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놓치면 안 되는 영화와 신간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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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26

올 봄 놓치면 안 되는 영화와 신간

영화와 신간을 딱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고질라 VS. 콩>과 리처드 도킨스의 <신, 만들어진 위험>.

<고질라 VS. 콩> 포스터.
영화 속 콩의 모습.


올해 최고 빅 매치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후 영화관에 거의 가지 않았다. 마음 편히 갈 상황도 아닌 데다 무엇보다 보고 싶은 작품이 별로 없었다. 편식 없이 다양한 작품을 즐겨 보는 편이지만, 영화관에선 거대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를 봐야 한다는 이상한 고집이 있다. 드라마나 로맨스 장르는 집에서도 그 감동을 충분히 느낄 수 있으니 기왕 영화관까지 간 김에 큰 스크린과 생생한 사운드의 이점을 살릴 수 있는 작품을 고르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확실히 그런 영화가 부족했다. 마블 스튜디오의 히어로 무비 <블랙 위도우> 등 기대작이 1년 가까이 개봉 일자를 미루고 있으며, 조성희 감독의 SF 영화 <승리호> 같은 몇몇 신작은 아예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로 창구를 옮겨 선보였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모처럼 영화관의 존재 가치를 입증할 작품이 개봉했다. 동서양을 대표하는 두 괴수, 고질라와 콩의 신화적 대결을 그린 <고질라 VS. 콩>이다. 둘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62년 일본 영화 <킹콩 대 고질라>에서 이미 한 번 대결을 펼친 바 있다. 59년 만에 이뤄진 재대결은 ‘몬스터버스(Monsterverse)’의 성립으로 이루어졌다. 할리우드 영화사 레전더리 픽처스와 워너 브러더스가 기획한 몬스터 영화 시리즈로,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킹콩과 일본 도호 영화사의 고질라 시리즈를 빌려와 전개한다. 고질라 관련 판권 계약이 <고질라 VS. 콩>으로 종료되는 만큼 둘의 대결은 이번이 마지막일 가능성이 높다.
<고질라 VS. 콩>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서식지를 잃고 인간의 보호관찰을 받던 콩은 종족의 고향 ‘할로우 어스’로 향하고, 여정 중 분노에 찬 고질라의 공격을 받는다. 연이은 싸움으로 둘 다 기진맥진한 사이 공동의 적 메카 고질라가 등장하고, 이를 막기 위해 서로 힘을 합친다. 지구 내부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지구 공동설을 차용하는 등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눈에 띄지만, 전체 줄기를 엮는 디테일은 헐거운 편이다. 예컨대 메카 고질라를 창조한 에이펙스라는 회사는 시리즈 전편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의 메인 빌런 기도라의 두개골로 조종 장치를 만들었는데, 어떤 경로로 입수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런가 하면 전편에서 고질라를 돕기 위해 희생한 세리자와 이시로 박사의 아들인 세리자와 렌(오구리 분)은 난데없이 고질라를 적대하는 에이펙스에서 근무한다. 이 외에도 <리틀 드러머 걸>의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더 디너>의 레베카 홀 등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콩과 고질라를 싸움 붙이기 위한 도구처럼 소모된다. 빈약한 스토리는 괴수 영화의 기본 옵션 같은 것이지만, 이를 고려해도 <고질라 VS. 콩>에서 극을 이끌어가는 인간의 서사는 유독 약해 보인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인간의 비중이 적은 건 팬들의 니즈를 충실히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고질라 VS. 콩>은 애초에 스토리가 중요한 작품이 아니다. 사람들은 영화의 진짜 주역인 콩과 고질라를 보기 위해 영화표를 끊는다. 이 작품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할 질문, “그래서,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기는데?”에 대해 충실히 답한다. 한 단계 진화한 특수 효과로 실제를 방불케 하는 거대 괴수의 싸움을 구경하자면 지루할 틈이 없다. 바다 한가운데서 수중전을 펼치고, 홍콩의 빌딩 숲을 초토화하며 벌이는 액션 신은 역대 최고라 할 만하다. 고질라의 둔한 액션은 가끔 지루할 때가 있는데, 콩의 날렵하고 유연한 몸놀림이 이러한 단점을 상쇄한다. 그야말로 영혼의 콤비. 또한 앞서 언급한 괴수의 고향, 할로우 어스의 장엄한 풍경도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 모든 장점은 작은 스마트폰 화면으로 제대로 경험할 수 없으니, 영화관이 아니더라도 가능한 한 큰 화면으로 감상할 것을 추천한다. 에디터 황제웅







<신, 만들어진 위험>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 © Jane Lenzova


리처드 도킨스와 과학적 무신론
영국의 생물학자이자 저명한 과학 저술가 리처드 도킨스는 우리에게 친숙한 저자다. 대표작 <이기적 유전자>(1976)를 시작으로 그의 저작 대부분이 번역되었고, 다윈의 진화론에 관한 가장 명쾌한 해설가로 찬양받는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악명도 높은데, 주로 <이기적 유전자>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은 <만들어진 신>(2006) 때문이다. 그로부터 13년 뒤(번역서는 15년 뒤)에 나온 <신, 만들어진 위험>은 <만들어진 신>의 속편이면서 보급판이다.
<신, 만들어진 위험>의 독자는 두 부류로 나뉘는데, <만들어진 신>을 이미 읽은 독자와 그렇지 않은 독자다. 아직 읽지 않은 독자를 고려해 내용을 되짚어보면 <만들어진 신>은 종교, 특히 인격 신에 대한 신앙을 근거 없는 망상으로 비판함으로써 도킨스를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무신론자로 만들어준 책이다. 비종교인은 그의 거침없는 종교 비판에 환호했고, 종교인 특히 기독교인은 그의 비판이 너무 거칠거나 독선적이라고 생각했다. 도킨스의 도발적인 과학적 무신론은 자연스레 그의 지지자와 반대자를 낳았다. 학자 중에서 꼽자면, 도킨스를 포함해 ‘무신론의 네 기사’로 불릴 만한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대니얼 데넷, 샘 해리스 등이 그의 강력한 동료고(네 사람은 <신 없음의 과학>을 공저했다), 존 레녹스와 알리스터 맥그래스 등의 신학자가 단호한 비판자들이다. 쟁점은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부터 ‘우리가 도덕적으로 선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이 필요한가’까지 여러 문제에 걸쳐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지적 설계론과 그 비판이다.
흔히 도킨스를 비롯한 일군의 ‘전투적 무신론자’ 입장을 신무신론(새로운 무신론)이라 부르는데, 신무신론의 특징은 종교적 신앙을 과학이라는 척도로 재단하고 그 비합리성을 가차 없이 폭로하는 데 있다. 사실 과학과 종교가 반드시 대립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과 종교가 각각 사실의 세계와 의미(구원)의 세계에 관여하고 각기 다른 질문에 해답을 제시하려는 것이라면, 둘의 공존이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그런데도 과학자들이 정색하고 종교 비판에 나서는 배경에는 변형된 창조론으로서 지적 설계론의 등장과 득세가 있다.
지적 설계론은 생명 현상이 너무도 복잡하기에 무작위적 우연의 결과로는 탄생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시계처럼 복잡한 기계장치가 시계공이라는 창조자 없이 만들어질 수 없는 것처럼, 복잡다단한 생명 현상도 고도의 지적 능력을 갖춘 설계자를 가정해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킨스는 이것이 틀린 주장이며, 다윈의 자연선택론이 실제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진화하는 과정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제공한다고 예증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진화생물학자들은 인간의 종교가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대한 설명까지 제시하려 한다. 예컨대 종교가 진화적 적응이라는 설과 진화의 부산물이라는 설, 그리고 종교가 문화적 복제자로서 하나의 밈(meme)이라는 설 등이 그것이다.
사실 생명의 진화에 관한 진화론의 설명은 매우 강력하고 설득력이 있기에 지적 설계론이 충분한 반론을 제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신학자와 일부 과학자는 다시 생물학 대신 우주론을 주제로 끌어온다. 중력상수(G)를 포함해 우주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힘과 그 상수값이 왜 그렇게 매겨졌는지 현재의 과학은 아직 알지 못한다. 하지만 도킨스는 그것이 신이라는 설계자를 다시 끌어들이는 명분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내기를 건다면 단연코 신이 아닌 과학에 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제 그 내기 판이 독자 앞에 놓여 있다. 당신이라면 어디에 걸겠는가? 문학평론가 로쟈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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