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읽어야 할 각본집 3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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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15

지금 읽어야 할 각본집 3

<기생충> <캐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 소장욕을 불러 일으키는 영화 각본집을 소개한다.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던 길, 비행기 안에서 본 토드 헤인즈 감독의 영화 <캐롤>은 꽤 충격적이었다. 작고 답답한 화면을 뚫고 나온 캐롤(케이트 블란쳇)의 미묘하면서도 물컹한 미소와 그런 그녀를 욕망하듯 힐끔대는 젊은 여주인공 테레즈(루니 메라)의 짙은 눈동자, 그 둘이 세상의 편견과 가족의 외면에 굴복하지 않고 마침내 이룬 사랑. 이 영화는 캐롤과 테레즈 그리고 또 한 명의 레즈비언인 애비의 심리를 불안하지 않게,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그려낸다. 배우들이 보여주는 섬세한 심리와 동태에 집중할수록 우리는 ‘동성애라는 주제가 꼭 그렇게 불편하게 만드는 것만은 아니군’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뉴욕비평가협회상(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 수상,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캐롤>의 가치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1952년에 쓴 원작 <소금의 값>을 각본으로 옮긴 극작가 필리스 너지의 각본집 <캐롤>은 영화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과정이다. 영상의 특성상 빠른 전개로 놓칠 수밖에 없던 신을 확인하며 주인공의 몸짓과 손짓 하나하나를 곱씹는 것이 각본집의 재미지만, 이 책에서 독자에게 필요한 것은 캐롤의 삶이 어떠한 내러티브를 입고 있는지 눈으로 좀 더 촘촘히 훑는 행위일 것이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감독상 등을 수상하며 충무로에 새로운 자극이 된 영화 <기생충>의 <기생충 각본집 & 스토리보드북>은 봉준호 감독의 날것 그대로다.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년)부터 <기생충>(2019년)까지 20년간 영화감독으로 살며 시나리오를 쓰고 스토리보드를 그리고 촬영해온 봉 감독이 “제 영화는 제가 그린 스토리보드와 거의 다를 바 없습니다”라고 자랑하듯 던진 말처럼, 이 책은 영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부유한 대저택을 배경으로 사회적 빈부 격차를 다룬 <기생충>은 많은 이에게 보편적 공감을 얻으며 <데일리 텔레그래프>로부터 “우리 피부 속으로 파고들어 이빨을 박아 넣는 영화”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번 주말, 당신이 각본집을 열고 영화의 주인공, 특히 스토리 말미 기우(최우식)의 독백과 시선에 집중한다면 이 영화가 왜 ‘광대가 나오지 않는 코미디, 악당이 나오지 않는 비극’인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칸 영화제 심사위원 수상작인 고레다 히로카즈가 직접 쓰고 연출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6년간 키운 아들이 병원에서 바뀐 아이라는 걸 알게 된 두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살아가는 방식이 너무 다른 두 아버지는 주말마다 서로의 친아들을 집에서 키우는 데 합의하고 마침내 아들을 바꾸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키워준 부모를 찾아 가출한 아이를 보며 결국 서로 친아들뿐 아니라 키운 아이까지 모두 보듬게 된다는 스토리. 각본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이 견고하면서도 무겁지 않게 써 내려간 문장을 한 자 한 자 곱씹게 하는 마력이 있다. 특히 부모라면 “아버지도 누가 대신해줄 수 없는 일이잖아요”, “아빠는 아빠도 아니야”,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시간이에요” 같은 명대사가 혀끝에 맴돌아 책장을 쉬이 덮지 못할 것이다.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라며 판권까지 구입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극찬이 아니더라도 ‘때론 아이들도 충분히 공허할 수 있다’는 너른 마음을 지닌 어른이라면 이 푸릇하고 따뜻한 표지를 꼭 한 번은 들춰볼 것을 권한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김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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