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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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19

우리가 몰랐던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의 <4900가지 색채>전에 꼭 알아야 할 게르하르트 리히터에 대하여.

위쪽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선보인 ‘4900가지 색채’ 작품 앞에서의 게르하르트 리히터. © PA Images / alamy Stock Photo
아래쪽 Hirsch, Oil on Canvas, 150×200cm, 1963, Courtesy of the Artist and Fondation Louis Vuitton Photo Credit: Fondation Louis Vuitton / Martin Argyroglo

문화 예술 관련 취재를 하다 보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주 받는다. “어떤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세요?” “좋아하는 소설가나 미술가는요?” 취향이 남다른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면 음악과 미술, 문학 안에서 한 가지 장르를 명확하게 대야 할 것이다. 분야는 깊고 구체적일수록, 때로는 아주 상세해 혼자만의 세계에 심취해도 좋다.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짓는다면 그것 또한 괜찮다. ‘특별하고 남다른 취향’을 지닌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니까. 이런 ‘웃픈’ 상황을 꽤 지켜본 나로서는 “장거리 운전을 할 때는 클래식을, 출퇴근 할 때는 조용필부터 BTS를 아우르는 K-팝을, 아이와 함께 움직일 때는 EDM을 듣는다”고 차마 말하지 못한다. 팬심을 지닌 가수가 열 명이 넘는다는 사실도 고백하기 힘들다. 자칫 취향이 없는 사람으로 보일까 싶어서다.
종종 예술적 체험에서 특정한 취향을 묵시적으로 강요받는 경우를 본다. 예술을 경험하고 감정의 승화를 거쳐 마침내 새로운 창조로 이어지는 과정은 그야말로 감동적 체험이다. 밥벌이로 삼는 직업이나 경쟁을 무기로 한 비즈니스 프로젝트에서는 발견하기 어렵다. 예술을 마음껏 누리고 흡수한다는 것은 취향 문제를 떠나 인생의 풍요와 직결되는데, 그것의 범위를 스스로 한정 짓고 경계를 나누는 모습은 안타깝다.
예술가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이런 경우가 왕왕 있다. 작가라면 적어도 10년 이상 한 (시리즈) 작품에 매진해야 하고, 새로운 작품을 시도하려면 인생의 터닝 포인트 정도는 있어야 하며, 특히 매체를 바꾸는 건 작가의 자존심을 거는 일이라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걱정스럽다. 예술의 역할, 특히 현대미술의 특징이 무엇인가. 미학적 아름다움을 통해서든, 불편한 진실을 화면에 끄집어내서든 관람객에게 다양한 충돌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현대미술 아닌가. 대를 이어 한 우물을 파는 장인도 필요하지만 충돌을 통한 내적 갈등을 유발해 관람객에게 새로운 생각의 창을 열어주는 것, 남이 만든 사조에 갇히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실험하고 시도하며 어제와 오늘 완전히 다른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현대미술이다.
그런 의미로 봤을 때 현대미술 시장 그리고 미술사에서 지금 가장 유명한 작가로 거론되는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는 현대 미술가의 가장 교훈적인 표본이다. 리히터의 대표작이 이를 증명한다. 리히터는 1960년대 사진 이미지를 차용해 회화의 윤곽을 모호하게 하는 ‘사진 회화’를 선보이며 클래식한 회화 장르에 도전장을 냈다. 더불어 몽타주 기법을 사용해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초현실주의적 회화를 선보였고, 추상에서도 채색과 단색을 자유로이 넘나들 뿐 아니라 아예 매체를 바꿔 래커와 에나멜 스프레이를 사용한 매끈한 컬러 패널 작업까지, 그야말로 오늘날 회화가 시도할 수 있는 확장의 끝을 보여줬다. 놀라운 점은, 시기상 이 모든 작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데 있다. 미학자 진중권은 한 기고문에서 “리히터의 작품에서 우리는 포토리얼리즘 같은 사진적 재현, 구상성이 배제된 회화적 추상, 개념 미술과 초현실주의 연상, 낭만주의적 풍경 등을 모두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리히터의 작품 세계는 온갖 예술 언어로 짠 모자이크 같다”고 했는데, 바로 이 점을 설명한 것이다.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전시 전경.

리히터가 자유로운 예술 세계를 폭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데에는 1961년 서독 망명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32년 동독 드레스덴에서 태어나 드레스덴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해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미술 교육 시스템 안에서 공부하던 그는 사회주의 체재 아래 제한적 자료에 영감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예술의 이데올로기가 정치의 영향을 받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러다 1959년 카셀 도쿠멘타에서 잭슨 폴록과 루치오 폰타나의 작품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서독으로 망명했고, 뒤셀도르프 예술 학교에서 플럭서스·팝아트·전위예술·추상표현주의·미니멀리즘 등 새로운 경향을 접하며 과감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회화를 전개해나갔다.
짐작하겠지만, 리히터를 대표하는 그림은 사진 회화다. 잡지나 가족사진 이미지를 차용해 회화의 윤곽을 모호하게 하는 작업으로 ‘두 개의 촛불’, ‘에마, 계단 위의 누드’, ‘베티’, ‘사슴’ 등이 유명하다. 1963년 뒤셀도르프에서 처음 개인전을 치를 때 선보인 것도 바로 사진 회화. 해골과 함께 놓인 촛불 작품은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봤을 정도로, 몽환적 사진 회화는 그를 상징한다. 실물이 아닌 사진을 보고 그리며 대상을 뿌옇게 처리해 사진 같은 느낌을 주는 사진 회화는 구상을 그렸지만 생생한 추상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리히터 회화의 특색을 드러낸다. 루이 비통 컬렉션 소장 작품 중 가장 초기작인 ‘사슴’도 사진 회화 중 하나로 리히터가 드레스덴 근처 야생 보호구역을 산책하다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다. “너무 오래되어 당시 왜 다른 풍경 대신 사슴을 대상으로 작업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그림을 보면 이상하게 얼룩진 배경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고요. 저는 보통 그림을 그릴 때 흰색 캔버스에서 시작하거든요. 추측해보면, 아무래도 이런 부분은 모두 의도적 표현인 것 같아요.”
리히터는 사진 회화를 추구하는 동시에 1960년대 후반부터 다양한 오일 페인트를 사용해 질감을 살린 회색 단색 회화를 선보였다. ‘Grey’ 시리즈 또한 리히터를 대표한다. 혼란, 우울 등을 상징하는 회색의 잠재성을 살피는 그의 회색 작품은 리히터의 작업 스타일이 만들어낸 우연한 결과물이다. “이 그림은 우여곡절 끝에 탄생했어요. 작은 사이즈의 회화를 여러 점 그리던 중이었는데, 그림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죠. 어떻게든 수정하려다 보니 그림이 점점 회색빛이 되었어요. 과정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거듭하다 보니 그중 몇몇 그림은 괜찮아 보이더군요.” 그는 ‘Grey’ 시리즈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회색 물감을 매우 두껍게 칠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모색했다. 하지만 여전히 회색 회화가 ‘의도치 않음’에서 시작된 것에 만족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 그러던 중 미술비평가 벤야민 브흘로가 “작품이 너무 좋다”고 한 말에 그는 놀랄 만큼 긍정의 기운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저는 불가능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는 가능성에 매력을 느꼈어요.”





Mo..hre, Oil on Canvas, 200×160cm, 1984 Courtesy of the Artist and Fondation Louis Vuitton Photo Credit: Fondation Louis Vuitton / Martin Argyroglo
STRIP (921-2), Digital Print on Paper Mounted between Aluminium and Perspex(diasec), 200×440cm, 2011 Courtesy of the Artist and Fondation Louis Vuitton Photo Credit: ©Primae / Louis Bourjac
Flow (933-6), Enamel on Back of Glass Mounted on Alu Dibond, 105×210cm, 2013 Courtesy of the Artist and Fondation Louis Vuitton Photo Credits: Fondation Louis Vuitton / Marc Domage
Gudrun, Oil on Canvas, 250×250cm, 1987 Courtesy of the Artist and Fondation Louis Vuitton Photo Credits: ©Primae / Louis Bourjac




1972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독일 대표 작가로 선정된 그는 같은 해 카셀 도쿠멘타에서, 그리고 1977·1982·1987년에도 카셀에서 전시하며 인기를 얻었다. 1980년대 중반에는 미국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는데, 1985년 메리언 굿맨(Marian Goodman)과 스페론 웨스트워터(Sperone Westwater) 갤러리와 협업해 선보인 개인전은 전시 개막 전부터 이미 작품이 매진되는 기록을 세웠다. 이듬해 뒤셀도르프와 베를린, 빈, 베른에서 열린 회고전은 리히터의 국제적 인지도를 최고조에 이르게 만들었다. 당시 회고전을 위한 도록 작업을 함께 하고 지금도 리히터 아카이브 책임자로 일하는 디트마 엘거(Dietmar Elger)는 리히터가 미술 애호가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리히터는 지난 60년 동안 어마어마하게 광범위하고 다채로우며 복잡한 작품을 완성했어요. 그의 사진 회화, 색채 견본집, 풍경화, 추상화 등 다양한 작품은 일견 상당히 달라 보이지만, 하나같이 예술·현실·진리에 관해 유사한 질문을 합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마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질문을 던지고 그의 훌륭한 작품 안에서 고유의 답변을 구할 수 있죠.”
디트마 엘거의 말처럼, 리히터는 작업의 범주에 한계를 두지 않는다. 작품 결과물을 스스로 정제하지도 않으며 회화 장르 또한 앞으로 더 무한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리히터는 말한다. “저는 인간이 창조해낸 무언가는 절대적으로 옳거나 거의 옳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창조했느냐니까요.”
이러한 창조적 신념은 이번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에서 선보이는 ‘4900가지 색채’에서도 잘 드러난다. 1970년대에 완성한 ‘1024 Farben’에 쓰인 기법을 활용한 것으로 이 작품에서 리히터는 래커로 표면을 매끄럽게 칠해 그 전까지 붓놀림이 그대로 표현되는 유화 방식의 컬러 차트 회화와 완전히 다른 작품을 선보였다.
‘4900가지 색채’는 쉽게 말해 서로 다른 스물다섯 가지의 색상으로 구성된 5×5의 패널 총 196개를 배열한 작품이다. 총 4900개(25×196=4900)의 픽셀이 약 7×7m의 대형 화면에 설치된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하지만 일반 미술관에서조차 이 크기를 수용할 만한 벽면이 드문 것이 사실. 그래서 리히터는 패널의 조합 방식과 구획을 나눠 거는 방식을 총 11개로 나누어 버전 1부터 버전 11까지 총 11개의 시리즈 형태로 전시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5×5로 제작한 패널을 전부 붙여 한 개의 작품으로 만들 수도 있지만, 패널의 배열과 조합을 달리하면 작품이 4개로, 때론 6개로, 때론 10개로 배열이 가능한 셈. 루이 비통 에스파스 서울에 걸린 조합은 ‘9번째 버전’(2007)으로 대형 작품 2개와 중소형 작품 2개 등 총 네 작품으로 나뉘어 있다. “이왕이면 사람들이 주어진 공간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나누어 자유롭게 배치하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항상 196개의 패널을 전부 전시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고요.” 사진 회화나 유리 회화 등 그동안 리히터가 선보인 추상 기반의 회화와 달리 ‘4900가지 색채’는 작가의 의도가 단번에 파악되지 않는다. 붓질이나 물감의 물성이 만들어낸 오브제적 회화가 아니다 보니 관람객은 자칫 ‘무엇을 봐야 하는지’ 궁금증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중요한 힌트다.
리히터는 이 작품에서 어떠한 지배적 구조나 구성을 식별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4900가지 색채’는 색채의 다양한 관계가 이룬 하나의 회화이니 각각의 색상이 서로 만들어내는 ‘관계’를 찾고 그것에 집중하라는 것. “특히 더 흥미롭게 감상하고 싶은 관람객은 컬러 차트에 드러난 주관성이 어떠한 표준이 되는 객관적 특성과 연결되어 있는지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주관성을 객관화하는 과정에 많은 노력을 들였거든요. 쾰른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할 때도 그랬죠. 적합한 비율과 색조에 도달하기 위해 수차례 실험을 거쳤습니다.” 쾰른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은 리히터가 ‘4900가지 색채’와 함께 진행한 특별한 커미션 작업이다.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전시장에서는 성당 창문을 아름답게 수놓은 컬러 패널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제작·설치되었는지 영상으로 보여주니, 건축으로 승화된 리히터의 컬러 작업이 어떤 모습일지 화면으로나마 꼭 확인하길 바란다. 90세를 목전에 둔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아카이브는 2006년 드레스덴 국립미술관 소속 기관으로 창설했다고 한다. 한 작가의 아카이브가 국립미술관에 소속되어 문을 연 것이다. 이는 작가의 명성과 현재 위치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 곱씹어야 할 부분은 아카이브 책임자 디트마 엘거가 말했듯, 리히터의 작품이 우리에게 던지는 예술·현실·진리에 관한 질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을 마주한 채 관람객 스스로 고유한 답변을 발견하는 행위가 아닐까.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제공 & 취재 협조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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