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보적 안신애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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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02

독보적 안신애

이질적이고 특별한 그녀, 프로 골퍼 안신애.

화이트 자켓 Recto, 페이턴트 부츠 Lavista, 이어링 Tani by Minetani.

2009년 처음 골프 대회장을 찾았다. KLPGA 투어 메이저 경기였는데, 갤러리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국내 골프 팬이 많다는 걸 처음 느꼈다. 그때 조금 이상한 경험을 했다. 갤러리는 다른 스포츠 관객처럼 환호를 보내는 대신 선수의 플레이를 숨죽여 지켜보다 조용히 박수를 치거나 나지막이 탄식을 뱉었다. 아주 우아한 관람 방식이었다. 골프는 이렇게 보는 거구나 싶었다. 품위 있지만 조금은 심심한 스포츠라는 생각에 미적지근한 태도로 경기를 관람했다. 그때 그 분위기와 이질적인 행렬이 지나갔다. ‘미녀’나 ‘여신’, ‘섹시’ 같은 인기 가요 방송에 등장할 법한 수식어가 적힌 플래카드를 든 팬 무리였다. 그들이 좇는 사람은 안신애 프로였다. 그녀 역시 튀었다. 메이크업부터 의상, 외모까지 모델이나 가수 같은 연예인으로 보였다. 그녀의 스윙과 퍼팅은 골프라기보다는 안무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그래서 팬들은 그녀의 플레이를 마돈나의 무대를 보듯 관람했다. 당시 그녀는 루키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당황스러웠어요. 프로 야구 시구로 갑자기 스타가 된 연예인이 그런 심정일까요. 대회에 참석했을 뿐인데 미디어에 여러 차례 보도되고 팬이 많아졌어요.” 물론 당시에도 스타 플레이어는 많았다. 박세리와 김미현을 거쳐 신지애나 홍란, 이보미 같은 차세대 선수가 꾸준히 등장했다. 그런데 그녀는 특별했다. 조금 더 세련됐고, 조금 더 스타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걸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즐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선수들과 조금 달랐어요. 특별함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처음엔 어색했는데, 결과적으로 제겐 득이 됐죠. 마음껏 즐겼으니까. 덕분에 더 열심히 할 수 있었고요. 골프가 대중에게 좀 더 친숙해질 수 있도록 어떤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그녀의 말처럼, 안신애는 골프와 대중의 거리를 좁혔다. 고루한 시니어 스포츠라는 인식을 없앴고, 경기장으로 관객을 불러 모았다. 아이돌 스타처럼 연예 뉴스에 골프 선수의 포토 기사가 오르내린 것도 안신애가 등장하면서부터다. 물론 대중의 관심이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운동선수 같지 않다는 비난, 연예인처럼 꾸미는 게 보기 싫다는 인신공격성 댓글이 끊이지 않았다. “물론 상처를 받았죠. 속상해서 운 적도 많고요. 그런데 잘 이겨낸 것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 관심의 표현이라고 생각했어요. 후배들한테도 그래요. 더 잘되라고 하는 말이니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고요.”






네이비 카디건 Michael Michael Kors, 플리츠 스커트 YCH, 네크리스, 이어링, 링 모두 Bvlgari.

그렇게 10년 넘게 투어에 남았다. 이젠 선배보다 후배가 더 많은 베테랑으로, 4년 전부터 JGTO(일본 골프 투어)에 도전하고 있다. “조금 다른 도전을 해보고 싶었어요. 전 새로운 문화 체험을 좋아해요. 미국은 이동하기가 벅찬데, 마침 이보미나 신지애 같은 선배들이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어 도움을 받았어요. 처음 한두 해는 힘들었지만, 이젠 적응했어요.” 물론 일본에서도 대중의 관심은 이어졌다. 공항에 도착할 때부터 카메라 세례가 이어졌다. 미디어 출연도 잦은 편이었다. 인터뷰와 레슨 촬영, 화보 같은 미디어 활동이 투어와 겹쳤다. 그래서 첫 시즌엔 몸에 힘이 과하게 들어갔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 잘하고 싶다는 욕심 같은 게 플레이를 엉키게 했다. “욕심을 다 버린 줄 알았어요. 투어 생활을 10년 넘게 하면서 코스도 길어지고 거리도 줄면서 슬럼프가 왔어요. 마음처럼 성적이 나오지 않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한국에서 그런 시기를 보내면서 많이 내려놨어요. 내 분수를 알자, 할 수 있는 최선만 다하자. 그런데 일본에 와서도 그런 욕심이 조금은 남아 있었나 봐요.(웃음) 이제는 골프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어요.” 세간의 평가처럼, 그녀에겐 패션과 스타성만 있는 건 아니다. 투어에서 함께 뛰어본 선수들은 입을 모아 그녀가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선수라 말한다. 그리고 골프에 대한 감각이 타고났다고 평가한다.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연습을 쉰 적이 없다. 비시즌에는 하루 종일, 시합이 있는 날에도 2~3시간 클럽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쟁쟁한 선수가 우르르 쏟아진 2009년에 신인왕을 차지하고 KLPGA 통산 3승을 거둔 건 오롯이 그녀의 실력이자 연습의 대가다. “전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믿어요. 뉴질랜드 국가 대표 시절부터 지금까지 혹독하게 연습했어요. 그 자산을 믿기에 아직도 필드에 설 수 있는 것 같아요.” 누구보다 열심이지만 지금은 골프와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한다. 골프와 삶 사이의 적당한 거리. 그게 더 골프를 사랑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한다. “후배들에게도 말해요. 골프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시간 보내고, 좋은 음악 듣고, 맛있는 음식 먹는 일상도 중요하다고. 저도 얼마 전에 깨달았어요. 그래서 지금 골프가 가장 좋아요.” 이번 시즌, 그녀는 처음으로 일본 투어의 풀 시드를 얻었다. 그래서 호주 전지훈련을 마친 뒤 태국에서 보충 훈련을 했다. 드라이버 샤프트도 50g에서 40g으로 낮추고 부족한 거리도 늘렸다. 코로나19 때문에 상반기 대회가 줄줄이 취소되고 있지만, 조바심이 나지는 않는다. 순위나 상금, 경쟁에서 전보다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큰 욕심 없어요. 100명이 참석한 대회에서 50위를 하면 잘했다고 생각해요. 조금 더 힘을 내 그 위에 오르면 그것 역시 너무 감사한 거고. 앞으로 남은 선수 생활을 즐기고 싶어요. 방송이나 사업, 여러 오퍼가 있지만 제가 아직 필드에 있는 이유는 그거예요. 아직까지는 제게 골프만큼 성취감을 준 것이 없거든요.”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사진 김성용   헤어 & 메이크업 하나   스타일링 이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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