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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09

서울에서 만나는 빌바오 효과

하나의 랜드마크가 그 도시에 미치는 영향이나 현상을 ‘빌바오 효과’라고 한다. 1990년대 중반, 쇠퇴한 스페인 빌바오 지역을 되살리기 위해 시와 구겐하임 뮤지엄이 손잡고 프랭크 게리에게 미술관 설계를 맡겼다. 프랭크 게리는 파격적인 해체주의적 건축물을 지었고, 이곳에 매년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모여들면서 지역 경제가 되살아났다. 10월 말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열 프랭크 게리의 ‘루이 비통 메종 서울’에서도 그의 마법을 만날 수 있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즐겁고 흥미로운 영향을 미칠 그의 건축물을 감상하기 앞서 지난 6월 말 LA에 위치한 그의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이름이 곧 브랜드인 건축의 거장 프랭크 게리.

올가을 루이 비통 메종 서울(Louis Vuitton Maison Seoul, 이하 LVMS)이 오픈을 앞두고 있습니다. 당신의 작품을 청담동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루이 비통은 LVMS를 설계하기 전 어떤 점을 강조했나요?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은 본래의 건물을 보존하면서, 그 위에 또 다른 빌딩을 단순히 얹기보다는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건축물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상의 끝에 우리는 그 건물을 바탕으로 새로운 외관을 덧입히기로 결정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번에도 다양하고 파격적인 곡선과 금속의 활용을 기대할 것입니다. LVMS의 모습을 묘사해줄 수 있나요? (스케치를 보여주며) 보다시피 처음부터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Fondation Louis Vuitton)의 건축물이 진화한 디자인을 염두에 두었고, 제가 늘 관심을 기울이던 형태의 유리를 사용했죠.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기존에 이런 유리를 쓴 다른 프로젝트도 연구했어요. 물론 한국을 여행한 경험에서 영감을 받은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사찰을 보면서 유리에 움직임을 더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설계를 시작하기 전, 당신이 생각한 서울과 청담동의 이미지는 어땠나요?
서울은 이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LVMS가 자리한) 청담동 거리는 잘 몰랐습니다. 이젠 명품 브랜드가 입점한 상업적 거리라는 걸 알게 됐죠. 전 그 거리에서 느껴지는 딱딱한 분위기를 깨고 최대한 이 건물에 누구나 친근함을 느끼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1 오는 10월 말 그랜드 오픈을 앞두고 있는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의 외관.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국내 최초의 건축물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다.
2 파리 불로뉴 숲 내 아클리마타시옹 공원에 2014년 개관한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역시 프랭크 게리의 작품이다.
3 프랭크 게리의 루이 비통 메종 서울 스케치. 유리 소재를 사용한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건축물이 진화한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루이 비통 고객이 LVMS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되길 바라나요?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하면 좋겠어요. 이 공간이 방문객으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고 문화적 공감과 울림을 이끌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명품 부티크의 인테리어나 분위기에서는 간혹 위압감이 느껴지는데, 당신은 고객의 심리적 장벽을 낮추고 싶어 한 것처럼 들리는군요.
네, 그런 장벽이 있으면 브랜드에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그 공간에서 단편적 경험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LVMS는 외관에서부터 사람들을 반갑게 맞아들입니다. 동양적 디자인을 가미한 만큼 한국 고객에게 더 친근하게 느껴질 테고,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니 고객이 더 편하게 느낄 것입니다.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루이 비통 매장의 쇼윈도 디자인 등 그간 루이 비통과 많은 작업을 했습니다. 그들과의 작업은 어땠나요?
제겐 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루이 비통에서 저와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요. 그들과 함께한 모든 프로젝트가 좋았습니다. 굉장히 재미있었죠. 그들은 제게 늘 응원을 보냈고, 가끔은 중요한 피드백과 평가를 했어요. 그런 협력 덕분에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루이 비통은 협업하는 예술가에게 최대한 권한을 준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그런가요?
네, 실제로 그렇습니다. 창작자의 의견을 대부분 따라주는 편입니다. 그래도 꾸준히 소통하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지요. 그래야 모두 만족할 테니까요. 그게 제 마음도 편하고, 작업 결과도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루이 비통이 그간 함께한 다른 클라이언트와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루이 비통은 쉬지 않습니다. 절대로 멈추지 않아요.(웃음)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사람들이죠. 새로운 아이디어도 적극 지지해줍니다. 이렇듯 일종의 존엄성(품위) 마저 느껴지는 돈독한 신뢰 관계 덕분에 늘 마음이 편해요. 제가 아무리 터무니없는 얘기를 해도 격려해주거든요.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설계를 맡기 전 미술관 부지인 블로뉴 숲 아클리마타시옹 공원을 방문했을 때를 회상하며 어느 인터뷰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발자취를 따라 정원을 거니는 기분이었다고 하셨습니다. 기억하나요?
어느 날 아르노 회장이 제게 전화를 걸어 파리로 와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파리를 방문한 저는 아르노 회장, 그의 아내와 함께 아클리마타시옹 공원으로 이동했죠. 제가 어디에 와 있는지, 그들이 왜 저를 여기로 데려왔는지 깨달을 즈음 프루스트가 어릴 적 친구들과 이 공원에서 놀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사실 제가 프루스트의 글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숲속 풍경은 현실감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어요. 저는 그 프로젝트를 수락했고, 파리시와 협력해 그곳에 유리로 된 거대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설계에 착수한 뒤 개관하기까지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있었는데, 동네에서 원치 않았기 때문이죠. 특히 한 주민이 프로젝트에 반대하며 고소했는데, 해결하는 데 3~4년이 걸렸어요.

2014년에 오픈한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컨셉은 ‘숲속을 항해하는 배’입니다. 어디에서 영감을 받았나요?
저는 보트 세일링을 좋아합니다. 제 디자인도 항상 보트 모양새에서 영감을 받고요. 저는 이 미술관 외관이 공원에서 보트 경주를 하는 모습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가 만드는 건축 모델과 스케치는 굉장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들이에요. 그걸 계속 관찰하고, 이리저리 바꿔보면서 연구하는데 그 밑그림이 실제 건축물이 될 때쯤에는 이미 우리와 고객의 일부가 거기에 담기게 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건축은 일종의 공동 작업물 같은 겁니다.




4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제이 프리츠커 파빌리온. 연중 다채로운 음악 축제가 열린다.
5 LA 도심에 위치한 월트디즈니 콘서트홀.

2012년 가족과 함께 서울을 방문했을 때 다 같이 종묘에 들렀는데, 감흥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다른 일반 건축물과 달리 단상이 있다는 점이 건축학적 면에서 신선해 보였습니다. 정원에서 단상으로 한 층 올라가면 다른 세계로 가는 듯한, 공간의 인식 자체를 뒤바꾸는 느낌이 신기했죠. 그런 의미에서 제게 강렬한 곳이었어요. 거기서 본 종묘제례악 역시 아름다웠습니다.

이전에 주얼리 디자인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더 시도해보고 싶은 디자인 영역이 있나요?
저는 새로운 도전에 대해 항상 열려 있는 편입니다. 누군가 새 일거리를 갖고 오면 해볼 수도 있겠죠.

음악도요?
아니요.(웃음) 하지만 현재 워싱턴에서 재즈 그룹과 함께 재즈 오페라 세트장 디자인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순수예술에서는 우연의 형태감이 작품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의도하고 계획한 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계획대로 하되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자연적 우연성을 받아들이죠. 당신의 작업도 비슷한가요?
네, 무엇을 하게 될지 이미 알고 있다면 작업을 안 할 것 같아요. 저는 늘 직감으로 부딪혀보려고 합니다. 어차피 많은 요소가 결과에 영향을 주게 되어 있거든요. 건축을 하면 공학적 제약, 프로그램의 제약, 예산의 제약 등 많은 자극 요소가 있어요. 모두 일단 부딪혀봐야 알 수 있습니다.

동시에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평균적으로 몇 건 정도 되나요?
15개에서 20개 정도? 물론 규모가 모두 다르긴 합니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는데, 예를 들어 ‘LA 강 되살리기’ 사업도 있죠. 대규모 자선 프로젝트예요.




6 비정형 곡선이 특징인 스페인 마르케스 데 리스칼 역시 프랭크 게리의 작품이다.
7 프랭크 게리의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내 레이 앤드 마리아 스테이타 센터.

현재 작업 중인 프로젝트는 무엇이 있나요?
LA의 월트디즈니 콘서트홀 근처에 자리한 ‘콜번 스쿨(Colburn School)’이라는 예술대학 건축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음악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좋아해요. 그 밖에 워너브러더스 프로젝트도 있고, 샌타모니카 근처에 자리한 호텔 프로젝트도 있어요. 페이스북의 세 번째 건물 작업도 있고요. 길게 언급할 수는 없지만, 대만에서 처음으로 진행하는 작업도 있습니다.

LA의 월트디즈니 콘서트홀,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은 당신의 역작이자 랜드마크입니다. 랜드마크의 기준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저는 랜드마크보다는 도시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오래된 도시마다 각자 다른 건축양식과 건축물이 있습니다. 랜드마크도 있는 반면 조금은 덜 중요한 건축물도 있죠. 도시 모습이나 특성은 그 사회의 가치를 반영하고 보여주기에 그것이 랜드마크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건축물이 부각하고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을 잘 표현했느냐가 중요하죠. 그래서 제게는 문화적 사업이 더 우선순위가 높아요. 타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있는데, 그런 건 더 어렵거든요.




8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뉴욕 소재 최고급 아파트 비크먼 타워.
9 독일 베를린의 DZ 은행 건물 내부.

스튜디오를 둘러보니 직원 대부분 20~30대로 보입니다. 젊은 세대와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이 있나요?
직원들이 각자 의견을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부드러운 근무 환경을 조성하려 합니다. 밀레니얼 세대일수록 누군가 이야기를 귀담아들어주길 원한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여유 시간엔 주로 어떤 일을 하나요?
세일링을 합니다. 월트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콘서트를 보거나 한국 혼혈인 제 손자들과 놀기도 하고요.

서울을 마지막으로 방문한 건 언제인가요?
아, 정말 오래됐어요. 2012년으로 기억합니다.

이번 LVMS 오프닝 때 서울에서 꼭 뵙게 되길 바랍니다.
그러죠.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제공 루이 비통, 게리 파트너즈 L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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