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피어나는 작업실 만들기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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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11

생각이 피어나는 작업실 만들기

20여 년 간 정원에서 생각을 꽃피우는 켈리타앤컴퍼니 최성희 대표.

최성희 대표의 정원에는 수국을 비롯해 다양한 식물이 자란다. 매일 이를 돌보는 것이 그녀의 일상.

켈리타앤컴퍼니와 최성희 대표를 한 번이라도 만난 사람이라면 그녀의 남다른 안목에 감탄했을 것이다. 켈리타앤컴퍼니의 문패가 붙은 대문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는 순간 ‘아, 이곳에는 분명 보물이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지나는 공간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한눈에도 좋아 보이는 사물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최성희 대표는 집념이 강한 컬렉터다. 어떤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어릴 때 사랑에 빠진 종이도 지금까지 그녀의 마음을 붙들고 있고, 그 종이에 뭔가 쓰고 그리고 칠하는 모든 용품, 그러니까 연필·펜·잉크·물감·붓, 하다못해 인장까지 오랜 시간 꾸준히 모았다. “결국 갖고 싶고 사고 싶게 하는 물건은 무엇일까,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되더군요. 손, 자연스러움, 시간성.” 어떤 물건이 마음에 들어 구입한 경우 최성희 대표는 이를 오랫동안 아끼고 사랑한다. 그렇게 자신의 시간을 그 물건에 투영하는 것이다. 한 예로, 그녀가 15년간 사용해온 발렉스트라 서류 가방은 여전히 깨끗한 베이지 톤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세월 미팅할 때 들고 다니는 노트북만 바뀌었어요.(웃음) 가방은 그대로죠. 많이 낡았지만, 지난 시간을 품고 있어 좋아요. 저는 가죽으로 만든 소품을 좋아해요. 권호진 작가와 함께 직접 만든 안경 케이스나 공책 커버도 모두 내추럴한 가죽을 사용했어요. 해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소재잖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멋스러워지죠. 또 쓰다 버려도 썩어서 다시 흙이 되니까요. 자연스러운 에이징, 또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선순환이 담겼습니다.” 최 대표는 요즘 사람들이 새것에 천착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덧붙인다. 결국 시간을 머금지만 더해진 시간에 비례해 가치가 높아지는 것. 자신이 애정을 갖고 사용하는 물건을 통해 최성희 대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다워지는 것이 진짜라고. 사람이든, 사물이든.





위쪽 최성희 대표가 수집한 장안요 컬렉션. 아틀리에에 누군가 찾아올 때면 꼭 정갈하게 음식을 대접한다고.
아래 왼쪽 펜과 잉크는 최성희 대표와 뗄 수 없는 존재다. 펜화 작업도 많이 선보이고 있다.
아래 오른쪽 오래된 가구와 연적 그리고 루이즈 부르주아의 그림이 퍽 잘 어울리는 공간.

쓰고 그리다
켈리타앤컴퍼니는 최성희 대표의 아틀리에다. 그녀는 이곳에서 쓰고 싶거나 보고 싶은, 즉 좋은 취향이 담긴 소품을 만든다. 말린 찻잎을 보관하는 차 통이기도, 차 맛을 딱 좋게 할 만큼 찻잎을 덜어낼 수 있는 스푼이기도, 늘 맡고 싶은 향을 담은 디퓨저이기도 하다. 자신 있게 ‘좋은 것’이라 말할 수 있는 소품은 최성희 대표의 생각과 미감에 동의하는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허투루 만들지 않으니까요. 제품에 그런 부분이 투영되는 거죠. 차 통과 스푼은 금속공예가 김현성 작가와 협업했어요. ‘완벽하지 않은 데서 오는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작가예요. 겉보기엔 울퉁불퉁하지만, 결국 의도된 손길이죠.” 함께 일할 작가는 어떻게 찾는지 묻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전시나 작품을 자주 보러 다녀요. 자연스럽게 작업에서 ‘나와 같은 향이 나네, 결이 같네’라는 생각이 드는 작가가 있거든요. 그러면 나중에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그 이름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거죠.” 다양한 작가와 협업하기도 하지만, 최성희 대표 역시 자신의 작업을 하고 있다. 요즘은 복합 예술 공간 풍월당에서 발행하는 <풍월한담>이라는 클래식 거장의 이야기를 담는 책 표지를 맡아 그리고 있다. 최 대표는 물감과 붓, 오일 파스텔 등을 이용해 밑바탕이 되는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들어가는 라인 드로잉은 펜과 잉크 혹은 붓을 이용해 따로 그린 뒤 이를 변환해 합치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그래서 이곳이 아틀리에가 되는 거예요. 창밖 정원을 보면서 직접 종이를 느끼고 그 위를 유영하는 붓의 자연스러운 획에 집중하죠. 붓을 모으는 이유가 자연스럽게 설명되겠네요.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또 납작한지, 동그란지, 억센지 등에 따라 만들 수 있는 우연의 효과가 달라요. 펜과 잉크도 마찬가지죠. 손 글씨는 또 그 맛이 다를 수밖에요. 제가 만드는 수첩이나 달력에 실리는 캘리그래피, 라인 드로잉도 직접 그려요. 코로나19 이전에는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유럽에 가면 늘 그 지역의 가장 오래된 화방에 들러 독특한 잉크 통이나 패키지 디자인이 귀여운 펜촉을 사곤 했어요. 평생토록 다 쓰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욕심이 나요.(웃음)” 최 대표는 이렇듯 오래된 것, 수고스러움, 느림에 스민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일찌감치, 또 진정으로 간파했다. 그녀의 이러한 철학이 단순히 수집하는 소품에만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진행하는 작업 전반에 묻어 있음을 증명하는 셈이다.





정원 일을 하는 최성희 대표에게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 이곳에 그녀가 필요한 모든 장비가 구비되어 있다.

결국은 예술
아틀리에 곳곳에는 작품이 놓여 있는데, 최성희 대표가 직접 만든 작품은 물론 그녀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도 여럿 있다. 특히 에디터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양혜규 작가의 방울 작품인 ‘소리나는 동아줄’. 이 외에도 이배 작가의 숯 그림 ‘Drawing’,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품도 눈에 띈다. “양혜규 작가의 작품을 먼저 말하자면,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인 전시에 출품한 ‘소리나는 동아줄’과 같은 작품이에요. 방울이 사실은 접신할 때 쓰는 물건이잖아요. 사실 전 기독교인데,(웃음)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잇는다는 작가의 철학에 공감했어요. 다른 세상 혹은 다른 차원과 만남이라는 주제가 마음에 와닿았죠. 양혜규 작가의 ‘무엇이든 손잡이’라는 작품도 함께 소장 중인데 이 역시 다른 곳으로 가는 문, 이들을 연결하는 뭔가를 상징한다는 점이 참 좋았어요. 그 뭔가는 여행일 수도, 책 한 권일 수도 있어요. ‘무엇이든 손잡이’는 기능을 상실한 채 의미만 남아 울림을 줍니다. 또 루이즈 부르주아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작품만큼 그녀의 말년 모습이 담긴 엽서 속 사진도 사랑하죠. 화가인 자신의 손을 펴서 보여주거든요. 나이가 들어 병상에 누워서도 부르주아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어요. 그런 그녀의 작가적 열정을 닮고 싶어요. 저 역시 시간이 지나도 똑같은 마음으로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지칠 때마다 그 사진을 들여다보곤 합니다.”
짙은 검은색 먹으로 그린 이배 작가의 작품 역시 최성희 대표의 작가적 마인드와 결을 같이한다. “이배 작가님은 꽤 오랫동안 무명 생활을 하셨죠. 그리고 한순간에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어요. 그런 그가 다시 모든 것을 뒤로하고 청도로 내려가 생활하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돈은 그렇게 많이 필요치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본질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신 거죠. 작품의 재료가 되는 숯은 이미 생명이 끝난 나무잖아요. 그런데 작가를 통해 다시 그림이 되면서 우리가 ‘소멸’과 ‘생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해요. 요즘 제가 푹 빠진 분이에요.”
단순히 외형만 보는 것이 아닌, 계속 본질을 꿰뚫고자 하는 그녀가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맥락(context)을 지닌 작품. 이렇듯 최성희 대표는 자신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범주에 드는 작가와 작품의 본질적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심미안을 지녔다.





왼쪽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그림책. 역시 사람 손으로 그린 그림에 매료되어 한 권씩 모았다.
오른쪽 자신이 필요해서 직접 만들거나 아이디어를 덧대는 물건이 많다. 그녀의 철학에 공감하는 이와 협업하기도 하면서 저변을 넓혀 나간다.

생각의 정원
최성희 대표가 꼽은 세 가지 키워드 ‘손’, ‘자연스러움’, ‘시간성’. 이 모두를 아우르는 곳은 다름 아닌 정원이다. 작은 텃밭이기도, 꽃밭이기도 한 이곳에서 그녀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동안 제 정원에 대해 많이 이야기해왔어요.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나면 정원이 궁금하다면서 찾아오는 분도 간혹 계셨죠. 그만큼 제가 애정을 갖고 돌보니 다른 사람에게도 제 정원이 풍성해 보이는 듯해요. 정원을 가꾸는 데 필요한 것도 특별히 신경 써서 고르거나 직접 제작하죠.” 정원 한편에 작은 투명 가드닝 창고를 만든 그녀는 이곳에 삽이나 호미, 물조리개, 못, 장화 등을 비치해둔다. “제가 영국을 참 좋아해요. 정원의 나라라고 할 수 있어요.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는 자주 방문해서 다양한 가드닝 관련 소품을 사 왔어요. 언젠가 좁고 긴 삽을 발견했는데, 너무너무 반갑더라고요. 손잡이를 보면 알겠지만, 엄지손가락을 고정할 수 있는 완만한 홈이 있어요. 사용자의 편의를 생각해 만든 거죠. 사실 화분에 영양분을 줄 때 일반 삽으로 넣으면 주변이 지저분해져요. 그런데 이건 쏙쏙 원하는 만큼 깔끔하게 넣을 수 있어 마음에 들더라고요.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켈리타앤아틀리에에서도 얇은 삽을 제작했어요. 그런데 이곳에 있는 물건을 유심히 살피면 구릿빛이 많이 보일 거예요. 바로 동이에요. 꽃병, 주전자, 통 대부분 동으로 만들었어요. 동은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소재예요. 이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빛깔이 달라지죠. 물조리개를 예로 들면, 담는 물 온도에 따라 시간이 지났을 때 색의 변화가 다르기도 하고요. 이처럼 자연스러운 변화가 가능한 소재가 또 있을까요.”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에는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을 거치며 예쁜 꽃이 가득 피었다. 정원에서 감상할 수도 있지만, 최성희 대표가 손님을 대접할 때 내오는 음식에도 꽃이 장식으로 올라간다. “아무래도 ‘최성희’라는 사람의 결이 있잖아요. 손님을 대접할 때도 자연스럽게 ‘자연’을 담으려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정말 좋아해서 진심을 담아 수집하는 그릇이 있는데, 바로 신경균 작가님의 장안요 그릇이에요. 전통 가마와 물레, 우리 흙으로 만든 것들이죠. 표면의 자연스러운 색과 광택, 또 손에 쥐는 느낌이 너무 좋아요. 주로 차와 떡 같은 한국 음식을 담는데, 이때 정원의 꽃을 올리면 정말 자연을 먹는 기분이 듭니다.”





왼쪽 우리나라 전통 서예 붓을 비롯해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모은 붓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많다.
오른쪽 요즘 푹 빠져 있는 서예. 한국을 비롯한 동양의 전통 벼루와 연적을 모으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 ‘취향’에 대해 고민해봤을 것이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또 어떤 것이 잘 어울리는지 질문하면서 결국은 ‘나’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거친다. 그렇다면 좋은 취향이란 무엇일까? 최성희 대표는 “좋은 취향이라는 것이 어딨나요?” 하며 “굳이 다른 사람이 내 취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민할 필요는 없어요. 내가 관심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에 집중하면 그만이죠. 사람이 다 다른데, 취향이 모두 같을 필요는 없잖아요. 서로 눈치 보며 누구나 하는 그런 게 아니라 자신만의 것, 나의 고유한 색채를 찾으려고 하면 결국 자신의 취향이 될 거예요”라고 덧붙였다. 여전히 우리는 새롭고 신선한 것에 열광할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는 분명 오랫동안 존재했기에 더욱 빛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최성희 대표처럼 그것을 찾기 위해 꾸준히 자신을 들여다보고,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늘 자문해보기 바란다.







최성희 대표가 오랫동안 사용하는 손 때 묻은 흰색 발렉스트라 서류 가방.
한국 전통 추를 직접 문진으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가죽에 사용하는 도장이다. 유럽 여행 중 만난 이 도장의 울퉁불퉁한 마감과 소재에 매료되었다.
인장 컬렉션 역시 최성희 대표가 자랑하는 것 가운데 하나. 스톡홀름에서 구매했다.
모두가 에르메스의 가죽 제품에 관심을 쏟을 때 최성희 대표는 스테이셔너리에 집중한다.
모두가 에르메스의 가죽 제품에 관심을 쏟을 때 최성희 대표는 스테이셔너리에 집중한다.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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