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극장은 어디에 있나요?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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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03

당신의 극장은 어디에 있나요?

대형 극장이 없어도 영화를 볼 수 있는 요즘. 좋아하는 극장은 영화관이 아닐 수 있다.

나의 우주
회사와 집이 같은 건물에 있다. 이른바 ‘무지개떡 건축’이다. 집의 식당에서 벽장문을 열고 들어가면 냉장고가 있는 작은 공간이다. 우주선의 ‘에어록(airlock)’ 같은 곳. 거기서 또 문을 열고 나가면 나의 우주, 다름 아닌 회사의 내 공간이다. 기차처럼 길쭉한 작업 공간이 있고, 그 너머에는 서재라고 부르는 또 다른 공간이 있다. 다 더해서 열 평이 채 안 되는 이곳에서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보낸다. 낮에는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대면과 비대면 회의를 한다. 일과를 마치면 집에 가서 저녁을 먹은 뒤 다시 에어록을 지나 우주로 나간다. 물리적으로는 같은 곳이지만, 이 시간에는 다른 우주다. 휴식과 오락과 즐거움의 우주다.
이곳에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친구를 만난다. 여러 종류의 악기도 있고 술잔, 찻잔 등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도구를 여기저기에 숨겨두었다. 종종 프라이빗 바로 변신하던 이곳에 최근 업종이 하나 추가되었다. 다름 아닌 영화관이다. 유료 영화 사이트에 가입한 결과다. 낮에는 42인치 화면에 도면을 비롯한 각종 자료와 줌 화상회의가 담기지만 밤이 되면 치열한 추격전이 펼쳐지고,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며 숨어 있던 스파이의 정체가 드러난다. 접이식 캠핑 의자가 이렇게 편한 줄 이전에는 미처 몰랐다. 의자에 앉아 포근한 기모 담요를 덮고 나면, 술 한잔을 빼놓을 수 없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보태니스트나 큐로 같은 진이 잘 어울린다. 얼음은? 바로 옆 에어록의 냉장고에서 가져온다. 사방 6cm로 두툼하다. 끓인 물로 만들면 훨씬 투명해진다. 그리고 2400K 내외로 색온도가 낮은 조명을 하나 켜둔다. 디머로 조도를 적당히 조절한다. 완전히 어둡지 않아야 눈이 덜 피곤하다.
같은 공간이 시간에 따라 쓸모를 달리하는 것, 그리고 같은 스크린에 다양한 영상이 담기는 것은 서로 닮았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만화경처럼 세상이 휙휙 지나간다. 생각의 무중력 속에 나를 맡기고 가장 편안한 자세로 나의 우주를 떠돈다. 그러다 밤이 깊어지면 다시 에어록을 지나 또 다른 나의 소중한 세계로 돌아간다. 궁극의 휴식을 위해서. _ 황두진(건축가)

회의가 끝나고 난 뒤
사무소 회의실에는 꽤 그럴듯한 스크린과 서라운드 음향 환경이 갖춰져 있다. 주로 클라이언트를 설득하기 위한 용도로 쓰던 공간이다. 그런데 팬데믹 이후 이곳의 쓰임새가 하나 더 생겼다. 바로 1인 영화관이다. 일이 끝나면 회의실 문을 닫고 조도를 낮춘다. 영화가 시작되면 그때부터 내가 바로 이 영화의 클라이언트가 된다. 회의 책상은 스크린에 닿는 시선의 축이 되고, 회의용 의자는 조금 딱딱하지만 그럭저럭 쓸 만하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 전 들뜬 마음으로 사던 콜라나 팝콘은 회의실 냉장고에 구비된 탄산음료로 대체하고, 같이 보기로 한 상대를 기다리는 순간의 설렘 대신 영화 인트로에 오롯이 집중하며 숨을 죽인다. 온전히 내 속도에 맞춰 영화를 재생하니 중요한 장면을 놓칠 일이 없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동행인과 남기는 리뷰 대신 이곳에선 내 식대로 리뷰를 한다. 경험보다 의식의 흐름에 집중하는 1인 영화관. 조용한 분위기에서 혼자 영화를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사실 왁자지껄한 영화관 앞 풍경 역시 몹시 그리운 요즘이다. 코로나19 이후에도 감성을 더한 물리적 공간이 계속 생겨나길 기대한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날로그 감각을 갖고 있으니까. _ 임상우(건축가, zer01ne 크리에이터)





영화 보러 미술관에 간다, 영화 그 이상을 보러 미술관에 간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경복궁 옆 삼청동에 미술관을 기획하던 때, 세 명의 영화감독이 당시의 미술관장을 찾아갔다. 21세기에 문을 열, 새로운 미술관 안에 꼭 영화관이 있어야 한다고 요청했다. 현대미술에서 영화, 더 넓은 의미로 영상은 시각예술과 긴밀한 연관을 맺어왔다. 20세기 초반 움직임에 매혹되었던 뒤샹, 만 레이 등 예술가뿐 아니라 1960년대 백남준에서 시작된 비디오 아티스트, 본격적으로 영상문화 속에서 자란 세대까지 영화는 늘 미술과 함께해왔다.
2013년에 문을 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필름앤비디오’는 120석 규모의 영화관이면서, 연중 5~6개의 프로그램을 꾸준히 기획해왔다. 전시 공간이 별도로 존재하는 미술관의 특성을 살려 필리프 가렐, 요나스 메카스, 하룬 파로키 등 영화 작가의 상영회와 함께 전시, 아티스트 토크, 마스터클래스 등을 개최한다.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토크나 포럼 내용은 영상으로 기록되어 온라인을 통해 언제든 볼 수 있다.
필름앤비디오는 영화를 감상하는 물리적 공간이자, 여럿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기억의 공간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영화를 OTT 등으로 감상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필름앤비디오는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 이상의 경험을 선사한다. 혼자, 집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닌 것.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 감독의 작업 노트와 제작 과정, 작품에 대해 우리가 보고 느낀 것에 대해 함께 나누는 자리를 꿈꾼다. 작품의 탄생 배경, 문화적 맥락과 의의를 찾아가는 즐거운 여정을 기획한다. 나 혼자가 아닌 타인과 함께 의견을 나누는 기쁨과 보람을 찾아, 또 그런 길을 걷는 국내외 창작자나 기관과 함께.
2021년 필름앤비디오의 첫 프로그램은 노먼 맥라렌, 로테 라이니거, 커렐 제먼 등 초기 애니메이션 선구자들이 어떻게 움직임을 만들어냈는지 소개하는 <움직임을 만드는 움직임>전과 상영회다. 디즈니와 지브리 시대 이전, 제작 도구부터 만들어낸 기발한 창작자의 세계가 소개된다. 영화 그 이상을 보기 위한 최적의 장소를 찾는다면, 미술관 옆 동물원 아닌 미술관 속 영화관으로! _ 이수정(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자동차극장과 아이패드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재발견한 것이 많다. 그중 하나가 자동차극장이다. 가끔 교외에서 ‘자동차극장’ 팻말을 보면 괜히 짠한 눈이 되어 ‘요즘 누가 자동차극장에 가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가 계속되자,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자동차극장이 갑자기 ‘거리 두기 영화관’의 단점을 보완하는 매력적인 존재로 급부상했다.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이 비단 나만은 아니었는지, 주말에 자동차극장에 갔는데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한 눈치 게임이 전쟁을 방불케 했다. 그러나 자동차극장에서의 관람은 꽤 좋았다. 겨울밤은 새까맣고, 카 오디오도 나름 들을 만하며, 일행과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보는 영화도 무척 즐겁다는 것, 자동차 시트가 제법 편안하다는 것까지 새삼 발견했다.
또 하나 새로운 발견은 오피스텔의 화장실 한쪽을 채운 간이 욕조다. 평소엔 자리만 차지하고 잘 쓰지 않는 애물단지였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평소보다 목욕을 자주 하게 됐다. 반신욕을 하는 동안 뭐라도 보자 싶어 욕조 커버를 사서 패드를 올려놓았다. 화면도 소리도 작지만 공간 특유의 울림이 있는 데다 무엇보다 완전히 긴장을 풀고 몰입할 수 있는, 제법 괜찮은 혼자만의 관람 환경이 되었다. 영화라도 있어야 버틸 힘이 나는 시기, 그야말로 영화 같은 시기에 늘 당연하게 즐기던 영화관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는 것이 참으로 뼈아프지만, 한편으론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보는 계기가 됐다. 어쨌든 영화 보기를 멈출 수는 없으니까.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_ 민지형(드라마 작가, 소설가)

영화보다 영화관
불 꺼진 영화관이 디스토피아 같은 풍경을 만드는 요즘. ‘이 시국에’ 영화관을 오픈했다는 소식을 듣고, 게다가 오픈 초기 대부분 매진됐다는 소식을 듣고 의아한 마음에 찾아가보기로 했다. 연희동의 복합 문화 공간 스페이스독 지하에 문을 연 ‘라이카시네마(Laika Cinema)’는 예술영화관이다. 단 하나의 관을 두고 시간대별로 다른 영화를 상영하는데, 주로 멀티플렉스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개성 넘치는 작품이다. 40석 남짓한 공간에서 최근 개봉한 타마르 반 덴도프 감독의 <블라인드>를 보았다. 평소 영화보다 영화관 선택에 고심하는 편인데, 이곳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엔딩 크레디트가 끝나고 하나둘 발을 떼는 관객의 대열 뒤를 따라 나오며 자주 찾고 싶은 영화관이 하나 추가된 것 같은 안도감을 느꼈다. 지난달 대형 극장에서 마지막으로 본 영화의 관객이 에디터 일행뿐이던 기억을 떠올리니, 라이카시네마의 매진이 시사하는 바가 커 보인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영화관을 하나씩 갖고 싶었던 건 아닐까? _ 전희란(에디터)





비대면 영화제가 가능하다고?
2020년 1월에 영화 한 편을 완성했다. 세계 각국의 영화제에 보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일련의 시간은 팬데믹으로 인해 무용지물이 되었다. 개봉 전 영화를 보여줄 수 있는 영화제는 감독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기회이기에 박탈감마저 느껴졌다. 출품료를 받는 곳이 대부분인 해외 영화제의 규모 축소는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왔다. 세계의 많은 영화제가 거대한 필름 마켓을 형성하는 걸 고려한다면 이는 결국 영화 산업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영화제는 저마다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감당할 만큼의 규모로 축소하거나, 빠르게 서버를 구축해 비대면 온라인 영화제라는 명칭으로 관객을 찾았다. 저마다 손에 스마트폰이 들린 현대사회에서 오히려 좋은 대안으로 느껴졌다.
나 역시 2020년 12월 ‘충무로영화제-디렉터스위크’ 개막작에 참여하면서 이 기묘한 시대의 흐름을 몸소 경험했다. 영화 상영은 물론 관객과의 대화(GV)도 모두 온라인이었고 영화를 만든 이는 화상회의 앱으로, 참여하는 관객은 포털 사이트로 이 행사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 낯설고 어색한 상황이, 어떻게든 영화를 만들어 관객에 보여줘야 하는 우리에게는 새로운 도전 같았다. 처음이라 미흡하고 아쉬웠던 부분은 차치하고, 영화제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모인 공간에서 우리는 색다른 재미를 찾았다. 그런데 설상가상, 몸담은 회사에서 확진자가 나오는 바람에 홀로 자가격리 상태로 다른 공간에서 GV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동료들과 떨어져 있는 소외감을 느끼면서도 ‘이런 상황에서도 GV에 참여할 수 있음은 기술의 발전 덕이 아닐까?’ 하는 아이러니를 경험했다. 안방이나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면서, 혹은 그 어디에서든 영화를 즐긴다는 건 우리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고 팬데믹 이후에도 과거와 현재 방식이 공존해 자연스러운 변화를 찾아갈 것임을 일깨웠다. _ 황욱(영화감독)

함께하는 몰입, 영화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자기모순적 특징을 지닌다. 하나는 어두운 방에서 이뤄지는 관람이 가져오는 ‘몰입의 순간’이 바로 영화이며, 또한 그러한 몰입은 타인의 존재와 함께하는 ‘공공의 장’에서 벌어진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의 창궐로 도래한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는 이 ‘함께하는 몰입’으로서 영화가 전해주던 즐거움을 상실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 점차 가속화하는 기술의 발전은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던 미디어와 함께 새로운 플랫폼을 등장시켰다. 일반적인 영화관 또는 스트리밍 플랫폼, 나아가 발전된 장치의 보급이 야기한 개인 홈시어터 같은 다채로운 관람 형식을 우리는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비대면은 언젠가는 올 상황을 좀 더 일찍 앞당겼을 뿐이다.
‘함께하는 몰입’이란 무엇일까. 결국 영화를 포함한 모든 예술은 언제나 개인과 집단 사이에 존재해왔으며, 무엇을 본다는 것은 곧 무엇을 공유하고 싶다는 인간의 욕구를 전제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나는 개인의 몰입과 함께 보는 행위를 동시에 점유할 수 있는 어떤 관람 시스템을 상상한다. 그것은 아마도 디지털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관람과 공유의 동시적 작동에 의해 구현될 수도, 혹은 더욱 심화한 형태로 우리의 감각과 심상을 자극하는 기술 개발에 의해 경험이 가능하게 될 수도 있을 테다. 본 작가는 최근 이은희 작가와 협업해 제작한 영화 를 오프라인 극장에서 상영했고, 현재 온라인 스트리밍을 통해 상영할 예정이다. 세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공상과학 시리즈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제작과 편집 그리고 상영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하나의 도전이었던 이 시리즈를 관람한 어느 관객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 영화가 영화관 외 다른 장소에서 상영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영화관이라는 공간은 우리에게 물리적 편안함과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몰입감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 폐쇄적인 상영 방식은 점차 물리적 공간의 개념과 멀어지게 될 것이며, 어쩌면 함께하는 몰입을 구현하기 위한 가상 공간으로 재구성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겪는 현실적 한계를 차치하더라도, 더 효과적인 영화 관람을 위한 대안을 찾는 일은 결코 멈추지 않으리라. 그럼에도 아무런 걱정 없이 극장을 방문하던 시절은 여전히 그리울 테지만 말이다. _ 장진승(미디어 아티스트, zer01ne 크리에이터)

 

에디터 전희란(ran@noblesse.com)
일러스트 이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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