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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03

파리에서 단 하룻밤 동안 열리는 축제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되는 밤, 파리에서는 특별한 예술 축제가 열린다. 아트와 세상 모든 예술이 뒤엉켜 오직 하룻밤 동안 열리는 ‘뉘 블랑슈’다.

그룹 F(Groupe F)의 카타르 국립 박물관 공연 장면(2019).

매년 10월 첫 번째 토요일 저녁이 되면 파리시의 공공 예술 축제 ‘뉘 블랑슈(Nuit Blanche)’는 ‘하얀 밤’이라는 의미 그대로 밤을 지새울 준비를 마친다. 2002년 시작해 해마다 약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하며 명실공히 파리를 대표하는 연례 행사로 자리 잡은 이 축제가 맞이한 열여덟 번째 밤은 어땠을까. 지난해 축제는 공공장소나 유적지마다 그 장소에 맞는 특정 예술 작품을 설치해 이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체험을 유도했다면, 이번에는 ‘움직임’을 전면에 내세웠다. 올해 예술감독을 맡은 디디에 퓌실리에(Didier Fusillier)와 장-막스 콜라르(Jean-Max Colard)는 한곳에 고정된 예술 작품을 수동적으로 관람하는 방식을 넘어 춤, 순환, 산책, 스포츠 등의 개념을 끌어들여 참여자들의 몸을 직접 움직이게 하고 궁극적으로 “눈과 영혼을 깨우는 밤”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1 실비 플뢰리 (Sylvie Fleury)의 ‘io’(2019).
2 소피 페레즈(Sophie Perez) & 자비에 부시롱(Xavier Boussiron)의 ‘La Compagnie du Zerep’ (2019).

이러한 기획 의도를 증명하듯, 지난 10월 5일 밤은 파리 시내와 외곽에 걸쳐 갖가지 움직임으로 일렁였다. 우선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어 10km에 달하는 두 코스를 달리는 일군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마라토너처럼 참가 번호를 부여받은 후 미리 정해놓은 동선을 따라 도심을 가로질렀다.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중간중간 달리기를 멈추고 공원에서 유명 안무가인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의 춤을 배우거나, 루브르 박물관 컬렉션이나 유네스코 건물 안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감상했다는 점에서 요즘 서울 도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검은 옷의 러너들과는 달랐다. 예술가들도 산책을 하며 거리를 누볐다. 예컨대, 알랭 아리아스-미송(Alain Arias-Misson)은 공공장소에서 글자를 짊어지고 걷는 사람의 몸짓으로 써 내려가는 ‘공공 시(Public Poem)’를, 한스 발터-뮐러(Hans Walter-Muller)는 투명한 PVC 소재 풍선 속에 퍼포머가 들어가 걷거나 뛰고 사색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펼침으로써 파리 곳곳을 예술 행위의 장으로 만들었다.






3 마르틴 페펠 (Martine Feipel) & 장 베샤멜(Jean Bechameil)의 ‘La Nuit Sans Lune’(2019).
4 에마뉘엘레 인 (Emmanuelle Huynh) & 세실 르 프라도 (Cecile Le Prado)의 ‘Elles’ (2019).

자전거 또한 밤의 움직임을 극대화하는 장치 중 하나였다. 특히 파리 북동쪽 팡탱(Pantin)과 라 빌레트(La Villette)를 지나는 외곽순환도로의 차량 통행을 20시간가량 완전히 통제하고 자전거 트랙으로 변모시켜 자전거광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소박한 버전의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 분위기로 꾸민 도로에서는 시각 효과뿐 아니라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빛’이 활용됐다. 건축가 듀오 1024 아키텍처의 프로젝트 ‘V-룹(V-loop)’은 200대가 넘는 영사기를 동원해 ‘선’을 만들어 자전거가 지나는 길을 밝히는 동시에 또 다른 프로젝트 ‘뤼시올(Luciole)’을 통해 참가자들의 자전거와 안전모에 조명을 달았다. 각자의 속도로 페달을 밟고, 묘기를 부리기도 하는 이들의 움직임과 반짝임이 모여 또 다른 장관이 연출됐다. 자전거를 타지 않은 사람들 또한 도로 근처에 마련된 DJ 부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거나 푸드 트럭에서 야식을 즐기며 나름의 방식으로 야행(夜行)을 즐겼다.






무니르 파트미 (Mounir Fatmi), ‘The Human Factor’(2018).

지칠 줄 모르는 러너들과 자전거, 전동 킥보드 등 각양각색의 동체들이 파리 동서남북을 누비는 동안 ‘정거장(Les Stations)’이라 명명한 지점에선 보다 전통적 방식으로 예술을 즐길 수 있었다. 스포츠와 관련한 이벤트 외에도 구청과 시청, 성당, 학교,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 피카소 미술관(Musee National Picasso-Paris) 등을 포함해 200여 개가 넘는 기관을 개방해, 밤을 잊은 시민을 맞이한 것. 프랑시스 알리스(Francis Alyys)나 윌리엄 켄트리지(William Kentridge)처럼 유명한 예술가의 작품도 있지만 지역을 중심으로 만든 컬렉티브나 신진 작가의 작품에도 기회가 돌아갔는데, 회화·조각·영화·설치·퍼포먼스·연극·콘서트 등 그 양상도 다양했다. 게다가 기존의 인기 있는 전시를 늦은 시간까지 무료로 관람할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한낮을 방불케 할 만큼 긴 줄이 늘어선 곳도 있었다. 이런 열정을 응원하듯, 파리시도 이날 하루만큼은 버스, 지하철, 기차 등 대중교통을 연장 운행했다. 전체 프로그램을 섭렵하기엔 너무 짧은 지난밤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대규모 퍼레이드였다. 파리 중심부 콩코르드 광장에서 팡파르를 울리며 출발해 리볼리 거리를 지나 바스티유 광장으로 이어진 행렬은 전통적인 사육제와 현대미술이 뒤섞인 형태로 꾸렸다. 다니엘 뷔렌(Daniel Buren), 빌 본(Bill Vorn), 실비 플뢰리(Sylvie Fleury), 아네트 메사제(Annette Messager) 등 12명의 아티스트가 각자 신작을 선보였고, 거대한 이동식 무대 위에선 무용수, 가수, DJ, 오케스트라 등이 합세해 대중 친화적이고 스펙터클한 축제를 완성했다.
안 이달고(Anne Hidalgo) 파리시장은 “도시의 역사와 문화적 풍성함은 모두에게 접근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며, “뉘 블랑슈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도록 문을 열고, 벽을 밀고, 울타리를 허문다”고 이 축제의 의미를 설명한 바 있다. 나아가 이것은 ‘뉘 블랑슈’가 타이베이, 몬트리올, 텔아비브 등 세계의 수많은 도시로 전파되어 새로운 하얀 밤을 만들어나갈 이유이기도 하다.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이가진(미술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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