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의 정치학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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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26

트로트의 정치학

혼란의 틈에서 바라본 여덟 가지 이슈에 대한 시선.

미래를 가져다주세요, 지금 당장
흔히 말하는 ‘C.A.S.E.’ 이는 연결성(connected), 자율주행(autonomous), 공유(shared), 전동화(electric)의 머리글자로 미래를 바꿀 ‘사건(case)’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동차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자동차업계가 4차 산업혁명을 등에 업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한 내용이니 말이다. 그간 많은 자동차 회사가 C.A.S.E로 곧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처럼 굴었다. 그중 2020년을 목표로 한 계획도 적지 않다.
2020년이 밝은 지 한참이 지났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아쉽게도 아직 운전자 없이 달리는 자동차는 나오지 않았다. 비전 발표 축제인 CES(국제가전제품박람회)마저 이렇다 할 큰 이슈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모빌리티 분야에서는 아직 패스트 팔로어인 토요타와 현대자동차만이 ‘미래 도시’를 주제로 유럽 브랜드가 제시한 전략을 가공해 선보였을 뿐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CES를 두고 ‘C.A.S.E의 붕괴’라는 분석도 내놨다. 뭐, 분위기가 가라앉은 건 확실하니 이견은 없다. 많은 자동차 회사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C.A.S.E가 그저 자동차 회사들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현실적 문제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인 중요한 사건이다.
C.A.S.E 전략 부진의 가장 큰 문제는 커넥티드(연결성) 분야다. 스마트폰으로 도어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으로 주차비를 계산할 수 있는 기능까지 내놨지만, 기술적 문제(그리고 이권 문제)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차량사물통신(Vehicle to Everything communication, V2X)은 아직 통신 표준조차 정하지 못했다. V2X는 자동차와 모든 사물을 연결하는 기술로, 완전 자율주행 상용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당연히 자율주행 기술은 V2X의 부재를 핑계로 SAE(자동차기술협회) 기준 레벨 2~3 수준에 머물고 있다. 레벨 4부터는 V2X가 필수이며, 인프라만 갖추면 최종 단계인 레벨 5로 바로 건너뛸 수도 있다. 참고로, 완전 자율주행인 레벨 5는 기술 숙성을 이유로 상용차에 먼저 도입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공유 분야는 자동차 회사들의 예상과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우버, 리프트, 그랩 등 승차 공유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자동차 공유 서비스인 카셰어링 시장은 지지부진하다. 2008년 ‘Car2Go’로 카셰어링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메르세데스-벤츠의 모기업 다임러조차 아직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양상은 자동차 회사로 하여금 경각심을 갖게 했다. 쾌적한 이동만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 모든 자동차가 ‘우버화’되는 완전 자율주행 시대가 오면 자동차 판매량이 급감할 것이라는 이야기 때문이다. 특히 어중간한 고급차 브랜드의 불안감이 크다. 완전 자율주행 시대가 오면 부자들은 롤스로이스 같은 초호화 차를 살 테고, 서민은 토요타나 폭스바겐, 현대차 같은 대중적 브랜드의 차를 택시처럼 이용할 테니 말이다. 메르세데스-벤츠가 차별화된 사용자 경험을 유독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CES에서 공개한 비전 AVTR 컨셉카가 바로 이런 불안감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전동화는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내연기관차만 만들던 자동차 회사도 하나둘씩 제대로 된 전기차를 선보이고 있다. 눈엣가시인 테슬라가 시장을 흔들어놨고, 중국 회사들이 도전적으로 나오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보단 변화의 속도가 더디다. C.A.S.E를 중심으로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상황인 데다 ‘디젤게이트’로 인한 천문학적 배상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라 수익성이 좋은 내연기관차를 내려놓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국제 유가마저 안정세로 돌아섰다. 분명 시장 분위기를 살피며 몇몇 선진국의 친환경 차 정책만 따라가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C.A.S.E 얘기를 꺼낸 건 전동화에 대한 자동차 회사들의 이런 태도를 보고 든 의심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C.A.S.E는 하나로 연결돼 있다. 커넥티드 분야의 핵심 기술인 V2X 자율주행 상용화를 결정짓고, 전동화와 자율주행 상용화는 자동차의 이용 형태를 바꾸며 공유 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가져올 것이다. 자, 그럼 완전 자율주행 기술의 핵심인 V2X의 통신 표준을 정하지 못하는 게 정말 기술적 문제 때문일까? 새로운 수익 창출을 위해서라면 개발비를 조 단위로 쏟아부으며 합종연횡을 펼치는 거대 기업들이 대체 왜 이렇게 우물쭈물하고 있을까? 물론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의심 정도는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들은 세상이 바뀌는 걸 원치 않는 게 아닐까? _ 류민 수동변속기와 전기모터 모두를 사랑하는 자동차 칼럼니스트.






무질서 속의 질서
2017년 7월, 30시간을 이동해 페루 리마로 건너갔다. 남미까지 간 것은 그곳의 도시와 사람들의 삶을 바로 가까이서 보기 위해서였다. 한국은 전쟁 이후 빠르게 성장하며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다. 그 과정에서 선진국의 제도와 시스템을 벤치마킹하고 한국에 맞게 발전시켰다. 어느 시점을 지나자 우리가 모르는 선진국의 사례는 없어졌고, 오히려 그들 나라에서 우리의 사례를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선진국과 우리의 가장 큰 차이는 변화의 속도다.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는 지금도 우리 사회의 변화 속도는 여타 선진국보다 훨씬 빠르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는 개발도상국의 도시적 변화로부터 우리에게 더 유의미한 현상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미의 도시를 둘러보게 된 연유다.
리마는 페루의 수도로 약 950만 명이 살고 있다. 1960년대 이래 인구는 4배 이상 증가했고 도시의 외곽, 특히 구릉지에는 다수의 임시 주거지역(informal city)이 형성되었다. 이곳에 사는 빈민은 전체 인구의 30% 이상으로 추정된다. 주거지뿐 아니라 국가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분야가 또 있다. 대중교통이다. 리마의 대중교통 중 90% 이상을 불법 영업 자가용이 담당한다. ‘콜렉티보’라는 승합차는 목적지를 정해두고 승객이 만차가 되면 이동하는 무정차 마을버스다. 나도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가 그들이 승차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100원 남짓한 차비로 소리 높여 다투는 모습이 내 눈에는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다. 한데 버스를 기다리며 계속 지켜보고 있자니 임신부나 노인 혹은 장애인이 오면 차비를 받는 차장이 그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리마를 거쳐 페루의 두 번째 도시 아레키파로 넘어갔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나름 고급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구걸하는 사람이 들어왔고, 식당 안에 있던 손님들에게 가벼운 구걸을 하고는 나갔다. 식당 주인은 음식을 싸서 전해주었는데 그는 받지 않았다. 구걸하는 사람을 내치지 않는 주인의 행동도 그렇고, 건네주는 음식을 거절하는 그의 행동도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때 함께 있던 지인이 귀띔했다. 연구차 그곳에 머무른 지인이 쓰레기 분리수거 문제로 행정 당국에 민원을 넣었는데, “쓰레기를 꼭 분리수거해야 하나요? 당신이 버린 쓰레기에서 하루치 생명을 얻는 사람도 있을 텐데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1975년에 태어나 고도 경제성장기를 거친 나는 살아오면서 한국의 발전과 더불어 선진국의 시스템, 다시 말하면 정형화된 질서에 익숙해졌다. 그것이 내게는 선진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내 눈에는 무질서하게 보인 페루의 방식이 실제로는 그들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건 그들의 삶을 지척에서 보고 느낀 뒤였다.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된 사실 하나. 1975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594달러고, 페루는 1108달러였다. _ 한승욱 도시와 사람을 바라보고, 그 생각을 글과 스케치로 남기는 도시 연구자. 9년간 교토에서 지낸 시간의 켜가 도시를 깊게, 그리고 오래 바라보게 하는 사유의 틀이 되었다.






그럼에도 기내식
기내식을 먹을까 말까 고민한 적은 없다. 명색이 푸드 라이터인데 눈앞에 음식이 놓이면 맛부터 봐야 하니까. 그럼에도 늘 궁금했다. 기내식을 내놓는 데는 어떤 기준이 있는 걸까? 주는 대로 먹는 게 건강에 좋을까 아니면 안 먹는 게 나을까. 코로나19가 세계 전역으로 확산되며 여행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진 지금에 와서야 책상머리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본문에 앞서 기내에서 음식으로 코로나19에 감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점을 밝힌다).
여행 첫날이면 네다섯 끼를 먹는 게 쉬운 일이다. 비행기를 타기 전에 기다리면서 먹고 기내에서 제공되는 첫 식사를 먹고 자다 깨서 간식을 먹고 내리기 전에 조식을 먹는다. 그런데도 여행지에 도착하면 희한하게 또 배가 고프다. 나는 건 비행기인데 내가 연료를 소비한 것처럼 먹는다. 공항에서 걷는 걸 감안해도 내가 걷는 거리는 평균치에서 겨우 1km 남짓 늘어날 뿐이지만 섭취 칼로리는 평소의 두 배 가까이 된다.
앉아서 먹기만 하는 게 건강에 좋을 리 없다. 2011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한 달에 21일 이상 여행하는 사람은 한 달에 1~6일 정도 여행하는 사람에 비해 비만일 확률이 92% 높았다. 업무차 여행 중에 누구나 불안하고 우울해지기 쉽고 운동량은 줄고 잠은 제대로 자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행 첫날 기내에서 많이 먹는 것은 피하는 게 현명하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1919년 런던발 파리행 항공편에서 처음으로 제공한 기내식은 유료 런치박스였다. 1960년대는 기내식의 황금기라 칭할 수 있는데 이코노미 승객도 코스 정찬을 즐길 수 있을 정도였다. 사실 탑승 전 라운지에서든 식당에서든 미리 먹고 비행기를 타자마자 곧 또다시 식사하는 것은 생리적 필요와는 무관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런 관행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은 기내식 제공이 손님을 후대하는 문화적 관습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2016년 4월 11일 에어프랑스가 뉴욕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의 비즈니스 승객에게 라운지에서 기내와 동일한 저녁식사를 미리 제공하는 서비스를 개시한다고 발표했을 때도 그랬다. 에어프랑스는 뉴욕에서 유럽 도시까지 6시간 남짓한 비행시간 동안 충분히 자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면서도 식욕이 왕성한 고객은 기내에서 동일한 식사를 다시 한번 할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라운지에서 기내식을 제공하는 게 비용 절감을 위한 조치라는 비난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맛이 없다고 불평하면서도 승객 대부분이 기내식은 어떻게든 먹고야 만다. 먹어야 본전을 뽑는 것 같고 관습상 배불리 먹어야 손님 대접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내식이 생각보다 입에 잘 맞는다. 기내식이 맛없는 이유와 개선 방법에 대한 과학자들의 연구 덕분이다. 수분 손실을 막기 위해 질척한 소스에 담긴 음식을 여러 시간 전에 미리 준비했다가 기내에서 다시 데워 제공하는데 맛있기란 어려운 일이다. 건조한 기내에서 냄새를 맡기 어려운 것과 비행기 엔진 소음 때문에 인체가 단맛과 짠맛에 둔감해지는 현상도 맛없음에 한몫한다. 이륙 전과 동일한 맛을 내려면 설탕과 소금을 30% 더 첨가해야 한다. 반대로 감칠맛은 증가한다. 기내에서 토마토주스를 많이 찾게 되는 이유다. 시나몬, 생강, 마늘, 칠리, 커리는 비행 중에도 맛을 유지하기 쉽다. 이런 연구 결과에 따라 루프트한자는 기내식의 풍미를 높이기 위해 오렌지, 토마토, 허브 사용량을 늘렸다.
출발 전에 두 끼를 먹었다면 기내에서는 한 끼만 먹는 게 원칙이다. 건강만 생각한다면 그렇다. 하지만 그런 평소 원칙을 잠깐이나마 깨뜨려보는 것 또한 여행의 즐거움 아니던가. 내려서 한두 끼 굶더라도 1만m 고도의 기내에서 달라지는 음식 맛을 전부 다 맛보고 싶은 이유다. _ 정재훈 약사이자 푸드 라이터. 마트와 편의점, 노포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숨어 있는 요리와 먹기의 과학에 대한 글을 쓴다.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김광현은 MLB에 안착할 수 있을까?
이번 시즌 KBO리그를 떠나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김광현은 더 큰 무대에서 잘할 수 있을까? 아쉽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이 답을 알게 되는 시기도 빨라야 5월 이후로 미뤄지게 되었다. 시작은 좋다. 로테이션 진입을 위해 컨디션을 일찍 끌어올리면서 시범 경기의 성적은 좋았다. 4경기 연속 무실점, 8이닝 11탈삼진의 좋은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던 상황이라 그 누구보다 아쉬울 터였다. 실제 김광현의 활약상을 언제 보게 될진 미지수지만, 몇 가지 추측은 가능하다.
‘김광현이 메이저리그에 간다면 어떤 성적을 거둘까?’가 궁금한 사람들에겐 메릴 켈리라는 좋은 예시가 있다. 같은 구장, 같은 수비진을 뒤로하고 공을 던진 메릴 켈리는 김광현보다 1년 먼저 미국행 비행기에 탔다. 2018년 시즌 23.9%의 삼진율, 7%의 볼넷 비율을 기록한 켈리는 메이저리그에 가서도 볼넷 허용 비율이 7.2%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삼진율은 20.3%로 소폭 감소했다. 앞서 태평양을 건넌 류현진의 경우도 비슷했다. 삼진율은 28.6%에서 19.7%로 떨어졌지만 볼넷 비율(6.3%)은 KBO리그와 MLB리그에서 차이가 없었다. 김광현도 자신의 공을 그대로 던질 수만 있다면, 볼넷 비율은 유지한 채 삼진율만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류현진과 켈리의 성적 차이를 김광현의 작년 성적에 대입해보면, 김광현의 기대 삼진율은 16~20%, 볼넷 허용 비율은 5%가 된다. 표는 2019년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100이닝 이상 던진 투수 중 삼진율이 16~20%, 볼넷 비율이 4~7%인 투수 명단이다. 표를 보면 김광현의 성공 여부를 가를 키포인트를 쉽게 알 수 있다. 바로 ‘피홈런’이다. 켈리와 류현진도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가장 달라진 기록은 피홈런이었다. 켈리의 9이닝당 피홈런 개수는 1.02에서 1.42개가 되었고, 류현진은 0.59개에서 0.70개로 늘어났다. 거기에 현 메이저리그는 매년 홈런 개수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김광현의 피홈런 개수도 늘어날 확률이 높다. 다행스럽게도 김광현은 KBO리그에서 가장 홈런이 잘 나오는 구장 중 하나인 인천 SK행복드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면서도 가장 광활한 구장인 잠실야구장을 홈으로 쓰던 린드블럼과 비슷한 9이닝당 피홈런 기록(린드블럼 0.60, 김광현 0.62)을 남길 정도로 피홈런 억제에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 투수다. 김광현이 뛰게 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홈으로 쓰는 부시 스타디움은 홈런이 잘 나오지 않는 구장 중 하나로 꼽힌다. 구장 환경은 김광현의 성공에 손을 들어준다는 의미다. 그러나 과거의 기록을 토대로 하는 예측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기록을 재료로 쓸 뿐이다. 만약 현재의 김광현이 던지는 공이 과거와 다르다면 그런 예측은 아무 의미 없을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시범 경기에서 김광현을 상대한 맷 조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패스트볼을 던진 것 같은데 커터에 가까운 공이었다.” 커터는 패스트볼과 슬라이더의 중간 구종으로 패스트볼보다 살짝 느리고 슬라이더보다 움직임이 적지만, 반대로 보면 슬라이더보다 빠르고 패스트볼보다는 움직임이 큰 구종으로 빗맞은 타구를 유도한다. 그리고 김광현은 KBO리그 시절 커터를 던지지 않던 투수다. 한 인터뷰에서 김광현은 그 커터성 공은 커터를 의식하고 던진 것이 아니라 패스트볼이 몸 쪽으로 휘어 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즉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고 특별히 새로운 무기를 연마한 경우는 아니라는 것이다. KBO 공인구보다 MLB 공인구는 표면이 더 미끄럽고, 실밥선도 덜 튀어나왔는데 그로 인해 똑같이 던졌지만 종전과는 다른 공이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 투수인 마리아노 리베라나 다저스의 마무리 투수 켄리 잰슨의 경우도 의도치 않았는데 공이 커터성으로 움직여 본인의 주무기를 찾아낸 케이스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김광현의 커터가 행운의 무기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리베라와 젠슨의 성공 사례에 반해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수많은 투수의 실패 사례도 있다. 의식하고 던진 것이 아닌데 공이 휘어 들어간다는 소리는 그만큼 원하는 곳으로 제구하기 힘들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김광현은 커터를 새로운 무기로 받아들이고 그 커터를 원하는 대로 던질 수 있을까? 아니면 새로운 구종을 익히기보다는 기존의 구종을 확실하게 갈고닦아 커터처럼 움직이는 패스트볼이 아닌 원래의 패스트볼을 던지는 것을 선택하게 될까?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고 메이저리그가 개막한다면, 김광현의 첫 경기에서 패스트볼의 움직임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_ 박성용 공놀이에 환장한 공놀이 덕후. 현재 프로야구 데이터 분석을 하고 있다.






물보다 싼 기름과 동학개미운동
전쟁이 임박했다고 가정해보자. 사람들은 라면과 휴지 등 생필품을 구비한 채 외출을 삼갈 것이다. 공장은 멈추고 국가와 기업의 존속 여부가 불확실해짐에 따라 화폐와 주식의 가치는 급격히 추락할 것이 자명하다. 발 빠른 부자들은 인플레이션을 피하기 위해 안전 자산인 달러와 금, 부동산으로 부를 이동시킬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 사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집에 머무르고 하늘길이 막혔다. 배달업이 활성화되지 않은 미국에선 사재기가 극성이다. 셧다운(shut down)을 결정한 국가가 늘어났고 주가지수는 2008년 금융 위기 때보다 빠른 속도로 추락했다. 스마트 머니(smart money)는 지체 없이 움직였다. 한국을 포함한 이머징 마켓에서 급격히 주식을 팔기 시작했다. 경제 위기에 기축통화이자 안전 자산인 달러화의 수요와 가치는 언제나 빛을 발했다. 달러화 이외의 화폐는 가치가 하락하고 주가 폭락과 환차손(foreign exchange loss)이란 이중 손해를 피하기 위해 외국인 자금은 이탈한다. 외화보유고가 부족한 국가는 금융 위기를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러를 사 모은다. 지금 코로나19 국면에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최고의 안전 자산으로 꼽히던 금도 한동안 달러화에 치여 가격 하락을 면치 못했고, 굳건하던 강남 부동산도 급매물이 하나둘 나오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기축통화를 갖지 못한 국가들의 시름은 더해간다. 유동성 위기는 금융권을 강타하고 기업의 생명을 위협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한 조치가 통화 스와프(currency swaps)다. 각국이 미리 약정한 환율에 따라 일정한 시점에 상호 교환하는 외환 거래인 통화 스와프를 통해 유동성 위기를 완화하는 것이다. 각국은 이를 통해 환율 안정을 도모하는 한편 돈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양적 완화를 통해 경기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가장 화끈한 쪽은 역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제로 금리와 ‘무제한 양적 완화’를 선언하며 돈을 무한대로 찍어서 위기에 처한 기업의 회사채(CP)를 매입해 파산을 막고 일반 시민에게는 헬리콥터 머니를 뿌려 무너진 실물경기를 살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럼에도 미국이 중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넘어선 지금 주가지수가 무서운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은 확실히 아이러니하다. 또 하나의 모순은 미국이 달러를 무한대로 찍어내겠다고 밝혔음에도 당분간 달러화 강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문가들의 예상이 지배적이라는 점이다.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각 기업의 상반기 실적이 급격히 악화될 것이 예상되는 만큼, 주식과 채권시장에서 자금의 이탈과 달러화에 대한 수요는 지속될 전망이다.
당분간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에 힘을 싣고 있는 큰 축은 ‘기름값’이다. 요즘 주유소에 가면 휘발유 가격이 상당히 내렸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올 초 1배럴당 60달러(미국서부텍사스유 기준) 정도에 거래되던 원유 가격이 지금 20달러대 초반까지 내려와 있다. 쉽게 말하면 시중에 파는 ‘비싼’ 생수보다 싼 가격이다. 이는 2002년 이후 최저 가격이며 2016년 오일 전쟁 당시보다 낮은 가격대다. 높은 휘발유 가격이 부담되는 시민의 입장에선 저유가 환경이 반가울 수 있지만 세계경제에는 상당한 부담인 상황이다. 원유 수출이 국가 재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1배럴당 80달러를 기준으로 예산을 책정한다. 국가 재정의 30%를 원유 수출에 의존하는 러시아 역시 한 해 농사를 망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 두 국가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주도적으로 원유 증산 계획을 밝히며 경쟁적으로 저유가를 이끌고 있다. 타깃은 명확하다. 미국의 셰일 오일이다. 몇 년간 미국은 중동과 러시아의 원유 패권을 빼앗으려고 야심차게 셰일 오일을 산업화해 산유국에 위협이 될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많은 생산비가 드는 셰일 오일은 원유 가격 45달러 이하에서는 경쟁력을 잃는다. 저유가 환경이 이어지면 셰일 기업은 도산할 가능성이 높고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산 원유는 반사적으로 거래처가 늘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이 기회를 틈타 석유 패권을 다시 가져온다는 계산이다. 파국으로 치달을 뻔한 치킨 게임은 다행히 4월 증산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개입으로 다소 진정된 분위기다. 그러나 아직까지 원유 가격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요 감소로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대로라면 미국의 셰일업체는 물론 원유 수출 비중이 높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브라질, 베네수엘라, 이라크, 이란 등의 국가 재정이 악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과거처럼 군사적 위협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좀 더 유익한 투자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지금 국내 주식시장에선 ‘동학개미운동’이 한창이다. 외국인이 연일 대량 매도에 나서는 시장에서 추가 하락을 막고 나선 주체가 바로 개미 투자자다. 개미 투자자들은 연일 수천억 원에서 1조 원 넘는 주식을 매수하며 1450 선까지 추락한 지수를 1700 선으로 끌어올렸다. 인기 종목은 역시 삼성전자다. 3월 한 달간 개미 투자자들은 삼성전자 주식을 약 5조 원어치 사들였다. 외국인과 기관은 그 금액만큼 팔았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최고 우량주의 저점 매수에 나섰다는 점은 고무적이나 만약 글로벌 경제의 변동성으로 다시 한번 시장이 출렁일 경우 개미 투자자들의 투매가 나올지 여부가 수익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개미 투자자들은 원유에 대규모 자금을 배팅하고 있다. 기름값이 오를 것으로 예상한 투자자들은 ETF, ETN 등 원유 관련 파생 상품에 1조 원이 훌쩍 넘는 자금을 투입했다. 예상치 못한 자금 유입으로 각 상품별 유동성 공급자(LP)들의 물량이 동나 원유 가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통상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 투자는 변동성 예측이 어려워 위험 자산으로 분류되고 전문가의 투자 영역으로 인식된다. 이례적인 저유가 환경에 개미 투자자들의 투심이 폭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가장 큰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이어지고 있는 투자시장에서 삼성전자와 원유라는 두 극단적 투자처에 배팅한 개미 투자자들이 과연 어떤 성적표를 받을지 팝콘이 필요할 정도로 흥미롭다. _ 박지훈 법학을 전공한 금융 기자.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에 관심이 많다. 현재 매일경제 경제 매거진 <럭스멘>에서 일한다.






호모루덴스의 방구석 1열
코로나19 사태로 최근 전염병이나 재난을 다룬 콘텐츠가 여럿 회자되고 있다. 영화 <컨테이젼>, <감기>, HBO 드라마 시리즈 <체르노빌>,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 등 지금의 사태와 비교할 수 있는 콘텐츠 가운데 필자에게 가장 큰 울림을 준 작품은 흑사병으로 폐쇄된 도시 오랑의 모습을 그린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다. 등장인물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페스트로 인해 구체적 삶의 행복을 빼앗겨 괴로워하는 <페스트> 속 장면들은 코로나19 사태를 맞은 우리네 모습과 무척 닮았다. 필자 역시 코로나19로 인해 삶의 행복을 다수 빼앗겼다. 프리랜서인 필자의 작업실이던 공공 도서관은 문을 닫았고, 또 다른 작업실인 동네 스타벅스는 재택근무하는 사람, 개학이 연기된 학생들로 북적여 자리를 잡기 힘든 풍경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은 글을 쓰고 영화도 볼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나 공공기관이기에 당연히 휴관 상태고, 안타까운 건 언제 재개관할지 기약조차 없다는 것이다.
‘나는 콘텐츠를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가 밀레니얼 세대에게 적용된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 역도 가능하다. ‘나는 존재한다, 고로 콘텐츠를 소비한다.’ 그렇게 방콕하는 나날은 이어지고, 아무리 흉흉한 시국이라도 나름의 방법으로 즐기면서 문화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집에 홈시어터는 없지만 불을 끄고, 암막 커튼을 치고, 스마트폰 음소거를 하고, 보다 몰입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든 채.
자가격리를 생활화하며 새로운 콘텐츠를 열심히 찾기보다는 그동안 사랑한 영화를 다시 감상하고 있다. <올모스트 페이머스>나 <비기너스> 같은 영화는 좀처럼 베스트로 꼽히는 작품은 아닌데, 필자가 왜 이런 영화에 그토록 빠졌는지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독자들에게도 자신의 인생 영화 톱 10 목록을 작성해보길 권하고 싶다. 인생 영화 몇 편을 꼽는 것은 비교적 간단할 수 있으나 톱 10을 선정하는 일은 무엇을 포함하고 배제할지, 어떤 기준으로 무엇을 우위에 둘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꽤 품이 드는 작업이다. 이러한 시간이 좀처럼 없었던 우리는 고민도, 기준도 없이 극장을 나서며 ‘왓챠’에 3점 혹은 3.5점 같은 별점을 매기지 않는가.
자연스레 독서량도 늘어났다. <페스트>를 읽은 김에 그 옆에 꽂혀 있던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를 다시 펼쳤다. 사르트르는 ‘인간이란 아무것도 본질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무신론적 실존주의를 소개하면서 그것이 카오스나 허무주의로 빠지는 것 아니냐는 의견에 반박해나간다. 그는 오히려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기에 개인에게 무한한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며 그에 대한 책임이 따른다고 강조한다. 전쟁과 재난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절망하지 않고 주체적 행동과 사회적 참여를 독려하는 사르트르의 논조를 따라가다 보면 감동을 느끼게 된다. 60페이지 분량의 어렵지 않고 간결한 글이니 일독을 권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첫 소설책 출간을 앞둔 상황에서 출판 시장은 사회적 거리 두기의 영향을 덜 받는 분야여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관객과의 대화’를 소재로 다룬 소설 속 풍경이 펼쳐지길 기대한 ‘저자와의 만남’ 같은 행사도 열리기 어려울 모양새라 안타까운 마음이다. 극장이 그리운 시네필이라면 4월에 출간될 을 읽는 것도 좋은 방콕법이 아닐까 (뻔뻔하게) 추천해본다. 부디 모두 이 흉흉한 시국을 건강하게 이겨내기를. 코로나19의 종식과 함께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길 바라며, 오늘도 콘텐츠를 소비하는 존재는 방구석 1열에 앉는다. _ 정대건 영화감독이자 소설가, 키보드 애호가. 영화 <투 올드 힙합 키드>와 <메이트>를 연출했고, 장편소설 등단작 을 최근 출간했다.






코로나 우울증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19와 우울함(blue)을 합성한 신조어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한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나타내는 말이다. 감염 가능성과 현실적 어려움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지속되면 뇌는 지치게 되고, 지친 뇌는 우울 증상을 경험하게 된다.
공포, 불안, 분노는 기본적으로 같은 집안의 감정이다. 뇌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엄지손톱만 한 ‘편도’라는 기관이 조절하는 생존을 위한 가장 본능적인 감정이다. 편도는 신체적 안전이나 사회적 가치, 혹은 신념을 위협받을 때 활성화된다. 처음 나타나는 감정은 불안이다.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을 감지하고 긴장하는 것이다. 우리를 위협하는 가해자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할 때 불안은 공포가 되고, 이기거나 비길 수 있다면 분노가 된다. 그러니까 공포와 분노는 동전의 앞・뒷면인 것이다.
바이러스와 긴 싸움을 하고 있는 지금, 공포를 조절하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의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은 당연히 공포를 야기하고, 공포는 우리의 시야를 좁혀 성급한 판단과 과잉반응을 하게 하니까. 위기일수록 감정을 추스르고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그렇기에 현재 우리의 공포를 조절하고 안전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개인위생 관리와 감염 가능성에 대한 노출을 최소화하는 것, 누구나 다 아는 ‘사회적 거리두기’다.
다음은 불안이다. 불안이 지속되면 뇌에 피로, 무기력감, 짜증과 부정적 사고가 쌓여 우울 증상을 겪게 된다. 코로나피로증후군, 일명 코로나 블루. 불안과 우울증을 예방하고 극복하려면 규칙적 생활을 유지하고,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부정적 자극과의 조우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쉴 새 없이 오는 재난 알림 문자는 어쩔 수 없지만, 부정적 뉴스나 사설은 보면 볼수록 더 부정적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규칙을 정해 꼭 필요한 정보를 확인하는 수준으로 뉴스 보는 횟수와 시간을 줄이는 것이 좋다. 부정적 감정을 긍정적 감정으로 희석하기 위해 즐거운 실내 활동 찾기를 권한다. 부채처럼 쌓인 효도를 하고, 멀어진 친구와 심리적 거리를 줄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최근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 이혼율이 높아졌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는데, 중요한 건 함께 있는 물리적 시간보다 관심을 갖고 들으려는 자세다. 같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고 있다는 연대감과 위로를 얻고 이를 전파하면 불안의 불길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은 분노다. 화를 내고 싶어도 코로나19 상황의 카오스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는 당분간 분노를 참아야 하고, 오히려 서로 도와야 할 때다. 추후 진상이 정확히 밝혀지면 정당한 분노를 표출해야 할 텐데, 지금은 집단적 분노에 모두 심취해 있다. 다행히 집단적 분노는 개인적 분노보다 수명이 짧다. 잊지 말고 나중에 혼내줄 날을 기다리는 동안, 우선은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야 한다. 많은 경우 잘 살게 되면 분노도 조금씩 녹아내리더라.
덧붙여 ‘마음 방역 7계명’을 전하려 한다. 첫째, 감염병 치료・관리 방침 등을 이해하고 코로나19에 관한 팩트를 선별할 것. 둘째, 가족과 친구, 동료와 소통할 것. 셋째, 규칙적 수면 습관 들이기. 넷째, 규칙적 운동. 다섯째, 나의 일상과 건강 돌아보기. 여섯째,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음 챙김 명상하기. 일곱째, 긍정적 마음가짐 유지하기. 너무 뻔한 소리 같아 죄송하지만, 당연한 것이 당연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_ 김창기 김창기정신과의원 원장이자 전 동물원 멤버다.






트로트의 정치학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이 화제가 되면서 트로트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2010년 무렵, 그러니까 10년 전에 나는 2020년 이후가 되면 한국에 ‘트로트를 듣지 않는 중년’이 등장할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트로트는 가장 대표적인 ‘세대의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꽤 오랫동안 트로트의 정의는 논쟁적이었다. 일단 ‘음악 용어’로서 트로트는 미국에서 191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크게 유행한 사교댄스로, 빠르게 진행하는 투스텝 댄스음악을 부르는 말이었다. 초기 로큰롤과도 섞인 이 음악은 현재 한국의 트로트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한국의 트로트는 장르가 아니라,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스타일로 봐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트로트 논쟁은 ‘과거 청산’ 문제로도 확대되곤 했다. 식민지 시대의 잔재거나 군부독재 우민화 정책의 산물이라는 것이 그 근거였다. 한편 트로트에는 한 시대의 정서가 담기기도 했다. 특유의 관습, 미학, 태도가 녹아들었고 이 음악을 소비하는 사람들도 분명해지면서 ‘서민의 음악’이라는 지위를 얻었다. 특정 음악 장르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중과 상호 교류하면서 그 맥락이 복잡해지거나 넓어진 것이다. 덕분에 트로트는 누군가는 싫어하거나, 관심 없거나, 혐오하는 장르이면서 또 다른 누군가에겐 애착을 가지거나, 즐겁거나, 지켜야 하는 전통이 되었다.
내가 ‘2020년쯤 되면 한국에 트로트를 듣지 않는 세대가 등장할 거야’라고 생각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내게 트로트는 ‘개발도상국’이라는 20세기 한국의 공감각적 경험이 특정 세대에게 강렬하게 들러붙은 장르였다. 고향에 두고 온 어머니나 전쟁통에 헤어진 가족을 그리워하는 노래, 돈 벌러 도시로 떠난 애인의 변심으로 상처받은 사랑 노래, 다들 돈타령만 하는 이 세상에서 마지막 순수는 어디에 있느냐고 외치는 노래, 촌놈이 서울에서 어떻게 정착했고 성공했고 실패했는지 구구절절한 사연을 담은 노래…. 이런 노래는 한국의 도시화, 산업화, 민주화 과정 속 빛과 그림자를 담아 그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이것은 명백히 사회문화적 경험이자 세대적 경험이었다. 그래서 한국 사회가 달라진, 정확히 말하면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이 달라진 1990년대 이후 트로트는 자연스레 소멸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1975년에 태어난, 소위 한국의 ‘X세대’로 분류되는 그룹의 일원이기에 더욱 이런 생각이 강했던 것이기도 하다. ‘우리’의 성장기에 트로트의 정서는 촌스러움 그 자체였고, 대신 1990년대 국적 불명의 원히트원더 댄스음악과 김동률, 이적, 토이 같은 ‘고급 가요’를 듣고 자랐기 때문이다(저 명칭의 정당함은 차치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2010년 이후 크게 달라졌다. 트로트는 사라지기는커녕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젊은 피를 수혈하며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장윤정과 박현빈은 21세기 대중음악 비즈니스의 최전방이던 노래방(음원과 음반보다 노래방 매출이 높았기 때문)에서 10대와 20대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무한도전>은 가요제에서 온갖 장르를 선보였지만 특히 트로트를 결합한 음악이 오래도록 사랑받았다. 그뿐 아니라 지드래곤이 작곡하고 대성이 부른 ‘날 봐, 귀순’, 그리고 슈퍼주니어의 ‘로꾸꺼’나 홍진영의 ‘사랑의 배터리’ 같은 곡이 꾸준히 화제가 되면서 ‘맙소사, 내 가설은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했다.
물론 ‘시티팝’이니 ‘뉴트로’니 ‘온라인 탑골공원’, ‘양준일’ 같은 1990년대의 소환이 있었지만 <미스트롯>과 송가인 팬클럽 ‘어게인’의 등장, <미스터트롯>의 성공 사례를 보면 트로트에 대한 기존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 이것은 기존의 세대적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트로트는 음악적으로도, 무대 재현에 있어서도 촌스러웠다. 반짝이 의상은 말할 것도 없고, 기쁨이나 슬픔이나 그저 직설적인 표현만 일삼는 것을 비롯해 활용하는 악기와 비트 역시 공들인 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트로트를 ‘저급한 문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바로 그 때문에 트로트는 관찰하거나 해석해야 할 대상이 됐다. 문화 연구에서 트로트는 상당히 흥미로운 대상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면서 트로트를 지탱하던 요소들은 쪼개졌다. 맥락을 제거한 촌스러움이 단편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 세대가 이런 스타일을 코미디적 요소로 소비하면서 트로트는 일종의 유희가 될 수 있었다. 트로트에 열광하는 고교생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거기에는 오직 즐거움이 있을 뿐이다. 소비하는 주체와 방식이 달라지면서 트로트의 여러 맥락 중 재미만 남았다. 이때 새삼 ‘엔터테인먼트’의 속성을 깨닫게 된다. 이 쾌락은 미디어 포화 상태의 결과다. 현재의 콘텐츠는 노출 그 자체가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감각의 경계를 타고 노는 다수의 콘텐츠 지형도 안에 트로트가 위치하게 된다. 그렇다면 바로 여기서 새로운 감각의 탄생을 상상할 수는 없을까? 요즘의 내 고민이다. _ 차우진 대중음악 평론가이자 저술가로 <청춘의 사운드>, <대중음악의 이해>, <아이돌> 등을 출간했다. 현재 ‘스페이스오디티’라는 스타트업에서 팬 문화와 콘텐츠, 미디어의 연결 구조를 고민 중이다.

 

에디터 <노블레스 맨>피쳐팀
일러스트 최익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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