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를 위한 문화 리스트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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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03

여름휴가를 위한 문화 리스트

여름휴가에 무얼 보고, 읽으면 좋을까?

<퀸스 갬빗>
<나의 문어 선생님>
<플리백>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6월이면 슬슬 여름휴가 계획을 짤 시기다. 안타까운 사실은, 올해도 해외여행이 요원하다는 것. 집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국내 어딘가로 휴가를 떠나도 숙소에서 시간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렇다고 시무룩할 필요는 없다. 괜찮은 책과 영화, 드라마로 휴가를 채울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니까. 유일한 문제라면 아직 무엇을 볼지 결정하지 못했다는 것 정도. 하지만 이 또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남다른 취향을 자랑하는 각 분야 전문가에게 볼만한 콘텐츠를 추천받았으니, 이 중 분명 구미가 당기는 작품이 있을 것이다.
기타리스트 배장흠은 글렌 커츠의 에세이 <다시, 연습이다>를 일독할 것을 권했다. “글렌 커츠는 어릴 때 기타리스트를 꿈꿨어요. 음악 명문인 뉴잉글랜드 음악원에 입학했지만, 음악가로서 재능이 부족한 걸 깨닫고 다른 길을 택했죠. 이런 그가 십수 년 만에 다시 기타를 잡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뭔가를 이루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바쳤지만, 기대만큼 결과를 얻지 못해 포기한 경험이 있잖아요. 하지만 그는 연습 자체가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과거엔 잘하고 싶다는 부담을 갖고 연습에 임했다면, 책을 읽은 뒤에는 연주처럼 연습을 즐기게 됐습니다.”
회원제 문학 도서관 소전서림 관장 황보유미의 선택은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하소설 <대망>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다 노부나가 등 세력 간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던 전국시대를 평정하고 통일을 이룬 파란만장한 역사를 그렸다. “등장인물이 많은 데다 이야기 구조가 복잡해 도전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에요. 하지만 묵묵히 읽고 나면 그 재미에서 헤어나기 어렵죠. 많은 군상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해 현대인에게 지표가 될 인간 표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삶의 지침이 될 만한 명문이 많아 나만의 문장을 찾아보는 것도 여름날 무더위를 잊는 재미가 될 겁니다.”
<끌리는 디자인의 비밀>, <디자인 인문학> 등을 집필한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최경원은 도올 김용옥의 신작 <동경대전>에 주목했다. 수운 최제우가 지은 동학의 경전을 도올이 심혈을 기울여 번역하고 해설한 책. 도올은 새로운 정체성 확립이 필요한 오늘날 동학의 지성과 영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최경원 대표는 “지금 한국은 세계로부터 저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정작 왜 잘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도올은 과거 선조가 갖춰놓은 사상적 배경에서 그 답을 찾았어요. 과거 문제에 골몰하기보다 미래를 내다봐야 하는 요즘 같은 시기에 적절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책입니다.”
넷플릭스 예능 프로그램 <범인은 바로 너!>를 제작한 PD 조효진은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나의 문어 선생님>(2020)을 선정했다. 작품의 주인공은 남아공 출신 다큐멘터리 감독 크레이그 포스터. 심신이 지친 그는 고향의 아름다운 바닷속을 헤엄치다 특별한 암컷 문어를 만난다. “자연 다큐멘터리라기엔 소박한 편이에요. 대신 문어와 사람의 특별한 우정에서 비롯된 각본 없는 드라마가 펼쳐지죠. 크레이그는 치열한 삶을 사는 문어를 관찰하면서 인생의 목표를 다시 찾게 됩니다. 뻔하지 않으면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작품으로, 요즘 새 프로젝트 준비로 고단했는데 모처럼 힐링이 됐습니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총감독 인재진은 다큐멘터리 영화 <글래스톤베리>(2006)로 코로나19 이전에 펼쳐진 여름날 축제의 추억을 되살려보라고 권한다. “세계 최대 규모의 록 페스티벌인 글래스톤베리를 다각도로 조명한 작품이에요. 방송국 촬영본부터 개인이 소장한 자료까지 다양한 영상 소스를 다소 거칠게 이어 붙였는데, 이것이 오히려 축제 현장에 실제로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 작품을 보면 사람들이 왜 축제 현장에 가고, 축제가 계속되어야 하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겁니다.”
예전에 보고 실망한 작품을 다시 봐도 괜찮을까? 영화평론가 허남웅은 그렇다고 말한다. DC 코믹스의 히어로가 총출동한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2021)는 2017년 작품 <저스티스 리그> 감독판이다. “잭 스나이더 감독이 딸의 죽음으로 <저스티스 리그>에서 중도 하차하지 않았다면 이 영화는 그렇게 혹평받지 않았을 겁니다. 감독판은 이를 증명하는 작품이죠. 잭 스나이더 버전은 러닝타임이 4시간 2분인데, 사건 위주로 전개하느라 인물의 사연이 잘려나간 <저스티스 리그>와 다르게 6개 챕터로 나뉩니다. 슈퍼맨을 제외하면 저스티스 리그 슈퍼 히어로는 비주류예요. 여성 히어로, 흑인 히어로 등 각자의 사연을 누구에게도 치중하지 않고 ‘공정하게(justice)’ 다룹니다. 공정과 다양성의 시대에 걸맞은 메시지와 완성도를 갖춰 그간 DC 확장 유니버스 작품에 실망한 사람들의 마음을 되돌리기 충분합니다.”
블랙핑크가 입은 한복을 디자인한 패션 디자이너 단하의 선택은 <미드나잇 인 파리>(2011). 근현대 서양 예술과 문학에 대한 우디 앨런 감독의 동경이 묻어나는 영화로, 파리의 밤거리를 배회하던 주인공이 홀연히 나타난 택시에 올라타 1920년대 예술가들과 조우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프랑스 파리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예요. 여러 곳에서 디자인의 영감을 얻는 제겐 파리에서 마주친 책과 그림, 문학과 예술이 보물처럼 느껴지거든요. 이런 파리의 밤을 헤매다 보면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고요. 지금 당장 그곳에 가지는 못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금 주인공의 발자취를 따라 걷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진작가 김용호는 월터 테비스의 1983년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2020)을 추천했다.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낸 주인공이 체스에 천부적 재능을 타고났음을 깨닫고 경쟁자를 물리치며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스토리. 독특한 소재와 탄탄한 짜임새로 입소문 난 작품이지만, 김용호 작가는 유독 패션과 음악에 눈길이 갔다고 말한다. “주인공이 성장하고 변화하면서 화려해지는 의상이 흥미롭습니다. 네덜란드의 4인조 밴드 쇼킹 블루의 ‘Venus’(1969) 등 중간중간 삽입된 명곡도 귀를 즐겁게 하고요. 1950~1960년대를 배경으로 기성세대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MZ세대에게는 뉴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작품입니다.”
마지막으로 서울시립미술관 관장 백지숙은 올여름 다시 보고 싶은 작품으로 <플리백>을 꼽았다. 자기혐오와 죄책감 등 복잡한 심리를 지닌 한 여성의 이야기를 풀어낸 영국식 블랙코미디 드라마다. 주인공은 스스로 ‘플리백’이라 칭하는데, 이는 ‘더러운 몰골을 한’ 혹은 ‘싸구려 숙박업소’라는 뜻이다. 이름만큼 현대 여성의 솔직한 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데, 이는 지금껏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지 못하던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이기도 하다. “유머와 냉소, 애잔함과 고통, 판타지와 고독이 마음을 콕콕 찌른다고 할까요. 오히려 그런 모습이 큰 위안으로 다가왔습니다. 얼마 전 배우 윤여정이 영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영국인을 두고 ‘snobbish(고상한 체하는)’하다고 말했는데, 이 드라마에서 그런 면모가 속속들이 드러납니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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