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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24

과거는 미래에 대한 선물이죠

3월 29일부터 4월 10일까지 부산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에서 <에르메스, 꿈을 꾸는 여행자(Herme‵s Heritage-In Motion)>전이 열렸다. 에르메스 박물관 소장품을 비롯해 장인과 크리에이터들이 만든 오브제와 색상, 테마를 통해 에르메스의 역사를 표현한 이 전시가 열리기 전, 에르메스 문화유산 디렉터 메누 드 바젤레르 뒤 샤텔을 파리에서 만났다.

에르메스 문화유산 디렉터 메누 드 바젤레르 뒤 샤텔.

메누 드 바젤레르 뒤 샤텔(M´en´ehould de Bazelaire du Chatelle, 이하 메누) 디렉터를 만나기로 한 날은 하필 도심에서 노란 조끼 시위가 예고된 날이었다. 숙소에서 24 포부르 생토노레 에르메스 매장 뒤편 박물관까지는 택시를 타고 10분 남짓한 거리지만, 경찰이 도심 곳곳을 차단해 그랑 팔레부터 걸어야 했다. 평소 같으면 사람들로 북적일 생토노레 거리가 한산했다. 다소 찬 기운이 남아 있는 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재촉해 도착한 일행을 메누 디렉터는 온화한 표정으로 맞아주었다. 일명 에밀 에르메스 컬렉션이라 불리는 에르메스 박물관은 에르메스 가문이 전 세계를 돌며 수집한 갖가지 아이템을 진열한 ‘에르메스 역사와 영감의 보고’다. 10여 년 만에 다시 이곳을 찾은 에디터는 더 넓어진 공간과 늘어난 컬렉션에 내심 놀랐다. 무엇보다 에디터를 가슴 뛰게 한 것은 이곳을 33년 동안 책임지며 보살펴온 메누 디렉터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꿈꾸는 듯한 시선이었다.










1 볼리드 백.
2 19세기 초에 만든 여행용 케이스.
3 파라솔이 달린 지팡이.

10여 년 만에 다시 찾으니 흥미로운 아이템이 늘어난 듯합니다. 처음 찾는 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상당히 신비한 곳입니다. 이 컬렉션은 오직 영감을 위한, 영감의 정원입니다. ‘신비하다’라고 표현한 것은 영감 자체가 신비롭기 때문입니다. 에르메스에는 새로운 것을 만들고, 영감을 새롭게 불어넣고, 그 뿌리를 계속 키워가며 전진하는 시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환상적 창작의 역사에 경의를 표하고자 합니다. 이 컬렉션에는 300년 전, 심지어 500년 전 작품도 있습니다. 말에 관한 것부터 장교가 전쟁터에서 사용한 여행 가방, 중국 등 각 나라의 물건이 모두 포함됩니다. 우리는 영속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기 위해 과거 장인의 비법이던 아주 작은 디테일을 계속 재발굴할 것입니다. 박물관은 5년 전 확장했고, 컬렉션도 추가되었습니다. 에르메스가 성장하고 변화하는 만큼 더욱 과거와 유산을 탐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컬렉션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컬렉션을 추가하거나 정리하는 데 절차가 있나요? 에르메스 가문이나 고객에게 증정받거나 세계 각지에서 구매합니다. 일단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에르메스 가족에게 의견을 구하고 카탈로그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창립자의 손자인 에밀 에르메스는 여가 시간에 경매와 골동품 상인을 찾아다니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는 주변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자연스럽게 수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위 컬렉션을 위한 ‘사냥꾼’은 고용하지 않습니다. 컬렉션에 포함될 수 있는 첫 번째 기준은 퀄리티입니다. 또 다른 기준은 에르메스의 첫 번째 고객인 말과 관련이 있는지 여부죠. 말은 움직임과 우아함에서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존재입니다. 두 번째는 재치 있고 실용적인 액세서리를 찾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무엇이든 실용적이면서 아름다울 수 있다는 신념이 존재합니다. (유리 장에서 신발을 꺼내며) 몇 년 전 노년의 여성분이 기증한 짚으로 만든 샌들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죽을 구할 수 없어 아주 적은 양의 가죽과 짚으로 만들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아름답고 귀한 것입니다(디자인은 요즘 것이라 해도 믿을 만큼 모던했다). 영감을 주는 물건이어야 한다는 기준도 있습니다. 에밀 에르메스가 열두 살에 컬렉션을 위해 사들인 첫 번째 물건은 1801년에 만들어져 특허를 받은 신사용 지팡이입니다. 이 지팡이 안에는 숙녀를 위한 작은 파라솔이 숨어 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쓸데없는 물건을 샀다며 야단 쳤지만, 그는 1920년대에 해변으로 놀러 가는 여성을 위한 고급 접이식 파라솔 제작을 제안합니다. 고급 파라솔 안에는 해변에서 아이스크림 사 먹을 경우를 대비해 작은 지갑이 달려 있습니다.






4 죄 데 옴니뷔스 에 담 블랑슈 게임보드 프린트, 1830년 경.
5 베르지니 자맹의 델라 카발레리아 실크 트윌 스카프.
6 지안파올로 파니 디자인의 죄 데 옴니뷔스 에 담 블랑슈 리믹스 스카프(2018 A/W).

이곳이 많은 아티스트와 디자이너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실제로 에르메스 디자이너들이 자주 방문합니다. 예를 들어 스카프 디자이너 베르지니 자맹은 처음 이곳을 방문할 당시 ‘델라카발레리아’라는 승마술에 관한 책에 흠뻑 빠졌고, 델라 카발레리아라는 스카프와 캐시미어 숄을 제작했습니다. 그는 얼마 전에도 방문했죠. 또 다른 젊은 아티스트 피에르 마리 아장은 이곳에서 꿩 깃털로 만든 파라솔을 보고 매직 엄브렐러 스카프를 제작했습니다. 부산 전시에서는 에르메스 최초의 스카프 ‘죄 데 옴니뷔스 에 담 블랑슈(합승 마차 귀부인 놀이라는 뜻)’를 만날 수 있습니다. 박물관 난롯가 근처에 이 게임을 묘사한 오래된 프린트가 걸려 있습니다. 이 밖에도 많은 예가 있죠.

이곳에서 30년 넘게 일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컬렉션에 대한 책임과 혁신에 대한 미션 때문이었겠군요. 1923년, 에르메스는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지퍼를 부착한 ‘볼리드 백’을 선보였습니다. 에르메스 3대 회장 에밀 에르메스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 파견되었을 때 발견한 지퍼를 볼리드 백에 부착한 것으로, 마차에서 말의 시대로 넘어 가는 순간을 영민하게 예측한 것이지요. 볼리드 백은 여전히 에르메스의 중요한 아이템입니다. 이처럼 미래는 과거를 필요로 하고, 과거는 미래에 대한 선물입니다. 이곳의 보물은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친구죠. 창조를 위해 우리는 늘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최초는 아닐 테니까요. 장인이라면 쓸모있는 것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이 컬렉션은 과거의 장인과 그 스승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메누 디렉터는 박물관 곳곳을 다니며 물건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마치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듯 부드러운 손길로 각각의 아이템을 꺼내며 이야기를 뽑아냈다. 몇 년 전 한국에 갔을 때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우아한 고려청자를 보고 거의 울 뻔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으나 아름다운 물건을 마주할 때마다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받는다는 그녀. 그 물건이 실제로 쓰인다는 점에서 더 감흥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메누 디렉터가 책임지는 에르메스 박물관이 유산 저장고가 아닌 영감의 보고가 된 이유를 발견한 아침이었다.

 

에디터 이윤정(yoonjunglee@noblesse.com)
사진 제공 에르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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