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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16

파리의 새로운 아트 스폿

파리를 들썩이게 한 카를라 소차니 갤러리와 데이비드 즈위너 파리 오픈 스토리. 왜 그들은 이 도시를 선택했나?

소차니 재단에서 열린 크리스 루스의 개인전 풍경. Installation view of < Kris Ruhs: Creation Language >, October 2019

카를라 소차니의 도전
파리 18구 라샤펠(La Chapelle) 지하철역 부근, 막스 도르무아 길(Rue Marx Dormoy) 22번지.
이곳에 패션계의 대모이자 10 꼬르소 꼬모 수장인 카를라 소차니(Carla Sozzani)의 명패가 걸렸다. 패션계에서 자신의 영향력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녀는 예술과 문화를 향한 관심을 감추지 않았다. 그 일환으로 사진, 미술, 디자인과 패션을 통해 문화 예술 활동을 증진한다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2016년엔 재단(Fondazione Sozzani)을 설립하기도 했다.
조용히 내실을 다져온 덕분에 맞이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자리에서 카를라 소차니는 “밀라노에 갤러리를 오픈한 지 30여 년이 흘렀다. 이제는 다른 도전을 하고 싶다. 지금이 바로 소차니 재단의 문화적 여정을 내가 사랑하는 또다른 도시로 확장해야 할 시점이다”라고 밝혔다.




데이비드 즈위너 파리에서 열린 댄 플래빈의 회고전 전경. Installation View of < Dan Flavin > at David Zwirner Paris, November 30, 2019~February 1, 2020

편집숍 내부에 자리 잡은 밀라노 갤러리와 달리 파리의 공간은 오롯이 ‘예술’에 초점을 맞추었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 위주로 전시를 꾸릴 예정이다. 새 건물은 19세기에 산업 시설로 쓰였다는데, 외관부터 주인의 전작들만큼 확실한 개성을 드러낸다. 높은 천장, 흰색과 검은색의 대비, 시원한 통유리가 눈에 띄는 철골 구조는 얼핏 전형적인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묘하게 비대칭을 이루는 선의 활용이 두드러진다. 무엇보다 이미 많은 갤러리가 포진한 마레 지구나 샹젤리제 주변처럼 고급스럽거나 세련되진 않아도 다듬어지지 않은 신선한 가능성을 품은 위치에 터를 잡은 대담함이 그 매력을 더한다.
첫 번째 전시의 주인공으로 낙점된 아티스트 크리스 루스(Kris Ruhs)는 이미 1990년 밀라노 갤러리의 오프닝 전시도 함께 꾸렸을 정도로 카를라 소차니와는 오랜 세월 인연을 맺어왔다. 이번에는 캔버스 작품과 더불어 공간과 조응하는 대형 설치 작품까지, 대표작과 신작을 아울러 선보였다. 10월 15일 개관식에는 패션 큐레이터 올리비에 사야르(Olivier Saillard), 포토그래퍼 세라 문(Sarah Moon) 등 여러 인사가 참석해 자리를 빛내기도 했다.




데이비드 즈위너 파리에서 열린 댄 플래빈의 회고전 전경. Installation View of < Dan Flavin > at David Zwirner Paris, November 30, 2019~February 1, 2020

브렉시트를 고려한 데이비드 즈위너의 선택
브렉시트로 여론이 들끓던 지난해 7월, 갤러리스트 데이비드 즈위너(David Zwirner)는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브렉시트가 게임을 바꿔놓았다. 10월 이후로 런던의 공간은 ‘영국’ 갤러리이자, ‘비유럽권’ 갤러리가 될 것이다. 나는 유러피언이고(그는 독일계다), 유럽에 있는 갤러리도 필요하다.” 그는 곧바로 자신의 말을 실천에 옮겼다. 즈위너가 예고한 ‘유러피언 갤러리’가 자리 잡은 장소는 런던에서 고속열차로 2시간 정도 걸리는 프랑스의 수도 파리였다.




데이비드 즈위너 파리의 개관전을 장식한 레이먼드 페티본의 작품. Raymond Pettibon, No Title(John Ford directed…), 2019

세계 금융 중심지인 뉴욕과 런던 그리고 지정학적 유리함 덕분에 안정적인 미술 시장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는 홍콩까지, 많은 이들이 현대미술과 관련한 ‘Big 3’로 이 세 도시를 꼽는다. 그에 비해 파리는 유서 깊은 예술 애호 문화를 토대로 루브르와 오르세라는 상징적 미술관을 보유하고 있지만, 유독 동시대 미술 신에서는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는 형국이다. 많은 프랑스인이 여전히 ‘인상주의’를 가장 사랑하고, 대부분의 미술관은 국가의 재정적 후원을 받기 때문에 운용할 수 있는 예산의 수준이 미국이나 영국보다 현저히 낮다. 자연히 파리의 예술 지형도는 소장품 위주의 고전이나 근대 작품을 중심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뉴욕에만 3개의 대형 갤러리를 운영 중이고, 런던과 홍콩에 각각 지점을 낸 거물급 갤러리스트 데이비드 즈위너는 왜 파리를 주목했을까? 물론 앞서 언급한 브렉시트가 직접적인 방아쇠를 당겼다. 보다 분명하게는 이전과 달리 복잡해질지 모르는 세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 빠른 대안을 마련해야 했을 것이다. 게다가 굵직한 아티스트들이 여러 갤러리와 동시에 관계를 맺고 있는 런던이나 뉴욕과 달리 파리에서는 좀 더 자유롭게 소속 작가를 소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를 예고하듯 그는 파리 갤러리의 전시로 연달아 미국 출신 작가를 소개하고 있다.




흰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소차니 재단의 모던한 실내 풍경.

지난해 10월 15일 개관전을 장식한 레이먼드 페티본(Raymond Pettibon)은 최근의 활약이 무색하게도, 무려 1995년 이후 처음으로 파리에서 여는 개인전이었다. 바통을 이어받은 댄 플래빈(Dan Flavin)도 2006년의 회고전 이후 프랑스에서 제대로 된 전시 기회가 없었다. 두 전시 모두 대단한 홍보나 요란한 눈요기는 없었지만,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갤러리답게 ‘로컬’과 ‘글로벌’을 연결하기 위한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트프라이스(Artprice)의 2019년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의 미술품 경매시장 수익이나 자국 출신 작가들의 글로벌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밀도’와 ‘다양성’ 면에서는 프랑스 미술 시장이 단연 두드러진다. 입지적으로 브렉시트의 반사이익을 누릴 만한 기회도 많아질 것이다. 그뿐 아니라 또 다른 메이저 갤러리인 하우저 앤 워스(Hauser & Wirth)와 화이트 큐브(White Cube) 역시 파리 진출을 고려 중이라고 하니 영국의 탈유럽화가 미술계의 판도를 어떻게 뒤흔들어놓을지 날이 갈수록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에디터 이소영(프리랜서)
이가진(미술 저널리스트)   사진 제공 소차니 재단, 데이비드 즈위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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