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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05

도자의 무한한 변주

도자는 이제 공예의 일환으로 치부하기엔 그 모양의 변주가 무한하다.

1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왼쪽) Archeo-logic Snoopy, 시멘트, 플라스틱, 플라스틱, 폴리우레탄, 40×18×17cm, 2008
(오른쪽) Hybrid Snoopy, 도자기, 석고, 38×38×40cm, 2008

약 1400℃의 뜨거운 화마를 견뎌내고 나서야 비로소 도자는 탄생한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거쳐야 하는 모든 프로세스에서 아주 작은 틈만 있어도 도자는 균열이 가고 결국 망가져버리는 섬세한 매체다. 그래서인지 예부터 도자는 순수예술이 아닌 ‘공예’의 한 장르로 가볍게 다뤄지곤 했다. 그런데 완벽함을 추구해야 한다고 여겨온 도자가 이제 무한 변주의 세계에 던져졌다. 많은 작가가 도자의 깨지기 쉬운 연약함 같은 물질적 속성에 집중해 새로운 기법을 연구하거나, 석기시대부터 인류 문명의 발전을 증명하는 이 매체의 역사성에 현대적 시각을 덧입히는 등 여러 실험적 작업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우리의 뇌리를 가장 먼저 스친 작가는 아마 이수경일 것이다. 2017년 제57회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서 ‘번역된 도자기’ 연작으로 관람객의 눈을 사로잡은 작가는 도자를 직접 굽지 않고 버려진 도자기의 파편을 이어 붙여 작품을 완성한다. 우리나라의 도자 장인들은 전통 도자기를 재현하기 위해 아주 작은 결점만 발견돼도 이를 파기한다. 그렇게 작품의 희소성과 가치를 유지한다. 이수경 작가는 그들이 버린 부서진 도자 파편을 주워 퍼즐처럼 맞추고, 그 이음매에 금박을 입혀 예술가의 손길을 더한다. “나는 도자기가 부서진 순간부터 작품에 개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나의 번역과 해석에 의해 새로운 이야기와 의미를 담은 작품이 완성된다.” 작품의 제목 ‘번역된 도자기’는 아마도 작가가 새로운 시각으로 제시하는 신선한 해석을 의미할 것이다. 듀오 아티스트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는 어떤가. 이들은 동서양의 다양한 매체와 철학을 넘나드는 작업을 선보인다. 무더웠던 지난해 여름, 성곡미술관에서 이들이 작가로 함께한 15년의 세월을 돌아보는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리프로스펙티브>전을 열었다. 이들의 과거 전시 제목 ‘무감각의 미’, ‘시스템의 목적은 그 시스템이 하는 일’, ‘낭만 결핍증’ 그리고 ‘자기도취’를 차용해 총 4개의 방으로 구성했다. 주로 일상의 소품, 만화 속 캐릭터, 기억하기 쉬운 문구나 말장난 같은 소재로 우리 시대의 욕망을 드러내는 이들의 작품 가운데 특히 눈에 띈 것은 ‘담배: 티타임’이다. 도자로 담배를 만들고, 벽지를 둘러 감아 마치 담배는 차 마시는 시간처럼 가볍게 태울 수 있는 존재임을 피력한 듯하다. 하지만 잠깐. 이들 듀오의 센스는 여기서 발현된다. 알록달록한 벽지 그리고 거대한 담배와 담뱃재까지, 과장된 표현을 통해 과연 담배가 티타임으로 치환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유머러스하게 던지는 것이다. 또 함께 선뵌 ‘아키텍토닉스’는 청자와 대리석으로 마천루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20세기 초 러시아의 아방가르드를 대표한 절대주의자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가 흰 석고 블록으로 유토피아적· 미래주의적 건축 모델을 형상화한 ‘아키텍톤(Architecton)’을 차용했다. 다만 이들 듀오의 작품은 조금 더 현대적이고 동시대적인 도시의 아파트 단지나 마천루가 가득한 도심 복판의 한 부분을 연상케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들에게 도자는 작업에 사용하는 수많은 매체 가운데 하나다. 공예적인 부분을 강조하기보다는 작가의 사유를 좀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자 방법으로 도자 매체를 활용하고 있다.


2 이승희, TAO, 세라믹, 126×101cm, 2014
3 그레이슨 페리, We've Found the Body of Your Child, 글레이즈 세라믹, 49×30×30cm, 2000

올해 3월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서 전시를 계획 중인 이승희 작가 역시 ‘흙으로 완성한 현대 회화’란 새로운 예술 영역을 구축한 이로 알려졌다. 작가는 자신의 사유를 형상화하는 도구로 흙을 사용한다. 반복해서 얇은 도자 레이어를 쌓아서 평면 도자 회화를 완성한다. 이는 굉장히 수행적인 작업이기도 하다. 매체의 특성상 붓질은 하루에 한 번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르기 전에 다른 레이어를 덧칠하면 들뜨기 때문에 결국 그 부분은 들어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그의 회화는 오랜 시간에 걸친 인내로 점철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에 갤러리이배에서 선뵌 ‘TAO’ 연작 역시 흥미롭다. 유약 없이 구워 흙의 물성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었던 것. 작품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의 도자는 ‘도(道)를 닦는 여정’이기도 하다.
단순히 도자의 외형을 비틀거나 매체의 활용 방법에 변화를 꾀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이번에 소개하는 그레이슨 페리(Grayson Perry)는 도자라는 매체에 함의된 클래식한 정의를 전복시킨다. 언뜻 보기엔 고대 그리스의 병(항아리)이나 동방의 오래된 도자기를 차용한 듯하지만, 도기에 신화나 일상을 그려 넣은 고대인과 달리 현대의 예민한 성 문제라든지, 사회적 이슈나 편견에 대한 이미지, 텍스트, 기하학적 무늬 등을 적나라하게 수놓는다. 여기서 잠깐, 영국 출신의 이 작가는 복장 도착자란 점을 언급해야겠다. 화장을 하고 여자 드레스를 즐겨 입는 것. 가정을 꾸리고 자녀까지 있는 작가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기보다 남녀에 대해 사회가 정한 규정, 규칙, 편견에 대한 전복을 스스로 실천하며 약자들의 상처를 껴안고자 노력한다. 작품에도 이러한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다. 2003년 터너상을 수상하며 새롭게 조명된 작품 ‘금빛 유령’과 ‘당신 아이의 시체를 발견했소’를 살펴보자. 두 작품에는 모두 아이들이 등장한다. ‘금빛 유령’ 속 앉아 있는 소녀의 얼굴에 드러난 불행한 표정은 배경의 목가적 풍경과 극명히 대조된다. 페리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참사의 영향을 받아 이 작품을 완성했다. 한편 ‘당신 아이의 시체를 발견했소’ 속 아이들은 가정 폭력에 노출된 이들이다. 이렇게 작가는 우리로 하여금 사회의 어두운 이면, 드러내기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소환할 작가는 루초 폰타나(Lucio Fontana)다. 20세기 가장 진보적인 예술가 가운데 한 명으로 거론되는 작가는 조각가 아버지의 손에 자랐다. 하지만 우리는 루초 폰타나 하면 칼로 찢은 캔버스를 먼저 떠올리곤 한다. 그의 도자 작업 역시 평면 작업과 궤를 같이한다. 물질과 장르의 평등을 보여주는 것이다. 색을 입힌 테라코타, 포슬린, 글레이즈 세라믹까지 무척 다양한 기법으로 만든 도자. 폰타나의 작품 세계 전반은 말 그대로 평면에서 조각, 도자로 매체를 가로지르며 정적인 지점과 공간적 차원 사이의 경계선을 정의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담겼다. 특히 1930년대부터 시작한 바로크 도자 작업은 그 공감각이 두드러지며, 형상이 있는 듯 없는 듯 모호한 추상의 형태를 띤다. ‘Ballerina’, ‘Crocifissione’, ‘Cupido’ 같은 작품 제목이 작품의 형상에 대한 힌트다. 이렇듯 많은 현대미술 작가가 도자의 물성, 특성을 극대화하며 예술가의 손으로 구현할 수 있는 최대치를 끌어내기도 하고, 자신의 철학을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면서 이 매체의 경계를 점점 늘려간다. 이에 맞춰 우리의 인식 역시 변하는 것이 당연지사. 도자는 이제 공예의 일환으로 치부하기엔 그 모양의 변주가 무한하다.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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