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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23

음식 유행

빠르게 뜨고 지는 미식 열풍 속에서 올 한 해를 뜨겁게 달군 맛있는 키워드를 찾았다.

요즘 사람들은 먹는 것에 유난히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보물찾기 하듯 숨어 있는 맛집을 찾아 헤매고, 원하는 음식을 먹기 위해 줄 서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특정 음식보다 미식 행위 자체를 즐긴다. 대중의 입맛이 까다로워지고 다양한 음식 문화가 유입되자 음식의 유행은 빠른 속도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그 틈에서도 올 한 해 꾸준히 인기가 상승한 종목은 내추럴 와인이다.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하는 걸출한 미식가와 스타 셰프만 봐도 경쟁적으로 펑키한 와인 레벨을 게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내추럴 와인은 유기농법 재배 후 손으로 직접 수확하고, 화학 성분을 일절 배제한 채 자연 효모로 발효시켜 만든 술을 말한다. 사실 내추럴 와인 붐은 2017년부터 꿈틀거렸다. 아는 사람만 예약을 받고 워크인 손님은 매몰차게 거절하는 은둔형 바 빅 라이츠가 한남동 골목을 내추럴 와인 특유의 쿰쿰한 풍미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즈음 서래마을 ‘제로 콤플렉스’의 이충후 셰프와 클레망 소믈리에 듀오는 프렌치 코스 요리와 완벽한 마리아주를 이룬 내추럴 와인 페어링을 포교하며 새로움에 목말라하던 미식가를 신선한 와인 세계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선교자인 제로 콤플렉스가 올해 5월 회현동으로 이전하며 보란 듯이 차린 내추럴 와인 바 피크닉이 내추럴 와인의 흥행 가도에 불을 지피며 대중에게 널리 확산되었다. 올여름부터 가을까지 내추럴 와인 전문 바가 연이어 오픈했고, 새로운 레스토랑의 와인 리스트에도 어김없이 내추럴 와인 페이지가 생겼으며, 기존 레스토랑도 분주하게 내추럴 와인을 사들이며 고객의 바뀐 입맛에 대응하고 있다. 내추럴 와인은 분명한 트렌드다. 다이닝업계의 지각이 내추럴 와인 쪽으로 이동한 만큼 당분간 안정적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한 내추럴 와인 수입사 대표는 연간 매출 신장세가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내추럴 와인시장은 2~3배 이상의 매출 신장이 일어나고 있다.
매출을 두고 이야기할 때 곱창이 빠질 수 없다. 롱런 중인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는 지난 6월 8일 10%(닐슨 코리아 집계) 시청률로 247회를 송출했는데, 그 파급력은 시청률의 열 곱절로 온 국민에게 와 닿았다. 방송에서 마마무의 멤버 화사가 ‘혼밥’으로 먹은 곱창이 모두의 열망이 되어버린 것. 단숨에 온 국민이 곱창 앞으로 향했다. 전국에서 곱창은 동이 났고, 일부 곱창 전문점은 한동안 곱창을 구하지 못해 휴업하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화사가 긴 머리채를 옆으로 넘겨 잡고 곱창을 먹던 장안동의 곱창집은 하루아침에 줄서는 맛집이 되었다. 방송은 언제나 막대한 파급력으로 식당이나 음식을 선풍적으로 화제에 올려놓지만, 관측 이래 이런 초특급 열풍은 존재하지 않았다. ‘화사의 곱창’은 비록 곱창업계의 발전으로 이어지거나 곱창 요리법의 특이점을 가져오는 문명적 사건으로 자리 잡지는 못했으나 2018년을 대표할 해프닝으로 짚고 넘어갈 만하다.




곱창에 비해 냉면은 전 지구를 대상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4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어렵사리 평양에서부터 평양냉면을 가져왔다”며 “(문재인) 대통령께서 편한 마음으로 이 멀리 온, 멀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라고 준비된 농담을 던졌다. CNN은 이 전 지구적 농담을 ‘냉면 외교’로 정의하며 대서 특필했고, 첨예한 국제 관계는 한반도의 평화를 예감하며 한숨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점심시간이 되자 서울의 평양냉면집마다 줄이 길게 늘어섰다. 그 모습을 담기 위해 각종 언론사 카메라도 구름 떼처럼 출동했다. ‘4·27 냉면 기념일’ 이후 냉면은 한동안 밴쿠버 동계 올림픽 당시 김연아 선수만큼 활발하게 회자되었다. 하지만 이 정치적인 냉면 사건은 한반도의 평양냉면 역사 전체를 놓고 보면 여러 획 중 하나에 불과하다. 21세기 초부터 점진적으로 트렌드의 중심으로 편입되어온 평양냉면의 기세는 올해 들어 더욱 거침이 없었다. ‘의정부파’, ‘장충동파’로 불리던 기존의 냉면 노포들과 경쟁하는 신흥 평양냉면 전문점이 속속 나타났다. 서울과 뉴욕에서 각 미슐랭 2스타를 보유한 임정식 셰프가 평화옥에서 진한 맛의 평양냉면을 선보이는가 하면, 글 쓰는 셰프 박찬일도 광화문 국밥에서 나름의 평양냉면 지론을 펼쳤다. 소수 실향민의 내력 음식이던 평양냉면이 대중 음식 취향으로 재발굴된 것은 한국의 음식 산업이 질적으로 발전한 데서 온 결과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식량 증산이 목적이던 한국의 음식 문화는 이제 질적 성장과 다양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격세지감이다.
새로운 맛을 궁금해하고 즐기는 미식 추종자들은 고유문화가 담긴 낯선 음식에도 긍정적 반응을 보인다. 올해는 프랑스의 육가공 보존문화인 샤르퀴트리와 일본의 경양식 문화 중 하나인 산도가 본격적으로 정착했다. ‘고기는 구워야 제맛’이라는 편견을 깨고 일부 농장에서 한국식 수제 햄을 팔기 시작했고, 현지 생산한 가공육이 수입되는 경로도 늘었다. 하지만 양질의 재료를 공수해 직접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치며 질 좋고 맛 좋은 샤르퀴트리를 제공하는 육가공 공방이 유행의 중심에 섰다. 메종조와 서스데이스터핑, 더 샤퀴테리아 등은 발음조차 어렵게 느껴지는 샤르퀴트리를 기꺼이 찾아 나서게 했다. 폴스타와 닷츠, 마음과 마음에서 시작된 가츠 산도와 타마고 산도의 인기는 선댄스 플레이스와 도산분식, 당옥으로 완성되었다. 빵 사이에 두툼한 돈가스나 탱글탱글한 달걀말이를 넣은 고메 샌드위치는 식사대용의 가벼운 간식이 아니라 레스토랑의 효자 메뉴로 등극한 수준이다.
음식에 술이 빠질 수 없다. 앞서 언급한 내추럴 와인의 약진 외에도 완성도 높은 한국 술이 잇따라 등장하며 각종 국제 정치 이벤트의 건 배주, 만찬주로 스타덤에 올랐으며, 진 베이스 칵테일도 바 시장을 강타했다. 진의 유행은 세계 거대 도시마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흐름으로, 한국도 이제 나라 밖 유행이 실시간으로 유입되는 국제화된 속도의 미식 시장을 갖췄다는 방증이다.
변화무쌍한 트렌드 기류 속에서도 올 한 해 유독 존재감이 빛난 음식. 내년이면 반짝 유행처럼 사라질 수도, 꾸준한 인기를 이어가며 국내 미식 문화에 고착화될 수도 있다. 그리고 평양냉면과 곰탕을 잇는 한식 단품의 진화, 제3세계의 요리, 여기에 각종 글로벌 매체에서 강조하는 식물성 식품 트렌드가 국내에도 뿌리내리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식물성 단백질, 유제품 프리, 팜 투 테이블 2.0 같은 키워드를 기반으로 하는 건강한 식문화가 어떤 방식으로 정착해 미식 신을 다채롭게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에디터 문지영(jymoon@noblesse.com)
일러스트 김상인   이해림(푸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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