마크가, 그 미만인 경우 썩은 토마토를 벽에 던진 듯한 마크가 붙는다. 평론가의 호불호 비율로 영화를 평가하기 때문에 나름 객관적이긴 하나, 이 역시 완벽한 대안은 아니다. 예컨대 50%의 Fresh를 받은 작품은 썩은 토마토 마크로 표시돼 쉽사리 관객의 외면을 받을 수 있다. 한데 따지고 보면 평론가의 절반이 이 영화를 호평한 것인데, 이 정도면 꽤 볼만한 작품 아닌가?
평점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네티즌 스스로 의식을 개선하는 것. 감성적 접근보다는 냉철하게 영화를 평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유가 미덕인 인터넷 세상에서 왜 그래야 하는지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화 한 편에 수십 수백 스태프의 노고가 깃든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그렇게 쉽사리 손가락을 놀릴 수는 없을 거다. 호평이든 비판이든,제대로 점수를 매기는 게 그들에 대한 작은 예의 아닐까? 물론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

 

에디터 황제웅(hjw1070@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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