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로그 - 2019년 가을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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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05

노블로그 - 2019년 가을

NOBLELOG. 지금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흐름에 대한 여섯 명의 시각.



말하는 디자인, 듣는 디자인
누구나 첫 만남에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사람을 또 만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TMI(Too Much Information)’, ‘TMT(Too Much Talker)’ 등의 신조어는 과도한 정보나 말을 상대방에 대한 무례로 규정하기 시작한 시대의 표상이다. 얄궂게도 상품의 패키지 디자인은 ‘말을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비록 소비자와 처음 만났다 하더라도 많은 다른 제품 사이에서 소비자를 불러 세워 나와 접촉하게 해야 한다. 저변에 마케팅이 뒷받침하지 않는다면, 패키지는 상품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한국 술의 경우 그 영역이 ‘레이블’로 더 협소해진다. 외국 술과 달리 병 형태로 증류주, 발효주, 발포주 등 주종을 구분하는 용기 디자인의 통합된 양식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고, 영세 양조장이 병을 자체 제작하기는 재정적으로 어려운 실정인 탓에 한국 술은 오직 레이블로만 소비자에게 말을 걸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자그마한 레이블에 많은 정보가 가득하다. 거친 붓글씨로 쓰인 제품명과 주종, 그 이름의 유래, 재료와 지역 소개, 무엇을 넣었고, 무엇을 넣지 않았는지(‘합성’으로 시작하는 몇 가지 첨가물), 어떤 상을 얼마나 수상했는지 빼곡히 적혀 있다. 때로는 ‘Premium’이라는 명칭을 새기는 것으로 스스로 ‘고급’을 표방한다. TMI, TMT다. 한국 술은 오랜 시간 국내 주류 시장의 마이너로 존재해왔다. 고투 끝에 명맥을 이어온 한 병의 술은, 그만큼의 고투 끝에 소비자와 만난다. 귀한 기회를 놓치기 싫은 절박함과 소비자에게 외면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레이블에 상흔처럼 남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막 마케팅과 브랜딩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인 산업 종사자에게 ‘스토리텔링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영향이 적지 않은 듯하다. 스토리텔링은 브랜딩의 핵심이다. 그러나 말을 많이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다. 좋은 화자는 좋은 청자라는 이야기가 있다. 소통의 양이 대화의 질을 결정한다는 의미다. 특히 첫 만남에 상대방을 설득하고자 한다면, 상대방의 호감과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이 먼저다. UCLA 심리학과 명예교수인 앨버트 머레이비언의 말에 따르면, 첫인상의 93%는 표정과 자세, 목소리 크기 같은 비언어적 표현으로 좌우된다고 한다. ‘말’의 영향력은 고작 7%밖에 되지 않는다. 레이블에서는 전체적 색감과 조형 요소가 비언어적 표현, 설명은 ‘말’에 해당한다. 비언어적 표현은 생각보다 상대방에게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레이블 디자인은 메시지를 비언어적 표현으로 제련한 결과물이다. 비언어적 메시지는 자연스럽게 능동적 참여를 유도한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말없이 미소만 띠고 있을 때 우리는 그의 의중을 ‘짐작’하고 그에 대한 나의 반응을 고려한다. 감정이입과 추론,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역동적 과정이다. 소비자가 처음 보는 술을 접할 때도 마찬가지다. 레이블의 조형이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충분한 매력이 있다면 한 병의 술을 앞에 두고 그는 생각할 것이다. ‘이 술을 누구와 어떤 순간에, 어디에서, 무슨 요리와 함께 마실까?’ 이렇게 소비자의 상상이 꽃피는 순간이, 디자인이 소비자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이다. 우리는 말하고 듣는 과정을 반복하며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다. 이는 술의 본질과 다르지 않다. 술은 매개체다. 함께 마시는 사람, 시간, 공간은 물론 술을 만든 이와 마시는 이를 이어준다. 소비자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 소맥과 회식으로 대표되는 집단 음주 문화를 지나, 나만을 위한 작은 사치로 술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트렌드 키워드로 부상한 ‘취향 소비’는 나와 통하는, 즉 내 이야기를 들어줄 만한 대상을 찾는 과정인지 모른다. 모두가 자기표현에 목마른 시대에, 경청하는 디자인이야말로 미덕이 아닐까.

양유미 만화가이자 양조자. 술을 빚고, 나누고, 함께 마시는 낙으로 산다. 최근 태어나고 자란 마포에 구름아 양조장을 열고, 올 하반기에 약주 브랜드 런칭을 준비 중이다.





늙고 섹시한 남자
어릴 때, 줄곧 요절한 남자에게 매력을 느꼈다. 찬란한 젊은 날에 죽어 볼품없이 늙어본 적 없는 이들이야말로 영원한 청춘의 초상으로 남은 귀인이라 칭송했고, 나 역시 일찍 죽을 줄 알았다. 어쩌다 보니 불꽃처럼 사라지기엔 제법 살아버린 나는 이제 꺼진 불도 다시 살피며 멋지게 늙은 남자에게 눈독을 들인다. 그들의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안목과 여유, 못 말리는 유머로 치자면, 롤링스톤스가 요즘 대세인 BTS보다 몇 배는 더 흥미롭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들은 슈퍼스타라 예외인가? 왜 우리 동네엔 근사한 늙은이가 없는 걸까? 뿌리 깊은 유교 사상을 기반으로 ‘어른’을 공경해야 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나이를 먹으면 어른답게 ‘어른인 척’해야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럴수록 ‘성(性)’은 무뎌진다. 어른은 어른이고 노인은 노인일 뿐, 여자나 남자로 존중받으며 살아가기 어렵다. 연애는 고사하고 옷도 마음대로 입지 못한다. 일흔셋에 손주보다 어린 아들을 본 믹 재거는 여전히 슬림한 몸을 유지하고 섹시하게 옷을 입으며 매력적인 제스처로 여성을 유혹한다. 믹 재거와 비슷한 나이에 무려 쉰다섯 살이나 어린 열아홉 살 여인을 짝사랑하느라 골치 아픈 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독일의 대문호 괴테다. 무수히 많은 여인과 사랑을 나누며 83년의 긴 삶을 살다 간 그는 과연 스스로 ‘늙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나 있을까? 그의 인생에 빛나는 로맨스가 짧았다면, 무려 60년에 걸쳐 쓰고 죽기 전에 완성한 대작 <파우스트>는 세상의 빛조차 보지 못했을지 모른다. 대단한 와인 애호가로 알려진 그는 생전에 이런 문장을 썼다. “한 명의 여인과 한 잔의 와인은 모든 근심을 다독인다. 키스를 하지 않거나 와인을 입에 대보지 않은 사람은 이미 오래전에 죽은 자다.” 나이 들수록 멋진 남자는 사랑을 한다. 신체가 감당해야 하는 노화야 어쩔 수 없지만, 정신은 시간이 흐를수록 성숙해지고 그만큼 사랑도 깊어지니까. 늙은이의 사랑과 욕망이 주접이나 노망이 아니라는 사실은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 <온 더 무브(On the move)>를 읽으면 좀 더 명확해진다. 영화 <사랑의 기적(Awakening)> 원작자(로빈 윌리엄스 분)로 우리에게 익숙한 그는 세계적 신경과 전문의로, 따뜻한 시선으로 인간의 뇌와 정신 세계를 탐구한 의학계의 시인이자 많은 저서를 통해 대중과 소통한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백발의 수염을 멋지게 기른 그는 게이였다. 독실한 유대교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고 본의 아니게 금욕 생활을 한 색스는 일흔다섯 살에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필 인간의 불치병 ‘노환’이 찾아온 뒤였다. “사랑에 빠진 기쁨이 신경통과 맞서 딜라우디드나 펜타닐만큼이나 강력한 진통 효과를 낸 것일까?” 이제나저제나 그의 전화가 걸려오기만 기다리는 애틋한 마음에 뇌 과학자라는 타이틀이나 고령의 나이, 노환 따위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색스는 그 사랑으로 충만한 감정을 가감 없이 자서전에 기록하며 비로소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고백했다. 그리고 책의 맨앞 헌사를 통해 자신의 마지막 책이 된 자서전을 애인에게 바쳤다. 한편 헤밍웨이는 자신이 노인이 되어가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다. <노인과 바다>를 통해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정복될 수 없다”고 밝힌 그의 인생은 모험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결국 그는 더 늙기 전에 스스로 삶을 끝냈다. 그의 나이 불과 62세였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생명과학의 눈부신 발전을 통해 ‘아무도 늙지 않는’ 유토피아적 세상을 꿈꾼다. 그런데 영원히 젊게 산다는 건 어쩐지 좀 환멸적이다. 세르주 갱스부르, 루이스 칸, 제프 골드블룸은 분명 나이 들어 더 멋진 남자임에 틀림없고, 세상에 젊고 섹시한 남자는 따분할 정도로 많으니까. 하물며 63세의 손석희를 보라. 늙고 섹시한 남자가 오히려 더 빛나는 시대 아닌가.

김정민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겸 콘텐츠 기획자. <하퍼스 바자> 등에서 피처 에디터를 거쳐 아시아 시티 매거진 < 동방유행 > 편집장을 지냈다.





앱스토어와 플레이스토어의 미래
앱스토어는 없었다. 에두른 표현이 아니다.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처음 소개할 때 앱스토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아이폰은 전화 기능만을 갖췄기 때문이다. 해커들이 애플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수없이 해킹을 당하자 1년 뒤 애플은 앱스토어를 발표한다. 원한다면 판을 깔아줄 테니 여기서 놀라고. 그런데 이게 물건이 됐다. 먼저 소프트웨어 유통 체계를 단순하게 정리해 소비자가 쉽게 애플리케이션을 쓰게 만들었다. 앱 감수 및 과금을 대행해 개발자의 부담을 줄이고, 과금액의 70%를 개발자에게 배분해 충분한 수익을 보장했다. 게다가 앱 개발은 비교적 쉬워서 개인 프로그래머도 뛰어들었고, 스마트폰 인프라를 활용한 다양한 사업 기회를 제공했다. 진짜 혁신은 아이폰이 아니라 앱스토어였다. 아이폰과 앱스토어에 놀란 구글은 잽싸게 태세를 전환했다. 개발 중이던 휴대폰을 접고 안드로이드 OS를 오픈 소스로 공개하면서 기존 휴대폰 제조사를 끌어 모았다. 처음엔 스텝이 꼬였지만 빠르게 따라가며 시장을 양분했다. 애플 앱스토어는 관리가 잘되지만 꽉 막힌 느낌이라면, 구글 플레이는 좀 더 자유로웠다. 이 때문에 스마트폰 시장이 커졌고, 앱 마켓도 함께 커졌다. 2019년 구글 플레이에서 제공하는 앱은 약 210만 개, 애플 앱스토어는 180만 개에 달한다. 애플이 2018 앱스토어 10주년 기념으로 밝힌 내용에 따르면 매주 155개국 5억 명의 사람이 앱스토어를 방문한다. 2018년 한국 사람이 구글과 애플 앱 마켓에 쓴 돈은 4조4527억 원이다. 향후 이들의 행보는 비슷하지만 다르다. 애플은 판을 끌고 가기보다는 관리에 주력했다. 아이폰이 더 중요하니까. 구글은 파편화된 안드로이드 OS를 통제하기에 바빴다. 앱 마켓이 중요한 비즈니스로 떠오른 건 스마트폰 시장이 침체되기 시작한 2016년부터다. 애플과 구글은 추가 수익을 위해 앱 사용 환경을 개편했다. 핵심은 게임과 콘텐츠 구독 서비스다. 2019년 들어 선보인 애플 게임 구독 서비스 ‘아케이드’와 구글 스트리밍 게임 서비스 ‘스태디아’가 좋은 예다. 야심 찬 개편이지만, 성공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가는 방향도 다르다. 구글은 구글 클라우드에 기반한 서비스를 기종에 상관없이 쓰게 하려 한다. 애플은 아이폰 이용자를 계속 붙잡아 두고 싶어 한다. 수수료 정책에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다. 원스토어 같은 다른 앱 마켓과 카카오 클레이튼 같은 신규 플랫폼의 도전도 매섭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성공한 앱 마켓은 개발자가 돈을 벌게 해주는 플랫폼이었다는 사실이다. 애당초 앱스토어는 생태계였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이요훈 철학을 전공한 IT 칼럼니스트. 시사・경제・과학 방송에서 IT 분야에 대한 설명을 맡고 있다. 오타쿠가 아님에도 사람들은 그를 오타쿠라 부른다.





1970년대 힙합 강호의 탄생
오래전, 무협지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천하 통일을 목표로 군왕들이 대립하고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 우연히 한 젊은이가 세상에 등장한다. 재능을 타고난 그는 여러 동료를 만나고 온갖 시험을 통과하며 영웅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통합, 분열된 세상을 통일한다. 난세는 영웅을 만든다. 오케이, 우리는 이런 이야기에 열광한다. 이걸 음악으로 가져오면 장르의 탄생 설화가 된다. 1980년대 ‘강북에 김태원, 강남에 신대철’이라는 유행어가 있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아비어미’ 없이 탄생한 홍대 앞 인디 신의 크라잉 넛과 델리 스파이스 같은 신흥 세력이 한 시대를 정의했다. 이렇게 보면 음악의 역사는 난세와 영웅의 대서사시 같다. 한국만 그런 것은 아니다. 배경이 브롱크스, 도시 빈민, 10대 소녀소년으로 바뀌면 스케일이 좀 더 커진다. 넷플릭스의 <더 겟 다운>은 바로 이런 서사의 구조로 힙합의 탄생을 이야기한다. 이 드라마는 힙합의 탄생 설화이자 영웅 서사, 미국식 무협지다. 디스코 시대가 저물고 힙합이 도래하는 신새벽의 풍경화. 그래서 여기엔 음악 장르로서 힙합이 아니라 문화로서 힙합이 그려진다. 갱단이 운영하는 클럽에 그라피티, 디제이, 비보이 그리고 MC가 한자리에 모여 크루를 결성하는 것이 첫 번째 에피소드의 주요 줄거리다. 물론 당연히 사랑에 빠진 순진한 주인공도, 희망적이지 않은 미래도, 도시를 장악하려는 자본가와 정치인도, 갱스터도, 사기꾼도, 음악도 있다. 힙합 시대에 디제이는 단순히 춤추기 좋은 음악만 틀어주던 역할에서, 턴테이블 두 대를 동시에 갖고 놀 정도로 독자적 기술을 갖춘 아티스트로 진화했다. 파티의 흥이 고조되면 사람들 사이에서 튀어나와 현란한 춤을 추던 댄서들은 비보이라 불리며 힙합의 핵심 기반이 되었다. 그라피티는 힙합의 정신을 상징하는 거리 예술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을 말로 정리하고 진행하는 MC는 랩으로 발전해 힙합뿐 아니라 음악 역사상 가장 인상적이고 중요한 요소로 진화했다. <더 겟 다운>을 보면 런 디엠시, 슈거힐 갱, 커티스 블로 같은 올드 스쿨 힙합 아티스트뿐 아니라 질 스콧 헤런처럼 랩과 힙합의 원형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초창기 아티스트가 하나둘 떠오른다. 유튜브를 켜고 한글로 ‘올드 스쿨 힙합’이라고 검색하면 수만 개의 음악이 나타난다. 그러니 여러분도 한번 해보시길. 이렇게 뉴욕 브롱크스의 지저분하고 위험한 골목길에서 태어난 힙합을 따라가다 보면 뉴올리언스에서 시작해 멤피스, 내시빌, 시카고, 디트로이트, 뉴욕으로 이어지는 흑인 음악의 역사도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형태로서 힙합이 1970년대 뉴욕에서 발아했다면, 정신으로서 힙합은 1930년대 대공황 시절에 먹고살기 위해 미시시피강을 따라 도시로 이주하던 남부 흑인의 발걸음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차우진 대중음악 평론가이자 저술가로 <청춘의 사운드>, <대중음악의 이해>, <아이돌> 등을 출간했다. 현재 ‘스페이스오디티’라는 스타트업에서 팬 문화와 콘텐츠, 미디어의 연결 구조를 고민 중이다.





You are what you buy
애플 워치를 발표했을 때,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했다. “스위스의 그 많은 시계 회사는 어쩐담. 이제 누가 시계를 사겠어?” 그런데 그즈음 후배 A가 이야말로 호기라며 비싼 중고 시계를 사 모았다. “형, 이제 시계 엔지니어도 대가 끊길 거고, 옛날 방식으로 만든 시계는 점점 귀해지지 않겠어요? 이 시계들, 나중에 아들에게 물려줄 거예요.” 후배 B와 함께 며칠간 파리에 머물 일이 있었다. 하루는 각자 흩어져 쇼핑을 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미련하게도, 나는 여러 백화점에서 한국에도 다 있는 브랜드 매장을 구경했는데 B는 처음 보는 쇼핑백을 한가득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어느 골목에서 취향에 딱 맞는 구두 공방을 발견해 몇 켤레를 샀고, 전통 있는 슈트 가게에서 코트를 맞췄다고 했다. 서울로 돌아와 빛을 발한 건 내가 구입한 에르메스가 아닌, 그의 구두였다. 후배 C의 아버지는 지하에 거대한 DVD방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출시하는 거의 모든 DVD를 사서 아카이빙하고 지금도 정기적으로 신작을 배송받고 있다. 그 수가 셀 수 없어 색인 프로그램까지 개발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보고 싶은 영화, 최신 영화부터 보는 게 아니라 알파벳 순서대로 매주 몇 개씩 숙제처럼 감상하고 있다고 한다. C는 그 속도로 최신 영화를 언제 다 볼지 걱정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아버지는 지금까지는 그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하루는 선배 D가 지인 서너 명을 불러 귀한 와인을 대접했는데, 그 후 참석자 중 하나가 답례로 좋은 와인을 들고 와 모이는 식의 랠리가 한참 이어졌다. 나는 운 좋게 게스트로 두 번 초대받았는데 한 번은 페트뤼스 매그넘, 또 한 번은 스크리밍 이글이 놓여 있었다. 그들은 그 와인이 지금보다는 저렴하던 시절에 큰맘 먹고 구입한 뒤 오랜 시간이 지나 비로소 하나씩 맛보고 있었다. 선배 E는 은퇴를 코앞에 두고 있다. 평생을 회사 일에 매진한 그의 유일한 낙은 음악 감상이다. 이따금 가방에 그날 들을 LP와 CD를 가득 채워 넣고 용평의 모처에 만들어둔 오디오룸 소파에 앉아 긴 시간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며 하룻밤 묵는다고 했다. 그곳엔 당대 최고의 오디오가 갖춰져 있다. 우리 회사 소속 배우 F는 피겨 수집가다. 평소 절약이 몸에 밴 그는 입는 것과 먹는 것엔 돈을 쓰지 않지만 피겨는 열심히 사 모았다. 그러다 몇 년 전 이제 그만하겠다며 모두 내다 팔았다. 그런데 20개 정도의 카우스는 팔지 않고 남겨두었다. ‘저게 뭐야’ 싶던 그 카우스는 지금 몇 배의 돈을 주고 사려 해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나는 매일 뭔가를 사는 사람이다. 집에는 방 하나가 발 디딜 틈 없이 옷으로 가득하고 사무실도 한 층을 혼자 쓰는데도 앉을 자리 빼놓고는 그동안 사 모은 무언가로 꽉 차 있다. 그런데 그 많은 옷과 물건 중 실제 입고 쓰는 것은 전체의 10%가 채 안 된다. 90%는 그냥 소유하고 있다. 혹은 누가 표현한 것에 따르면, 이고 살아간다. 이유는 둘 중 하나다. 내가 ‘사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거나 열 번 중 아홉 번은 쓸모없는 것을 사는 쇼핑 실패자거나. 앞서 말한 주변의 위대한 소비자를 겪어보니 나는 후자였다. 거기에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까지 더해지니 머무는 모든 공간이 카오스가 되었다. 소비의 실패, 정확히 말하면 여러 개의 선택지 중 잘못된 것을 선택하는 것은 시간, 비용, 정신 건강 면에서도 큰 손실이다. 고민과 후회를 일삼게 마련이다. 구매에 다다르는 나의 흐름은 주로 다음과 같이 흘러간다. ‘무얼 살까 고민한다 - 물건을 산다 - 질리거나 고장 나거나 올드해지거나 더 좋은 것이 눈에 들어오거나, 하여튼 여러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 후회한다 - 고민한다(또 사야 할 것인가) - 또 고민한다(갖고 있는 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 물건을 산다.’ 반면, 앞서 말한 취향과 철학이 있는 지인의 프로세스는 이러했다. ‘물건을 산다 -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용한다.’ 나는 운 좋게 위대한 소비자인 지인들을 곁에 두고 쇼핑과 그 이후의 행보에 관한 철학을 배웠고, 배운 것을 공유하기 위해 지난봄 남성 편집숍을 열었다. 사람들이 으레 많이 사는 것은 가져다놓지 않았다. 몇 가지 원칙으로 남자를 위한 물건을 채워놓고 이렇게 제품으로 말을 걸고 있다. “의외로 살면서 2개 이상 동시에 갖고 있어야 하는 물건은 없습니다. 조금 무리하더라도 로망에 가까운 지점에 있는 물건을 사서 오래오래 곁에 두세요”, “가치는 좋은 것이 아니라 적은 것에 있습니다. 희소한 것을 눈여겨보세요”, “옷, 특히 슈트에 관해서는 소재, 브랜드, 디자인보다 중요한 것이 사이즈입니다”, “전자 제품은 오늘 사는 것이 제일 비싸고, 어떤 빈티지는 지금 사는 것이 가장 저렴합니다”, “싼 걸 사는 건 절약이 아니라 낭비라는 걸 알게 될 때가 있습니다”. 최근 강의를 업으로 하는 누군가가 내 가게를 둘러보고는 한 강의에서 “그 자리에 대기업 브랜드 제품을 가져다놓으면 더 잘될 텐데”라고 툭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오랜 고민 끝에 가게를 오픈한 입장에서 볼 때 ‘툭’이라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다). 어쩌면 그는, 내가 ‘소비 방식을 바꿔보라’고 제안하고 싶은 남자의 전형일지 모르겠다. 우리 가게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명징해지고, 한편으론 갈 길이 참 멀구나 싶었다.

여준영 프레인글로벌 대표. 앨리웨이 광교의 남성 편집숍 ‘스트롤’ 대표이자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가게 고객의 70% 이상은 여성이다. 하여, ‘남자를 위해 준비했으나 여자가 더 좋아하는 이상한 가게’ 사장으로 살고 있다.





동영상 소유가 아닌, 구독의 시대가 된 걸까?
미디어 비즈니스에 종사한 지 오래됐다. 시작은 DVD나 Blu-ray 플레이어를 만드는 회사였다. 2012년부터는 LG전자의 TV 스마트 기획 부서에서 일했다. 그래서인지 디스크 미디어라는 소유 플랫폼에 대한 애착이 컸다. 당시는 미디어의 격변기였다. 특히 디스크는 곧 종말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거기에 발맞춰 ‘울트라바이올렛(UV)’이라는 DECE(Digital Entertainment Content Ecosystem) 통합 플랫폼 서비스가 탄생했다. 이는 디스크나 디지털 콘텐츠를 구매할 경우 파트너 플랫폼에서 판권을 인정받고 거기에서 자유롭게 스트리밍 서비스와 다운로드가 가능하도록 한 시스템이다. UV는 기존 콘텐츠 제작사에 환영받았다. 스트리밍 시대가 온다면 실물 구매자에게 어떤 메리트가 있을 것인가 고민하던 차에 나온 솔루션이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고 저작권을 보호한다. 여기에 디스크 시장은 기존처럼 유지한다. 이 연합체의 이상은 훌륭했다. 그러나 울트라바이올렛은 와해되고 말았다. 그토록 원하던 아이튠즈나 구글플레이비디오, 아마존프라임비디오 등 빅 파트너도 얻지 못하고 허울만 남은 것이다. 그들은 연합 대신 독자 노선을 걸었다. 결과적으로 스트리밍의 대중화는 이뤄졌다. 통합보다 경쟁을 택한 선택이 지금의 세상을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는 온전한 구독의 시대일까? 물론 다수가 동영상을 스트리밍으로 관람하지만 소유의 시장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 마켓을 유지하려는 자들이 있기 때문. 이 흐름을 가장 세게 거스르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디즈니다. 디즈니는 ‘무비스 애니웨어(Moives Anywhere)’라는 이름의 디지털 라이츠 로커(울트라바이올렛과 같은 개념)를 만들었다. 디즈니는 UV가 해내지 못한 아이튠즈, 구글플레이비디오, 아마존비디오, 엑스피니티(미국 1위 케이블 TV 회사) 등을 규합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간 라이벌로 불리던 대부분의 영화사까지 파트너로 삼았다. 디즈니는 여전히 콘텐츠를 소유하려는 유저가 있다고 판단한다. 매년 규모가 줄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인 것이다. 2018년 4K UHD를 포함한 디스크 콘텐츠 판매는 미국에서만 40억 달러(약 5조 원)가 팔렸다. 그리고 디지털 판매는 25억 달러(약 3조 원), 디지털 렌털은 20억 달러(약 2조4000억 원)를 기록했다. 100억 달러(약 12조 원) 이상이 실물 디스크를 찾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독은 얼마나 이뤄졌을까? 같은 해 집계된 수치는 129억 달러(약 15조 원)로, 매년 30%씩 성장하고 있다. 엄청난 규모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00억 달러의 시장을 무시할 수 있을까? 이러한 상황을 파악한 디즈니가 OTT(Over The Top,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TV 개념)의 일종인 디즈니 플러스를 런칭한다고 무비스 애니웨어를 사라지게 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잠재 가능성이 더 큰 플러스에 힘을 싣겠지만, 무비스 애니웨어에서도 돈을 벌 것이다. 이 시장은 여전히 구독과 소유라는 두 가지 개념을 공유 중이다. 구독의 시대가 왔지만 소유의 시대 역시 끝나지 않은 것이다.

김조한 미디어 공부가 취미인 남자. 좌우명은 ‘배워서 남 주자’. 미디어 가이 혹은 미디어 흥선대원군으로 살고 있다. 현재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NEW) 브랜드사업부 이사로 재직 중이다.

 

에디터 조재국, 전희란 일러스트 최익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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