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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23

빵빵한 이야기

갓 구운 크루아상에 따뜻한 커피 한잔 곁들이며 온기를 다스리기 좋은 계절이 왔다. 때론 아찔할 만큼 달콤하고 부드러운 빵 한 조각이 나른한 몸과 마음을 벌떡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 ‘빵천동’으로 간다.

남천동 빵집 거리, 일명 ‘빵천동’은 어떻게 ‘전국구 스타’가 되었을까? 빵지 순례, 빵드컵, 먹빵 투어 등 재미난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TV와 인터넷, SNS에서 빠르게 입소문이 난 빵천동. 아파트 단지와 골목 주택가를 중심으로 학원이 들어서고, 학원과 학원 사이 스케줄을 소화하는 학생들이 밥심 대신 빵심으로 허기를 달래면서 동네 빵집이 늘어났다는 것이 이곳의 유래다. 부산의 대표 빵집 ‘옵스’ 1호점도 이곳에 있다. 빵집 거리의 유래를 증명이라도 하듯 옵스의 인기 빵 중 하나의 이름은 ‘학원전’이다. 파리바게트, 뚜레쥬르 등 전국에 프랜차이즈를 둔 곳을 포함해 이곳에 자리 잡은 빵집은 대략 25개. 수영구청에서 제작한 빵집 지도를 들고 빵천동의 유명 빵집을 찾았다. 프랜차이즈보다는 동네 빵집, 비정기 오픈보다는 정기적으로 오픈하는 곳부터 가봤다. 1인 혹은 부부, 소규모로 운영하는 곳이 많다 보니 대부분의 빵집이 쉬는 월요일은 피했다.
간판에 ‘빵천동 첫집’이라 새긴 ‘홍옥당’은 국산 팥을 직접 쑤어 사용한 통단팥빵이 유명한 곳이다. 여름에는 팥빙수를, 겨울에는 단팥죽을 판다. 빵과 앙금의 두께 비율이 거의 1:1. 국산 팥 앙금의 담백한 단맛을 밀가루의 텁텁함이 가리지 않아 좋다. 가장 인기 있는 통단팥빵은 조금씩 자주 만들기 때문에 때를 잘 맞추면 갓 구운 따끈한 빵을 맛볼 수 있다. 홍옥당의 길 건너편 남천 삼익아파트 대단지 입구에는 거의 모든 빵을 쌀로 만든순쌀빵’이 자리 잡고 있다. 순쌀빵의 쌀식빵이나 치즈쉬폰은 밀가루로 만든 빵보다 부드러움은 덜하지만 떡처럼 쫄깃한 식감을 자랑한다. 무엇보다 쌀이라는 식자재에 대한 건강 기대 심리가 반영되어 진짜 밥심을 대체할 수 있을 듯하다. 식자재 비용과 관리, 가공 방식에서 밀가루보다 까다로워 여전히 쌀 가공식품이 적은 현실에서 순쌀빵의 빵은 경쟁력을 갖춘 셈이다.
홍국쌀로 만든 빵이 특히 유명한 ‘시엘로과자점’은 들어서는 순간 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 나온 빵집이기 때문. 홍국쌀, 함양팥, 두 번 삶고 두 번 구운 호두, 일본산 말차 가루, 첨가물 없는 100% 천연 생크림 등 시엘로과자점은 식자재에서 자부심이 느껴진다. 특히 좋은 콜레스테롤 수치는 높이고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는 낮춘다는 홍국쌀을 사용한 식빵과 베이글, 단팥빵 등은 이곳의 대표 선수. 쌀빵이 지닌 특장점대로 쫄깃한 식감에 씹을수록 고소한 단맛이 올라오고, 먹을수록 배는 차오르지만 속은 더부룩하지 않다.






식자재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이 느껴져 아이에게 사 먹이고 싶은 디저트 가게 ‘무띠’도 있다. 독일어로 ‘엄마’를 뜻하는 무띠의 대표 메뉴는 각종 견과류, 계절 과일을 올린 타르트와 수제 쿠키. 엄지손톱만 한 미니 쿠키 한 조각에도 복잡 미묘하고 꽉 찬 맛이 느껴지는 것에서 이곳의 내공을 짐작할 수 있다. 달콤한 타르트에 씹을수록 고소한 풍미를 자아내는 잣을 잔뜩 올린 잣 타르트는 ‘환상의 복식조가 빵으로 환생하면 딱 이렇겠다’ 싶을 정도로 맛의 시너지가 좋다.
빵집 거리 끝에 자리한 ‘브레드슈가’는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빵집이다. 이곳의 대표는 “빵집을 투어하는 이들에게 인기 있는 빵과 동네 주민이 즐겨 찾는 빵은 다소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빵천동 지도의 추천 가이드대로 블루베리크림치즈빵이나 티라미수가 빵집 투어객에게 인기 있는 반면, 동네 주민들은 밤식빵이나 모카크림빵 등 기본적인 빵을 선호하는 편”이라고. 브레드슈가에서 모카크림빵과 생크림식빵, 블루베리크림치즈빵(내안의 블루베리) 등 크림이 들어간 빵을 고른다면 실패할 확률이 적다. 브레드슈가의 크림은 기름기가 적고 인위적인 단맛이 부각되지 않으면서 입안에서 부드럽고 달콤하게 감긴다.
프랑스인 대표가 “프랑스의 흔한 동네 빵집”이라고 소개한 ‘메트르아티정’은 프랑스 비롱 제분사의 직수입 밀가루를 사용하고, 천연 발효종 르방(levain)과 100% 우유 버터를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곳의 대표 인기 메뉴는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크루아상과 바게트. 특히 피스타치오, 블루베리, 호두, 소시지 등 다양한 식자재를 사용한 크루아상은 켜켜이 층을 이룬 빵 속살 사이에 바른 버터 맛이 진하게 느껴진다. 한 개로는 성이 차지 않을 정도.
근처 ‘그라찌에 207’에는 단짠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버터 프레첼이 있다. 통으로 자른 버터가 들어간 프레첼 겉면에는 투박한 신안천일염이 박혀 있다. 과자처럼 아삭하게 씹히는 천일염은 빵의 고소한 단맛을 더욱 강조한다. 부드럽고 쫀득한 미니 식빵의 종류도 다양하다. 특히 오징어먹물로 색을 입힌 더블치즈블랙식빵은 진득하고 묵직한 에멘탈 치즈와 롤 치즈가 부드러운 식빵에 통 크게 박혀 있어 아쉬울 것 하나 없는 맛을 낸다.






광안리 바닷가와 잘 어울리는 외관과 독특한 디스플레이로 시선을 끄는 ‘바닷마을과자점’은 마들렌과 생토노레, 파리 브레스트 등 프랑스 디저트를 파는 곳이다. ‘반죽이 아침 이슬을 먹었나?’ 싶을 정도로 촉촉함이 예사롭지 않은 마들렌은 이곳의 인기 메뉴. 바닷마을과자점 대표 겸 파티시에는 “마들렌이나 파리 브레스트는 얼그레이처럼 자극적이지 않고 가벼운 맛과 향을 지닌 티와 잘 어울린다”며 디저트를 즐기는 팁을 알려준다.
빵천동 터줏대감 사이에서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지만, 시쳇말로 이곳의 진정한 ‘하드캐리’라 단언할 만한 곳은 ‘무슈뱅상’이다. 부산에서 보기 어려운 하드빵, 식사빵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곳. 크루아상을 제외하고는 달걀과 버터를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대표는 “반죽 자체가 맛있는 빵, (밀)가루의 매력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빵”을 추구한다고. 프랑스 밀가루, 천연 발효종 르방, 게랑드 소금 등을 사용해 만든 무슈뱅상의 빵맛은 마치 에둘러 말하는 법 없는 직진남의 사랑 고백과도 같다. 빵 자체의 매력이 어찌나 진한지, 씹을수록 여운이 길게 남는다. 크랜베리, 무화과, 레몬필과 각종 견과류가 들어가는 뺑오르방, 1인당 5개로 제한해 판매하는 바통은 무슈뱅상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빵천동을 몇 번 오가다 보면 주머니 사정보다 아쉬운 것이 ‘뱃구레’다. 이 조그만 동네에서도 먹고 싶은 빵이 넘치는데, 세상엔 맛있는 빵이 얼마나 많을까 싶다. 더 추워지기 전에 이 동네를 몇 바퀴 더 둘러봐야겠다. 바닷가 뒤편 골목 사이에 자리한 동네 빵집을 오가다 길 끝에서 ‘인생빵’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설렘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빵천동을 찾게 되는 이유가 된다. 

 

에디터 손지혜
사진 공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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