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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30

감정은 이모티콘을 타고

백 마디 말보다 이모티콘 하나에 위로받을 때가 있듯, 이모티콘은 현대사회의 제2언어로 자리 잡았다.

1 라인은 이미지 이모티콘을 처음 출시한 메신저로, 이모티콘의 성공으로 글로벌 시장을 장악했다.
2 구찌는 ‘구찌 스페셜 에디션’ 이모티콘을 출시해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한 마케팅을 펼쳤다.

베스트셀러는 이 시대의 바로미터다. 뭔가에 호기심이 생기면 관련 지식을 얻기 위해 서적을 구매하기 때문인데, 요 몇 년간 사람들은 ‘대화의 기술’에 꽂힌 듯하다. 셀레스트 헤들리의 <말센스>, 나이토 요시히토의 <말투 하나 바꿨을 뿐인데>, 2017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모든 관계는 말투에서 시작된다> 등 대화법에 관한 책이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로 등극했으니 말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며 화술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이 책들은 한 가지 공통 의견을 담고 있다. 바로 대화에서 중요한 건 말보다 ‘비언어적’ 측면이란 것. 미국의 유명 심리학자 앨버트 머레이비언이 “몸짓과 태도는 55%, 음성과 어투 같은 청각적 요소는 38%, 말하는 내용은 7% 정도 의사소통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말했듯이 ‘잘’ 말하는지 아닌지가 판가름 나는 지점은 대화 내용이 아닌 상대의 제스처, 표정, 억양이다. 얼굴을 마주하고 나누는 대화는 비언어적 표현을 직접 볼 수 있기에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없다. 한데 대화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소스가 글자 외에는 전혀 없는 모바일 메신저는 분위기가 딱딱해지기 십상이다. 기분 좋은 맺음을 위해 문장 끝에 물결표(~)를, 상대에게 당황스러움을 전하기 위해 세미콜론(;)을 붙이는데 이러한 특수문자 조합이 바로 이모티콘이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이모티콘을 붙이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그렇기에 이모티콘은 모바일 대화에서 비언어적 역할이라 볼 수 있다.
이모티콘은 1982년 9월, 미국 카네기멜런 대학교 스콧 E 팰먼 교수가 전공 게시판에 올린 “웃는 얼굴이나 진지한 표정을 나타내는 표시로 ‘:-)’와 ‘:-(’ 같은 문자 조합을 제안한다”라는 문장에서 기원한다. 이처럼 초기 이모티콘은 단순한 모양새로, 우리나라도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웃음)’, ‘ㅠㅠ(눈물)’, ‘-_-^(화남)’ 같은 문자 조합형 이모티콘이 주를 이뤘다. 개수가 한정적이면 표현 가능한 범위도 제한되기 마련. 괄호로 얼굴 모양 만들거나 한글 자음을 활용해 변화를 주기도 했지만, 문자 조합만으로는 행복·슬픔·분노·놀람 같은 단순한 감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 우리가 자주 쓰는 이미지 이모티콘은 2011년, 네이버 라인의 일본 서비스에서 처음 나왔다(엄밀히 따지면 이미지를 문자처럼 쓰는 건 이모지, 특수문자 조합은 이모티콘이지만 우리나라는 이를 용어적으로 분리하지 않는다). 일본, 대만, 태국을 포함 아시아 전역에서 대대적으로 히트한 모바일 메신저 ‘라인’의 성공은 이모티콘 덕택이다. ‘나르시스트 제임스’, ‘식탐 많은 병아리 샐리’, ‘무뚝뚝하지만 다정한 브라운’처럼 귀여운 라인프렌즈 캐릭터로 이용자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숨에 일본을 포함해 아시아 시장을 장악한 것. 같은 해 11월, 카카오톡은 어피치·무지·튜브 등 자체 캐릭터인 카카오 프렌즈를 활용한 이모티콘 6개를 출시하고 유료 이모티콘을 구매할 수 있는 스토어를 오픈했다. 텍스트 이모티콘과 달리 이미지 이모티콘은 각 캐릭터의 뚜렷한 개성, 다양한 스토리와 풍부한 감정을 갖췄다. 예로, 눈이 하트로 변한 캐릭터의 얼굴, 손가락 하트를 만드는 캐릭터, 포옹한 두 캐릭터 사이에서 하트가 피어나는 등 이미지 이모티콘은 특수문자 하트(♥)보다 더 세밀한 감정선을 이용자에게 제공한다. ‘곧 잘 거다’, ‘지금 약속 장소로 가고 있다’라는 문자를 일일이 쓸 필요도 없다. 왜냐?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거나 헐레벌떡 뛰어가는 이미지 이모티콘을 전송하는 게 더 간단한 데다 대화를 재치 있게 이끌어주니까. 이처럼 이미지 이모티콘은 대중의 손에 새로운 감정 표현의 도구를 쥐여주었다.
세상에 100명이 있다면 취향도 100가지일 수밖에 없다. 각 메신저가 기본 이모티콘을 제공함에도 대중은 각자 기호에 맞는 이모티콘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20~30개 남짓한 이모티콘 세트가 2000~3000원에 불과하니 망설일 이유도 없다. 덕분에 카카오톡은 이모티콘 출시 7년 만에 이모티콘 상품 6500개, 누적 구매자 2000만 명, 월평균 이모티콘 발신량 22억 건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기 위해 카카오 측에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우선 이모티콘 열풍에 대해서는 “전화나 직접적 대화보다 문자메시지로 소통하는 시간이 길어진 요즘, 이모티콘은 더욱 즐겁게 대화하기 위한 소통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글자만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 상황을 이모티콘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도 인기의 한 요인이다”라며 이용자가 더 풍부한 감정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모티콘의 인기 요인으로 꼽았다. 앞서 말했듯이 사람들은 취향에 맞는 이모티콘을 찾는다. 연령대별로 취향이 갈리는 건 당연지사. 카카오 측에 따르면 10~20대는 신상품, 자신의 감정을 재치 있게 표현 가능한 이모티콘, 특정 컨셉 또는 언어유희 요소를 갖춘 이모티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30~40대는 카카오 프렌즈를 포함한 특정 캐릭터 이모티콘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고 한다.
많은 이모티콘이 대화에 사용된다는 건, 어찌 보면 이모티콘이 TV CF보다 대중에게 자주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브랜드 입장에서 카카오톡 이모티콘은 구미가 당기는 새로운 홍보·마케팅 채널이다. 지난 7월, 카카오톡 이모티콘 ‘구찌 스페셜 에디션’을 출시한 구찌를 예로 들 수 있다. 구찌가 밝힌 이모티콘 배포 이유는 명료했다. “텍스트 없이 이모티콘만으로 대화를 진행하는 디지털 세계의 트렌드를 고려해 구찌의 감성을 표현하는 방법의 일환이었다. 구찌 하우스를 대표하는 아이코닉한 동물과 올해 시즈널 프린트인 딸기를 모티브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쓰는 감정을 담았다. 각 이모티콘에는 구찌 로고, 액세서리, 프린트를 더해 디테일한 요소를 살렸다. 이를 통해 밀레니얼 세대에게 구찌만의 감성을 어필하고 그들과 소통하고자 했다.”
2015년, 옥스퍼드 사전은 사상 최초로 올해의 단어(word of the year)를 알파벳이 아닌 ‘이모지’로 선정했다. 수상의 주인공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얼굴(face with tears of joy)’인데, 이유는 높은 사용 빈도수다. 당시 후보에 오른 브렉시트, 난민, 공유 경제가 전 세계 키워드임에도 노란색 얼굴이 우승을 꿰찼다는 것은 많은 걸 시사한다. 현대인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이제 대면 대화보다 모바일 메신저가 우위에 있으며, 이모티콘은 21세기에 걸맞은 신흥 문자라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 응당 문자도 바뀐다. 우리가 더 이상 ‘아래아(ㆍ)’와 ‘여린히읗(ㆆ)’을 쓰지 않듯이 대화 분위기를 주도하는 이모티콘은 현대 언어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옥스퍼드 사전 회장 캐스퍼 그래톨이 “이모지는 유연하고 즉각적이며 분위기를 멋지게 불어넣는다”라고 말했듯이 백 마디 말보다 이모티콘 하나가 나은 시대가 도래했다. 그냥 스쳐 지나갈 유행이 아닌 것이다. 




카카오톡 메인 이모티콘인 카카오 프렌즈. 같은 기쁨일지라도 표현 방법이 다양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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